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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도풍색(南道風色)
 남도풍색(南道風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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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풍색을 가장 잘 드러낸 곳은 어딜까? 산으로 하면 영암을 품고 있는 월출산과 해남을 품고 있는 두륜산이다. 바다로 하면 해남과 강진이다. 섬을 찾아간다면 진도와 완도다. 이들 지역을 거대한 화폭에 담은 화가가 있다. 목판화가 김억이다. 2016년 작품 '남도풍색'에서 그는 해남 녹우당에서 완도 보길도에 이르는 광대한 파노라마를 한 폭의 판화로 새겨 넣었다.

가장 왼쪽에 그려진 녹우당은 해남읍 연동에 있는 해남윤씨 종가다. 종가 뒤로 덕음산이 있고, 앞으로 연동저수지가 있다. 그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마을이 삼산면 구림리 불성동이다. 불성동 뒷산이 병풍산이고 산 너머에 현산면 구시리 금쇄동(金鎖洞)이 자리 잡고 있다. 1639년 고산 윤선도가 유배에서 풀려나 해남 수정동(水晶洞)으로 들어왔고, 이듬 해 봄 금쇄동에 정착해 살았다. 고산은 1641년 세모(歲暮)에 기문을 완성하니 그것이 <금쇄동기(金鎖洞記)>다.
 
 녹우당(왼쪽)과 금쇄동(오른쪽)
 녹우당(왼쪽)과 금쇄동(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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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쇄동(金鎖洞)은 문소동(聞簫洞)의 동쪽 제일봉(第一峯) 위에 있다. 굉장히 높아서 참으로 해와 달을 옆에 끼고 비바람 치는 곳을 아래로 굽어볼 수 있다. […] 머리를 돌려 바라보면, 대둔산(大屯山) 위로부터 문소동(聞簫洞) 어귀에 이르기까지 여러 산봉우리들이 십여 리에 걸쳐 줄지어 서 있는 것이 마치 길고 짧은 비단 보장(步障)을 굽이굽이 병풍마냥 쳐놓은 것처럼 보인다. […] 내가 꿈속에서 쇠 자물쇠가 잠긴 구리 궤(金鎖錫樻)를 얻고 나서 며칠 지나지 않아 이 동천(洞天)을 발견했는데, 하나하나가 모두 꿈속에서 본 것과 부합되었으므로, 이 동천을 금쇄(金鎖)라고 명명하였다."

<금쇄동기>에 묘사된 자연의 모습을 김억은 판화로 재현했다. 그러므로 금쇄동을 지난 산줄기는 자연스럽게 대둔산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말하는 대둔산이 현재 두륜산(頭輪山)이다. 두륜산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고계봉, 노승봉, 가련봉, 두륜봉, 연화봉이 이어진다. 고계봉까지는 케이블카가 올라가고, 가련봉은 해발 700m의 주봉이다. 노승봉 아래 북미륵암이 있고, 두륜봉 아래 일지암(一枝庵)이 있다. 일지암은 초의선사(草衣禪師)가 1824년 지은 후 40년 이상 주석한 암자로 유명하다.
 
 두륜산 아래로 북미륵암, 일지암, 대흥사가 보인다.
 두륜산 아래로 북미륵암, 일지암, 대흥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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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선사가 조선 후기 차문화를 중흥시킨 중시조라면, 일지암은 차문화의 성지다. 초의선사는 일지암에서 다경(茶經)으로 여겨지는 『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을 집필했다. 초의는 지관(止觀)과 불이선(不二禪)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에서 다선일미(茶禪一味)사상을 터득하게 되었다. 차를 선의 화두로 끌어들인 사람은 당나라 때 조주선사(趙州禪師)다. 그리고 다선일미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스님은 송나라 때 원오극근(圓悟克勤)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다선일미 사상을 실천한 스님이 초의선사다.

두륜산 자락의 명당에 자리 잡고 있는 대흥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22교구 본사다. 대흥사에는 서산대사 휴정, 다성(茶聖) 초의선사의 자취가 서려 있다. 서산대사를 기리는 사당 표충사가 있고, 성보박물관에는 서산대사 유품과 교지 등이 있다. 초의선사는 다선일미 사상을 바탕으로 다도를 정립하고 차문화 보급에 앞장섰다. 대흥사에서는 동쪽으로 노승봉, 가련봉, 두륜봉을 올려다 볼 수 있다.

