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생각의 여름-이제,
 생각의 여름-이제,
ⓒ 이수현

관련사진보기

 
지난 4월 30일 의제강간연령 상향 법안이 n번방 방지법에 포함되어 통과되었다. 사람들은 의제강간연령 상향이 청소년 대상 성착취를 근절할 수 있는 법안이라고 믿고 있는듯하다. 하지만 그 과정 안에서 이제껏 청소년 당사자가 겪어야 했던 복합적인 경험의 맥락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이를테면 나의 경험이 그렇다. 나는 이 글에서 의제강간연령과 세상이 자꾸만 부정하고 있는,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나는 청소년, 그 사람은 성인이었음에도 위계가 별로 드러나지 않았는데, 위계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관계였더라도 내가 이 글을 쓸 수 있었을지 생각하면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모든 여성청소년의 이야기를 대변하는 건 불가능할뿐더러 오만한 일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그저 한 명분의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내려 한다. 나의 사랑과 그 오랜 시간을 지키고 싶어서 하는 이야기다. 나의 존재를 지우려 하는 세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말할 것이다. 그 사람도 나도, 잘못되지 않았다고.

그를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어떤 체험 캠프였다. 그는 대학교에서 자원봉사로 온 선생님이었고 나는 중학생이었다. 그 선생님이 나를 쳐다보면 기분이 좋았다. 나도 그를 쳐다보면 서로 눈을 돌리지 않고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먼저 웃으면 다른 한 명도 따라 웃는 그 순간이 정말 좋았다.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고 그저 너무 좋아했던 기억만 간간이 떠오른다. 캠프의 끝에는 꼭 안고서 엉엉 울다가 헤어졌다. 집에 와서도 엄마 앞에서 눈물을 펑펑 흘렸다. 그 공간의 모든 게 너무도 따듯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내게 건네준 눈빛과 문장들은 1년이 지나도록 가슴 깊이 남아있었고 우리는 그 이후로 밤마다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그 사람한테 네가 얼마나 어려 보이겠냐? 성인이 청소년에게 끌린다는 것 자체가 사실 말이 안 되는 거야."라는 말이 그렇게도 억울하고 속상했다. 그런 말들을 굳이 굳이 나에게 상처를 내가면서도 반복해서 세뇌했다. 자연스레 청소년이고 어린 나를 미워하게 되었다. 처해있는 상황도 너무 다르니까 그 사람이 날 사랑하기란 불가능하다고 혼자 되뇌었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에게 내가 얼마나 어려 보일까 두려워하고 속상해하며 그를 계속 좋아했다. 여전히 계속 사랑하고 싶었다. 그 사람이 나를 동등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감정이 나에게 너무 소중했기 때문에 나는 계속 사랑했다.

여느 사랑이 그렇듯 이 관계에도 수많은 고민과 고통이 있었다. 사랑, 페미니즘, 관계에 대한 나의 가치관을 끊임없이 구축하고 성찰하는 시간이었다.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위계를 부정할 순 없었다. 청소년과 성인, 심지어 학생과 선생님으로 처음 만났던 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생각해보면 위계가 없는 관계가 과연 어디 있을까. 위계를 만드는 요소는 너무나도 다양하고, 그만큼 세상의 다양한 관계들에는 다양한 위계가 존재한다. 위계가 있는 관계라고 해서 잘못된 관계가 아니다. 그 위계 때문에 우리의 관계를 그만 끊을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 위계를 부수어나갈지 고민해야 하는 거다. 이렇게 서로 다른 우리가, 과연 어떻게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관계가 건강한 관계다. 나의 페미니즘관이 사랑으로 인해 넓어지고 깊어지는 나날들이 괴롭고 또 즐거웠다.

