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 더비의 묘미는 새로운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덧붙여지며 축구팬들의 기억 속에 남을 장면들이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지금은 코로나 19 사태로 관중석을 가득 채운 팬들의 뜨거운 응원과 외침이 스피커로 대체되었지만 165번째 동해안 더비는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흥미로운 과정과 결과를 남겼다.

김도훈 감독이 이끌고 있는 울산 현대가 6일 오후 7시 포항 스틸야드에서 벌어진 2020 K리그 원 5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의 어웨이 게임에서 K리그로 돌아온 유능한 미드필더 이청용의 멀티 골 활약에 힘입어 4-0의 대승을 거두고 지난 시즌 마지막 게임에서 흘린 눈물을 씻어낼 수 있었다.

돌아온 이청용, 전반전에 대승 발판을 놓다

홈팀 포항은 지난 해 12월 1일 어웨이 게임에서 거둔 4-1 승리 기억을 다시 떠올리며 울산을 또 한 번 울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날을 위해 188일을 기다린 울산은 2019 K리그 1 우승 트로피를 놓친 아픈 기억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가슴에 품고 똘똘 뭉쳐 나왔다.

이 게임에서 홈 팀 포항이 2골을 넣으면 동해안 더비 역사상 처음으로 200 득점을 기록하게 된다. 울산의 동해안 더비 200골 기록은 5골이 아직 모자란 상황이었다. 그런데 포항으로서는 먼저 기록할 수 있었던 이 멋진 기록을 라이벌에게 빼앗기게 생겼다.

울산 유니폼을 입고 K리그로 돌아온 미드필더 이청용에게 전반전에 2골이나 얻어맞는 충격을 당한 것이다. 26분, 이청용의 복귀 골이 터졌다. 왼쪽 측면에서 날아온 얼리 크로스를 울산 골잡이 주니오가 머리로 살짝 방향을 바꾼 것이 포항 골문 오른쪽 기둥에 맞고 나오자 뒤에서 달려온 이청용이 오른발 대각선 슛을 정확하게 왼쪽 구석으로 차 넣었다.

이것은 포항이 이번 시즌에 외국인 선수들로 구성한 '1588 조합'을 무색하게 만든 서막에 불과했다.  포항은 'FW 일류첸코, MF 오닐, MF 팔로세비치, MF 팔라시오스' 이름 앞 글자를 숫자로 바꾼 단어인 1588로 특별하게 주목받았는데 공교롭게도 이번 경기에서 벤치에 머물러 있기만 한 오닐을 뺀 '188'이라는 숫자만 남았다.

거짓말처럼 울산은 188일만에 지난 시즌 마지막 게임에서 승점 차(전북 79점, 울산 79점)도 아닌 총 득점 수 차이(전북 72골, 울산 71골)로 우승을 못한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광복절에 다시 만나자

울산 이청용의 첫 동해안 더비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복귀 골을 넣고 10분 뒤 동료 미드필더 고명진과 짧고 정확한 패스를 주고받으며 추가골을 성공시켰다. 오른쪽 측면에서 가운데로 공을 몰고 들어온 이청용이 포항 페널티 지역 반원 바로 밖 골문으로부터 21미터 지점 정면에서 왼발 중거리슛을 정확하게 차 넣었다. 첫 골은 오른발, 두 번째 골은 왼발로 이청용의 다재다능함을 확인할 수 있는 명장면이었다.

이렇게 전반전에만 2골로 대승 발판을 놓은 울산은 74분에 놀라운 연결 수준을 자랑하며 보기 드문 추가골까지 터뜨렸다. 교체 선수 이동경의 왼발 발리 패스를 신진호가 가슴 트래핑 후 오른발 발리 패스로 받아 넘겨주었고 골잡이 주니오를 거쳐 김인성의 왼발 인사이드 발리 골까지 이어진 것이다. 공이 잔디 위를 스치지도 않고 바람을 가르며 네 선수를 거쳐 골이 된다는 기술적 경지를 자랑한 또 하나의 명장면이었다.

울산은 85분에 쐐기골까지 터뜨렸다. 이번에도 좁은 공간을 정확한 패스로 파헤치는 울산 특유의 조직력이 돋보였다. 'MF 원두재 - DF 박주호 - MF 김인성 - DF 박주호'로 이어진 공의 흐름이 누가 봐도 추가골을 직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교체 선수로 들어온 박주호가 슛 각도가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날카로운 왼발 슛으로 포항 골문을 노렸고, 이 공을 포항 골키퍼 강현무가 쳐내지 못하고 옆으로 흘린 것을 주니오가 놓치지 않고 달려들어 밀어넣었다.

울산은 이렇게 완벽한 작품 4골로 188일만에 다시 만난 포항을 상대로, 역대 165번째 동해안 더비에서 뜻 깊은 승리를 거두고 전북과의 우승 경쟁 구도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놓았다. 

기분 좋은 승리로 울산은 승점 11점(3승 2무 13득점 4실점)을 쌓으며 FC 서울과의 전설 매치를 4-1로 이긴 전북(승점 12점 4승 1패 9득점 3실점) 턱밑에서 여전히 뒤집기를 노릴 수 있게 됐다. 5라운드를 먼저 끝낸 팀들 중에서 두 자릿수 득점 기록은 울산이 유일하다.

울산과 포항이 만나는 올 시즌 두 번째 동해안 더비는 광복절(8월 15일) 오후 7시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다. 동해안 더비 팀 득점 기록을 울산이 뒤집어 놓았으니 198골을 넣은 포항이 절치부심할 것으로 보인다.

2020 K리그 원 5라운드 결과(6일 오후 7시 포항 스틸야드)

★ 포항 스틸러스 0-4 울산 현대 [득점 : 이청용(26분), 이청용(36분,도움-고명진), 김인성(74분,도움-주니오), 주니오(85분)]

포항 스틸러스 선수들
FW : 일류첸코
AMF : 이광혁(55분↔권완규), 팔로세비치, 팔라시오스(46분↔송민규)
DMF : 최영준, 이승모
DF : 전민광, 김광석, 하창래, 심동운(87분↔고영준)
GK : 강현무

울산 현대 선수들
FW : 주니오
AMF : 김인성, 신진호, 고명진(71분↔윤빛가람), 이청용(59분↔이동경)
DMF : 원두재
DF : 설영우(80분↔박주호), 불투이스, 정승현, 김태환
GK : 조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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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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