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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책이 나왔습니다'는 저자가 된 시민기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저자가 된 시민기자라면 누구나 출간 후기를 쓸 수 있습니다.[편집자말]
"엄마, 책 하나 써보지 않을래요? 제가 엄마책 만들어드릴게요. 요즘은 할머니들이 시도 쓰고 수필도 쓰고 글 잘 쓰더만! 엄마는 책도 좋아하니까 잘 쓸 수 있을 거예요."
"아이구, 내가 무슨 책을 쓰냐? 할 얘기도 없어~"


그런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다. 하고 싶은 건 언제가 되었든 기어이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내가 아닌가! 나에겐 불도저 같은 추진력은 없으나 소 같은 끈기는 있다. 다음번 엄마를 만날 때 슬그머니 하늘색 스프링 노트를 하나 사드렸다. 제목도 떡 하니 써서 드렸다.

'엄마의 길'

엄마는 노트를 받아들고 "뭘 자꾸 쓰라고 하냐! 난 못 써" 하며 방 한쪽 구석으로 툭하니 던지셨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후, 엄마는 바로 그 노트를 다시 내 앞에 툭 던져 주셨다. '설마! 진짜 쓰셨다고?' 깜짝 놀란 마음을 누르고 노트를 열었다. 노트에 쓴 글은 7쪽 남짓. 삐뚤빼뚤 흔들리는 글씨들이 화면 가득 빼곡이 차 있었다.

"야! 더 쓰라고 하지 마. 이제 못 써!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 내가 그걸 하룻밤 꼬박 새워서 썼어. 쓰기 시작하니까 멈출 수가 없더라고."

눈물이 핑 돌았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엄마의 삶을 밤새 쉬지 않고 써 내려간 그 심정은... 비록 7쪽밖에 되지 않는 글이지만 이 소중한 글을 어떻게 펼쳐내야 엄마의 삶을 살려낼지 덜컥 겁이 났다. 그렇게 노트를 쳐다보며 2년이 훌쩍 흘러가 버렸다.

엄마의 이야기는 왜 '출산'에서 끝날까
 
 어머니의 이야기를 엮어 만든 책 <순애>의 앞표지
 어머니의 이야기를 엮어 만든 책 <순애>의 앞표지
ⓒ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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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글을 받아들고 읽고 또 읽었다. 읽을수록 내게 남는 건 '그리움'이었다. 그 시대 어르신들의 삶이 다들 그렇지만 1930년생 엄마의 삶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 전쟁. 역사의 격동기를 살아내시며 그야말로 치열하게 삶을 지탱하셨다. 그런데 엄마의 기억을 부여잡고 있는 것이 그리움이라니 놀라웠다.

'황해도 진풍면 내안리 675번지'

번지까지 정확히 기억하시는 엄마의 고향, 그곳에는 엄마의 어린시절 추억이 있고, 엄마의 어머니가 있고, 두려울 것 하나 없는 젊음 가득한 엄마가 있었다. 숨 막히는 현실을 이겨내고 꿋꿋이 현재를 살아내었던 멋진 소녀 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그때가 그리웠던 게다. 여름날 싱그런 나무 같았던 그때.

"엄마, 이야기가 왜 결혼하기 전까지 밖에 없어? 결혼하고 우리들 낳고 살아온 이야기는 왜 안 쓴 거야? 안 행복했어?"
"그걸 뭐하러 쓰냐? 남들 사는 것처럼 그냥 그렇게 살았는데. 니들이 모르는 이야기를 써야 재밌지."


엄마가 소녀였던 시절만 있는 엄마의 원고를 들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건너뛰어버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엄마는 차근차근 이야기를 해주시며 연신 말씀하셨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 "내가 그때는 왜 그랬나 몰라~"

말씀을 이어가다 가슴이 먹먹해지시는지 잠시 숨을 고르기도 하시며 내가 물어보는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주셨다. 엄마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나는 야간학교 교사를 하며 남편을 만났다. 지금은 1남 2녀 모두 잘 살고 있다."