그런 고민을 속으로만 실컷 하고 있었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는 여지껏 말하지 못했던 것을 터놓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성인과 청소년이 연애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성인인 그 사람과 청소년인 내가 전화기 너머로 새벽 3시까지 열심히 논쟁했다. 자연스럽게 '의제 강간 연령'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는 성인에게는 청소년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있고 그것을 어긴 사람이 처벌받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열심히 돌려 말했다. 나는 그 사람이 자꾸 자신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처럼 말해서 기분이 이상했다. 네가 그렇게 나쁘고 위험한 사람이야? 라고 되물으니 자신이 '나쁜 성인'이 아니라고 해도 그 '나쁜 성인'들과 같은 사회에 살고 있는 것에 대한 책임이라고 말했다.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내가 청소년이기에 받아야 하는 그 '보호'가 정말로 치가 떨리도록 싫었다. 그땐 내가 왜 그렇게 서러웠는지 잘 설명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의 말로 인해 그저 어린 사람 나약한 사람이 되었다. 폭력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 어떤 대처도 할 수 없는 사람 같았다. 내가 강하면 그 보호가 필요 없어지니까, 그 보호의 당위성을 위해 나는 자꾸만 나약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그 보호 앞에서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저 '어리고 나약한 소녀의 이성적이지 않은 판단'일 뿐이었다. 그게 너무 싫었다. 성인의 책임과 의무를 이야기하는 그 사람 앞에서 나약해지는 내 모습이 너무 싫었다.

나는 그런 보호를 원하지 않는다. 나에게 있는 '보호받을 권리'는 그런 게 아니다. 나는 약해서 보호받으려 하는 게 아니다. 나는 강하다. 원래부터 강하다. 나를 약하게 만드는 건 내가 아니라 나를 보호하려는 당신들이었다. 모든 폭력은 약한 사람을 아프게 해서가 아니라 강한 사람을 약하게 만들기 때문에 나쁘다. 보호주의와 같은 폭력들이 결국에는 위계를 만들고 유지 시키는 것이다.

사랑을 인정받는 순간들이 있었다. 예컨대 단짝친구와 이야기할 때, 함께 활동하는 동료들과 이야기할 때. 그들은 처음엔 놀랐지만 이내 그럴 수 있지, 라며 나의 즐겁거나 힘겨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엄마도 나와 그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나를 지지해준다는 건 정말 커다란 힘이 되었다. 만약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폭력이 발생했다면, 그들에게 가장 먼저 말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게 보호라고 생각한다. 위험한 상황에서 믿고 도움을 청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 폭력은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의제강간연령 덕분에 위험한 상황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위험한 상황을 더욱 드러나지 않도록 숨기게 될 것만 같다. 의제강간연령은 '보호'라는 이름으로 위계를 공고화하고 청소년을 무력한 존재로 위치시킨다. 법무부가 했어야 하는 건 누구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는지 판별할 게 아니라, 모두에게 엄연히 존재하는 성적 자기결정권이 왜 침해당하는지 다양한 위계를 고려하여 세심하게 살피기 위해 '비동의 강간죄'를 개정하고 성적 동의의 개념을 확장하는 것이었다. 또한 근본적으로 청소년과 비청소년 사이의 위계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청소년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권리를 더욱 보장하기 위한 논의를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청소년이 비청소년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자원과 역량을 획득할 수 있는 사회가 우리의 목표여야 한다.

지난한 시간들을 거치고 이제는 내 경험의 맥락과 감정들을 비로소 나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존재가 틀리지 않았음을 끊임없이 곁에서 말해주었던 이들 덕분이다. 그들은 나의 복잡하고 머리 아픈 고민들 또한 함께 나눠주었다. 그 시간들이 무색하게도, 의제강간연령 상향 법안은 n번방 방지법에 포함되어 아주 자연스럽고 빠르고 당연하게 통과되었다.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라면서도 청소년의 의견과 삶의 이야기는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 이제 이 사랑은 죄가 되었고, 나의 존재는 끝내 법에서까지 지워졌다.

나는 정말로 그냥 두려움 없이 사랑하고 싶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사랑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나를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