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도지사가 4월 21일 열린 제주도의회 제381회 제2차 본회의에서 "5월부터 비자림로 공사를 재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재 비자림로의 쟁점은 '제주도가 영산강유역환경청의 검토의견을 반영했는가'이다.
2018년, 아름다운 경관도로로 알려진 비자림로의 삼나무 1000여 그루가 베어지고 흉물스러운 모습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분노 여론이 일었다. 이에 원희룡 지사는 생태도로로 재설계하겠다며 공사를 중단시켰고 2019년 새로운 설계에 따라 재개된 비자림로 공사는 시민모니터링단 활동으로 멸종위기종들이 잇달아 발견되면서 다시 중단되었다.
2015년 영산강유역환경청(이하 환경청)과 제주도의 비자림로 공사 소규모환경영향평가 협의 내용에는 '공사 및 운영 시 예측하지 못하였거나 예측의 부적정 등으로 주변 환경에 악영향이 발생 또는 예상되는 경우, 추가적인 저감대책을 조속히 강구·시행함으로써 주변 환경피해 및 민원발생을 예방하여야 함'의 항목이 있다.
당시 비자림로 공사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에는 해당 사업 구간에 멸종위기종 등 법정보호종이 서식하지 않는 것으로 나와 있고 따라서 그에 대한 보호 방안이 수립되어 있지 않았다. 예측하지 못한 환경에 악영향이 발생하자 환경청은 이에 대해 환경저감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고 제주도는 그에 따라 2019년 6월 전문가들과 함께 비자림로에 대해 다시 조사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애기뿔 소똥구리, 두점박이사슴벌레, 으름난초, 팔색조, 붉은 해오라기, 긴꼬리딱새, 맹꽁이, 붉은배새매 등 8종의 멸종위기 생물과 원앙, 두견이, 붉은배새매, 팔색조, 솔부엉이 등 5종의 천연기념물 서식이 밝혀졌다.
제주도는 2019년 7월 비자림로 법정보호종에 대한 환경저감대책을 수립하여 환경청에 보냈지만 같은 해 9월 환경청은 "천미천 주변 삼림과 3구간 지역에 대해 동식물상에 대한 추가 정밀조사를 실시하고 두점박이 사슴벌레의 적정 조사범위 내 개체수 조사, 주요 조류·포유류와 양서류 등의 분포 현황, 번식지, 서식지, 휴식지, 먹이 자원, 이동경로, 비행고도, 비행행동 등 생태 특성에 대한 추가 검토 수행하여 영향 최소화 방안 제시 등"의 보완을 다시 제주도에 요구했다.
이에 제주도는 천미천과 3구간을 제외한 구간만이라도 공사를 먼저 재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고 이에 대해 환경청은 2020년 1월, 2구간에 대한 환경저감대책 검토 의견을 제주도에 보냈다.
이 내용을 요약하면 '환경청의 검토의견을 철저히 선 이행한 후 사업 추진할 것, 도로폭 축소 등 적극적이고 실효성 있는 저감 대책 수립, 법정보호종이 다수 발견된 비자림로의 생태적 특성을 최대한 반영한 친환경적인 도로사업 시행, 차량 속도 제한(60 미만) 실효성 확보 방안 강구, 불필요한 부분 사업계획 조정 및 취소' 등이다.
하지만 제주도는 환경청이 요구한 검토의견을 안전성이 없다며 반영하지 않았고 환경청과 협의를 거치지 않은 상태로 원희룡 지사가 도의회 본회의에서 비자림로 공사에 대한 질문을 받자 5월 말 공사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에 대해 환경청은 제주도에 추가 자료 제출을 요구했고 완벽하게 협의가 마무리되기 전에 공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제주MBC 취재 과정에서 밝혔다.
