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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의 사회주의자이자 여성 독립운동가인 김알렉산드라
 조선 최초의 사회주의자이자 여성 독립운동가인 김알렉산드라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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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성은 엄마라서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지만, 어떤 여성은 엄마이기에 자신의 인생을 걸고 싸운다. "네가 살 세상은 달라야 한다. 국적도 민족도 인종도 계급 구별도 없는 세상이어야 한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 김 알렉산드라는 엄마이기에, 모든 걸 걸고 싸웠다.

몇 년 전 상영된 영화 <암살>의 주인공 안옥윤은 '여성' 독립운동가를 현재로 소환해냈다. 남성들의 수발이나 드는 여성의 역할을 비웃기나 하는 듯이, 일본군과 교전하는 명사수 안옥윤의 맹활약은 사라졌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뜨겁게 불러냈다. 혁명가 박차정을 모델 삼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전까지 독립운동가 박차정은 김원봉의 아내로만 호명됐다.

학계나 출판계에서도 남성의 역사 속에 가려져 있던 '여성' 혁명가들을 꾸준히 발굴해내고 있다. 2018년엔 대한민국 최초의 고공 농성자인 '여성' 노동 운동가 강주룡을 조명한 박서련의 장편 소설 <체공녀 강주룡>이 나와 주목받았다. <체공녀 강주룡>은 혁혁한 노동운동가지만, 역사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강주룡의 면모를 생생히 그려냈다. 남성들만으로 독점된 혁명가나 독립운동가의 먼지 앉은 역사에 '여성'의 역사라는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이 역사에 한 획을 굵게 그은 또 한 명의 여성 혁명가가 있으니 바로, 김알렉산드라다.
  
<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 표지
 <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 표지
ⓒ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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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숙 작가가 펴낸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는 정철훈의 원작 <소설 김알렉산드라>를 바탕으로 한 책이다. 그래픽노블로 재탄생한 <시베리아의 딸, 김알레산드라>는 마치 판화를 보는 듯하다. 오직 흑과 백으로만 그려진 그림은 혁명가 김알렉산드라의 삶만큼이나 강렬하다. 그녀가 혁명의 깃발을 펼쳐 든 173쪽의 전면 그림은, 프랑스 혁명을 이끌었던 잔다르크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한 손엔 횃불을 다른 한 손엔 지구의를 들고 서 있는 구로공단 여성 노동자를 형상화한 '수출의 여인상'을 떠올리게도 한다. 뼛속까지 노동자였던 그녀는 "어떤 주의나 사상을 믿기보다는 노동자의 인권이 보호되도록 하기 위해 싸"웠다.

김알렉산드라는 1885년 시베리아(연해주)의 우수리스크 한인 마을 시넬니코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표트르김은 1860년대에 러시아로 이주해 땅을 일구며 살다 틈틈이 익힌 중국어와 러시아어로 통역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1896년 러시아와 중국을 잇는 동청철도 건설 현장에 통역관으로 징집된다. 그는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보고 이들의 편에서 활약하게 되는데, 훗날 '철도노조의 전설'로 불리게 된다.

그런 전설의 딸이었으니 김알렉산드라가 노동 혁명가가 된 것이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풍찬노숙에 몸을 맡긴 아버지는 병을 얻어 일찍 병사한다. 홀로 남은 그녀는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해 여성사범학교에 입학한다. 사회주의 사상가인 체르니솁스키에 몰두하며 이미 혁명가의 싹을 발아시키고 있었다.

페미니스트 김알렉산드라
  
김알렉산드라를 기리는 러시아인들
 김알렉산드라를 기리는 러시아인들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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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에서 김알렉산드라의 혁명가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페미니스트로서의 면모 또한 생생히 그려냈다. 그녀는 부르주아인 마르크 스탄게비치와의 첫 결혼에서 아들 드미트리를 낳는다. 하지만 도박 중독인 남편과의 결혼은 행복할 수 없었다. 편안한 삶에 정주하지 않았던 알렉산드라는 노동 운동에 뛰어든다.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러시아 헌병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와실리 신부의 집에 숨게 된, 김알렉산드라는 의도치 않게 와실리 신부와 사랑에 빠지고 아들 보리스를 낳는다. 오늘만이 존재하는 격동의 시대를 산 혁명가의 사랑은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내일을 약속할 수 없는 오늘을 사는 우리. 사랑하는 지금,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사랑은 혁명이다."

