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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즐기기> 표지(개정되기 전)
 <죽도록 즐기기> 표지(개정되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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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에선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 없이 웃고만 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왜 생각을 멈추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올더스 헉슬리

이 책의 부제가 있다면 올더스 헉슬리의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의 현대판 해설서라는 이름이 어울린다. 이 책은 1985년 출간된 책으로, "활자 시대의 쇠퇴와 텔레비전 시대의 부상"을 담고 있다. 1985년의 미디어는 텔레비전이 거의 유일했지만, 현재는 더욱 다양한 매체로 뻗어 나가며 닐 포스트먼의 비평 역시 보다 확장된다.

이 책이 지닌 가장 중요한 담론은 미디어가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를 뛰어넘어 우리의 사고방식, 문화의 내용마저 변질시키는 메타포적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담론은 비교적 최근의 책인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프랭클린 포어의<생각을 빼앗긴 세계>에서 보다 자세히 다루고 있다. 미디어, 인터넷, SNS의 영향력이나 메타포 현상을 이해한다면, 이들로 인해 우리의 사고체계가 급격히 변하고 있단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이 담고 있는 것은 텔레비전, 의미를 확장한다면 미디어의 부정적 측면이다. 다만, 포스트먼이 살던 시대의 미디어(영상매체)는 텔레비전이 거의 유일했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텔레비전의 부정적 측면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 책의 성격을 가장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서문에 담긴 올더스 헉슬리와 조지 오웰에 대한 비교다.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은 조지 오웰의 <1984>,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다. 두 소설은 극명한 대비를 보이며 서로 다른 방식의 '지배'로 인한 암울한 미래상을 제시한다. 조지 오웰은 우리가 외부의 압제와 감시에 지배당할 것을 경고했지만, 헉슬리는 우리가 테크놀로지를 떠받들며 그것이 우리의 사고력을 무력화시키리라 내다봤다. 닐 포스트먼은 올더스 헉슬리가 옳았을 가능성을 바탕으로 미디어가 어떻게 우리 시대를 바꿔놓았는지 이야기한다.

무엇을 정보라 부를 수 있는가

21세기가 되면서 정보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되었다. 인터넷만 접속하면 빛의 속도로 수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정보가 무엇인가? 무엇을 정보라 부를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오늘 일어나는 사건·사고가 정보인가? 아니면 어떤 지식이 정보인가? 하루에도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지만, 텔레비전 속에서 다루는 정보들은 낭비되고 소비될 뿐이라는 것이 닐 포스트먼의 견해다.

인쇄술의 발명은 인류 역사에 크나큰 혁명이었다. 구두 문화에서 인쇄술을 거치며 지식이 널리 전파되고 계승됐다. 지식은 소수 엘리트만의 것이 아니라 만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졌다. 문자가 중심이었던 시대의 사람들은 토론하기를 좋아하고, 사색하기를 즐겼으며, 5~6시간이나 되는 링컨과 더글러스의 연설 논쟁을 바라보며 그들의 연설의 의미를 명확히 캐치했다. 활자매체에 기반한 '설명의 시대'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청중은 단 30분도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닐 포스트먼은 이러한 설명의 시대가 '쇼비즈니스' 시대로 전환됐다고 이야기한다. 과거 사람들이 장시간의 토론을 바라보며 후보자의 공약이나 의견, 논쟁의 쟁점을 정확히 살피고 이해하며 후보자를 선택했다면, 현재에는 '이미지'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토론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것도 후보자의 공약이 아니라 얼마나 상대를 잘 공격하고 맞받아치는지, 얼마나 말을 잘하고 세련되었느냐는 '이미지' 또는 '쇼맨십'이다. 정치 담론마저 쇼, 오락으로 전환되었다.

텔레비전에서 다루는 정보들은 연속적이지 않고 불연속적이며 이러한 불연속적인 정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정보로 남는다. 미디어가 선택한 의제만이 연속적인 정보로 남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선택되지 않은 정보는 곧바로 사라진다.

