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9일(이하 한국시각)에는 종합 격투기 역사상 최고의 빅매치로 불리던 하빕 누르마고메도프와 토니 퍼거슨의 UFC 라이트급 타이틀전이 예정돼 있었다. 무패 전적을 자랑하는 챔피언 하빕과 파죽의 12연승을 달리고 있는 퍼거슨의 경기는 격투팬들의 피를 뜨겁게 하기 충분했다. 게다가 두 선수는 과거 이미 4번이나 경기가 무산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 맞대결은 두 선수가 최고의 기량으로 겨룰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여겨졌다.

하지만 전 세계 격투팬들이 기다려 온 하빕과 퍼거슨의 대결은 또 한 번 무산됐다. 지난 4월 2일 대회를 약 보름 앞두고 챔피언 하빕이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인해 경기를 포기한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물론 코로나19는 무려 30만 명에 가까운 사망자를 기록했을 만큼 심각하기 때문에 하빕의 결정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격투팬들이 워낙 오랜 기간 손꼽아 기다렸던 경기였기에 하빕의 결정이 실망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하빕의 불참과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한 달 넘게 대회를 치르지 못했던 UFC는 오는 10일 무관중으로 대회를 재개한다. 특히 한 달 만에 다시 치러지는 UFC 249에서는 하빕과의 빅매치가 무산된 퍼거슨이 23전21승18KO의 전적을 자랑하는 화끈한 파이터 저스틴 게이치와 라이트급 잠정 타이틀을 놓고 격돌한다. 두 전사의 맞대결은 경기의 재미만 놓고 보면 하빕과 퍼거슨의 경기보다 더 기대가 되는 매치업으로 꼽히고 있다.
 
 하빕의 이탈로 무산되는 듯 했던 UFC249는 게이치의 합류로 극적으로 기사회생했다.

하빕의 이탈로 무산되는 듯 했던 UFC249는 게이치의 합류로 극적으로 기사회생했다. ⓒ UFC.com

 
옥타곤 라이트급 최다 연승의 주인공, 두 번째 잠정 타이틀 도전

중소단체에서 10승2패의 전적을 기록하다가 2011년 UFC의 선수육성 프로그램 TUF의 13번째 시즌에 출전한 퍼거슨은 웰터급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UFC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었다. UFC 입성 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라이트급으로 감량을 단행한 퍼거슨은 2012년 5월 옥타곤 4번째 경기에서 마이클 존슨에게 판정패를 당했다. 하지만 이 패배는 퍼거슨이 UFC에서 기록한 유일한 패배가 됐다.

퍼거슨은 존슨과의 경기에서 판정패한 후 7년 동안 무려 12명의 상대에게 패배의 아픔을 선사했다. 퍼거슨에게 패한 12명 중 경기를 판정까지 끌고 간 선수는 단 3명(대니 카스티요, 조시 톰슨,하파엘 도스 안요스)뿐이었고 퍼거슨은 12연승 기간 동안 무려 8번이나 보너스를 수령했다. 변칙적인 타격을 앞세운 진흙탕 싸움은 라이트급 내에서 따를 자가 없고 주짓수 블랙벨트와 8번의 서브미션 승리가 말해주듯 그라운드 이해도도 매우 뛰어난 편이다.

퍼거슨이 격투팬들에게 더욱 유명해진 계기는 바로 하빕과의 남다른 인연 때문이다. 퍼거슨은 하빕과 2015년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6년에 걸쳐 5번이나 맞대결이 추진됐지만 한 번도 옥타곤에서 주먹과 킥을 섞어보지 못했다. 하빕의 늑골 부상과 신장 이상이 한 차례씩 있었고 퍼거슨 역시 간질환과 무릎부상으로 두 차례 경기를 치르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코로나19라는 외부변수가 두 선수의 맞대결을 막았다.

