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의 열기가 타오를 때 봅슬레이 종목에서 미련 없이 물러난 이가 있었다. 대회의 피날레를 장식했던 봅슬레이 4인승 종목에서 은메달 소식을 전한 직후, 그는 "자신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멀리서 선수들을 지켜보겠다"며 종목에서의 모든 직책을 내놓고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이제는 슬라이딩 센터에서 내달리지 않고, 국제 대회에 나선 선수들에게 직접 가르침을 주지 않는다. 대신 더욱 뒤로 물러나 새로운 선수들을 발굴하고, 더욱 많은 선수들이 종목의 유망주가 될 수 있도록 힘을 쓰고 있다. '썰매의 개척자'에서, 이제는 '썰매 종묘사'가 된 한국체육대학교 강광배 교수의 이야기다. 

7일 한국체육대학교에서 이제는 후진 양성에 힘을 쏟고 있는 강광배 교수를 만났다. 평창 올림픽이 끝난 뒤 현재의 근황은 어떠한지, 썰매 종목의 현재까지의 발전과 앞으로의 길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오는 7월 열리게 될 봅슬레이와 스켈레톤의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가려는 '미래 국가대표'에게 주는 팁 역시 물어볼 수 있었다.

"2년 동안 어떻게 지냈냐고요? 체육관에 쓸 창문 개발했죠."
 
 7일 강광배 교수가 한국체육대학교 교정에서 포즈를 잡고 있다.

7일 강광배 교수가 한국체육대학교 교정에서 포즈를 잡고 있다. ⓒ 박장식

 
가장 궁금했던 것은 2년 동안의 근황이었다. 강 교수는 올림픽이 끝난 직후에 교수를 제외한 모든 직에서 내려왔다. 대학에도 1년 6개월 동안 연구년을 신청해 썰매를 배웠던 그의 '제2의 고향', 오스트리아의 인스브루크로 향했다. 강 교수는 그 곳에서 썰매 공부 대신, 특이한 '개발'을 했다. 다름아닌 체육관에 쓰일 창문의 개발이었다.

"지금까지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어려웠던 것이 있어요. 미세먼지가 많으면 실내에서도 훈련하기가 참 어렵다는 점이에요. 체육관 같은 곳에서는 창문을 닫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작정 창문을 열 수도 없죠. 공기청정기를 가동하기에도 부담이 크고요. 특히 아이들이 이런 환경에서 뛰어 놀 수가 없으니 참 난감하더군요."

강 교수가 개발한 장치는 창문의 창틀에서 미세하게 물이 분사되어, 미세먼지가 실내로 유입되는 것을 막는 장치였다. 미세먼지가 높을 때 창문을 열고도 안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특허를 출원했는데, 특허를 담당했던 변리사가 "운동 하시던 분이 특허 낸 적은 처음이었다"고 적잖이 놀랐다고 전했다. 

더욱이 돈을 벌기 위해서보다, 사회로부터 격려를 받고 지원을 받은 만큼 돌려주기 위해 특허를 냈다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해당 기술을 사회에 공헌을 할 생각이라는 강 교수는, 관심이 있는 기업 등에서 함께 미세먼지 걱정이 없는 체육관을 만드는 캠페인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뜬금없어 보일 지 모르는 이런 개발의 이유는 '아이들'에게만 있지 않았다. 강 교수는 아이들이 미세먼지 걱정 없는 체육관에서 생활체육에 몰입하다보면 더욱 좋은 썰매 선수들도 그 아이들 사이에서 나올 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며, "그래서 특허 낼 생각에 더욱 정신없이 개발에 몰두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세 살 버릇이 여든 가듯이, 아이들이 부담없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어른들이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아이가 행복하고 건강한 나라는 모두가 행복하고 건강한 나라이니까요. 그래서 두 번째 꿈이 모든 학교의 아이들, 나아가 그 학교의 지역 주민들이 미세먼지 없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썰매는 안전 확보된 종목... 생활체육도 가능하죠"

평창 슬라이딩 센터는 지난 2018-2019 시즌 문을 굳게 잠갔다. 강원도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슬라이딩 센터의 운영비를 두고 갈등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2019-2020 시즌에는 갈등이 해결돼 다시 경기장이 열렸고, 국제 대회도 개최했다. 강광배 교수는 "행정이 뒷받침을 잘 못했던 것"을 가장 큰 아쉬움으로 꼽았다.

