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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질주를 하며 살다보면 어느 순간,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는 수준을 넘어 이른바 '번 아웃 증후군'에 빠질 수도 있다. 번 아웃 증후군은 한 가지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마치 에너지가 방전된 것처럼, 갑자기 무기력해지는 증상을 느끼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톱니바퀴처럼 꽉 짜인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최악의 경우 쉬는 동안 경제적인 어려움이 불어 닥칠 수도 있다. 또, 일에 몰두하던 사람들은 막상 쉬려고 해도 '노는 방법'을 잘 몰라서 오히려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기도 한다. 설상가상,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자가 격리 상태로 '비자발적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잘 쉬는 것도 열심히 일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해진 세상이다.
 
한옥집 사는 재미에 푹 빠져사는 전직 '어공' 강윤정씨
 한옥집 사는 재미에 푹 빠져사는 전직 "어공" 강윤정씨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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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충남도청 공무원 출신인 강윤정(50)씨는 최근 안식년을 선언하고, 한옥에 사는 재미에 푹 빠져 살고 있다. 그는 지난 3월부터 충남 예산군 신양면에서 지인의 한옥을 빌려 살고 있다. 시민단체에서 20년 가까이 일했던 그는 지난 2016년 충남도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지난해 10월 사직했다. 만 3년의 짧은 공직 생활을 마친 뒤 잠시 자연인으로 돌아왔다. 그가 충남도에서 맡았던 업무는 '민관협치'였다.
  
한옥 생활을 시작한 그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이유도 '휴식'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아서였다. 실제로 그는 시민사회 활동과 공무원 생활을 하며 쉼 없이 달려 왔다. 지난 15일 신양면에 있는 그의 한옥집을 찾았다. 신양면은 공주시 유구읍과 맞닿아 있는 산골마을이다. 강씨는 "한옥에 살면서부터 삶과 휴식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실제로 마당 딸려 있는 한옥에 사는 것은 그의 꿈이자 버킷리스트였다. 그는 "마당은 거실의 확장"이라며 마당이 딸린 한옥집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밤에 별이 잘 보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하다"며 "북극성과 북두칠성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인다. 다시 대도시로 나가 사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즘 그는 집 근처에 있는 여래미 저수지를 오가며 산나물을 뜯고 산책을 하는 재미가 쏠쏠하단다. 여래미 저수지는 산골에 있는 저수지이지만 제법 둘레가 넓은 편이다. 저수지 둘레를 걷는데 40분 정도가 소요된다. 그를 인터뷰하고 난 뒤 그와 그의 절친인 조현옥(청운대 강사)씨와 동행해 여래미 저수지 둘레길을 걸었다. 아래는 그와 나눈 대화를 정리한 글이다.

"마당은 지붕 없는 거실과도 같은 것, 한옥에 1년 살아 보기로"

- 요즘 본인의 페이스북을 보면 한옥에서 사는 재미가 쏠쏠한 것 같다. 한옥에 살계 된 계기가 무엇인가.
"한옥에서 사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가져온 로망이다. 대청마루와 대들보가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꿈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늘 미지수였다. 이 집 주인과는 잘 아는 사이였다. 집주인이 리모델링한 한옥을 임대했다. 내년 2월까지 1년 간 월세로 살아 보기로 한 것이다. 어릴 때부터 아파트에서만 살았다. 마당이 있는 집에 살아 본 적은 없다. 한옥은 손보고 관리해야 할 것이 많다. 로망이기는 하지만 잘 살 수 있을 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그래서 일단 1년 동안 살아보기로 하고 한옥 체험을 하고 있다." 
 
강윤정씨가 살고 있는 신양면 한옥집
 강윤정씨가 살고 있는 신양면 한옥집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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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옥에 산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걱정하는 목소리는 없었나?
"주변사람들이 대부분 걱정했다. 상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올해는 마침 1년 동안 안식년을 갖기로 했다. 예전처럼 일에만 몰두 한다면 한옥 관리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다. 한옥을 잘 관리하며 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시골 한옥의 경우 전세나 월세가 잘 안 나오지 않는 편이다. 대부분 매매 형태로 나온다. 월세로 살 수 있는 기회는 그만큼 드물다. 이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제주도 한 달 살기나 외국에서 1년 살아보기도 하는데 한옥에서 1년을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했다."

- 한옥에 사는 장단점이 있을 것 같은데, 장단점을 말해 달라.
"마당이 있어서 그런지 자연과 훨씬 가까워 졌다. 문을 열고 나가면 자연이다. 마당은 지붕이 없는 거실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당은 거실의 확장이다. 마당까지가 우리 집이라고 생각한다. 날씨에 민감해 지고, 자연에 가까워지는 것이 가장 좋다. 무엇보다 마루가 있어서 좋다.