하지만 하빕과의 타이틀전에 맞춰 컨디션을 끌어 올리던 퍼거슨에게 대회 취소는 받아 들이기 어려운 결정이었고 퍼거슨은 하빕과 설전을 벌인 끝에 제3의 상대인 게이치와의 잠정 타이틀전을 받아 들였다. 지난 2017년 라이트급의 초대 잠정 타이틀을 따기도 했던 퍼거슨이 한 번 더 잠정 타이틀을 거머쥔다면 하빕도 더 이상 타이틀전을 미룰 명분이 없어진다.

라이트급 역사상 최다 연승 기록(12연승)을 보유하고 있는 퍼거슨은 자타가 공인하는 라이트급의 양강으로 꼽히는 선수다. 하지만 퍼거슨은 지난 2018년 정신분열 증상으로 1년 동안 공백기를 갖는 등 정신적으로 불안요소가 많다.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 게이치라는 강적과 만나는 퍼거슨이 잠정 타이틀을 따내며 라이트급의 양강이자 하빕의 유일한 라이벌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할 수 있을까.

언더독 반란에 도전하는 라이트급의 '명승부 제조기'

현존하는 UFC 최고의 스타 코너 맥그리거는 화려한 언변으로 상대를 도발하고 격투팬들의 관심을 모으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맥그리거가 'UFC의 아이콘'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역시 화끈한 경기 스타일에 있다. 만약 맥그리거가 옥타곤 밖에서는 상대에 거칠게 도발하다가 정작 경기가 시작되면 지루한 내용으로 판정을 노리는 경기를 펼친다면 지금처럼 격투팬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진 못했을 것이다.

경기 스타일의 화끈함을 논한다면 퍼거슨과 라이트급 잠정 타이틀전을 치르는 게이치 역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어설프게 판정으로 승리하느니 옥타곤 위에서 장렬하게 전사(?)하겠다"는 파이팅 철학을 가진 게이치는 통산 21승 중 18번을 KO로 승리했고 2번의 패배 역시 모두 화끈한(?) KO패였다. 일단 게이치가 옥타곤에 오르면 승패와 관계없이 격투팬들을 열광시키는 멋진 경기를 보여준다는 뜻이다.

게이치가 지난 2018년 에디 알바레즈와 더스틴 포이리에에게 연속 KO로 패할 때만 해도 방어가 약해 한계가 뚜렷한 파이터라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게이치는 최근 제임스 빅과 에드손 바르보자, 도널드 세로니 같은 만만치 않은 파이터들을 3연속 1라운드 KO로 제압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격투팬들은 이제 현존하는 라이트급 파이터 중에서 가장 변수가 많은 파이터로 게이치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따라서 하빕과 퍼거슨의 타이틀전이 무산됐을 때 게이치가 하빕의 대체 선수로 들어간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야금야금 상대의 체력을 갉아 먹는 진흙탕 싸움의 대가 퍼거슨과 뛰어난 맺집과 회복능력, 그리고 엄청난 압박으로 상대를 쓰러트리는 게이치의 대결은 이미 오래 전부터 격투팬들이 보고 싶어하던 매치였기 때문이다. 뒤로 물러나는 법을 잊어 버린 퍼거슨과 게이치의 대결에 격투팬들의 관심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편 코메인이벤트에서는 헨리 세후도와 도미닉 크루즈의 밴텀급 타이틀 매치가 열릴 예정이다. 크루즈의 경우 2016년 코비 가브란트에게 판정으로 패한 후 부상으로 3년 넘게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서 밴텀급 공식 랭킹에서도 제외됐다. 하지만 과거 두 차례나 밴텀급 타이틀을 차지했을 만큼 명성이 높은 선수이기 때문에 전성기 시절의 화려한 스텝과 테크닉만 살아난다면 두 체급 챔피언 세후도와도 충분히 좋은 승부가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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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 UFC 249 라이트급 잠정 타이틀전 토니 퍼거슨 저스틴 게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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