"올림픽 뒤의 '포스트 평창'에 대한 점, 그러니까 사후활용이나 운영방안에 대한 부분이 올림픽을 하기 전 만들어졌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그래도 다시 썰매장이 열려서 운영이 잘 되고 있습니다. 경기장 운영은 충분히 잘 되고 있고, 운영비 문제도 해결이 되었으니 걱정 없이 선수들의 육성도 가능하죠."
 
 2019-2020 시즌부터 국제대회를 유치하며 다시 문을 연 평창 슬라이딩 센터.

2019-2020 시즌부터 국제대회를 유치하며 다시 문을 연 평창 슬라이딩 센터. ⓒ 박장식

 
강 교수는 2002년부터 올림픽 유치위원회에서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슬라이딩 센터는 9년 동안의 올림픽 유치 3수 끝에 얻어낸 성과였다. 강광배 교수는 "썰매 종목이 유치 3수를 거치며 발전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런 슬라이딩 센터가 지속되려면 어떤 방안이 필요할까. 강 교수는 썰매의 대중화에 초점을 맞췄다.

"미국 솔크레이트 시티의 슬라이딩 센터는 관광용 봅슬레이와 스켈레톤 체험을 열고 있고, 독일 퀘닉스에서는 루지 체험도 가능해요. 한국에서도 관광, 체험의 목적으로 슬라이딩 센터를 여는 건 일반인에게 썰매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유소년 선수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에요. 경기장 운영비로 수익도 창출할 수 있고요.

썰매 종목은 위험해 보이지만, 안전이 확보된 종목입니다. 사람들이 스키를 타러 가듯 썰매를 타러 가는 생활체육으로도 쓸 수 있어요. 그렇게 하면 관광을 넘어 생활체육인 선수의 풀을 넓히는 효과가 날 것입니다. 슬라이딩 센터가 선수를 육성하고 발굴하는 '씨앗'을 만드는 장소가 되는 것이죠."


강 교수는 올림픽과 같은 메가 스포츠 행사를 개최한 도시와 국가의 역할을 '행사를 계기로 다양한 분야의 스포츠를 발전시키고, 좋은 성과를 보이는 것'으로 정의했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트 대회, 즉 세계선수권대회나 월드컵의 유치 역시 꼭 필요하다고 힘주어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옆 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꺼냈다.

"일본은 삿포로와 나가노, 두 곳의 슬라이딩 센터가 올림픽 이후 30년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아야 했어요. 일본이 썰매 종목에서 메달을 못 딴 것이 큰 원인 중 하나였죠. 반면 한국은 썰매가 이제 올림픽 효자 종목이 되었어요. 정부에서도 스포츠 균형 발전을 위해 육성하는 명분이 생긴 것이죠. 제자들 덕분에 후배들이 잘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겁니다." 

기회는 주어질 때 최선을, 그리고 미련 없을 때 내려오기
 
강광배 교수는 14년 전 토리노 올림픽 때 IOC 선수위원으로 출마했던 기억을 되살렸다. 경쟁자로 나왔던 일본의 크로스컨트리 선수는 매일 선수촌 식당 앞에서 인사를 했었다고 한다. 강 교수도 옆에서 할까, 말까 고민을 했었는데, 그러기에 부끄러워 선거운동 팸플릿을 선수촌 문 밑에 넣는 정도에 그쳤다. 일본 선수는 아쉽게 3등을 기록했지만, 자신이 그것을 보며 느낀 것이 있다고 말했다.