아마도 엄마의 진짜 삶은 여기까지였나보다. 그리고 그 다음은 그저 엄마로 살아오셨나보다.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으셨다. 단지 엄마가 엄마였던 시절에는 그리워하고 추억할 만한 자기 자신이 없었던 게다. 내가 추억하는 엄마를 엄마 글에서 찾을 수 없어 이번엔 내가 먹먹해졌다.

놓쳐버린 시간, 떠나버린 엄마
 

2015년 12월 내 이름을 단 책이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그다음 해부터 1년 혹은 2년을 간격으로 계속 내 이력으로 삼을 만한 책이 세상에 나왔다. 덕분에 나에게는 조금씩 더 많은 일거리가 생겼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책이 한 권씩 늘어나며 나는 자꾸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내 안의 소망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 소망을 입으로 말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언젠간, 언젠간, 이라고 말하며 간절히 원하지만 아직은 부담스러운 나의 꿈을 조금씩 소화시키고 있었다.

1인 출판사! 남들은 반백 년을 넘게 살고나면 하나둘씩 일을 정리한다. 어떻게 하면 은퇴해서 편안한 삶을 살까 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나는 새로운 꿈을 꾸며 그 꿈이 1인 출판사라고 공공연히 소문을 내고 다녔다. 자꾸 말하다 보면 "왜 아직도 안 해요?"라는 질책을 듣게 될까봐, 혹은 허풍선이나 거짓말쟁이처럼 보이게 될까봐 결국 시작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서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내 마음에 용기를 주는 훈련 과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1인 출판사에 대한 강의를 3번, 4번 들으러 다녀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난감했다. 괜한 욕심을 부리고 있나 고민하기도 했다. 왜 하고 싶은지조차 모르지만 하고 싶은 일... 고민을 미뤄두고 바쁘게 강의를 하고 다니느라 어느새 엄마의 노트는 책상 한구석에 다른 책들에 눌린 채 잊히고 있었다.

엄마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몸도 마음도 약해지신 엄마는 결국 요양병원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게 되셨다. 책상 위에 있는 엄마의 노트를 볼 때마다 초조해졌다.

'어떻게 대충이라도 정리해서 빨리 책을 만들어야 하나... 어쩌지, 엄마 살아생전에 책이 나오는 걸 보여드리면 좋아하실 텐데. 고작 7쪽 되는 글로 어떻게 책을 만들지?'

아무리 고민해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중 엄마는 어느 날 문득 이 세상 소풍을 끝내버리셨다. 2019년 7월이었다.

정말 많이 울었다. 멀리 살면서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이 너무 죄송해 엄마 얼굴을 볼 면목이 없었다. 엄마의 노트를 들고 아무것도 못한 시간이 죄송하고 부끄러워 울고 또 울었다. 지치도록 울다가 울다가 갑자기 엄마의 책을 만들어낼 용기가 생기고 제목이 떠올랐다. '순애', 엄마의 이름 그대로를 살려내리라 생각했다. '모두가 힘들었던 그 시절, 30년생 그녀의 이야기 <순애>'

그렇게 엄마의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던 차 안에서 책의 내용보다 책의 제목이 먼저 정해졌다. 그리고 엄마가 엄마였던 시절을 살려내기 위해 가족들의 추억을 모으기 시작했다.

