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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옥종의 첫 시집 <민어의 노래>.
 김옥종의 첫 시집 <민어의 노래>.
ⓒ 휴먼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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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란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어가는 삶의 총체다.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삶=문장'이라 할 수 있을 터. 그러니 당연지사 사람이 쓰는 문장에는 살아온 삶이 녹아들기 마련이다.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여기 커다란 손과 덩치를 가진 한 사내가 있다. 10대 땐 고향인 전라남도 신안과 학창시절을 보낸 목포에서 '소년 주먹'으로 유명했다. 자신의 완력과 펀치를 과신했던 시절엔 한국인 최초로 K-1 파이터가 돼 일본 격투기 선수와 맞붙었다. 육체가 정신보다 빠르게 성장했던 사람 김옥종(51).

불같이 뜨겁고 영화처럼 극적이던 인생이 전혀 다른 형태로 바뀐 건 '세상엔 나보다 강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다. 그 무렵 그는 밤거리가 아닌 부엌에서 칼을 들었다. 요리사가 된 것이다. 채소를 다듬고, 생선을 말리고, 육수를 끓였다. 철부지 아들이 커가는 걸 말없이 지켜보던 어머니와 함께 조그만 식당을 운영했다.

'요리'를 매개로 인간과 세상을 해석하다

그리고 다시 21년의 세월. 김옥종은 이제 자신이 만들어내는 요리를 소재로 시를 쓴다. 40대 중반 문예지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온 그가 지천명을 넘겨 첫 시집을 출간했다. 이름하여 <민어의 노래>(휴먼앤북스).

자신이 만들고 손님들이 먹는 김옥종의 요리 대부분은 이번 책에서 시의 제목이 됐다. 그는 음식을 매개로 삶의 희비, 세상의 빛과 그림자, 인간의 본성을 해석해 낸다. 예를 들자면 이런 문장이다.

세월은 소리 내어 울지 않는 것
민어 몇 마리 돌아왔다고 기다림이 끝난 것은 아니다…
- 위의 책 표제작 중 한 부분.


초여름, 제철 생선 민어를 요리하며 '세월'과 '끝나지 않는 기다림'을 떠올리는 사람. 이를 시인 외에 어떤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 문학평론가 하응백은 "김옥종의 시에는 삶의 근원에 대한 회한이 내면화돼 있다"고 말한다. 아래 시를 보면 그런 평가에 기꺼이 동의할 수 있을 듯하다.

나도 한 번씩은 조금 피가 흐르더라도
가슴을 열어
겨울 쪽볕에 한나절은 말리고 싶다
졸여낸 것은 생선이나 사람이나
깊어지는 건 매한가지 아니겠나.
- 위의 책 중 '건정' 전문.


전통 방식으로 말린 생선 '건정'은 김옥종이 즐겨 사용하는 요리 재료 중 하나다. 바람과 햇살 아래서 말라가는 생선을 보며 사람 또한 깊어지기 위해선 곰삭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그는 포착해낸다. 평소 '삶의 근원'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문장이리라.
 
 자신이 만드는 요리를 소재로 맛깔난 시를 쓰는 김옥종.
 자신이 만드는 요리를 소재로 맛깔난 시를 쓰는 김옥종.
ⓒ 김옥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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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건너편'에 있는 것들까지 끌어안는 넓은 가슴

오래 묵힌 간장 혹은, 잘 삭힌 홍어처럼 독자를 매혹하는 김옥종 시의 매력은 '주꾸미 초무침'에서 다시 한 번 드러난다. '더불어 함께 나누는 삶'의 아름다움을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에 석쇠 받치고/잘 여문 도다리 자글자글 하얀 속살/애틋하게 올려놓고/노랑 잎 봄동 데쳐서 막걸리 식초에/주꾸미 뒹구는 호시절에는/생의 건너편에 있는 것들까지 부르고 잡다.'

맛있는 걸 앞에 두고도 함께 할 사람이 없어 외로워하는 현대인들. 결국은 자신만큼 사랑할 어떤 것도 찾지 못한 소시민들에게 김옥종은 "생의 건너편에 있는 것들까지도 모두 불러 모아 한상 잘 차려 먹이고 싶다"는 너른 마음 씀씀이를 보여준다.

<민어의 노래>를 접한 시인 강제윤은 책에 실린 작품들이 "외로움에 기갈 든 영혼들의 뱃속을 든든히 채워준다"는 상찬을 전했다고 한다. 여기에 이런 말을 덧붙이고 싶다. "김옥종의 시는 2020년 오늘을 사는 우리가 잊었던 인간의 따스한 체온을 되찾게 해준다"고. 다음의 시를 찬찬히 읽어보자.

감기를 옮길까봐
등 돌린 당신의
폐에서
순록 떼의 마른 발자국
소리 들립니다…
- 위의 책 중 '난희에게' 한 부분.


함께 누운 이에게 감기가 옮을까 싶어 등을 돌리고 자는 사람. 시인은 그 등돌림에서 '순록 떼의 마른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행간마다 배려와 낭만이 스민 다사로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의 더운 성정이 절로 느껴지는.

쉰을 넘긴 나이지만 시인의 이력만으로 보자면 김옥종은 이제 겨우 세상으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그게 무슨 문제일까. 세상엔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요리가 있고, 그 요리들이 김옥종 시의 재료가 되어줄 것인데. 벌써부터 그가 차려낼 '두 번째 밥상'이 될 다음 시집이 기다려진다.

민어의 노래

김옥종 (지은이), 휴먼앤북스(Human&Books)(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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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등의 저자. 경북매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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