"기회는 주어졌을 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걸 선수위원 출마를 통해 느꼈죠. 그 뒤 베이징 올림픽 때 태권도의 문대성 선수가 찾아왔었는데, '진짜 IOC 위원을 하고 싶다'고 했어요. '내가 시키는 대로 할 수 있겠냐'니까 무엇이라도 하겠대요. '너는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선수촌 식당 앞에서 인사를 하라'고 얘기했어요.

그러자 대성이는 한 술 더 떠서 선수촌 식당 앞에서 도복을 갖춰 입고 태권도까지 했더라고요. 결국엔 최다 득표로 당선이 되었죠. 밴쿠버 올림픽 때는 스켈레톤을 하던 애덤 팽길리가 후보로 출마했을 때, 저한테 'IOC 위원 하는 법'을 물어보더군요. 똑같이 방법을 알려주니 2010년도에 되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IOC 위원 메이커'가 되었었네요. 하하."


그런 노력을 통해 강 교수는 2010년에는 아시아인 최초, 국제연맹 최연소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부회장직에 올랐다. 그의 나이 39세 때였다. 그렇게 물꼬를 튼 덕분에 강광배 교수 이후에도 30대의 체육인이 연맹 부회장직에 오르기도 했다. 강 교수로서는 본의 아니게 이른 나이에 종목의 원로가 된 셈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그는 '미련이 없을 때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을 선택했다. 후배들이 나이가 들고 선수에서 은퇴할 때, 하나씩 자리를 비워주었다. 그는 2011년에 총감독직을 사퇴한 것에 대해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다고 이야기했다. 

"국가대표라고는 하지만, 당시에는 지원과 훈련이 부족하다 보니 후배 선수들이 은퇴하면 무엇을 먹고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컸어요. 그래서 자리를 내려놓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넘겼죠. 그러면서 내가 안았던 자리에 대한 역할도 끝난 것이고요, 관여를 해서도 안 되겠죠. 

그래서, 제 역할을 썰매의 기반을 닦고 씨앗을 뿌린 것으로 정의하고 싶어요. 이제는 제자들이 새로운 씨앗을 뿌릴 때, 그것을 돕는 종묘소 역할을 하고 싶어요. 새로운 윤성빈과 원윤종을 발굴하는 것이 지금의 내 역할입니다. 더욱이 요즈음에는 성빈이보다도 잘 하고, 피지컬도 좋은 선수들이 들어와요.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는 선수가 점점 많아지니, 좋은 효과도 나고 있습니다."

 
 IOC의 올림픽 박물관에 마련된 강광배 교수의 섹션. '썰매의 개척자'라는 표현이 섹션 소개에 마련되어 있다.

IOC의 올림픽 박물관에 마련된 강광배 교수의 섹션. '썰매의 개척자'라는 표현이 섹션 소개에 마련되어 있다. ⓒ 강광배 교수 제공

 
강 교수에게 개인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없었냐고 물었다. 그는 IOC가 운영하는 올림픽 박물관에 '썰매의 개척자'라는 소개로 자신의 섹션이 따로 있는 것을 꼽았다. 강 교수는 "그것만큼 더 좋은 영광이 없고, 그래서 여한이 없어요"라고 말하며, 나중에 죽더라도 '썰매인, 그리고 체육인'으로 기록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썰매에 미쳐 있었던 사람을 믿고 지켜보기가 쉽지 않았다며, 혼자만의 힘으로는 현재의 자리까지 오는 것이 불가능한 일다고 했다. 그는 "그럼에도 같이 동행해 주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가족과 아내에게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이용 감독, 정치 성향은 나랑 정 반대지만..."

썰매계에 또다른 소식은 이용 전 국가대표팀 총감독의 국회 진출이었다. 이용 전 감독은 미래한국당의 비례대표로 21대 총선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그를 썰매 종목에 입문시켰던 강 교수는 이런 소식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강 교수는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먼저 말했다.