예를 들어 어떤 소식을 뉴스로 접하고 앵커가 '다음 뉴스는~'이라고 말하는 순간 지금까지 전해지던 정보는 사라진다. 그것은 정보로서의 아무런 역할과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단지, 뉴스(오락)거리로 소비될 뿐이다. 닐 포스트먼은 미디어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모든 정보가 이러한 오락적 형태를 띠고 있다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이슈는 미디어가 주도하는 대로 흘러간다. 미디어가 선택하는 의제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미디어가 선택하지 않는 의제는 금세 잊힌다. 그러나 미디어가 선택한 의제는 받아쓰기, 베껴쓰기, 과장 보도, 거짓 보도 등의 형태로 퍼져나가며 오직 조회수 올리기, 이슈 끌기에 혈안이 되어 진짜 정보가 아니라 아무렇게나 소비되는 정보가 가득하다. 경쟁적인 보도 속에서는 그 어떤 성찰이나 유용한 메시지를 찾을 수 없다.

아무렇게나 소비되는 정보들은 마치 <멋진 신세계>에서 존이 외부의 유혹에 이끌리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몸에 채찍질하며 정화의식을 행할 때 그를 바라보던 군중의 모습과 같다. 끊임없이 씹어대며 소비할 거리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디어가 쏟아내는 정보들은 마치 '소마'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디스토피아'를 극복할 수 있을까

텔레비전은 교양 프로그램을 통해 유용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한다고 여기기 쉽지만, 그마저 쇼, 오락의 요소를 빼놓을 수 없다. <책 읽어드립니다>같은 프로는 유용한 지식을 전달한다고 여기기 쉽지만, 그마저 수박 겉핥기에 지나지 않으며 시청자가 흥미를 가질 내용만을 내세울 뿐, 어떤 담론이나 의미도 제시하지 않는다. 만일 오락적 요소를 배제하고 진지하게 다가갔다가는 시청률은커녕 관심조차 받지 못할 것이다. 단지, 오락으로 소비될 뿐이다.

어디 그뿐인가. SNS는 텔레비전이 갖던 지위를 뛰어넘어 더욱 많은 것들을 소비하고 열광하게 만든다. SNS에서 입소문을 타면 너도나도 그것에만 열광하며 문화의 획일성이 이어진다. 소비 역시 유행을 타며 개성이 상실되었다.

미디어 시대에서 우리는 나의 일상을 과시하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게시하고 나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만 골몰한다.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나는 나의 이미지만 만들고 지키면 그만이다. 갈수록 자신이 무엇 때문에 웃고 있는지도 모르는 <멋진 신세계>와 놀랍도록 닮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정보'라는 말을 쓰지만, 사실 무엇이 정보인지조차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다. 구술문화-인쇄문화-텔레비전은 이제 인터넷으로 넘어갔고, 인터넷은 한순간도 우리 손을 떠나지 않으며 쓸모없는 정보의 소비 현상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세상은 '죽도록 즐기기'에만 혈안되어 있다.

'죽도록 즐기기'는 멋진 신세계를 단 한마디로 표현하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를 극복할 방법이 있을까? 자라나는 세대는 더욱 미디어와 떨어질 수 없다. 소비 현상도 더욱 심화된다. 문화와 시대의 흐름을 막을 방법도 없다. 텔레비전이 지닌 지위가 사라질 리도 없다. 혹자는 아무런 고민도 필요 없는 <멋진 신세계>야말로 유토피아라 이야기한다. 비판적 사고를 강조하지만 그것으로 해결될까? 오락만이 소비되는 시대다.

다시 멋진 신세계로 돌아가 보자. 존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사람들은 자신을 채찍질하며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한다. 단지 학습된 조건 반사 행동들뿐이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 때문에 웃고 있는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왜 생각을 멈추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무의미함과 공허함이 가득한 시대, 껍데기가 넘쳐나는 이유다.

죽도록 즐기기 -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닐 포스트먼 (지은이), 홍윤선 (옮긴이), 굿인포메이션(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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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가 입니다. 블로그 "사소한 공상의 세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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