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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이정록
ⓒ 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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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가신 해부터 왔어.
손마디 저려서 안 뽑았더니
해마다 똑 같은 얼굴로 와.
- 이정록의 디카시 <꽃양귀비>

 
 
가정의 달 오월이다.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오월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이 잇달아 있다. 며칠 전에 큰 딸이 카톡으로 보낸, 곧 첫돌이 다가오는 외손자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의 모습이 붕어빵처럼 찍혀 있었다. 외손자가 어릴 때 딸아이 모습 그대로여서 외탁을 했구나 하고 생각은 했는데, 그 사진을 보니 나의 모습이 투영돼 있는 것이 핏줄이라는 것이 새삼 신기하게 여겨졌다. 딸 시댁에서도 손자가 외할아버지를 닮았다고 한다 했다.

새삼 오월이 되니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도 많이 난다. 부모 같은 스승이신 문덕수 선생님도 지난 3월에 작고하셔서 정말 이제 고아가 된 기분이다. 부모님은 벌써 세상을 떠나셨지만 매년 스승의 날이 되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축하난을 보내 드렸는데, 이제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됐다.

이정록의 디카시 <꽃양귀비>는 가정의 달 오월에 읽어볼 만한 작품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해에 아마 아버지가 거처하시던 그 집에 꽃양귀비가 피었던가 보다. 시인은 아버지 생각이 나서 뽑지 않고 그대로 두었는데, 해마다 똑 같은 얼굴로 피어났다는 전언이다.

이 정도면 꽃양귀비는 그냥 꽃이 아니다. 자식이 그리워서 같은 얼굴로 찾아오는 아버지의 영혼이라 할 만하다. 유명한 김춘수의 시 <꽃>의 내가 그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시구처럼 아버지를 생각하며 바라보는 꽃양귀비는 그냥 꽃이 아니라 아버지의 꽃이 된다.

양귀비꽃은 아편을 생산할수 있는 꽃과 아편을 생산할수 없는 꽃으로 구분된다고 하는데, 꽃양귀비 또는 개양귀비라는 관상용 양귀비는 아편성분이 없는 꽃이다. 꽃양귀비는 우미인초(虞美人草)라고도 불린다 한다. 항우가 유방과 치열하게 싸울 때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몰려 패색이 짙어지자 항우의 연인 우미인(虞美人)이 자결한 뒤 그 무덤에서 피어난 한송이 붉은 꽃이 바로 개양귀비꽃이라 한다.

아버지 가신 뒤 핀 꽃양귀비 또한 어찌 우연이겠는가. 아직 코로나19로 많이들 위축돼 있다. 그럴수록 서로 의지하고 위안을 얻을 가장 든든한 게 가족 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 가족만큼 든든한 울타리는 없다. 불행하게도 가족도 다양한 이유로 흩어지면서 최근 부쩍 1인가구도 증가 추세이다. 장단점이 없지는 않겠지만 1인 가구의 증가는 썩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가정마저 해체된다면 더 이상 기댈 언덕은 없다.

가정의 달 오월이 시작되는 이즈음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된다.

덧붙이는 글 |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디지털카메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하여 찍은 영상과 함께 문자를 한 덩어리의 시로 표현한 것이다.


태그:#디카시, #꽃양귀비, #가정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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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로서 계간 '디카시'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고 있으며, 베트남 빈롱 소재 구룡대학교 외국인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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