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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기념공원을 산책하다가 무각사에 들렀다. 연등이 줄줄이 이어져 있어 따라 들어간 셈이다. 도심공원 안에 이런 산사 같은 절이 있다. 마침 부처님 오신 날 인데도 봉축행사가 한 달 미뤄져 붐비지는 않는다. 대웅전 부처님 앞에 합장하니 마음이 한결 차분해진다. 사람들이 멀리 깊은 산속까지 절을 찾아가는 까닭이 이런 합장을 하려 함일까!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 <선암사 >정호승



시인 정호승은 눈물을 흘리기 위해 기차를 타고 선암사에 갔을까, 아니면 실컷 울 수 있는 해우소를 찾아 선암사에 간 걸까. 6.25전쟁이 끝난 후 극락선원에 머물던 경봉스님은 '몸 안에 대소변을 버리듯 근심걱정을 버리라'며 뒷간을 '해우소(解憂所;근심을 푸는 곳)'라고 이름 붙이셨다한다.

요즘은 웬만큼 큰 절에 가더라도 선암사 해우소처럼 밑바닥이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는 해우소는 보기 힘들다.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 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선암사 해우소는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는' 곳이다.

정호승은 '2008년 7월 5일, 현대시 100주년 기념 사찰 여행' 때 선암사에 들러 회고한다. "10여 년 전 선암사 해우소 입구에 써 붙여진 '몸 안에 대소변을 배출시키면서 당신의 번뇌 망상도 함께 배출하시오'라는 붓글씨를 보았다." 그러니까 우리가 선암사에 들를 때마다 해우소 입구에서 보았던 정호승의 <선암사> 시 목판은 붓글씨 대신 자리 잡게 되었나보다. 그러나 3년 전 선암사에 들렀을 때 해우소 입구에 그 시 목판은 보이지 않았다.

세상 살다보면 울어야 할 때가 있다. 눈물은 고통스럽고 슬플 때만 흐르는 게 아니다. 눈물은 가끔 가슴에 가득 찬 탐진치(貪瞋癡; 탐욕, 분노, 어리석음)를 녹여주는 뜨거운 용암 물이 된다. 마치 변비에 걸린 대변을 뚫어내듯 꽉 막힌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 흘려보낸다. 우리는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리는 해우소'를 경험해본 일이 있는가?
 
"연암 박지원(1737~1805)은 1780년 7월8일, 1천2백리 사방에 한 점의 산도 없이 하늘 끝과 땅 변두리가 맞닿은 요동벌판에 들어서자, '훌륭한 울음터(好哭場)로다! 크게 한번 울어볼 만하구나!'라고 외쳤다. '비로봉 꼭대기에 올라가 동해를 바라보면서 한바탕 울어볼만하고, 황해도 장연 모래밭을 거닐면서 한바탕 울어볼만하이'"
- <열하일기> 고미숙 옮김



연암의 '요동벌판, 비로봉 꼭대기, 장연 모래밭', 정호승의 '선암사 해우소'에는 못 미치더라도 우리도 가끔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놓을 '해우소'를 어딘가에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다. 몸이 날마다 대소변을 배출해야하듯, 마음도 근심걱정을 때 맞춰 덜어내야 답답한 삶을 견뎌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멀리 기차를 타고 가야하는 해우소는 그림 속 무릉도원처럼 자주 찾아갈 수 없다.

꼭 멀리 갈려고 애쓸 필요가 있나? 집에 있는 수세식 변기에 앉아본다. 도심 무각사에서 산속 선암사를 머릿속에 그리듯 집 화장실에서 해우소를 맘속에 그린다. 쏟아지는 샤워 물을 머리에 맞으며 시 <선암사 낙엽들은 해우소로 간다>(정호승)를 외워본다.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져 썩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한 잎 낙엽으로 썩어 다시 봄을 기다리는 사람을 사랑하라
해마다 선암사 낙엽들은 해우소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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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글로 쓰면 길이 보인다'는 가치를 후학들에게 열심히 전하고 있습니다. 인재육성아카데미에서 '글쓰기특강'과 맨토링을 하면서 칼럼집 <글이 길인가>를 발간했습니다. 기자생활 30년(광주일보편집국장역임), 광주비엔날레사무총장4년, 광주대학교 겸임교수 16년을 지내고 서당에 다니며 고문진보, 사서삼경을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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