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방영된 '아내의 맛'의 한 장면

지난 16일 방영된 '아내의 맛'의 한 장면 ⓒ TV조선


바야흐로 트로트의 시대다. 최근 방송가에선 TV조선 예능 프로그램 <미스터트롯> 출연자들을 섭외하고 프로그램을 신설하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JTBC <아는 형님>은 미스터트롯 편에 3주 방송분을 할애하는가 하면, 기타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트로트를 접목시킨 기획이나 코너를 만드는 식으로 최근 트로트 열풍을 적극 활용하고 나섰다. 그런데 지상파, 종편, 케이블 가릴 것 없이 곳곳에서 트로트를 소환하다보니 이에 대한 부작용도 우려되고 있다. 

흔들리는 기존 프로그램 기획​
 
 지난 16일 방영된 '아내의 맛'의 한 장면

지난 16일 방영된 '아내의 맛'의 한 장면 ⓒ TV조선

 
지난 16일 방영된 TV조선 <아내의 맛>에서도 트로트가 등장했다. <미스터트롯>참가자들로 결성된 신인그룹 미스터T의 강원도 MT를 비롯해서 정동원, 임도형 등이 출연해 댄스를 배우는 내용이 방영 분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프로그램의 기본 성격을 고려하면 이들의 출연은 뭔가 어색한 조합이 아닐 수 없다.  

​당초 연예인 부부들을 중심으로 그들이 그려가는 '소확행' 라이프를 찾겠다는 게 <아내의 맛>의 기본 틀이었다. 그런데 자사 인기 프로그램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의 대성공에 힘입어 상위 입상자들이 속속 <아내의 맛>에 출연하기 시작한다. 고정 출연 중인 연예인 부부 편에 초대손님으로 등장하는 게 아니라 아예 트로트 가수들만의 일상을 따로 영상에 담아 내보낸다.  

​유명 작곡가 조영수와 함께 미스터T는 강원도 고성으로 MT를 떠나 바닷물 입수로 의지를 불태우는가 하면 리더를 결정하며 데뷔 초읽기에 돌입한다. 그런데 신인그룹의 관찰 카메라 영상이 딱히 부부들의 생활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아내의 맛>이 다루던 내용과 무관한 인물들의 출연을 계기로 이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는 한순간에 사라졌고 마치 <트롯의 맛>이란 신규 프로그램같은 착시효과를 연출한다. 아직 초등학생-중학생에 불과한 임도형, 정동원군의 등장도 다를 바 없다.

확실한 시청률 상승 효과
 
 지난 12일 방영된 '편애중계'의 한 장면

지난 12일 방영된 '편애중계'의 한 장면 ⓒ MBC

 
너도나도 프로그램에 트로트를 접목시키다 보니 이른바 '주객전도' 식으로 프로그램 내용이 바뀌는 일도 다반사다. MBC <편애중계>는 최근들어 미니 트로트 오디션으로 탈바꿈하다시피했다. 지난 3월 '트로트 신동 대전' 편이 큰 인기를 얻은 이후 다양한 연령대의 트로트 유망주들의 경연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애초 유명 스포츠 스타들이 일반인들의 삶을 응원하던 내용 대신 트로트 경연이 거의 매주 방송 분량을 차지하면서 원래 제목+성격은 거의 희석되어 버린다. 반대로 안정환, 붐 등 고정 출연자들의 역할은 애매모호한 처지에 놓이고 만다. 이러한 변화를 겪게된 가장 큰 이유는 시청률이다.

​당초 2%대 시청률에 머물던 <편애중계>는 트로트 대결을 도입하면서 2배 이상의 시청률 상승을 기록했다. 이는 타 프로그램들도 마찬가지다. <아는 형님>은 <미스터트롯> 특집 당시 3주 연속 15%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닐슨코리아 유료가구 플랫폼 기준). 토요일 저녁을 책임진 KBS 2TV <불후의 명곡> 역시 <미스터트롯> 출연자들의 등장 여부에 따라 시청률 편차가 크다. 이렇다보니 각 예능마다 트로트, 그리고 <미스터트롯>과 연관된 인물 섭외에 열을 올리는 건 당연한 일이 되고 있다.

각종 경연 프로그램 신설... 대중 피로 심화 우려도​
 
 SBS플러스가 신설한 '내게 ON 트롯'의 한 장면

SBS플러스가 신설한 '내게 ON 트롯'의 한 장면 ⓒ SBS플러스

 
한동안 외면 받던 트로트의 급부상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유행을 타고 인기를 얻으면서 너도 나도 트로트를 소환하다보니 이에 대한 부작용도 등장한다.   텔레비전만 틀면 트로트가 등장하다보니 일부에선 금새 식상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SBS <트롯신이 떴다>와 TV조선 <뽕숭아학당>간의 편성 분쟁처럼 각 방송사끼리의 과열 경쟁도 빚어지고 있다. 엇비슷한 출연진이 여기저기 나오면서 자칫 이미지 소모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등장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 접목 없이 그저 트로트만 소재로 만들면 된다는 식의 안이한 기획의 프로그램 신설 등은 모처럼 활기를 맞이한 트로트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낳고 있다. KBS, MBC도 하반기 <미스터트롯>과 비슷한 대규모 경연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트로트 프로젝트 그룹 결성 예능도 등장할 예정이다. 케이블채널 SBS플러스는 기성 인기 가수들의 트로트 도전기를 그린 <내게ON트롯>을 방영하고 있고 MBN <보이스트롯>은 기존 유명 연예인들의 대거 참가를 연일 홍보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지난 2016~2017년 사이 Mnet <프로듀스101> 인기에 힘입어 각 방송사들이 연달아 아이돌 그룹 서바이블 프로그램을 신설하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지상파, 케이블 가릴 것 없이 아이돌 오디션을 속속 내놓았지만 대부분 실패의 쓴 맛을 봤다. 아이오아이, 워너원처럼 대성공을 꿈꿨지만 결과는 시청자들의 외면으로 이어졌고 현재는 <프로듀스101>조차 한순간에 몰락하고 말았다. 

​요즘의 방송계 트로트 열풍도 이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잠시 폭발적인 사랑을 얻었지만 한순간에 사라진 프로그램들처럼, 트로트마저 과열 양상 속 물거품 인기가 되어선 안 된다. 예능 프로그램 제작진들의 안이한 선택이 아쉬운 까닭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상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트로트 예능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