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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부터 다시 군산 한길문고 상주작가(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작가회의가 주관하는 '2020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로 일합니다. 문학 코디네이터로 작은서점의 문학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자리를 만듭니다. 이 연재는 그 기록입니다.[편집자말]
내 책을 내는 것. 이 꿈을 꾸었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많았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수없이 도전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이 꿈을 제압한 건 먹고사는 일이었다. 이 꿈은 영영 잊힌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웬 걸!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고 싶다'는 꿈은 세월이 가도 늙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숨죽인 채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한길문고 에세이 쓰기'에서 이 꿈을 되찾았다. 서점 상주작가의 손을 잡고 첫 발을 떼었던 사람들은 자박자박 혼자 걷는 아이처럼 블로그,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 월간지, 오마이뉴스에 글을 보냈다. 어느새 책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쓴 사람도 있었다. 한 달에 두 번씩 꾸준히 쓴 글을 합치면, 다들 문고판 책을 펴낼 정도는 됐다.

그러나 한 가지 주제로 써야 책이 된다.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았다. 첫 영국여행, 어머니, 텃밭, 몽골, 그림책, 중년의 일상, 설거지, 경제 자립, 노부부의 삶, 카페 이야기 등 각자의 관심 분야를 10편에서 15편 정도까지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스물한 명이 원고 마감을 정해서 활동하는 메신저 단체방에 글을 올렸다. 각자 책을 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더니 댓글이 달렸다.

"목표가 생기면 뭐라도 계속 쓰게 될 것 같아요. 덥썩!"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네요."
"기분은 벌써 책 나온 거 같아요. 최고의 동기부여가 됩니다."
 

첫 번째 숙제는 책의 주제와 목차 정하기였다. 길 찾기 앱으로 생전 처음 가는 곳의 노선과 주위의 큰 건물을 확인하는 것처럼, 목차를 정하면 각자 쓸 글의 목적지가 보일 것 같았다. 쓰다가 바뀌더라도 필요한 작업이었다. 출간 준비에 들어간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책의 목차를 보고, 서점에 와서 관심분야의 목차를 살펴봤다.
 
10월의 마지막 밤, 군산 한길문고에서는 열세 명의 작가들이 꿈을 이룹니다.
 10월의 마지막 밤, 군산 한길문고에서는 열세 명의 작가들이 꿈을 이룹니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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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이나 출간의 기쁨과 부담 사이를 오가던 사람들은 열한 명에서 열다섯 명으로 늘었다가 열세 명으로 줄어들었다. 첫 책을 내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은 사람들은 '내 글에 날개를 달다'라는 출판기념포스터에 넣을 실명과 필명 사이에서 또 고민했다.

선거에 내건 공약은 아니어도 반드시 지인이 지어준 필명을 써야 한다는 사람, 세례명으로 불리는 게 익숙하다는 사람, 필명과 실명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아이들의 의견에 따라서 실명으로 돌아온 사람 등의 사연을 수용했다. 출판 기념회 포스터에 들어가는 작가 이름을 고치는 데도 사나흘 걸렸다. 

그때 마침 내 눈에 들어온 문장은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의 서문에 있었다. 박완서 작가가 여든 살이던 2010년에 낸 산문집이었다.


"또 책을 낼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내 자식들과 손자들에게도 뽐내고 싶다. 그 애들도 나를 자랑스러워했으면 참 좋겠다.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
 

한길문고라는 동네서점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들이, 한 사람의 작가로 태어나는 몇 달 간의 과정 내내 행복하기를 바랐다.

나는 서울에서 독립출판 과정을 수강하고 책을 만든 친구에게 커리큘럼 과정이 어떠했나를 알아봤다. 2강은 콘텐츠 구성과 책 내용 정하는 것. 나머지 4강은 인디자인과 조판, 인쇄와 종이의 종류, 샘플 책 만들기, 책방 입고하기 등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출판사를 통해서 책을 펴낸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이었다.

