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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된 전두환 내외가 내빈들에게 손을 흔들며 답례하고 있다(1980. 9. 1.)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된 전두환 내외가 내빈들에게 손을 흔들며 답례하고 있다(1980. 9. 1.)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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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을 떠나면서

2020년 4월 25일 오후 8시 10분, 합천에서 출발한 버스는 진주를 향해 싱싱 달렸다. 음력 초사흘로 밤하늘은 칠흑처럼 캄캄했다. 온종일 강행군으로 피로할 만도 한데 눈은 말똥말똥했다. 신군부가 활개를 쳤던 40년 전 1980년 그 시절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지나온 내 삶은 교사생활로 평범했을 것 같지만 마치 엷은 얼음의 호수를 건너온 듯 참 힘들었다. 신군부가 12. 12 사태로 정권을 장악한 그 시절은 특히 힘들었다. 아버지가 신군부를 비판하다가 불법 강제로 연행된 이후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관련 기사 : 아버지가 못 다 부른 통일의 노래 http://bit.ly/OX8B0)
 
 합천 전두환 생가 본채
 합천 전두환 생가 본채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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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선생님의 전화

1981학년도에 나는 이대부고 2학년 2반 문과반 담임을 맡고 있었다. 그해 5월 어느 날 밤, 집에서 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려 받고 보니 정식영 교장선생님이었다. 

사연인 즉, 청와대 비서실 한 비서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바, 전두환 대통령 둘째 아들 전아무개 학생이 우리 학교로 전학 올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를 담임교사로 추천했다고 말했다. 교장선생님이 내 집으로 전화한 것도, 또 현직 대통령 아들이 내 반으로 전학해 온다는 것도 너무나 뜻밖에 일이었다.
  
하지만 내 학급에 한 학생이 전학을 오겠다는데 담임교사로 가타부타할 일은 아니다. 그래서 잘 알았다고 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 뒤 한 달이 지나도록 '꿩 구워 먹은 소식'이었다. 어느 날 복도에서 만난 교장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꺄웃거리면서 그 비서관으로부터 추후 얘기가 없었다고 의아해 했다.

이즈음 그때 일을 내 나름 추리해 보면 그 학생이 전학치 않은 것은 두어 가지 이유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그 첫째는 당시 같은 학군 내에 전학은 원칙으로 금지돼 있었다. 그래서 그쪽(전두환)에서 다시 검토하는 과정에서 아예 없던 일로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 둘째는 당시 사형수 김대중의 막내아들 김홍걸 학생이 우리 학교 고3에 재학 중이었다. 그런데 굳이 당신 아들을 전학시킴으로써 평지풍파를 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그 셋째는 나의 가족사 특히 아버지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미 40년 전의 일이지만 나는 지금도 그 진상을 잘 모르고 있다. 아무튼 그 어려웠던 시기를 잘 넘긴 듯하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 사실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두환씨가 27일 오후 전남 광주지방법원에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을 마치고 부인 이순자씨와 경호를 받으며 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 사실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두환씨가 27일 오후 전남 광주지방법원에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을 마치고 부인 이순자씨와 경호를 받으며 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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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넣고 장난하지 마시오"

전두환 집권 시절은 시중에 별별 유언비어가 다 떠돌았다. 그 가운데 두 가지만 소개한다.

5공 시절 민초들은 전두환을 미워한 나머지 그를 '돌머리'라고 비하했다. 미국에 간 전두환이 정말 내 머리가 돌인가 하고 IQ 측정기에 자기 머리를 집어넣자, "돌 넣고 장난하지 마시오"라는 경고음이 나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당시 일선에서 뛰었던 한 언론인은 그 풍문을 부인하면서 실제 "전두환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다. 특히 직관력이 뛰어나고 기억력이 좋았다"고 증언했다. 기억력에 대해서는 전두환 자신도 "내가 중대장을 할 때 1주일 만에 180명의 중대원 이름을 죄다 외웠더니 모두 놀랐어"라고 자랑한 일이 있다.
- 강준식 <대한민국 대통령들> 239쪽

  
또 다른 얘기는 전두환 임기 말에 떠돈 얘기다. 그즈음 전두환 허벅지에 피멍이 들었다는 유언(流言)이었다. 날마다 밤이면 부인이 "당신 정말 물러날 거야", "물러나면 우리는 그날로 개털된다" 등의 말로 남편 허벅지를 꼬집었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였다.

전두환은 5공화국 헌법 제정 당시는 대통령 임기를 7년 단임으로 정했다. 하지만 재임기간은 화살처럼 지나갔다. 임기 만료일이 가까워 올수록 퇴임 후가 불안스러워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래서 1987년 4월 13일, 전두환은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거부하고, 일체의 개헌 논의를 중단시키는 '4.13 호헌'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민주화의 거센 회오리속에 6.29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이면서 노태우에게 대통령 자리를 물려줬다.
  
진주 남강

그새 시외버스는 진주 남강변을 지나고 있었다. 그 일대가 조명으로 요란했다. 이렇게 전기를 낭비하느라 원자력 발전소를 세우고, 그 때문에 지구환경이 오염되고… 악순환이 되고 있다. 환경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더 무서운 지구 환경오염에 대한 자연재해를 경고하고 있다.

버스가 진주시내로 진입하는데, 1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진주는 그새 현대식 도시로 변했다. 이전 항일유적 답사 길에 진주에 왔을 때는 고풍스러웠다. 현란한 불빛을 보자 그곳에서 하룻밤 묵고 싶은 생각이 싹 달아났다.
 
 진주 남강 등롱 축제
 진주 남강 등롱 축제
ⓒ 진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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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린 뒤 곧장 9시 30분에 출발하는 거제도 고현행 버스표를 끊었다. 나는 타고난 역마 체질인 모양이다. 그날 하루 원주에서 출발하여 대구, 합천에서 두 대통령 생가를 들른 다음, 김영삼 생가를 가고자 진주를 거쳐 거제도에까지 가고 있으니…

(*다음 회는 '전두환' 편 마지막 회입니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강준식 지음 <대한민국의 대통령> / 등 수십 권의 참고자료와 그 시대 신문, 동시대에 살았던 여러 사람들의 증언으로 쓴 기사임을 밝힙니다.


태그:#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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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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