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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에일리언>이 떠올랐다. 나에게는 우주 괴물이 등장하는 SF 영화의 상징인 그 영화가 떠올랐다. 우주선에 갇힌 지구인들은 괴기스러운 모습으로 침을 계속 흘리는 에일리언을 피해 필사적으로 달린다. 늘 그렇듯이 일정 구역을 봉쇄해서 에일리언을 가두어야 지구인이 살아남을 수 있다.

이미 에일리언에게 반쯤 먹혔던 주인공은 초인적인 용기와 근력으로 관제실에 도착해 레버를 당긴다. 그리고 우주선 곳곳에서는 셔터가 내려가기 시작한다. 바로 그 상황. 셔터가 천천히 내려가고 누군가가 필사적으로 에일리언을 피해 달려오는 그 상황. 셔터는 이제 거의 바닥에 닿을 지경인데, 가까스로 땅을 기다시피해서 셔터를 통과한다. 그 처절한 뒷모습. 

13일 아침, 서울 유명 백화점 명품관 오픈 시간에 맞춰 '샤넬백'을 사려고 장사진을 이룬 사람들. 그리고 백화점 매장의 셔터가 채 땅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이미 명품관 바닥에 입을 맞출 듯 몸을 숙여 필사적으로 매장을 향해 달려가는 어떤 여인의 뒷모습에서, 나는 웬 괴수 영화를 떠올렸다.

대체 무엇이 그녀를,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을 그토록 절박하게 만든 것일까. 700만 원이 넘는 가방이 800만 원이 된다고 해서 그게 그렇게 큰 문제인가? 700만 원이나 800만 원이나. 나에겐 에이리언의 주둥이 만큼이나 생경하고 낯선 금액일 뿐이다. 난 이래서 부자가 못 되는 건가. 

장면 2.
그 백화점 명품관에서 버스로 1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서울 북쪽의 작은 동네 아파트에서는 경비원이 주민의 '갑질'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만원권과 천원권이 뒤섞인 30만 원이 채 안되는 돈을 막내딸에게 주는 '마지막 용돈'으로 남긴채. 그는 자신의 유서가 될 말들을 적을 '깨끗한 종이'조차 얻지 못해서 이런 저런 광고가 적힌 종이 위에, 그래서 더 간절하고 애틋하지만, 동시에 잘 읽히지 않는 글자들로 겨우 마지막 말들을 남겼다. 연신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했고, '고맙다'고 했다.

그의 눈앞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그 마지노선을 의미하는 셔터가 무참히 닫혔고 그는 무슨 이유에서든 그 셔터 아래를 통과하지 않았다(못했다). 그는 더는 몸을 숙일 수 없었다. 더 몸을 굽혀 인간이길 포기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런 건 인간이 인간에게 요구해서는 안 되는 일이니까. '좀 더 참지', '그래도 살아야지' 같은 말은 위로가 아니라 또 다른 폭력이다. 참고 견디지 못한 것처럼 말하지 말자. 그래서 참고 견딜 일이 자꾸 생긴다. 사라질 줄을 모른다. 

주민들은 그런 그를 마지막까지 지켜주지 못해서 슬퍼하고 있다. 이제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자유로운 추모의 행위들은 아름답지만 그것이 이 이야기의 마지막이 아니길 빈다. 이제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그 말을 그만하고 싶다. 

장면3.
나는 집순이다. 좀 민망하지만 전 세계적인 전염병으로 눈을 뜨면 매일 평생 처음 겪는 일들과 조치로 어지러운 나날에도 정작 내 삶은 크게 변화가 없다. 늘 다니는 동네 마트, 늘 다니는 산책로가 아니면 나에게 외출은 번거로운 일에 해당하니까. 그래서 내가 좀 무디게 반응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전염병은 마치 인간을 비웃듯, 시험하듯, 계속 변종을 만들고 약해진 고리를 뒤흔들고 억눌렀던 에너지에 들러붙는다. 필사적이고 헌신적인 노력으로 잠잠해지는 듯 보였던 전염병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쳐들 태세다. 

아이고, 이걸 어쩌냐며 이런 저런 정보를 검색한다. 내 삶에 큰 변화가 없다고 해도 주의해야 할 건 뭔지,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대책은 잘 수립되고 이행되는지 궁금하다. 그러다 우연히 댓글을(평소에는 잘 안 읽는데) 보았다. 

아, 그곳에서는 다른 전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개학을 하자고 하니 "워킹맘"들 비위 맞추느라 애들을 사지로 내몬다고 워킹맘이라는 그룹을 싸잡아 비난한다. '누구는 애 안 키우느냐'며 조롱하고 짐짓 '아이에게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데 쯧쯧'이라며 마치 아이를 위하는 듯 교묘히 속인다.

클럽에 간 사람들이 한시라도 빨리 검사를 받아야 할 판국에 언론에서는 질세라 "게이" 클럽이라는, 불필요한 정보를 대문짝만하게 타이틀로 적는다. 기사의 내용은 반나절 전에 쓴 것과 토시 하나 다르지 않다. 그 기사에 달린 댓글은 차마 다 읽을 수도 없다. 그 댓글만 보면 이 나라는 "게이 천국"이고 게이들이 모든 걸 잘못했다. 어쩌면 임진왜란 때 거북선이 불탄 것도 게이 때문일 수 있다. 

그러더니 이제는 세대 갈등을 조장한다. "코로나19가 젊은이들에게 치사율이 높았다면, 우리 부모 세대가 이렇게 놀러 다녔을까요" 식의 감성팔이부터 젊은 놈들 투표권을 다 뺏어버리자고 날뛴다. 

인터넷 댓글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할 수도 있겠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읽는 내내 의문이 들었다. 그럼 이 많은 댓글을 남기는 사람들은 누구며, 순식간에 수천, 수만 개의 좋아요를 누르는 익명의 그들은 또 누구인가. 

나는 전염병이 두렵다. 사고로 얼마 전까지 병원 생활을 한 남편이 있고, 그는 특히 폐가 약해서 입원 기간 내내 폐렴을 수도 없이 앓았다. 우리도 전염병에 걸릴까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공포 앞에서 한없이 나약해지는, 그래서 서로를 비난하고 헐뜯는 걸로 그 두려움을 해소하려는 움직임이 더 공포스럽다. 

힘을 모아야 한다는 말이 촌스럽다고 놀려도, 호랑이 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꼰대 같은 말을 한다고 비웃어도 좋다. 형체 없는 공포 앞에 무릎 꿇지 않을 수 있다면, 또한 살아 있는 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라면 촌스럽고 꼰대 같은 말에도 기대련다.

덧,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그 전염병과 얼굴을 맞대고 치료하느라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누가 정말 '힘든가.'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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