판화 속에 끝없이 이어지는 스토리텔링
 
 달마산 미황사와 도솔봉 도솔암
 달마산 미황사와 도솔봉 도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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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륜산 다음으로 표현된 산이 달마산과 도솔봉이다. 달마산 불썬봉 아래 미황사가 있고, 도솔봉 아래 도솔암이 있다. 1692년 민암(閔黯)이 쓴 미황사사적비에 따르면 소 울음소리와 금인(金人)의 색에서 미황사라는 절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미황사 오른쪽으로 부도전도 잘 표현되어 있다. 이들 뒤 원경으로 달마산 연봉의 암봉들이 뾰족뾰족하게 이어진다. 중경으로는 송지천과 산정천에 있는 두 개의 큰 저수지를 표현했다. 그리고 근경으로 송지면 앞바다가 표현되었다.

달마산을 지나면 땅끝 마을로 이어지는 반도의 서남쪽 끝 해안의 모습이 그려진다. 어란리, 산정리, 중리, 송호리로 이어지는 해안 쪽에 마을이 분포한다. 마을을 이어주는 길이 구불구불 이어지고, 그 뒤로 달마산에서 땅끝 사자봉으로 이어지는 연봉이 흘러간다. 이들 산은 해발 200-300m의 봉우리로 이어진다. 사자봉에는 전망대가 있어 뚜렷하게 알아볼 수 있다.
 
 보길도
 보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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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을 지나면 그림은 바다와 섬으로 뛰어든다. 갈두항에서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노화도와 보길도다. 노화도는 전복 양식으로 큰 부를 이룬 섬이다. 섬 한가운데 넓은 농토가 있어, 옛날부터 식량을 자급자족하던 부유한 섬이었다. 보길도는 노화도에 비해 척박하고 가난한 섬이었다. 그러나 윤선도 유배지가 관광자원으로 개발되면서 청산도와 함께 완도군 최고의 관광지가 되었다.

보길도에서는 고산 윤선도 원림, 동천석실과 낙서재, 보길 저수지에 이르는 길이 골짜기 사이로 이어진다. 윤선도 원림은 1646년 윤선도가 부용동 세연지와 회수담 사이에 세연정이라는 정자를 지으면서 형성되었다. 그리고 세연지와 회수담 사이에는 판석보를 설치해 물의 흐름을 조절했다. 윤선도는 1651년까지 이곳에 거처하며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등을 지었다.

독도와 제주도 섬 풍경
 
 독도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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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판화박물관 전시장 초입에 있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동도 서도 두 개의 섬 위로 갈매기들이 힘차게 날고 있다. 섬을 방문한 관광객들의 모습도 보이고, 고기를 잡는 어선들의 모습도 보인다. 동해의 외로운 섬 독도가 아니고, 사람이 찾고 어부가 고기잡이 하는 살아있는 섬이다, 그림의 상단 끝에 또 다른 섬이 보이는데, 울릉도를 표현한 것 같다. 이 작품은 2019년 만들어졌다.

제주도를 표현한 작품은 2009년 만들어진 '제주 사계리 해안'이다. 산방산에서 송악산으로 이어지는 해안을 자세히 표현했다. 이 지역은 제주 올레길 10코스의 일부구간이다. 산방산은 제주에서 가장 남성적인 산이다. 그것은 바위산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산 아래 산방굴사라는 절이 있고, 그 앞 해안 쪽으로 하멜기념관이 있다. 표류 선박과 풍차 달린 집을 그려 넣어 이곳이 하멜기념관임을 알리고 있다. 하멜은 1653년 이곳 사계리 해안에 표착해 13년 동안 조선 땅에 머물렀다.
 
