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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재판 박정희 대통령 ‘시해’ 혐의로 재판정에 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혹자는 김재규가 박정희를 쏜 후 ‘육본’이 아닌 ‘남산’ 중앙정보부로 갔으면 역사가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2020년 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개봉했다. 김재규와 그의 부하들 이야기는 임상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그때 그 사람들>(한석규와 백윤식 주연)이라는 영화로 제작해서 개봉한 바 있다.
▲ 김재규 재판 박정희 대통령 ‘시해’ 혐의로 재판정에 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혹자는 김재규가 박정희를 쏜 후 ‘육본’이 아닌 ‘남산’ 중앙정보부로 갔으면 역사가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2020년 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개봉했다. 김재규와 그의 부하들 이야기는 임상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그때 그 사람들>(한석규와 백윤식 주연)이라는 영화로 제작해서 개봉한 바 있다.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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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ㆍ17내란'을 주도한 전두환 (1995년 내란목적 살인죄로 구속 기소됨)의 신군부는 정권탈취에 방해된다고 하여 정치인 김대중 등을 구속하고, 광주에서 학살극을 자행하면서 자신들의 우상인 박정희를 죽인 김재규를 내란죄로 몰아 처형하는 데 머뭇거리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 직후에 곧바로 사형을 집행할 것이란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가족이나 변호인들은 재판을 전광석화식으로 진행할 때부터 예측못한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변호인단의 재심청구에 따라 형식상으로라도 심의절차를 거치는 것으로 알았다.

가족과 사회 일각에서 구명운동에 나섰다.

10ㆍ26거사 후 12ㆍ12군사 반란과 신군부의 등장으로 김재규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고 있었다. 이와는 달리 김재규가 예칙한 것처럼 '서울의 봄'이 제대로 전개되었으면 상황은 바뀌었을 것이다.

군권에 이어 정권이 전두환의 장중에 장악되면서 "김재규를 살려야 한다"는 구명운동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가장 치열하게 반유신운동을 벌여왔던 정의구현사제단은 1980년 2월 5일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구명을 위한 청원서〉를 발표하고 대법원장 등 관계 요로에 보내었다. 공식적으로 첫 구명운동이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궁정동 총격사건과 관련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그의 부하들이 군사법정에 섰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궁정동 총격사건과 관련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그의 부하들이 군사법정에 섰다.
▲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궁정동 총격사건과 관련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그의 부하들이 군사법정에 섰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궁정동 총격사건과 관련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그의 부하들이 군사법정에 섰다.
ⓒ 보도사진연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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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구명을 위한
                                    청 원 서

우리는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는 교회의 사명과 하느님의 진리를 실천, 증거하고자 하는 천주교의 성직자들입니다.

우리 교회는 어둠이 빛을 가리고 허위가 진실을 압도하는 사회현실 속에서 빛과 진실을 증거하다가 지학순 주교님을 비롯하여 많은 수의 동료들인 성직자와 신자들을 영어의 몸으로 빼앗긴 바 있습니다.

10ㆍ26사태 이후 우리와 격리되어 감옥에 있었던 동료 성직자와 신자, 그리고 지식인과 학생들이 속속 교회와 그들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음을 우리는 경하해 마지않는 바입니다.

10ㆍ26사태 이후 긴급조치 9호가 해제되고 새로운 민주헌법의 제정논의가 활발해지며 나라의 민주화가 진행됨으로써 이 땅에서는 칠흑 같은 암흑이 가시고 새로운 민주한국 건설의 위대한 도정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10ㆍ26사태는 반민주 독재정치로 실추된 나라의 위신을 회복하는 데 있어 커다란 긍정적인 기여를 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10ㆍ26사태의 이러한 의미와 결과에도 불구하고 10ㆍ26사태의 장본인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이러한 사태 발전과 격리되어 현재 1, 2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 관련하여 우리들 종교인의 입장과 견해를 밝히고자 합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 모상대로 창조하셨기에(창세기 1장 26절 27절), 종교인으로서 박애정신(사목헌장 4장 41항)에 따라 생명에 대한 권리는 하느님께 속한 것이며, 인본사상에 입각한 인간 생존권에 바탕을 둔 민주사조에 따라 인간의 생명은 절대 귀중한 것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제한되어 보도되기는 하였으나, 김재규 피고인의 법정진술에 의하면, 10ㆍ26사태는 애국적 동기에서 출발되었고, 조국의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고 국민희생의 극소화를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부산과 마산사태의 엄청난 충격과 희생 등 10ㆍ26사태 전후의 객관적상황에 비추어 그의 주장은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10ㆍ26사태는 억압의 권력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라는 연장선 위에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10ㆍ26사태를 살인이라는 범법적 차원에서 볼 것이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기본 이념에 입각하여 국가적, 국민적 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김재규 피고인의 진술에서, 대의를 위하여 소의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움의 토로를 통하여 그의 인간적인 고뇌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이라는 충격과 그에 따른 감정으로부터 벗어나 10ㆍ26사태의 의미에 대한 냉철한 판단과 자세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1, 2심의 재판과정은 10ㆍ26사태의 의미를 확인하고자 하는 국민적 관심에 비추어 지나치게 인색하였고 졸속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10ㆍ26사태의 영예로운 수습은 역사와 국민 앞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10ㆍ26사태 이후 전개되고 있는 민주화 작업이 화해와 관용의 정신으로 마침내 성취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마찬가지로 화해와 관용의 정신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등 10ㆍ26사태 관련자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10ㆍ26사태의 의미와 교훈을 확인하는 길이기도 할 것입니다. 사랑과 화해야말로 오늘의 난국을 극복하는 무기요, 정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들의 믿음입니다. 이제 이같은 우리의 뜻을 모아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등 관련 피고인들이 민주발전 도상의 대의에 입각하여 극형만은 면하게 조처를 청하면서 우리들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하여, 그리고 나라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하여 기도 바치고자 합니다.

            
서울대교구 대표
오 태 순 신부
춘천 교구   대표
김 정 식 신부
인천 교구 대표
황 상 근 신부
수원 교구   대표
정 지 웅 신부
대전 교구 대표
이 계 창 신부
대구대교구  대표
허 연 구 신부
안동 교구 대표
정 호 경 신부
부산 교구   대표
송 기 인 신부
전주 교구 대표
문 정 현 신부
광주대교구  대표
강 영 식 신부
청주 교구 대표
김 원 택 신부
마산 교구   대표
서 원 열 신부
원주 교구 대표
최 기 식 신부
수도회 대표
박 문 식 신부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박정희를 쏘다, 김재규장군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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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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