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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14일에 열린 새말모임 회의 장면.
 지난 5월 14일에 열린 새말모임 회의 장면.
ⓒ 문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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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질문부터 드린다.

해커톤 대회, 머그샷 제도, 치팅데이, 딥페이크, 콤팩트 시티, 가스라이팅, 웨비나.

위의 용어 중 일반 시민들이 그 의미를 알고 있는 게 몇 개나 될까?

최근 언론 매체에서 자주 나오는 용어들이다. 공공기관의 정책명과 보도 자료에도 외국어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영어 사대주의'라 할만하다. 특히 노년층의 경우, 뜻을 모르는 외국어가 젊은 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기에 '신문맹 세대'를 양산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내에 침투하는 이런 외국 용어들의 특성은 유입 초기에 쉬운 우리말로 바꾸지 않으면 급속도로 확산된다는 점이다. 나중에 쉬운 우리말로 바꾸기도 어렵다.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펴려면 국민이 알아듣는 말로 써야 합니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다면 언론들도 국민이 알 수 있는 용어로 설명해야겠죠."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문화예술정책실 국어정책과에서 '새말모임'을 담당하는 조아라 주무관의 말이다.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국어 신어가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들이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 대체어를 제시하기 위한 위원회다. 국어 전문가와 외국어, 교육, 출판, 정보통신, 언론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로 구성돼 있고 SNS를 통해 소통한다.

"이 외국어를 그대로 둘까요?"

지난 22일 문체부 국어정책과에 들러서 이 일을 시작한 계기부터 물었다.

"박양우 장관님이 취임 때부터 강조한 게 '국어 보존과 확산'이었습니다. 5대 역점사업 중 하나죠. 작년 12월에 기획해서 새말모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국어정책과 김지희 과장의 설명이다. 이때부터 매일 정부 45개 부처와 17개 광역시도에서 내는 보도자료와 20개 언론사의 기사 제목을 검색해왔다. 대체어가 있는 외국어를 사용하면, 메일이나 전화 등을 통해 언론사와 관계 부처 홍보 담당자들에게 수정 요청을 했다.

대체어가 없을 경우에 새말모임이 가동된다. 국어 전문가와 기자, 교사 등 10~12명으로 구성된 3개조의 단체 카톡방을 운영하면서 새말을 선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국립국어원은 새말모임이 제안한 새말 후보 중 1~3 순위를 정하고,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수용도 조사에 착수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이 외국어를 그대로 둘까요?
이런 대체어를 쓸 수 있는데, 어느 게 가장 좋을까요?
최근 통용되는 외국어 중에서 제안할 좋은 대체어는 없을까요?"

문체부는 지난 23일에도 "'마스터리스'는 '재임대'로"라는 제목의 보도 자료를 냈는데, 검색에서부터 수용도 조사에 이르기까지의 쉽지 않은 과정을 통해 탄생한 대체어였다. 마스터리스(master lease)는 건물 전체를 특정 임차인 혹은 전문 업체가 장기 임대한 후 이를 재임대해 관리하는 일을 뜻하는 데, 최근 언론 기사의 제목으로 자주 등장했다.
 
 새말모임 운영 흐름도
 새말모임 운영 흐름도
ⓒ 문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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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이렇듯 외국어가 만연한 것일까?

"한 기자가 말하더라고요. '요즘같이 학벌이 높은 시대에 그 정도의 용어를 알지 못하면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일본어 표기를 바로잡으면 반발이 적은데, 영어 표기를 고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상대적으로 큽니다. 공무원 사회에서도, 가령 규제유예제도를 '규제샌드박스'라고 표현합니다. 새로운 정책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겠죠."(조아라 주무관)

식자층의 허위의식과 영어 사대주의를 지적한 말이다. 외국어 남발로 발생하는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국민 소통을 가로막고, 정보 소외 현상을 심화시킬 수 있다. 특히 노년층에서는 신문맹을 우려할 정도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글문화연대가 지난 3월 발표한 국민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국어 표현 3천500개에 대한 일반 국민의 평균 이해도는 100점 만점에 61.8점이었다. 특히 세대차이가 두드러졌다. 60대 이하는 66.9점이었지만 70세 이상은 28.4점에 그쳤다. 국민 74%는 외국어 표현이 많이 사용된다고 우려했고, 긍정적인 반응은 36.1%에 불과했다.

외국어 확산, 초기에 진압해야 하는 까닭

최근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것은 세계적으로 창궐하는 코로나19에 대한 보도 기사이다. 세계적 이슈이기에 외국어 직수입 현상도 두드러졌다.

