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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이냐 레슨이냐! 그것은 기타를 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늘 뜨거운 주제다. 천재적인 뮤지션들은 혼자서 뚱땅뚱땅 기타를 터득하기도 하고, 독학으로도 멋진 기타 실력을 뽐내는 일반인들도 많으니까. 밴드 롤링스톤즈의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즈는 말했다. "기타는 쉽다. 손가락 5개, 기타줄 6개, 엉덩이 1개만 있으면 되니까."

나는 키스 리처즈에게 감히 말하고 싶다. 나에겐 손가락과 기타와 엉덩이가 있지만 기타는 여전히 어렵다고. 나야말로 기타를 혼자 배운 탓에 발전이 없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독학으로 연마해 온 나의 기타 실력은 12년째 제자리 걸음이다. 조금 해보다가 안 되면 대충 포기해 버리는 게 독학의 가장 큰 단점이랄까. 그래서 나는 기타를 배우고 싶어하는 주변 친구들에게 기회가 있다면 레슨을 받아보라고 말한다.

그러던 내가 우연한 기회로 몇 달 전부터 기타 레슨을 시작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블루스 기타리스트 '하헌진'씨가 레슨생을 모집한다고 SNS에 글을 올린 걸 우연히 발견하고선 덜컥 신청을 해버린 것이다. 블루스 솔로 연주부터 즉흥 연주까지, 일취월장할 나의 기타 실력을 상상하면서 첫 수업을 들으러 갔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과 많이 달랐다. 첫날부터 안 되는 것 투성이에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한가득. 그야말로 총체적 '난리 블루스'의 시작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왼손 새끼 손가락이었다. 다양한 연주를 위해서는 새끼 손가락 사용이 필수적이었지만, 나의 새끼 손가락은 흐물흐물 거리며 지판 위를 엉성하게 맴돌 뿐이었다. '이 새끼를!' 소리치고 싶을 만큼 야속했던 나의 새끼 손가락.
 
 참으로 답답한 새끼.. 손가락이었다.
 참으로 답답한 새끼.. 손가락이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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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부터 나는 '삼시 새끼' 수련에 돌입했다. 짬이 날 때마다 지판을 힘있게 누를 수 있도록 새끼 손가락의 근육을 길러보기로 했다. 뜨거운 모래에 양손끝을 마구 집어넣으며 주먹을 단련하는 소림사의 철사장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술 영화에서 이연걸이 기타를 친다면 이런 수련을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나름의 훈련 프로그램을 짜보았다.

첫 번째 루틴, 새끼 손가락으로 무게가 나가는 짐을 들고 다닐 것! 일단 평소에 들고 다니는 가방이나 장바구니 같은 것들을 왼쪽 새끼 손가락으로만 들었다. 가끔 너무 무거운 짐을 새끼 손가락으로 들면 손가락이 아작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본래 수련이란 고통을 동반하는 것이니까. 기꺼이 참아냈다.

두 번째 루틴, 새끼 손가락으로 생활을 해결할 것! 우선 지하철이나 버스 손잡이를 오로지 새끼로만 잡았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때도, 머리를 긁을 때도, 안경을 올려 쓸 때도 가급적 왼손 새끼 손가락을 썼다. 우리집 도어락 비밀번호도 새끼로 눌렀다. 같이 사는 아내에게 잔소리도 조금 들었지만 모든 수련에는 역경이 따라오는 법이니까. 역시나 참아냈다.

마지막 루틴, 새끼 손가락으로 푸쉬업을... 하지는 못하지만 회사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약지와 새끼 사이를 열심히 찢을 것! 지루한 회의 시간에도 새끼를 단련하면서 속으로는 이렇게 되뇌었다. 나는 지금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기타를 연습하고 있다. 새끼 손가락을 단련하고 있다. 

사실 대부분의 악기를 칠 때 사용되는 근육은 일상생활에 크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기타 연주를 잘 할 수 있을 만큼 새끼를 단련하지 않아도 평소에 키보드를 치고 젓가락질을 하며 커피잔을 손에 쥐고 마시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악기를 연습한다는 건, 기타를 배운다는 건, 생존에 꼭 필요하지 않은 몸과 근육을 단련시키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악기는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어준다. 생존은 언제나 치열한 과정이니까. 우리가 악기를 치는 순간만큼은 먹고 사는 문제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 바쁜 생활로부터 잠깐 멀어질 수 있다. 그런 순간들이 누군가에겐 휴식이 될 수도, 여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먹고사니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약간의 사치가 악기의, 기타의 큰 매력은 아닐까. 
 
 새끼 손가락은 기타의 새로운 가능성을 약속해주는 손가락은 아닐까
 새끼 손가락은 기타의 새로운 가능성을 약속해주는 손가락은 아닐까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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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새끼 손가락 단련기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다소 엉성한 수련들이 효과가 정말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나의 기타 실력은 조금씩 더 좋아지고 있다.

새끼 손가락에 힘이 붙은 만큼 새로운 연주도 가능해졌다. 덕분에 퇴근 후에 방구석에서 기타를 붙잡는 시간이 더 많아지고 있다. 기타 레슨도 나날이 더 재밌어지고 있다.

새끼 손가락은 기타 실력을, 나아가 음악의 즐거움을 약속해주는 손가락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작고 연약한 손가락의 새로운 쓸모를 배워간다는 것. 이런 게 기타의 매력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seung88)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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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라이터. 술 마시며 시 읽는 팟캐스트 <시시콜콜 시시알콜>을 진행하며 동명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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