책을 출판하는 길은 한두 가지만 있는 게 아니다. 지난 2월에 서점에서 만난 황보윤 작가는 다양한 출판물을 보여줬다. 아이들 문집, 모녀의 대화록, 젊은이들의 여행기 등은 저마다의 개성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때 같이 있던 사람들은 "나도 책 만들고 싶다"고 부러워했다. 그 책들 중에서 몇 권을 만든 출판사와 그 책을 판매하는 독립책방은 군산에 있다. 당장 도서출판 진포 류인상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표지와 본문 디자인을 흑백으로 편집하는 데 10만 원, 책 30권을 인쇄하고 제본하는 데 넉넉잡아 20만 원, 다해서 30만 원이었다. 사진이나 그림을 넣고 부수를 늘리고 싶은 사람들은 추가 비용을 부담하면 된다. 기술이 없으니까 전문가한테 기대고, 우리는 글만 잘 쓰면 되는 일이었다.

출간된 책은 한길문고에서 '군산 작가 특집'으로 매대를 따로 주기로 했다. 원고의 중간 마감은 7월 27일, 완전 마감은 9월 15일로 정했다. 교정과 교열을 함께 보고, 10월의 마지막 밤에 출판기념회를 하는 일정이다. 한 발 더 나가서 독립출판한 책의 원고를 고쳐 출판사에 투고할 수도 있겠다.
 
출판 모임. 이날은 한길문고에서 강연해 주셨던 정명섭 작가님도 잠깐 같이 했다.
 출판 모임. 이날은 한길문고에서 강연해 주셨던 정명섭 작가님도 잠깐 같이 했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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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책의 목차를 정해서 함께 모인 날. 한 달에 두 번씩 하는 에세이 수업 시간처럼 나만 혼자서 말하고 있었다. 편집자를 해본 적 없는 나는 아주 낮은 수준의 가이드 노릇만 할 수 있는데... 또 그 과도한 업무를 맡을 능력도 없는데... 모두 반짝이는 눈으로 나만 바라보는 기분이 들었다. 짐을 가득 지고 혼자 걷는 것 같았다. 다음 날, 메신저 단체방에 올라온 글 하나가 유난히 마음에 들어왔다.
 
"저는 그냥 내 글을 쓰려고요(김훈 – 나의 글은 다만 글이기를 바랄 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고 당신들의 긍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막연하고 괜한 일 시작했나 무서웠는데 어제 기획회의하면서 오히려 의욕이 생겼어요. 새 글의 구상이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지만 즐기려고요. 선생님들도 함께 힘내서 결과를 봅시다요~^^"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혼자만의 글쓰기를 척척 해온 사람들이다. 길게는 1년 반, 짧게는 1년여 동안 글을 써온 사람들이다. 여태까지 해온 것처럼 자신을 믿고, 서로를 의지하면서 갈 수 있었는데, 나 혼자 겁을 먹고 괜한 걱정을 한 거였다.

출판 모임을 시작한 지 한 달여가 지났다. 직장에 다니고, 아이들을 키우고, 일상을 꾸리면서 글을 쓰는 사람들은 마감의 압박이 힘들다고 메신저 단체방에 글을 올리기도 한다.

원고마감을 지키는 작가만이 다음 일을 도모할 수 있다. 지금까지 80여 권의 책을 출간했고, 지난해에 13권의 책을 출간한 정명섭 작가는 신간 <우리 반 홍범도>를 소개하면서 SNS에 이렇게 썼다.
 
"내 이름이 있는 책 표지는 그 자체로 감동이다. 삶이 또 한 번 전진한다."

태그:#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 #군산 한길문고, #한길문고 에세이 쓰기, #13인의 작가, #첫 책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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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소년의 레시피』 『남편의 레시피』 『범인은 바로 책이야』 『나는 진정한 열 살』 『내 꿈은 조퇴』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 『환상의 동네서점』 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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