새말모임은 이 상황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비말'은 '침방울'로, '드라이브 스루'는 '승차검진', '코호트 격리'는 '동일집단격리', 진단 키트'는 '진단 도구', 의사환자'는 '의심환자'라는 대체어를 제시해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외국어 확산의 초기 진압에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

"정부 청사 구내방송에서도 '비말'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최근에는 '침방울'로 바꿨습니다. 요즘은 매일 구내방송을 들을 때마다 이 일을 잘했다 싶어서 뿌듯하죠."

새말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국어정책과 김철 사무관의 말이다.

김지희 과장도 "최근 과기부에서 코로나19로 인한 교회 예배 정책 지원과 관련, '드라이브 인 예배'라는 말이 들어가는 보도 자료를 낸다는 소식을 듣고 '승차 종교 활동'이라는 용어로 바꿔달라고 요청해서 수정했다"면서 "요즘은 보도 자료를 내기 전에 부처에서도 새말을 문의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새말모임의 영향력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일이 녹녹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선 입에 착착 붙어야 하고, 언론사나 보도 자료에 쓰일 제목이기에 글자 수가 적어야 한다. 가령 새말모임은 '해커톤 대회'를 '끝장 개발대회'로, '해커톤 토론'은 '끝장 토론'이라는 대체어를 제시했는데, 끝장 토론은 일반인들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끝장 개발대회는 제목으로 쓰기에 글자 수가 많고, 어색하기도 하다. 이렇듯 새말 만들기는 또 다른 신어 창조의 과정이기에 산고가 따를 수밖에 없다.

국제적 왕따로 장렬하게 산화?
 
 “쉬운 우리말을 쓰자” 누리집
 “쉬운 우리말을 쓰자” 누리집
ⓒ “쉬운 우리말을 쓰자” 누리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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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말모임은 기사나 보도자료 담당자들에게 자주 협조 요청 이메일을 보낸다. 자기가 쓴 기사나 보도 자료의 제목에 대해 수정을 요청하는 메일을 받은 기자나 공무원들의 반응도 제각각이다. 우리말의 중요성을 제대로 일깨워줘서 고맙다는 반응도 있지만, 까칠하게 대꾸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한 기자는 일반 국민들을 위해 '제가 쓰는 용어를 한번 생각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했는데요, '제목을 고칠 수 있는 편집국장에게 직접 연락해봐라'라고 말하더라고요. '이런 메일 보내지 말고 공공기관 보도자료 제목부터 바꿔라'고 답장을 보낸 언론인도 있습니다."(조아라 주무관)

이 정도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아이스크림을 '얼음보숭이'로"

한 언론사가 새말모임의 메일을 받고 쓴 비판 기사의 제목이다. 이 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그래, 아예 이참에 아이스크림을 얼음보숭이로 바꾸자. 이제는 북녘의 땅에서도 쓰지 않는 순수 우리말 정책을 고집하면서 국제적인 왕따로 장렬하게 산화하는 것이다."

국민 알권리를 위해서도 국민들이 모르는 외국어를 남발하지 말자는 새말 모임의 취지에 대한 문제제기 치고는 저주에 가까운 표현이다.

쉬운 우리말 쓰기, 정보 독점과 정보 소외 막아야

하지만 새말모임은 오늘도 언론기사와 정부 부처의 보도 자료를 매일 검색하면서 일반 국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는 새말 찾기에 나서고 있다.

조아라 주무관은 "요즘은 예능 방송을 보고 있어도 외국어들이 너무 남발되고 있다"면서 "공공기관과 언론만이라도 일반 국민 80%가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하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김지희 과장은 "공공언어를 넘어서 일본을 거쳐 들어온 학술용어에도 관련 학계에 몸담은 사람만 알 수 있는 일본식 한자표기가 너무 많다"면서 "새말모임에서 학술용어를 바로잡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매일 우리 일상 속으로 파고드는 외국어 사용은 정보 독점을 낳고 정보 소외를 불러일으킨다. 누군가는 여기에 제동장치를 달아야 한다. 지난 6개월여 동안 새말모임이 무분별한 외국어 사용에 제동을 걸면서 제시한 대체어는 80여개에 달한다. 우리말을 지키기 위한 방패이기도 하다.

이렇듯 새말모임은 순수 우리말 정책을 고집하는 게 아니라 일반 국민들이 우리말을 쓰면서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루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국제적인 왕따를 자처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 국민들조차 왕따 시키는 외국어 남발 풍조를 막으려는 것이다. 새말모임의 의미 있는 시도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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