김알렉산드라는 전 남편 마르크와 이혼할 수 없는 제도의 한계를 장애로 삼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믿고 따른다. 남자에 의한 삶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사랑을 선택하는 그녀의 모습은 이미 담대한 페미니스트의 면모를 보여준다. 아이를 낳으면 집에 안주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가부장의 관념을 초개처럼 버리고, 그녀는 다시 혁명의 대열로 나아간다. 뜨거운 사랑의 결실로 보리스를 출산했지만, 그녀는 "아이들 때문에 노동자들을 외면"하는 것은 곧 노동자가 될 아이들의 세상을 버리는 일과도 같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태산 같은 마음을 가늠할 수 없다. 어떤 사랑이기에 어린 두 아이를 두고 세상의 아이들을 위해 목숨을 걸 수 있을까?

그녀의 걸출한 페미니스트의 모습은 마지막에서도 유감없이 빛을 발한다. 러시아 혁명의 소용돌이 속 백위군에 붙잡힌 김알렉산드라는, 여성으로 잘못을 뉘우치면 석방하겠다는 재판부의 회유에 굴하지 않고 이렇게 응대했다.

"만약 내가 당신의 말대로 여성으로서 자신의 범죄를 뉘우친다면, 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배신하고 전 세계 여성 앞에 죄를 범하는 게 될 것이다."

죽음 앞에서도 신념을 팔지 않고 31세로 생을 마친 그녀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도 이렇게 일갈하며 떳떳한 죽음을 맞았다.

"내가 해오던 일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만 명의 여성 가운데서 전개되어 나갈 것이다."

혁명가 김알렉산드라
  
"따스한 밥을 먹으며 나를 위해 일상을 살 수는 없"던 그녀는 엄마로 일상에 주저앉지 않고, 오히려 엄마이기에 혁명 속으로 나아갔다. 뼛속까지 혁명가인 그녀는 어려서부터 지켜봐 온 노동자들의 삶을, 그들의 분노를 내면화했다. 자신의 두 아들이 살게 될 노동자의 삶을 엄마로서만이 아닌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서 뜨겁게 호응했다. 위대한 혁명가로 추앙받는 미래의 영광을 담보할 수 없음에도, 인간의 삶과 노동이 평등하게 존중받는 세상을 열기 위해, 그녀는 매일 죽음의 그림자를 기꺼이 껴안았다.

1914년 김알렉산드라는 우랄 지역 페름의 벌목 현장에 통역으로 파견된다. 아버지가 통역사로 노동자들의 삶을 대변한 것처럼, 그녀 역시 "자신의 신체 일부를 벌목장에 떼어 주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입이 된다. 죄수처럼 억압당하며 임금까지 체불당한 채 짐승과 다름없이 두들겨 맞으며 일하던 노동자들은 한 동료 노동자(장가)의 억울한 죽음 앞에 깨어난다. 그녀는 노동자들에게 "잊지 마세요, 오늘의 분노를. 당신이, 내가 우리가 모두 '장가'"라고 일깨운다. '네가 나다'라는 당사자성은 잠재우고 있던 노동자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마침내 단합된 투쟁으로 체불되었던 임금을 받아내기에 이른다. 이로써 그녀는 노동자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으며 혁명가로 자리매김한다.
 