"이용 감독이 전에 직업군인으로 복무했는데, 부대에서 전화로 '내가 부상으로 의가사제대를 해야 하는데 선생님이 TV도 나오시고, 올림픽 출전을 하는 모습도 봤습니다. 사회에 나가려고 하니 막막한데, 무엇을 할 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해서, 걱정하지 말고 나오라고 했어요. '내가 너를 못 먹일 수 있겠냐'라면서요.

그래서 용이가 제대하자마자 바로 오스트리아로 데려갔어요. 자비로 훈련을 한 달동안 했고, 2005년에 인스부르크에서 열린 동계 유니버시아드에 다른 두 선수와 함께 출전을 하게 했죠. 그 뒤에 강원도청에 실업팀 선수로도 등록을 하게 했고요. 제가 물러난 감독 자리도 용이가 했고, IBSF 부회장 자리에도 용이가 나서기도 했죠."


강광배 교수와 이용 당선인과는 정치 성향이 정 반대다. 강광배 교수는 2012년과 2017년의 대선 때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의 유세차에 올라가 연설을 하기도 했다. 이용 당선인의 정당과는 다른 길이지만, 스포츠의 발전이라는 목적만은 같다. 강 교수는 "정치 성향이 다른 것이지 당연히 응원해줘야죠"라며 웃었다.

"감독도 하고 이제는 국회의원까지 하는 친구잖아요. 당연히 잘 되었으면 좋겠죠. 교육자로서 제자를 보는 마음으로 지켜보려고 합니다. 훈수도 두지 않을 것이고요, 요구도 당연히 하면 안 되죠. 멀리서 의정활동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려고요. 21대 국회가 열리면 의원실에 난(화분) 정도만 보내주려고 합니다."  

"다음 올림픽 때에는 여자, 장애인 선수들이 메달 따야죠"

평창 올림픽 2년이 지난 뒤에도 선수들이 여러 성과를 냈다. 이번 시즌 스켈레톤 월드컵 3차 대회에는 TOP 10에 3명이 포함되었다. 대회 역시 생방송으로 안방에 중계된다. 여자 선수들도 점점 나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강 교수는 이렇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을까. 그는 "이미 20년 전에 이런 흐름을 예측했다"며 말문을 텄다.

"저는 이미 오스트리아에서 한계에 올라 보았습니다. 연맹이 없을 때 혼자서 썰매를 탔기에, '강광배의 한계'를 개인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느꼈죠. 이 친구들이 메달을 따고 좋은 성적을 낸 것은 국가와 기업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에요. 선수 개개인도 열심히 훈련했지만, 이렇게 많은 지원이 없었으면 이룰 수 없었던 일이죠.

그래서, 선수 개개인이 그런 도움을 준 분들께 지원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임했으면 좋겠어요. 특히 국민들에게는 성적으로 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행히도 그 점을 열심히 해 주어서 큰 성과를 이뤘죠. 그런 점에서 제자들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제자들이 존경받는 선수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강 교수는 이제 여자 선수들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지금도 한체대에 여자 썰매 선수들의 비율이 남자와 같다. 강 교수는 "우리나라는 여성 선수들이 충분히 강하다"며, 누구나 다음, 다다음 올림픽 때 여자 선수들이 메달을 획득해 '스켈레톤, 봅슬레이의 김연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남자 선수들만이 썰매를 하겠다고 다가왔는데, 이제는 여자 선수들도 많아요. 시각적으로는 무섭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인간의 능력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종목들이에요. 순발력이 좋다고 생각하는 여자 선수들이라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어요. 해 보고 재미가 있다고 생각하면 된 거예요."
 
 7일 강광배 한국체육대학교 교수가 한체대의 올림픽 금메달 100개 기념 조형물 앞에서 포즈를 짓고 있다.

