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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 탄 이웃이 딸아이를 한번 쳐다보며 나에게 "딸이라서 좋겠다"는 말을 건냈다. 그 이웃(엄마) 다리에 매달린 남자 아이가 나를 뻐끔히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나에게 똑같은 말을 하셨던 것 같다.

딸만 둘 키우고 있는 나에게 가끔 "딸이라서 좋겠다, 아들은 힘들다" 이런 말을 해주시는 분들이 꽤 있다. 글쎄, 딸이라고 마냥 얌전하고, 말 잘 듣고, 엄마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겠거니 하는 것은 편견 같다. 아들은 키워보지 못했으므로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모든 육아가 마찬가지이듯 애마다 다르지 않을까.

큰 아이는 여자아이지만 인형보단 완구류를 가지고 노는 걸 더 좋아했고 발레보다 축구를 더 잘하며 지금도 남자아이들과 운동장에서 뛰어 노는걸 더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하고 에너지가 늘 넘쳤다. 결정적으로 안타까운 부분 중 하나라면 공감 능력이 다른 또래에 비해 부족하다. 대신 무던하다.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금방 잊어버린다.

아들 엄마들이 아들 키우기에 대한 하소연을 할 때 매번 '아니 이거 우리 큰아이 이야기네' 하고 속으로 놀랐던 적이 많다. 이런 소감은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니었다. 유치원 시절부터 상담하러 가면 선생님들이 꼭 한 마디씩 덧붙이던 말이다. "아이가 좀 활발하네요, 뛰어 노는 걸 좋아해요, 행동이 커요, 털털해요" 아이에 대한 선생님들 대부분의 평이었다.

같은 여자 아이지만 둘째는 다르다. 의 경우는 경상도 어르신들이 말하시는 "여시" 딱 그런 타입이다. 새침하고 예민하고 인형을 좋아하고 아직도 장래희망은 엘사 공주이다. 엄마의 기분을 잘 살피고 애교가 많은 게 둘째 아이의 특징이다. 자라면서 점점 두 아이의 성격은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얼마전 큰아이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질문이 있다며 "여성스럽다, 남성스럽다라는 말이 헷갈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성스럽다는 말을 남자 친구들한테 쓰면 안 되는 말이냐"라고 말하며 "그 말의 속뜻이 조용하고 까칠하다는 거야?"라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학원에 새로온 남자 아이가 조용하고 공부도 잘 하고 여자보다 예쁘게 생겨 친구들이 "여성스러운 것 같다"고 말했다는 거다. 그 말에 그 친구가 화를 내는 일이 있었다고.

아이에게 "넌 뛰고 장난치는 거 좋아하고 치마도 안 좋아하는데 그럼 넌 남성스러운 거야?"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건 아닌 거 같은데 그럼 뭐라고 해야 하냐고 묻는다. 잠깐 고민하다, "너답다. 너다워"라고 말하면 된다고 얼마 전 어느 예능 프로에 나온 임현주 아나운서의 말이 생각나 그대로 말해줬다.

또 그 친구에겐 그냥 "멋지다, 어른스럽다" 정도로만 칭찬해줬으면 좋아했을 거라고 말해줬다. 그리고 덧붙여 성격으로 여성, 남성을 나눌 수는 없다고도 알려줬다.

아이들이 어른이 된 세상에선 좀 더 시선이 열려있기를 바란다. 여자, 남자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 바라봐 주는 연습부터가 아이들에게 필요한 성교육은 아닐지 생각해본다.

'아들에게 여자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교육시킨다'며 자랑스러워하시던 어느 학부모님의 말을 듣고, '여자를 때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때리면 안된다고 말해주세요'라고 차마 말할 수 없어 마음에서 멀어져버린 일도 생각난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그 이웃 분은 "여자 아이들은 머리도 이쁘게 묶어 줄 수 있고 옷도 이쁘게 입혀 줄 수 있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나보다 먼저 내리셨다. 그런데 그분의 상상과는 다르게 나는 손재주가 없다.

늘 머리 묶어 주는 일이 곤란스럽다. 아이들도 그걸 아는지 대충 하나로 질끈 묶어줘도 불평이 없다. 옷 입히기는... 글쎄다. 우리 집은 각자의 취향대로. 큰 아이는 체대생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레깅스와 후드티면 봄과 가을 겨울 패션은 완성인 듯하다.

나는 그저 아이들 모두 각자가 가진 개성대로 잘 커주길 바란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여자 아이든 남자 아이든 고행이 따르는 법이니까.


태그:#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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