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물보라를 일으켜 / da da da da da da da da da da'

오마이걸의 미니멀하고 공감각적인 사운드가 돋보이는 < Dolphin > 속 중독성 있는 가사처럼 최근 여성 아이돌 그룹 씬(scene) 사이에선 변화의 물보라가 일고 있다.

대다수 여성 아이돌들은 '걸그룹'이라고 통칭 되는 이름 아래 특정한 역할 수행을 요구받는다. 남성 아이돌들을 단순히 '보이 그룹'으로 부르는 것과는 다르다. 과거 적지 않은 대중들은 그들이 청순하거나 섹시하거나 귀여운 '걸그룹다운' 모습을 보여기를 바랐다. 그들이 가진 실력이나 잠재력은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되지 못했다.

'핫펠트(HA:TFELT)'로 활동 중인 걸그룹 원더걸스 출신의 예은은 '원더걸스라는 틀에 갇히지 않기 위해 예명을 사용한다'고 밝혔을 정도. 그의 말에 비춰볼 때 걸그룹에 기대되는 이미지나 음악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한정적인지 짐작할 수 있다.

아이돌이라는 객체는 아이돌 그룹을 기획하고 투자하고 데뷔의 권한을 부여하는 기획사, 아이돌을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 시킬 수 있는 미디어, 아이돌을 소비하는 수용자라는 세 객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탄생하고 유지되는 대상인 만큼 외부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 울타리에서 벗어난 이상 '아이돌'로 불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고정된 스테레오타입이 견고히 형성되어 있던 여성 아이돌 영역에서 가장 먼저 변화의 시작은 알린 것은 다름 아닌 수용자들이었다. 수용자들은 여초 커뮤니티나 아이돌 팬덤이 대거 밀집되어있는 트위터를 중심으로 여성 아이돌이 발매하는 음악 속 수동적인 여성상에 문제를 제기했다.

2016년 '샤샤샤' 열풍을 일으킨 트와이스의 < cheer up >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노래가 발매되자마자 여성 수용자들은 여자가 쉽게 맘을 주면 안 돼 / 그래야 니가 날 더 좋아하게 될걸'처럼 곡 전반에 깔린 남성의 리드를 기다리는 수동적 여성상에 불편함을 표했다.

수용자들의 여성 아이돌을 향한 인식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제작자인 기획사들도 인식한 것인지 최근 데뷔하는 여성 아이돌 그룹의 가사와 콘셉트에도 가시적인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여자)아이들 (여자)아이들이 지난해 방영된 <퀸덤>에서 경연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 (여자)아이들 (여자)아이들이 지난해 방영된 <퀸덤>에서 경연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 Mnet

 
'기나긴 너와 이 밤을 너와 이렇게 너와 / 기다린 너와 시간을 너와 이렇게 너와 / 어둠 속 Red light 시선은 Left right 불 위를 걷나 / 시작의 점화 가까이 온다 누가 뭐 겁나'

2018년 발매된 강렬한 뭄바톤 비트가 특징인 (여자)아이들의 데뷔곡 < LATATA >는 지금까지 봐왔던 걸그룹의 데뷔곡과 비교했을 때 곡의 스타일과 그 내용이 심상치 않다. 사랑 앞에 겁 없는 화자의 태도에서 트와이스의 대성공 이후 줄기차게 등장했던 '귀엽고 에너제틱한, 그러나 사랑 앞에서는 수줍은 소녀'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여성 아이돌로는 최초로 프로듀싱을 담당하는 리더 전소연을 필두로 (여자) 아이들은 <한(一)>, < Senorita >, < Lion > 등을 연이어 발매하며 실력과 독보적인 색채를 인정받았다.
 
우주소녀와 이달의 소녀 우주소녀(왼)와 이달의소녀(오)의 데뷔초 의상과 최근 컴백 의상

▲ 우주소녀와 이달의 소녀 우주소녀(왼)와 이달의소녀(오)의 데뷔초 의상과 최근 컴백 의상 ⓒ 스타쉽엔터테인먼트,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

 
몽환성과 소녀다움을 그룹의 이미지로 내세우던 '우주소녀'와 '이달의 소녀' 또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짧은 배꼽티와 테니스 스커트로 드러내던 발랄한 소녀성에서 벗어나 각각 승마복과 제복을 갖춰 입고 사랑을 '이루리'라 다짐하고 'So What'을 외치며 자신의 눈앞에 놓인 높은 벽을 넘어 보일 의지를 다진다. 청순 아니면 섹시로 양분되던 여성 아이돌 시장에 다양성이 용인되기 시작했으며, 여성 아이돌의 이미지가 아닌 능력에 집중하는 분위기 또한 생겨나고 있다.

여성 아이돌 그룹의 다양성이 한순간의 유행으로 그칠 것이라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 1세대 아이돌만 돌아보더라도 펑퍼짐한 수트를 입고 춤을 추거나 이국적인 인도풍의 콘셉트를 내세운 여성 아이돌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는 아이돌 산업의 시작과 맞물린 '이것저것 시도하는 시기'였을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시장의 논리에 따라 사회가 용인하고 수용자가 소비하는 정형화된 청순과 섹시 정도만 여성 아이돌의 선택지로 남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변화의 물보라'는 어느 한 곳에서만 일어날 것이 아니라 기획사, 미디어, 아이돌, 수용자 모두에게서 일어나야 한다. 기획사는 여성 아이돌이 경제적 가치를 지닌 상품이기 이전에 개성 있는 인격체임을 인정하고 여성 아이돌에게도 음악적 역량을 드러낼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미디어는 다양한 개성을 선보일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소비를 통해 기획사와 미디어에 영향력을 가하고 아이돌에게는 지지를 표할 수 있는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 소비하는 사람이 그대로라면 생산하는 사람도 그대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섹시함과 귀여움뿐이던 여성 아이돌 산업에 몇 십 년 만에 찾아온 변화의 물보라가 도약의 계기가 될지, 한때의 혼란으로 지나갈지는 바로 우리 모두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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