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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은 피렌체의 상징이다. 그리고 그 거대한 아름다움 때문에 피렌체를 찾는 여행자들의 필수 방문지이다. 하지만 이곳은 르네상스 시절 가장 큰 정치 스캔들의 무대이기도 했다.

1478년 부활절에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에서 잔혹한 유혈 사태가 터진다. 메디치 가문에 적대적인 파치 가문 일당이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 1449-1492)와 그의 동생 줄리아노 데 메디치(Giuliano de' Medici, 1453-1478)를 습격한 것이다.

하느님의 집이라는 대성당에서, 그것도 가장 큰 종교행사 중 하나이며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부활절 미사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표면적인 이유는 두 가문의 원한과 갈등 때문이지만 사실은 교회, 귀족 등 수많은 권력 주체가 복잡하게 얽힌 사건이었다.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피렌체의 중심이자 상징지만, 1478년 4월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피렌체의 중심이자 상징지만, 1478년 4월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 박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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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VS 반메디치

메디치는 명실상부한 피렌체 르네상스의 중심 가문이었다. 메디치는 특유의 처세술로 큰 부와 함께 시민들의 지지를 얻는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 하지만 피렌체의 모든 이들이 메디치를 지지한 것은 아니다.

메디치의 적대 세력은 대부분 전통 귀족 가문이었다. 이들은 한낱 장사치였던 메디치가 재산을 바탕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근본도 없는 가문이 자신들과 같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로렌초의 할아버지인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1389–1464) 시절에도 알비치 가문을 중심으로 한 반대 세력과 대적해야 했다. 결국 알비치에 의해 코시모는 피렌체에서 추방된다. 하지만 1년 만에 화려하게 복귀하고 오히려 반대파들을 제압해 버린다.

정쟁에서 승리한 이후 메디치 가문의 힘은 더 커졌고 반대파들은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표면적으로는 갈등이 봉합된 평화의 시대였다. 하지만 메디치의 보이지 않는 독재가 본격화된 시기이기도 했다. 전통 귀족 뿐 아니라 메디치 독재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늘어났고 그들은 기회를 기다렸다.

이 아슬아슬한 평화는 코시모의 아들이자 로렌초의 아버지인 피에로 데 메디치(Piero de' Medici, 1416-1469)가 이른 나이에 사망하면서 금이 가기 시작한다. 피에로에 대해서는 오만했다는 평과 사려 깊고 인내심이 강했다는 평이 함께 존재한다. 하지만 공통적인 평은 그가 매우 냉철했으며 아버지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물려받은 가문의 권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

젊어서부터 앓아온 통풍은 평생 동안 피에로를 괴롭혔다. 나중에는 혼자 걷지도 못해 하인들이 들것으로 그를 옮겼다고 한다. 그래서 피에로의 별명은 일 코토소(Il Gottoso, 통풍 걸린 자)였다. 파테르 파트리아에(Pater Patriae, 국부)로 불렸던 아버지 코시모나, 일 마니피코(Il Magnifico, 위대한 자)로 불렸던 아들 로렌초에 비하면 참 초라한 별명이다.

권력이 특정 세력에게 집중되어 있을 때, 그 세력의 수장이 약해지거나 사라지면 균형은 흔들리게 된다. 피에로는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은 지 불과 5년 만에 세상을 뜬다. 그리고 그 자리는 갓 스무 살인 로렌초가 물려받는다. 피에로 체제가 채 자리를 잡기도 전에 수장이 바뀐 것이다. 동요하는 정세 속에서 반대파들은 아직 어린 로렌초의 장악력이 커지기 전에 메디치를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여오는 포위망

칼을 갈아온 반메디치 세력에게 강력한 우군이 등장했다. 바로 1471년에 교황이 된 식스투스 4세(Sixtus PP IV)였다. 그는 시스티나 예배당을 세우고 바티칸 도서관을 확충하는 등 문학과 예술을 장려했지만, 한편으로는 탐욕스러웠고 권력을 이용해 친척들을 요직에 앉혔다.

