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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쯤, 친하게 지냈던 대학 선배는 웨딩북 사업을 꿈꿨다. 결혼을 앞둔 커플에게 예비부부로서의 마음가짐을 점검하고 가정을 아름답게 지켜나가기 위한 서약문을 쓰게 하는 것이었다. 그 첫 번째 인터뷰어로 뽑힌 우린 기쁜 마음으로 재미있게 책을 제작했다.  

얼마전, 남편과 나는 티격태격 싸우다가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자꾸 날 화나게 할 거야?"

그리고 나는 남편에게 대꾸했다.

"그러는 넌 왜 자꾸 날 실망시키는 건데?"

누가 먼저 화해의 제스처를 취할지 기싸움을 하며 싸움은 흐지부지 되고, 서로 불편한 이상한 난기류 속에서 문득 결혼 전에 쓴 웨딩북이 떠올랐다. 은근 슬쩍 이 팽팽한 기류를 종결시켜보자는 심정으로 남편에게 넌지시 말을 걸며, 같이 웨딩북을 읽어 본 우린 경악했다. 

정확히 남편은 "아내가 나를 화나게 하는 순간에도 더욱 사랑하겠습니다"라고 적었고, 나는 정확히 "남편이 나를 실망시키는 순간에도 더욱 사랑하겠습니다"라고 적은 것이었다.

우린 어안이 벙벙해 서로를 보다가 어처구니가 없어 동네 떠나가라 큰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이렇게 말했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한거야?" 

우린 너무 다른 사람이라 사건을 보는 시각도 다르고 생각하는 방식도 다르고 감정의 진폭도 다르다. 살아온 환경은 물론이거니와 부모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고 겪어온 인생의 희로애락과 재능, 진로조차도 다르다.

그래서 대화를 하다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상대의 반응에 당황하기도 하고, 각자가 좀더 성장할 수 있는 부분을 깨닫게 되는 유익한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다른 우리 둘의 지난 5년간의 결혼 생활을 요약하면 이렇다. 콩깍지에 씌여 상대에게 무조건 맞춰주는 시기에서 사사건건 부딪히는 혈기왕성한 싸움의 시대를 거쳐 어차피 말해봤자 싸움만 되니 서로 알아서 피하는 시대를 지나 비로소 대화하는 법을 터득한 시대가 도래했다고나 할까. 

얼마 전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16회 시청률 28.4%를 기록하며 인기리에 종영되었다. 나는 처음에 불륜 남녀를 향한 통쾌한 복수극인 줄 알고 보기 시작했는데 회차를 거듭할수록 철저한 현실 고증에 답답해지고, 보면 볼수록 부부의 세계는 쉽게 단정 짓기도, 쉽게 예상할 수도 없는 가장 어려운 인간 관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부부로서 오년을 함께 살아오며 만들어온, 그리고 앞으로 계속해서 만들어갈 부부의 세계는 어떤 모양일까. 수많은 갈등과 싸움과 합의와 타협의 과정 가운데 한가지 분명히 깨달은 것은 부부사이의 사랑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하고 신의를 지켜야 한다는 점이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결핍과 상처가 내면화 되어 있어서 마음을 열고, 상대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보기가 어렵다. 상처와 아픔이 클수록 더욱 어렵다. 그래서 내가 상대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착각이었을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내가 애시당초 부부로서 상대에게 기대했던 것들이 사실 잘못된 기대일 가능성도 받아들여야 한다.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 아집과 오만을 버리지 않는 이상, 상대를 매일 새롭게 알아가는 재미를 느낄 수 없다. 상대방을 쉽사리 단정짓지 않고, 함부로 넘겨짚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바라보고 아껴주려고 결혼한 것 아닌가. 이 첫 마음을 기억하고 마음을 열어두는 것이 사랑을 공고히 지키는 길인 것 같다. 

그리고 대부분의 상처와 결핍은 믿음이 깨지는 데에서 오기 때문에 부부 사이에서는 많은 대화를 통해 어떤 부분이 서로에게 실망이 될지 상처가 될지 조심해야 한다. 상대가 가진 아픔을 끌어안아 주고 스스로 굳건히, 건강한 인격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지해주어야 한다.

나는 이 모든 과정이 신의를 지키는 길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보았듯이, 부부가 서로 신의를 지키지 않고 끝날 것 같지 않은 싸움 속에서 계속해서 서로 상처를 준다면, 결국은 가장 소중했고, 가장 지키고 싶었던 자녀를 잃고 말 뿐이다. 

신의는 짧은 시간에 완성되지 않는다. 인생의 의도치 않은 역경 속에서나, 모든 게 순탄한 행복한 꽃길 위에서나, 변함없이 참으로 믿을 만하고 의지가 되는 사람에게 쓸 수 있는 말이니까. 

우리 부부는 이제 5년차일 뿐이다. 서로를 꿀 떨어지는 눈빛으로 바라보다가도, 또 사소한 일로 서로 티격태격한다. 그러다 우린 손발이 오글거리는 사랑고백과 서약으로 가득찬 웨딩북을 꺼내보며 또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했다며 실소를 터뜨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 십년 후 우리의 15년간의 결혼생활을 돌아볼 때에, 우리는 서로에게 열린 마음으로 상대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주었노라고, 서로에게 비가오나 눈이오나 신의를 지킨 사람이었노라고 고백할 수 있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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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작가이자 프리랜서 영어 강사. 내 글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답이 되고 위로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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