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사진보기
▲ 중진의원 발언 듣는 김종인 비대위원장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원장-중진의원 회의에서 참석자 발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어떤 구상이 있는지, (당이)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 우리는 지금 모르고 있다." - 홍문표 의원
"보수의 가치와 철학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보수의 가치와 철학은 없어지지 않는다." - 박진 의원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앞에서 당내 중진 의원들이 쓴소리를 내뱉었다. 반면, 이명수 의원(4선, 충남 아산갑)은 "공개적으로 말씀드린다"라며 "비대위원장이 기본소득, 전일보육제 등 이슈를 선점해 제시하는 데 공감한다. 굉장히 긍정적"이라며 김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통합당은 10일 오전 국회에서 비상대책위원장-중진의원 연석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서 중진 의원들은 둘로 갈렸다. 취재진 앞에서 서로 언성을 높이며 설전을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김 위원장의 쇄신 방향에 대한 각자의 찬반 이유를 보면, 향후 김 위원장이 넘어야 할 당 내부의 반대가 결코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이날 중진들의 '성토'는 전날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장제원 의원(3선, 부산 사상) 등이 김 위원장을 공개 비판한 연속선 상에 있기도 하다. 당내 다선 의원들 중심으로 '반(反)김종인'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평소 김종인 위원장에 비판적이었던 조경태 의원 등 일부 중진은 이날 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관련기사: 원희룡 "용병에 미래 맡길 건가?" 반 김종인 모였다)

"미래 이슈 선점, 당원들도 긍정적" - "여당이 무법천지 만드는데 단합부터"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여러 중진 의원들께서 선거 이후에 당이 당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잘 관찰하시리라 생각한다"라며 "오늘 이 모임에서 의견을 많이 개진해주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논의를 시작했다.  

이명수 의원은 "혁신 없는 미래와 통합은 무의미하다"라며 "좌냐 우냐, 보수냐 진보냐를 따질 때가 아니다, 과거와 미래의 전쟁"이라고 호응했다. 그는 "미래 이슈를 선점하는 건 굉장히 긍정적이다, 당원들도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며 대신 "새 이슈 선점과 당의 기술적 검토 그리고 정책의 유기적인 연결이 필요하다"라고 제안했다. 김 위원장의 개혁 방향에 찬동하며 '실행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박진 의원(4선, 서울 강남을)은 "우리 당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면이 분명히 있다"라면서도 "전략적으로 보수라는 말을 굳이 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보수의 근본적인 가치와 철학을 유지해가야 한다"라고 '정체성 지키기'를 강조했다.

홍문표 의원(4선, 충남 홍성·예산)은 '여당 때문에 나라가 위기에 처할지도 모르는데, 화합이 우선 아니냐'는 논지를 폈다. 그는 "상대인 더불어민주당은 무법천지"라고 지적했다. 이어 "(민주당은) 장기집권을 하기 위해서 자유 민주주의에서 '자유'자를 빼고 민주주의를 하겠다고 한다"라며 "4년 연임제" "토지공개념" 등을 예시로 들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기본 뿌리가 흔들리는데 우리가 과연 여기까지 내다보고 우리 당이 살 길을 준비하고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홍 의원은 "당의 이름이 지금 미래통합당이다"라고 상기시키면서 "미래는 보이는 것도 같고, 안 보이는 것도 같고 예측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통합은 지금 안 되고 있다"라며 "내부적으로 우리 당이 앞으로 가려 한다면 적은 숫자라도 마음에 마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통합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홍 의원은 "우리끼리 화합하고 단합해서 어떤 목표 달성을 위해 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확실한 당의 좌표가 설정된다면 조금 소홀하고 부족해도 (함께) 가자고 하는 게(말이) 나올 수 있는데,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 지금 상당히 염려와 우려를 하고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종인 위원장에 불만 품은 이들이 있는 건 사실"

박진‧홍문표 의원 등이 쏟아낸 말들은 '보수의 가치' '당의 좌표' '통합의 비전'이라는 키워드로 묶을 수 있고, 보수 정당의 전통적인 정체성을 지키는 게 우선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종인 위원장이 보수라는 용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며, 기존의 보수 가치에 얽매이는 건 "경직된 사고"라고 비판하자 당내 반발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은혜 대변인은 이날 회의 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당의 위기극복 그리고 혁신 과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했다"라며 "여러 의견이 있었는데, 격의없이 이야기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이날 비공개로 전환된 회의석상에서 이견이 나왔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를 두고 김 대변인은 "각자의 경험과 연륜에서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는 점에서 당의 건강성을 확인했다"라고 자평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중진 의원 중 한 명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김종인 위원장의 최근 언행을 두고 당원과 지지자들이 다소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라며 "의원들 사이에도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오늘 비공개 회의 시간에 이러한 걱정을 위원장에게 전달하고, 각자의 입장에서 긍정‧부정 평가가 나오기는 했지만 예전처럼 격론이 오가거나 큰 갈등이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다만 "중진 의원 중 김 위원장의 방향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있는 건 사실"이라며 "지금은 비대위 초기라 수위를 조절하고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라고우려하기도 했다. 

통합당은 20대 국회 당시 매주 수요일 당 지도부와 중진의원들의 연석회의를 열어왔다. 공천 갈등과 총선 과정을 거치고, 지도부가 공백이 된 상태에서는 한동안 열리지 않아왔다. 이날 중진의원 연석회의는 현 김종인 비대위 체제가 들어선 이후 처음 모인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