당시 교황들은 종교 지도자이면서 교황령을 관장하는 군주의 모습도 가지고 있었다. 식스투스 4세는 교황령을 넓히고 싶어했다. 그런데 이탈리아 반도 내 강력한 세 국가, 즉 피렌체와 밀라노, 베네치아의 삼각 동맹 때문에 교황령의 북쪽 확장이 막혀 있었다. 이를 깨기 위해서 피렌체의 메디치는 없애야 할 걸림돌이었고, 반메디치 세력과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일단, 교황은 남쪽의 나폴리 왕국과 동맹을 맺는다. 그리고 피렌체 내부의 반메디치 세력과도 연대한다. 이 반메디치 세력의 중심이 바로 파치 가문이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삼각 동맹을 와해시키는 작업을 시작한다. 어차피 자국의 이익을 위한 삼각 동맹이었다. 그래서 이익이 변하면 얼마든지 깨질 수도 있는 것이었다.

교황은 먼저 밀라노에 접근해서 밀라노의 영토였던 이몰라를 교황령으로 팔라고 제의한다. 당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밀라노의 군주 갈레아초 마리아 스포르차(Galeazzo Maria Sforza, 1444-1476)는 1473년, 이몰라를 교황에게 넘긴다.

교황은 교황군 총사령관이자 자신의 조카인 지롤라모 리아리오(Girolamo Riario, 1443–1488)를 이몰라의 군주로 앉힌다. 그리고 더 나아가 지롤라모를 밀라노 군주의 딸인 카테리나 스포르차와 결혼시킨다. 이로써 지롤라모는 이몰라에 대해 합법적이고 항구적인 지배권을 가지게 된다.

교황이 로마와 멀리 떨어진 이몰라에 눈독을 들인 이유는 지리적 위치 때문이었다. 이몰라는 피렌체 북서쪽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 자신의 조카를 군주로 앉히면서 교황은 피렌체는 물론 삼각 동맹의 움직임까지 면밀하게 감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몰라 구입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교황이 전부 부담하지는 않았다. 이 구입 자금의 상당부분은 파치 가문의 은행이 대출 형태로 지원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가로 파치 가문은 교황청의 공식 은행 지위를 획득한다. 이는 메디치에게 매우 치명적인 조치였다.

메디치 은행은 오랫동안 교황청의 공식 은행이었다. 전세계에서 거둬들이는 막대한 헌금을 교황청으로 보내기 위한 환전과 송금이 모두 메디치 은행에서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메디치 은행은 큰 이익을 남겼다. 당연하게도 많은 이들이 이 특권을 탐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파치 가문이 이를 차지한 것이다.

이제 메디치는 외부에서는 이몰라, 내부에서는 파치 가문의 반메디치 세력에 둘러싸이게 됐다. 거기다 가장 중요한 수입원까지 잃어 버렸다.
  
피렌체와 이몰라, 그리고 로마   교황은 이몰라(붉은 원) 군주에 자신의 조카를 앉히면서 멀리 떨어진 로마(녹색 원)에서도 피렌체(파란 원)의 움직임을 감시할 수 있게 되었다.
▲ 피렌체와 이몰라, 그리고 로마  교황은 이몰라(붉은 원) 군주에 자신의 조카를 앉히면서 멀리 떨어진 로마(녹색 원)에서도 피렌체(파란 원)의 움직임을 감시할 수 있게 되었다.
ⓒ 구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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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피의 4월

메디치의 로렌초라고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는 동생 줄리아노와 함께 피렌체 내에서 자신들을 지지하는 귀족들과 시민들을 규합하는 한편 삼각동맹을 견고히 하기 위해 계속 노력했다. 하지만 이는 엄청난 자금 소모로 이어졌다. 사실 로렌초의 경영능력은 선대에 비해서 많이 부족했다. 로렌초 시절  메디치 은행은 여러 지점이 문을 닫았고 횡령 사건도 발생한다. 이런 상황이니 가문의 힘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파치 가문은 계속 세력을 키워갔다. 눈치 빠른 이들은 메디치에서 파치로 옮겨 붙었다. 이렇게 내외부에서 포위망을 좁혀오던 반대 세력은 이제 메디치 가문의 숨통을 끊기 위한 최후의 일격을 준비한다. 숨통을 끊는다는 것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 로렌초와 줄리아노를 죽이는 것이었다. 치밀한 준비 끝에 1478년, 피의 4월(April Blood)이 다가왔다.

* 다음 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참고자료]
라우로 마르티네스, <메디치 살인사건의 재구성>, 김기협 옮김, 푸른역사
팀 팍스, <메디치 머니>, 황소연 옮김, 청림출판
G.F.영, <메디치>, 이길상 옮김, 현대지성
마테오 스트루쿨, <권력의 가문 메디치2>, 이현경 옮김, 메디치미디어
김태권,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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