드디어 완성한 엄마의 첫 책
 
 내 출판사의 첫 책이기에, 내 엄마의 책이기에, 우리 가족 모두의 노력이 담겼기에...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고, 모든 것이 최선이고 싶었다.
 내 출판사의 첫 책이기에, 내 엄마의 책이기에, 우리 가족 모두의 노력이 담겼기에...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고, 모든 것이 최선이고 싶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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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새해, 오래 미뤄두고 고민만 했던 1인 출판사를 시작하며 첫 책으로 엄마의 책을 내리라 결심했다. 엄마의 글을 정리하고 가족들을 재촉해서 엄마에 대한 추억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쓰고 고치고, 또 쓰고 고치고, 정리하고 빼고, 다시 넣고... 모두 모아봐야 60~70쪽 남짓한 길지 않은 원고를 보고 또 보며 단 한 순간도 울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엄마, 또 할머니 원고 봐?" 컴퓨터 앞에 앉아 하염없이 울고 있는 나를 보면 딸아이가 다가와 꼭 안아주며 함께 울어주곤 했다. 엄마가 떠나신 후 6개월여를 그렇게 원고와 사투를 벌였다. 덕분에 원고는 점점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드디어 원고 정리가 끝나고 제작 준비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런저런 고민들이 꾸역꾸역 내 속을 비집고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입을 빌려 나온 마틴 스코세이지(Martin Scorsese)의 말을 아무리 되뇌어도 어쩔 수 없는 염려였다.

'울 엄마 이야기를 남이 왜 읽어?'
'우리 가족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재미있겠어?'
'그러면 그냥 우리 가족만 읽는 책으로 만들어야 하나?'
'아니야, 가족의 이야기로 의미 있잖아? 그렇다면 뭐라도 해서 읽고 싶게 해야 하지 않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고민들이 불거져나왔다.

사실 내용을 읽다 보면 정말 모두의 어머니 이야기인 게 사실이다. 애써 포장하지 않아도 읽다 보면 내 어머니가 떠오르고 내 할머니가 생각난다. 하지만 내 출판사의 첫 책이기에, 내 엄마의 책이기에, 우리 가족 모두의 노력이 담겼기에...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고, 모든 것이 최선이고 싶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제작비는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갔다. 일러스트, 4도 컬러 인쇄, 표지 금박. '미친' 제작비를 쏟아붓다 보니 책을 열심히 팔아 최소한 제작비는 뽑아야겠다는 생각조차도 애초에 버렸다. 출판 공부를 한 수업료라고도 생각했다.

결과물은 대만족이다. 작고 사랑스러운 책이 되었다. '미친' 비주얼이다. 비주얼 깡패라고 해야 하나! 반짝반짝 빛나는 책을 엄마에게 드릴 수 있어서 죄송했던 마음을 조금 덜어낸 기분이다.

30년생 엄마와 가족의 이야기

<순애>는 모두 3부의 이야기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다. '1부 남기다'는 엄마가 직접 쓰신 7쪽의 글이 그대로 담겨 있다. 이야기 속에는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 피난살이의 어려움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치열한 삶을 겪어내야 했던 한 소녀의 삶이 낭독처럼 흐른다.

'2부 기억하다'는 엄마에 대한 가족들의 기억을 담겼다. 엄마의 동생, 딸, 아들, 손녀들까지 엄마로서 살았던 '순애'의 삶이 보인다. '3부 간병 일기'는 엄마가 떠나시던 시간을 지킨 큰딸, 나의 언니와 오빠의 간병일기를 담았다. 누구나가 읽어도 누구나 준비해야 하는 이별의 시간들을 보여준다.

이렇게 정리하다 보니 제법 책 같다. 아니 제법 쓸 만한 책이 되었다. 태그를 붙이자면 #어머니, #가족애 #한국사의 아픔 뭐 이 정도 되겠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뭐니뭐니해도 '어머니'이다.

'어머니'라는 말에는 눈물이 스며 있다. '어머니~' 하고 부르면 누구나 그 속에 있는 눈물에 젖어버린다. <순애>에는 그 눈물이 있다. 그리고 순애가 사랑했던, 순애를 사랑했던 그녀의 가족이 있다.

순애 - 모두가 힘들었던 그 시절 30년생 그녀의 이야기

전순애 (지은이), 최혜정 (엮은이), 생애(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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