7일 강광배 한국체육대학교 교수가 한체대의 올림픽 금메달 100개 기념 조형물 앞에서 포즈를 짓고 있다. ⓒ 박장식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부터는 파라 봅슬레이가 정식 종목으로 도입된다. 1인승 봅슬레이인 파라 봅슬레이는 하반신을 쓰기 어려운 장애인들이 출전한다. 강광배 교수는 "이전에는 장애인 선수를 해외에 보내 훈련할 여력이 없었는데, 여건이 마련된 지금은 파라 봅슬레이 선수들을 선발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청각장애가 있던 김동현 선수를 봅슬레이 국가대표로 발탁한 것도 올림픽 메달을 따면 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서였어요. 그 이야기를 동현이에게도 했고요. 그런 의미에서 이제 장애인을 위해서도, 썰매 선진국으로의 위상을 위해서도 파라 봅슬레이 선수를 육성해야죠. 연맹에서 잘 하리라고 믿습니다."
  
"썰매, 해보고 싶으면 강습회 한 번 와보세요"

강광배 교수는 올림픽 당시에도, 인터뷰 때에도 "누구나 국가대표를 할 수 있다"며 TV를 보는 시청자들에게 썰매 종목을 영업하는 '프로 영업러'가 되곤 했다. 마침 오는 7월 23일부터 24일까지 봅슬레이와 스켈레톤 종목의 국가대표 선발전이 열린다. 강 교수에게 두 종목의 국가대표가 되는 법을 물었다.

"썰매를 하겠다는 선수가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물론 처음 잡았다고 국가대표를 하지는 못하죠. 그렇지만 해설 때도 말했듯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종목입니다. 그런 '예비 선수'들을 돕기 위해서 국가대표 선발전을 열기 전에는 꼭 강습회가 열려서 종목을 알아보는 기회를 갖게 해줘요."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은 매년 국가대표 선발전에 즈음하여 2박 3일의 일정으로 강습회를 열고 있다. 종목에 대한 훈련이 가능하기 때문에, 체험한다는 마음으로 강습회에 참여하면 '썰매 종목이 이런 것이구나'를 한 번에 알 수 있다고 강 교수는 설명했다. 

"강습회는 배운다는 마음보다는 체험하는 마음으로 찾으면 좋아요. 해봤는데 썰매가 맞다 싶으면 그때부터 열심히 매진하면 됩니다. 해설할 때도 누누이 이야기했지만,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종목이에요. 운동을 좋아하고, 썰매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강 교수는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적은 선수로 눈부신 발전을 한 종목은 썰매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불과 몇 년 전 강 교수는 공항 검역에서 '스켈레톤 썰매'를 들고 오다가 영어로 스켈레톤, 즉 해골인 줄 알고 곤욕을 치렀던 적도 있었다. 이제는 국민들이 슬라이딩 종목을 다 구별할 정도가 되었다.

"당장 20여 년 전에 '썰매가 올림픽 메달을 딸 것'이라고 이야기했을 때에는 가족도, 친구들도, 은사님까지도 말려야 된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는 나 혼자 '자랑스럽게 성공해서 오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이제는 '정말 잘 했다, 해냈구나' 하는 이야기를 해주곤 합니다.

당장 1998년 나가노 올림픽 때에는, 선수촌에서의 다른 한국 선수들이 루지를 몰라 자세히 설명해 줘야 했던 시절이 있었어요. 이제는 종목이 모두 알려져서 기분이 좋죠. 그럴수록 선수들이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다른 종목 선수들에 모범이 되었으면 해요. 썰매 종목이 변해야 대한민국 체육이 변한다는 마음으로, 항상 체육계의 트렌드를 이끌었으면 좋겠습니다."

강 교수는 인터뷰 말미 "제자들에게, 썰매 종목에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사랑해 주시는 팬분들에게도 감사하다"면서, 특히 팬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썰매를 사랑해 주시는 분들에게는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비록 역사가 짧지만, 우리 제자들이 잘 해주었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팬분들에게 실망 안겨드리지 않도록 썰매인들 모두가 노력할 테니, 앞으로도 우리 썰매 종목이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더욱 많은 격려와 성원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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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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