단점은, 어쨌든 본격적으로 더워지지 않아서 아직은 모르겠다. 살짝 벌레가 걱정이 된다. 얼마 전 집에서 지네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또, 시골은 해가 뜨는 것에 맞추어 생활하는 구조이다. 최대한 해 뜰 때 움직이고 해가지면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해가 지면 어두워서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해가 지면 개를 산책시킬 수도 없고, 도시와는 다른 패턴으로 살아야 한다. 가능한 한 일출과 일몰에 맞춰 살아야 한다."

- 집을 직접 손보고 고친 부분이 있나.
"내가 직접 손 본 것은 없다. 다행히 집주인이 적정기술 협동조합 활동가이다. 집주인이 리모델링을 해 놓은 상태에서 입주한 것이라 특별히 손 볼 것은 없었다. 도배장판만 새로 하고 들어왔다."

- 그래도 한옥에 살기 까지 선뜻 용기를 내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계속 주저주저 하다 보면 미련이 남는 것 같다. 꿈꾸던 일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경험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머릿속에만 가지고만 있으면 미련으로 남게 될 뿐이다."
 
강윤정씨가 살고 있는 한옥집 인근에는 여래미 저수지가 있다.
 강윤정씨가 살고 있는 한옥집 인근에는 여래미 저수지가 있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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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쉰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 그동안 워커홀릭에 가까울 정도로 일에 빠져 살았던 걸로 알고 있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막상 쉬라고 하면 잘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상한 질문이기는 하지만 쉬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처음에는 쉰다는 개념 자체가 없어서 많이 어려웠다. 하루 일정을 짜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지난해 10월 직장을 그만두고 처음에는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으로 일상을 시작했다. 요즘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를 중심으로 일상이 꾸려지고 있다. 오전에 일어나서 개 산책시키고 집안일을 한다. 요즘은 봄이라서 산나물이 많이 나온다. 산나물도 뜯으러 다니고, 마당에 풀을 뽑는 것도 중요한 일상이 되었다. 지금은 무료하거나 지루한 느낌이 별로 없다."

- 시민사회 단체에서도 오랫동안 활동했는데,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주로 어떤 활동을 했나.
"지방 분권과 주민자치 운동을 주로 했다.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재미있게 지역을 가꾸고 공동체 속에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했다. 천안 KYC에서 13년 동안 활동했다. 한국청년연합 천안지부이다. 또, 천안NGO센터에서 4~5년 정도 일했다. 사무국장과 센터장을 거쳐 '어공'이 됐다. (어공은 '어쩌다 공무원이 되었다'는 뜻의 은어이다)

작은 도서관은 지역의 사랑방인 동시에 거점이다. 시민사회 단체에 있을 때는 사립 작은 도서관 활성화 운동을 열심히 했다. 그때 당시 사립 작은 도서관 지원 조례(천안시)를 만들기도 했다. 동네 산 살리기 캠페인도 했다. 동네 산의 소중함, 아름다움 등을 알리는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시민단체 활동가였던 그가 '어공'이 된 이유

- 시민사회 활동을 하시다가 공직생활로 잠시 전향했었는데, 공무원이 되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있었나.
"공무원 생활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시민사회 단체나 그 중간 조직에서 일을 하다보면 공무원을 상대해야 할 일이 많다. 일반인들에게 공직은 상당이 낯선 세계이기도 하다. 행정조직과 시민사회가 서로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는 인적교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시민사회로 돌아 와도 공직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공직생활을 하게 됐다.

- 시민 사회와 공직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을 것 같다.
"시민사회는 조직문화가 수평적이다. 하지만 공무원 사회는 그렇지가 않다. 상명하복이 기본인 사회이다. 문화적인 차이가 극명해서 적응이 어려웠다."

- 다시 공무원이 하고 싶은 생각이 있나.
"아니다. 처음 공무원을 할 때부터 한시적으로 선택한 직업이다. 공무원 경험을 토대로 다시 민간 영역에서 활동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다시 공무원 생활로 돌아갈 확률은 거의 없다. 민간 영역으로 복귀하기 전에 안식년을 갖기로 한 것이다."

-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아직 딱히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작지만 내 능력을 필요로 하는 곳과 내가 하고 싶은 것 사이의 교차점을 잘 찾고 싶다. 아직 어떤 형태일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일만하는 것도 정답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나를 원하는 곳에서 일하는 것도 답은 아닌 것 같다. 그 두 가지 선택지가 잘 조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 더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모두 다 치열하게 사는데, 요즘 나만 치열하지 못하게 사는 건 아닌가하는 부채의식도 있다. 하지만 길게 보고, 1년 정도 전혀 다른 세계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 보고 싶었다. 실제로 요즘은 워커홀릭 기질도 많이 사라졌다. 카페에서 아르바이도 하고 있다. 카페 일을 하면서 이분법적인 사고방식도 많이 완화된 것 같다. 일반 시민들의 삶, 고민도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느낌이 든다."
 
강윤정씨는 요즘 봄나물을 뜯어 요리하는 재미에 빠져 산다.
 강윤정씨는 요즘 봄나물을 뜯어 요리하는 재미에 빠져 산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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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강윤정 , #한옥집 , #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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