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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단재 신채호 선생이 살아계셨다면 대한민국 100년 내 가장 큰 사건으로 무엇을 지목했을까. 1949년 6월 6일, '친일경찰'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아래 반민특위)를 습격했던 바로 그 사건을 고르지 않을까. 그날, 특위 검찰관들은 친일경찰에 무장해제를 당했고 특경대원 35명은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다. 친일반민족세력의 견제로 출범부터 난항을 겪던 반민특위는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 6월 26일 백범 김구 암살,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이어지는 이승만 정권의 6월 공세로 반민특위는 완전히 와해됐다.

단 4년간 나라를 빼앗겼던 프랑스는 약 3만~4만 명의 '친나치 부역자'를 처형했다. 35년간 수탈당한 우리는 단 한 명의 친일부역자도 처벌하지 못했다. 친일에서 친미로 말을 갈아타고 반공이라는 무기로 무장한 친일부역자들은 이후 한국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기득권을 차지했다.

오히려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은 '빨갱이'로 내몰리지 않기 위해 숨죽여 살아야 했다.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를 거치는 동안에도,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친일청산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는 지금도 사회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반민특위 재판정.
 반민특위 재판정.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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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광복회에서는 '국립묘지법 개정' 등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국립묘지에 묻혀 있는 국가공인 친일부역자들은 묘를 이장하거나, 이장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대신 친일행적비가 세워지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광복회에서 이와 같은 내용의 법률개정안에 대해 21대 국회 지역구 국회의원 25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190명이 찬성했다. 미래통합당 의원 84명 중 44명이 동의했다.

그러나 법률 개정이 순조로울지는 미지수다. 만주군 장교 출신으로 간도특설대에서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던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장지(葬地) 문제와 관련된 일련의 흐름을 보면 우려가 크다.

보훈처에서는 현재 법령에 근거하여 백선엽은 사망한 후 장군묘역이 꽉 찬 서울 현충원 대신 대전 현충원으로 갈 수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그렇지만 <조선일보>는 꼬투리 잡고 '백선엽 장군이 서울 현충원에 못 간다면 더 이상 대한민국이 아니다'는 사설 등을 내 논란의 깃발을 올렸다. 

국립묘지법 개정에 대한 광복회의 설문조사에 '찬성' 의사를 밝혔던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지난 5월 28일 보훈처장을 만난 자리에서 '전쟁영웅을 대우함에 있어 소홀함이 없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달라'고 압박했다.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 사설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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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6월 2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한국전쟁 등 다른 공이 있더라도 친일행위자는 현충원에서 이장해야 한다'라는 대답이 54.0%로 집계됐다. '친일행위자라도 한국전쟁 등 다른 공을 인정해 현충원에 계속 안장해야 한다'는 입장은 32.3%였다. 연령대로 보면 70대를 제외한 나머지 연령층에서, 지역별로 보면 거의 모든 지역에서 찬성이 높았다.

광복회가 개정하자는 법안들은 친일파의 묘를 파내 부관참시하자는 것도 아니요, 그 후손들의 재산을 추적해 몰수하자는 것도 아니다. 일제에 부역했던 자들의 행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기억하는, 아주 낮은 수준의 역사 바로세우기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이마저도 쉽지 않은 과정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일제와 독재에 부역했거나 찬양하는 자들에 대해 별 생각 없이 '보수'라 칭하는 한국언론의 관성 때문이다.

백선엽 사례에서 보았듯, 그들 스스로가 친일의 과거에서 자유롭지 못한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이 펼칠 여론전은 뻔하다. 극우시민단체와 대형교회 목사들은 '문재인 정부가 나라를 통째로 김정은에게 가져다 바치려고 한다'며 목소리를 높일 것이고, '수구언론'은 '경제도 어려운데 정부가 왜 이념갈등을 부추기느냐'는 기사를 쏟아내며 질타할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 언론, 소위 진보적이라는 언론들조차 '진보와 보수의 격한 대립' 프레임에서 허우적거릴 가능성이 다분하다. 

지난 3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렸던 정의기억연대의 수요집회와 이에 반대하는 단체 간의 충돌을 보도함에 있어 이러한 관성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30년 동안 위안부 피해자 운동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되레 일제의 강제동원은 없었다고 주장하며 조롱하던 단체에 대해 '친일단체' '극우단체'라고 표현한 기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부분의 기사는 진보단체와 보수단체가 언성을 높였다고 묘사했다.

친일청산은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될 수 없다. 또한 그렇게 돼서도 안 된다. '민족 대 반민족'의 구도가 돼야 국민 다수의 지지와 동의를 쉽게 받아낼 수 있고, 그 힘으로 강고한 기득권의 저항을 무너뜨릴 수 있다. 민족정기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놓쳐버렸던 71년 전의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조금 더 예리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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