 제주 사계리 해안
 제주 사계리 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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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을 따라서는 형제 해안도로가 마라 해양군립공원까지 이어진다. 길가에는 펜션과 민박집, 리조트와 호텔, 음식점과 카페 등이 들어서 있다. 과거 한가한 어촌마을이 이제는 관광마을로 변했다. 그림의 서쪽 끝에 해발 104m의 송악산이 있고, 산 위와 아래쪽 길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다. 바다쪽 절벽에는 진지동굴이 만들어져 있다. 태평양 전쟁 때 일본 해군이 미군의 상륙에 대비해 만든 진지로, 한때는 접근이 가능했으나 이제는 폐쇄되었다.

낙동강 상류에도 명승이 널려 있다
 
 도산구곡
 도산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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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의 젖줄은 낙동강이다. 강원도 황지못에서 발원해 경상도 북부 오지를 사행천으로 돌아 흐른다. 그 과정에서 명승을 이루고 역사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명승에 퇴계 이황의 흔적이 남아 있다. 퇴계는 봉화 청량산(淸凉山)을 유람하고, 예안 땅에 도산서당을 마련해 후학을 길러냈다. 그 청량산 웅장한 암봉을 판화로 표현한 사람이 김억이다. 그는 2005년 '도산구곡'을 판화로 재현해 냈다.

청량산은 동서로 흐르는 골짜기 이쪽과 저쪽에 12개의 봉우리로 우뚝 솟아 있다. 골짜기에 20여 개 가람과 암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청량사만이 그 이름을 알리고 있다. 퇴계 이황이 공부하던 자리에는 후학이 청량정사를 세워 그 뜻을 기리고 있다. 청량사 응진전 인근에 김생굴이 있는데, 그곳에서 신라시대 서성(書聖) 김생이 글씨공부를 했다고 한다.
 
 도산서원
 도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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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구곡>은 도산에서 낙동강을 따라 청량산에 이르기까지 만날 수 있는 절경(絶景) 아홉 군데를 말한다. 하류에서 상류로 제1곡 운암(雲巖), 제2곡 월천(月川), 제3곡 오담(鰲淡), 제4곡 분천(汾川), 제5곡 탁영(濯纓), 제6곡 천사(川砂), 제7곡 단사(丹砂), 제8곡 고산(孤山), 제9곡 청량(淸凉)이 있다. 그러나 안동댐이 생기면서 현재는 지형이 많이 변했다. 김억은 2005년 그 변화된 도산구곡의 모습을 찾아나서 판화로 완성했다.

판화에 표현된 곳은 5곡 도산서원부터 8곡 고산정까지다. 도산서원은 퇴계가 강학하던 도산서당 자리를 서원으로 확장한 것이다. 지금은 안동호로 인해 호연지기를 기르기에는 더 없이 좋아졌다. 그러나 원생들이 떠난 자리에 관광객의 발길만 이어지고 있다. 5곡의 원래 이름은 갓끈을 씻는다는 탁영으로, 퇴계가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해 후학을 가르치다 육신을 묻은 땅을 말한다.
 
 도산구곡 중 6곡과 7곡
 도산구곡 중 6곡과 7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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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곡 천사는 현재 원천리 내살미 일대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강 건너편으로 이육사 문학관이 보인다. 내살미에서 원천교를 건너면 길은 7곡 단사로 이어진다. 단사에는 왕모산성(王母山城)과 계남고택, 서운정 등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단사에서 길은 단천교를 지나 청량산 조망대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길은 끊어지고 강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면 가송리 농암종택이 나온다.

길은 월명담을 지나 한 굽이 돌아 고산정까지 이어진다. 이곳을 퇴계는 제8곡 고산이라 불렀다. 고산정은 봉화현감을 지낸 금난수(琴蘭秀)가 가송협 고산의 절벽 아래 지은 정자다. 낙동강이 병풍처럼 둘러싼 내병산과 강 건너 송림 사이를 흐르며 절경을 이루고 있다. 성재 금난수는 벼슬에서 물러난 후 이곳에서 노년을 보냈다고 한다. 금난수는 퇴계 이황의 제자다. 이들 스승과 제자는 고산정에서 시를 주고받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 김억의 목판화 전시 <국토 서사>는 5월 22일부터 8월 19일까지 생거진천 판화박물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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