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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작나무 새싹
 자작나무 새싹
ⓒ 바른지역언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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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용인 시골에 인생의 큰 이벤트인 집을 지었다. '집 한 번 지으면 10년 늙는다'는 속담을 몸소 체험한 한해였다. 정신없이 집 짓고 이사하며 몇 개월을 보내고 난 뒤, 마음의 여유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할 무렵인 지난 겨울부터 또 다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집은 대충 완성됐으니 올해는 정원을 가꾸는 데 매진하자. '집의 완성은 정원'이라는 멋진 말을 신조로 삼았다. 조경가이면서 숲 해설가인 필자이니 얼마나 심고 싶은 나무가 많았으며, 정원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은 기대가 컸을까. 나무 목록 작업을 하는 데만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기나긴 고민의 연속이었다. 이것저것 심고 싶은 나무, 꽃들이 넘쳐났다. 행복한 고민에 빠져 지내기를 몇 달.

드디어 장고 끝에 그 중 맘에 드는 나무를 결정해 주문하고 온 가족이 마당 구석구석에 나무를 심었다. 기대가 컸다. 얼른 싹이 나길 바라며 마당으로 달려나가 하루하루 눈도장을 꾸욱 찍는다. 물이 모자랄까, 넘치지는 않을까, 거름을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저 자리가 잘 어울리나? 다른 곳으로 옮겨볼까? 하루에도 열두 번씩 생각이 바뀌었다 말았다 하기를 몇 개월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어떤 나무는 싹을 잘 틔워 흐뭇하게 해 주는 반면, 어떤 나무는 아직도 싹이 안 나온 나무도 있다. '화원에서 죽은 나무를 판 거 아닌가' 하고 의심도 했다. 나무를 판 곳에 전화해 물어보기도 하고, 쭈그려 앉아 하염없이 나무만 쳐다보기도 했다. '아, 진짜 죽은 건가? 뽑아봐야 하나. 아냐, 좀 더 기다릴까?' 

그러다가 어느 날 정말로 실행에 옮겼다. 경계수로 심은 왕산딸기 나무 중 몇 그루가 5월이 됐는데도 싹이 틀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무줄기도 말라 있어서 정말 죽었나보다 싶었다. 저렴하고 어린 묘목에 여러 그루를 심어서 맘 편히 그런 결심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쑤욱~ 뽑았다. 뿌리가 아직 활착이 되지 않아 쉽게 뽑을 수 있었다. 그런데 분명 죽어있던 줄기 밑에 하얀 속살을 드러내며 가녀린 새싹 여러 개가 뿌리에 매달려 세상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원줄기는 죽어있었지만 뿌리는 아직 살아 있었다. 아마 죽어가는 줄기를 포기하고 새로운 싹을 틔우는 것이 더 나았으리라. 그렇게 한 그루를 확인하고 다른 죽어가는 나무들을 자세히 보니 밑동에서 새싹이 애쓰며 나오고 있었다. 성급히 뽑아버렸다면 살아 있는 나무를 내 손으로 죽이는 꼴이 될 뻔했다. 

하지만 산딸기나무를 경험하고 나서도 같은 실수를 또 반복했다. 이웃에게 얻어온 장미가 '장미의 계절'인 5월이 훌쩍 지났는데도 싹이 틀 기미가 안 보였다. '이 장미는 분명 죽었다' 하고 생각하며 망설임 없이 쑥 뽑았다. 그런데, 새싹은 나지 않았지만 본 뿌리에서 땅속으로 잔뿌리를 열심히 뻗고 있었다. 줄기는 말랐지만 뿌리는 살아서 열심히 제 소임을 다 하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살며시 다시 묻어주었다. 잘 살기를 바란다. 열심히 키워 내년엔 예쁜 장미를 볼 수 있길 기대하며.  
 
 노출된 나무 뿌리
 노출된 나무 뿌리
ⓒ 바른지역언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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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같이 샀던 자작나무에게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자작나무도 싹이 나지 않아 필자의 속을 무던히 태웠다. 겨울눈 몇 개를 뜯어 살았나 확인하고, 나뭇가지도 살짝 꺾어도 보고, 이러다 겨울눈을 다 떼버릴 판이었다. 그러나 왕산딸기와 장미를 생각하며 꾸욱 참았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물을 열심히 주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원가지에 달려있던 겨울눈 대부분은 결국 말라버렸다. 그래도 또 기다렸다. 기나긴 기다림의 끝 어느 날, 드디어 옆구리에서 튼튼한 새싹이 올라왔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싹도 안 틔우고 가지도 메말라 가고 겉모습은 영락없이 죽은 것 같아도 나무도 살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고 있었다. 내 미천한 감각으로는 알 수 없는 그들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더 기다려주기로 했다. 정말 죽은 듯 보이는 나무도 뽑지 않기로 했다. 

산을 다니다 보면 임도 건설을 위해 깎인 능선에 뿌리가 그대로 노출된 고목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솟아있는 나뭇가지만큼이나 굵고 거대한 뿌리 모습에 감탄하고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지면 위로 올라온 멋지고 아름다운 가지와 꽃들을 위해 땅 밑에서 굳건히 지탱하고, 본인을 드러내지 않고 열심히 제 임무를 다하며 버티고 있는 뿌리가 든든하고 고맙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 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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