비자림로 해법 마련 공개토론회
2018년 비자림로 공사가 시작되자 비자림로 현장을 지키며 시민 모니터링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온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은 제주도에 지속적으로 비자림로 해법 마련을 강구하는 공개토론회를 요구했다. 그러나 제주도가 받아들이지 않자 지난 5월 13일 자체적으로 전문가를 초빙해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토론회에는 도로안전에 대한 수많은 연구를 진행해왔던 '한국교통연구원' 한상진 선임연구위원이 기조 발표를 진행했고 민만기 녹색교통운동 대표, 배영근 법무법인 자연 변호사, 최종인 영산강유역환경청 환경평가과장 등이 토론자로 참여하였다.
토론회 이후 '시민모임'은 토론회에서 나온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비자림로에 대해 논의되었던 몇가지 안을 생태보전, 안전, 용량, 비용 측면에서 비교하였다.
큰사진보기
|
| ▲ 표의 항목 중 생태보전은 도로폭 확장으로 인한 벌목, 벌목에 따른 서식처 파괴 및 생태계 교란, 로드킬 가능성 등을 고려한 요소이며 안전은 추월 시도로 인한 차량간 추돌 및 교차로 교통사고, 길어깨 및 교차로 보행자 교통사고를 고려했다. 용량은 수용 가능한 교통량 측면을 고려했다. 안전 항목은 불법주정차가 없음을 가정해서 매겨진 순위이다. |
| ⓒ 김순애 | 관련사진보기 |
표에 따르면 생태 보전 측면에서는 현재 2차선 도로를 유지하며 길어깨 정비 등이 진행되는 A안이 가장 우수하며 도로폭이 넓어질수록 공사 비용, 생태계 파괴는 비례했다.
"공사 전에는 비자림로의 삼나무 높이가 20여m이고 그것이 2차선도로 폭을 넘어서기에 내부서식처 조류에게 위험요소가 되지 않았지만 4차선으로 확장(22~27m)하게 되면 폭이 넓어져서 서식처가 파편화되며 내부서식처의 면적이 크게 줄어들기에 내부서식처에 의존하는 조류 같은 생물은 생존할 수 없다.
또한, 가장자리 서식처 증가로 가장자리서식처 생물종과 개체수(멧돼지, 노루, 고라니, 뱀, 까마귀, 등등)가 증가하고 긴꼬리딱새, 붉은해오라기, 팔색조 등 법정보호종인 내부서식처(interior habitat) 생물은 감소할 것이다."
2019년 6월 비자림로 생태조사를 실시했던 김종원 전 계명대 교수가 환경청이 주재한 2019년 11월 회의에서 지적한 내용이다. 그는 대안으로 "3km 길이의 2차선 그대로 유지, 시속 20km~30km 이하(10~6분 만에 통과)로 구간 단속, 경적 금지, 야간 서행 등"을 제시했다.
또한 전 국립생태원장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비자림로에 수많은 멸종위기종이 서식하고 있는 만큼 도로가 있던 땅까지 숲으로 변환시켜서 전체를 생물보전지역으로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안전 항목에서 한상진 박사는 2+1안인 B안이 가장 안전하다는 의견을 내었다. 2차선인 경우 현재 추월 수요가 상당하여 추월로 인한 사고 위험성이 있으며 4차로인 경우 교차로 사고, 보행자의 횡단 사고가 증가되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4차선 도로가 가장 많은 교통량을 수용할 수 있지만 현재 교통량이 꼭 4차선으로 가지 않고서도 다양한 대안을 고민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의견을 주었다. 아직 우리나라에 생소한 2+1 도로 모델은 2019년 12월 포천시에 국내 최초로 개통된 바 있다.
제주도가 계획하고 있는 D안은 비용과 안전, 생태보전 측면에서 가장 뒤처져 있다. 즉 환경청의 검토의견을 받아들인다면 제주도가 고집하고 있는 안을 실행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많은 국내외 석학들은 코로나19가 야생 생물 서식처 파괴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코로나19 시대는 모든 개념을 다시 한번 뒤집어 생각해볼 것을 요구한다. 지금 당장 인간 중심으로 도로를 넓혔지만 또한 인간 편의의 개발은 부메랑이 되어서 전염병, 자연 재해 등으로 인간을 위협한다. 비자림로에 대해 어떤 대안을 선택할지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담론이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