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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8일 오전 9시 7분] 

8남매 홀어머니 권유로 고등공민학교에 입학했다. 고입검정고시에 떨어지고 고향 오수 슈퍼마켓에서 자전거 배달원으로 일했다.

한 달에 한 번 쉬는 날, 오수에서 첫 차를 타고 남원을 거쳐 광주로 갔다. 양동시장 구석구석을 돌며 시장구경을 마치고 복개상가 옷가게 형님 댁에서 점심을 먹었다.

80년, 5월 17일 오후 5시쯤 금남로 터미널에서 남원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깨어진 보도블록이 도로에 나뒹굴고 공중전화부스는 아스팔트로 쓰러져 있었다.

학생시민이 전투경찰과 투석전으로 대치한 상황, 열일곱 살 눈동자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전투경찰은 곤봉을 치켜세우고, 일제히 군홧발을 굴리며 터미널 쪽으로 돌격해 왔다. 학생시민은 터미널 안으로 밀물처럼 몰려 들어왔다.

군홧발 굴리는 소리는 공포 그 자체였다. 구멍으로 도망가는 쥐처럼 화장실로 달려가 문을 닫아걸고 숨을 죽였다. 검은 아스팔트를 굴리는 군홧발 소리처럼 쿵쾅거리는 심장. 체포조가 여기까지 쫓아오면 어떡하지, 난생처음 공권력의 공포에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광주 북구 망월동 5.18 구묘역
 광주 북구 망월동 5.18 구묘역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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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 남원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가 빠져나온 후 그 날 남원행 버스운행은 중단되었다. 남원행 버스가 출발하지 않았다면, 운명적으로 광주에 갇히게 되었다면, 공수부대 총칼에 죽어 망월동에 묻혔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내 심장에는 5.18 광주민주혁명의 피가 흐른다. 미국의 승인 없이 군대와 탱크를 이동할 수 없다. 240명 주검, 어디에 묻혔는지 모르는 409명 행불자. 강산이 네 번 바뀐 40년 세월이 흘렀는데도, 사과 한 마디 없다. 전두환의 속죄가 없는 한, 광주의 학살은 끝나지 않은 진행형이다.

80년, 5월 17일 오후 5시 금남로 터미널 열일곱 살 가슴에 새겨진, 군부독재 물러가라! 그 심장에 펄럭였던, 미제국에 맞선 저항의 깃발. 그 광주에 기필코, 울려 퍼질 통일의 함성.

아 그 날의 금남로여! 아 그 저항의 깃발이여! 아 그 통일의 함성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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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기자는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일꾼으로,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으로 2000년 6월 20일 폭격중인 매향리 농섬에 태극기를 휘날린 투사 신부, 현재 전주 팔복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첫눈 같은 당신'(빛두레) 시사 수필집을 출간했고, 최근 첫 시집 '지독한 갈증'(문학과경계사)을 출간했습니다. 홈피 http://www.sarang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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