김알렉산드라는 레닌이 이끄는 러시아 볼셰비키당에 가입하고 러시아 혁명에 참여하였으며 최초의 사회주의 조직인 이동휘의 한인사회당을 탄생시키는데 일조하였다.
 김알렉산드라는 레닌이 이끄는 러시아 볼셰비키당에 가입하고 러시아 혁명에 참여하였으며 최초의 사회주의 조직인 이동휘의 한인사회당을 탄생시키는데 일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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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그녀는 보다 조직적인 노동투쟁을 펼치기 위해 기꺼이 볼셰비키(공산당원)가 된다. 김알렉산드라의 투쟁은 강주룡으로 이어졌을 결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투쟁이 서로에게 그리고 후대에 어떻게 연결될지 전혀 상상하지 못했겠지만. 고무 공장 동무들의 임금 삭감을 저지하기 위해 "끝까지 임금 감하를 취소치 않으면 나는 근로 대중을 대표하여 죽음을 명예로 알 뿐"이라고 연설한 후 을밀대로 오른 강주룡의 결기는 알렉산드라의 그것에 닿아 있다. 그녀는 을밀대 고공 농성으로 임금 삭감을 막아내며 자신을 투쟁의 불쏘시개로 썼다. 이로 인해 감옥에 가게 되고 병을 얻어 고작 31세에 운명하지만, 그녀의 노동 운동가의 정기는 오늘의 여성들로 이어지고 있다. 자신의 안위에 연연하지 않고 보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계로 길을 내기 위해 불꽃 같은 인생을 살다 간 앞선 시대의 그녀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날 것을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는 역사의 고백처럼, 김알렉산드라의 시간 역시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살얼음 같은 정국이 이어지고 있었다. 투쟁의 근거지였던 블라디보스토크도 백위군와 적위군이 내전을 벌였고, 일본군 또한 연합국의 일원으로 내전에 개입하고 있었다. 조선 독립과 사회주의 건설이 다른 뜻이 아니었던 조선 혁명가들에게 일본의 탄압은 실로 극악했다. 우랄 페름에서 볼셰비키로 크게 활약하고 있는 그녀의 존재는 일제에 눈엣가시였다.

1918년 하바롭스크 극동인민위원회의 외무위원장이 된 김알렉산드라는 이동휘와 함께 '한인사회당 적위군'을 조직해 백위군과 일본군에 맞서지만 큰 병력 손실을 입고 퇴각하게 된다. 그녀와 한인사회당 간부 13명은 아무르강을 오가는 기선으로 피신하지만 결국 백위군에 포위된다. 그녀의 죽음을 언급할 때 아무르강에 던져졌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녀는 백위군에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총살당했다. 이 참혹한 현장에서 그녀가 한 비장한 발언이 전해지게 된다. "내 눈을 천으로 가리지 마라. 나는 죽음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싶다." 자신의 죽음을 목도하겠다는 의지는 어떤 삶이 빚어낼 수 있는 걸까? 눈을 가린 채 적 앞에서 죽음을 맞는 일은, 지금껏 겪어 낸 투쟁의 삶을 가리는 일일 것이다. 부릅뜬 눈으로 마지막까지 세상을 지켜보면서 죽음으로 삶을 가져가려 한 그녀의 다짐이 웅숭깊다. 그녀는 죽음 앞에 '심장 같은'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 보았을까?

그녀를 잡아간 백위군은 그녀를 회유했다. 조선인이 왜 러시아 혁명에 끼어들었냐는 재판부의 힐난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조선인이기에 볼셰비키다. 억압받는 형제들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싸웠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단지 조선만의 해방이 아닌 세계의 해방이 목적이라는 그녀의 국제적 인식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만 혈안이 되어 있는 백 년 뒤인 작금의 상황과 놀랍도록 대비된다. 김금숙 작가가 그녀를 조선의 딸이 아닌 '시베리아의 딸'로 명명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하바롭스크 당사로 쓰였던 건물에는 극동인민위원회 외무위원장을 지낸 김알렉산드라의 혁혁한 공을 기리기 위해 그녀의 얼굴을 새긴 동판이 걸려 있다. 이제 러시아 어느 곳에서도 볼셰비키 혁명이 뜨겁게 추앙되지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조선 최초의 여성 혁명가'로 기억된다. 그녀를 기억하지 않는 것은 과거에도 지금도 조선(대한민국)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그 누구의 딸도 아닌' 김알렉산드라로 호명하고 싶다. 그 누구의 딸도 아닌, 그 무엇의 딸도 아닌, 불꽃 같은 인생을 뜨겁게 살다 간 한 주체적인 여성으로, 그녀를 기억하겠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 게시


체공녀 강주룡 - 제2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박서련 지음, 한겨레출판(2018)


소설 김알렉산드라 - 정철훈 장편소설

정철훈 (지은이), 실천문학사(2009)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 -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던 조선인 최초의 볼셰비키 혁명가

김금숙 (지은이), 정철훈 (원작), 서해문집(2020)


태그:#김 알렉산드라, #여성 혁명가, #여성 독립운동가 , #강주룡, #조선 최초의 여성 혁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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