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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시민은 기자다'는 오마이뉴스의 모토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는 오마이뉴스의 모토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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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폐휴지를 가져오라고 한 시절이 있었다. 신문을 폐휴지로 가져오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우리집은 신문을 본 적이 없다. 내게 신문은 지적. 문화적 수준이 높은 지식인의 상징이었다. 

대학교 다닐 때 용돈을 아껴서 신문을 구독했다. 그때는 ㅈ일보가 민족정론지라고 생각해서 그 신문을 보았다. 독자투고를 한 적도 있다. 졸업을 하고 직장 다니기 시작했던 88년, 대선이 끝난 후 진보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ㅎ신문에 많은 지식인들이 힘을 보태던 시기에 나도 ㅎ신문 주주가 되었다. 대구에서 서울까지 상경하여 주주총회에 참석한 적도 있었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방바닥에 신문지를 가득 펴놓고 페이지를 넘겨가며 신문을 읽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읽다보면 한두 시간을 훌쩍 넘기기 예사였다. 한자가 사라진 최초의 한글 전용, 가로읽기 신문은 참신 그 자체였다. 대기업 광고가 거의 없었고, 대신 책 광고가 진짜 많았다. 신문을 열심히 읽는 것만으로도 신간 도서의 내용을 꿸 수 있었다. 

 
시간이 부족해서 주중에 읽지 못한 신문은 날짜별로 차곡차곡 쌓아놓았다가 주말에 숙제하듯 읽기도 했다. 그 시절만 해도 기사 내용 중 관심이 가는 지면을 가위로 잘라서 스크랩하는 게 유행이었다. 특히 내가 투고한 글이 나왔을 때는 당연히 가위를 들었다. 

신문사에서 다시 주주들에게 증자를 요청했을 때도 서슴없이 대열에 합류했다. 큰 액수는 아니지만 기꺼이 돈을 냈다. 벌써 30년이 넘는 세월, 아직까지 주주로서 한 번도 이익 배당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시민의 참여로 만든 최초 신문의 주주란 점이 자랑스럽다. 

ㅎ신문의 구독자였을 때부터 슬슬 외도를 하기 시작했다. 2000년에 태어난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가 그것이었다. 이름부터 얼마나 멋진가? '시민기자' '시민 게릴라들이 쓰는 기사......'

그때만 해도 '시민기자,' '게릴라' 이런 말들이 생소할 때였다. 그래서 더욱 멋있게 보였다. 내가 보기에 '오마이뉴스'에 의해 우리나라 신문의 새 역사가 쓰였다. 

'보람 있는' 기사

 
투고 기사 각종 매체에 투고한 기사들
▲ 투고 기사 각종 매체에 투고한 기사들
ⓒ 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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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꿈이 기자였다. 그런데 사범대학을 졸업해서 교사가 되었다. 오마이뉴스가 내게 기자의 오랜 꿈을 상기시켜 주었다. 초창기만 해도 시민기자가 되는 문턱이 높았다. 두 편 기사를 작성해서 보내야만 했다. 기사 작성하는 법을 배운 적도 없고 전공도 다른 데, 혼자 힘으로 그런 기사 글을 쓴다는 게 쉽지 않아서 도전을 못했다.

그러다가 내가 처음 기사를 보낸 건 오마이뉴스의 특별기획이었던 '가족이야기'를 응모할 때였다. 치매기가 시작되는 어머니에 대한 글이었다. 응모한 글 중, 두 편을 뽑아서 터키에 가족여행 보내주는 기획이었는데, '어떻게 하면 당선이 될까?'를 궁리하느라 빠알간 토끼눈이 되도록 애를 썼다.

결국 터키 여행은 물 건너가 버렸지만, 그 기사는 내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입성하는 등용문을 열어 주었다. 

그 뒤로 나는 미담 기사 위주로 가끔 기사를 썼다. 우리 학교에 근무하는 청소 도우미 할머니와 학교 지킴이 선생님(스쿨 폴리스) 기사를 썼을 때 진짜 뿌듯했다. 청소 도우미 할머니 기사는 다른 잡지사에서 오마이뉴스에 실린 내 글을 보고 연락이 와서, 그 잡지에도 실리게 되었다. 

잡지사에서 할머니에게 꽃다발을 보내오기도 했다. 교무실에서 꽃다발 기증식을 가졌을 때 할머니 얼굴은 꽃다발보다 더 환했다. '미담 기사'의 보람이다. 그 할머니는 도시 변두리의 공장지대에 위치한 낡은 우리 학교를 꽃 천지로 만들어주신 분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3년 전에 시민 기자 명함을 폼나게 가지고 다니고 싶어서 발버둥친 적이 있었다. 내 꿈을 이루는 한편으로 진보에겐 메마른 땅, 대구에서 그 일은 나름 의미 있을 것 같았다. 때마침 '모이'라는 스마트 폰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방식도 등장했다. 외국에서도 인터넷이 되는 곳에서 아주 쉽게 간단한 기사를 올릴 수 있었다. 태국 수안나 공항에 앉아서 쓰기도 했고, 광주 금남로 아스팔트에 앉아서 촛불 시위에 대해 쓰기도 했다. 

그때의 시민기자 명함 지급 기준은 3개월 동안 버금 이상 기사 5편이 선정되는 것이었다. 마지노선인 마지막 1편을 남겨 두고 문턱에 걸렸다. '잉걸'에서 '버금'으로 올라가고자 주변 지인들에게 '하트 마크(좋아요)'를 부탁하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조회수와 추천수가 기사 배치에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쓴 기사를 주변에 공유하고픈 마음이 더 컸지만 말이다.

기사는 누구나 쓸 수 있다

코로나 사태에서 사람들은 말했다. '뉴스를 안 볼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 보면 볼수록 마음이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아니었다. 뉴스를 보면서 불안하고 염려스러울 때도 많았지만, 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더 많았다. 왜? '오마이뉴스'를 주로 보았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에 원래 따뜻한 기사가 다른 신문보다 많은 편이긴 했지만, 이번 코로나 국면에서는 그것이 더욱 돋보였다. 시민 기자들이 각 지역에서 실어 나른 미담 기사는 '오마이뉴스'라는 뉴스 정거장을 통해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기사를 보면서 '어? 나는 지금 뭐하고 있지?'하는 자각이 생겨서 조그마한 행동이라도 하고자 떨쳐 일어섰다. 

해방 직후 신탁 통치 시기에 신탁통치에 대한 정보와 해석을 잘못 기사화해서 찬탁과 반탁의 분열을 부추긴 신문이 있었다. 독재자 시절, 권력에 아부하면서 야금야금 부를 늘려간 신문들도 있다. 지금은 '언론재벌'이라는 말을 왕관인양 쓰고, 사실 확인 안 된 기사를 남발하며 국민들을 좀비처럼 만들기도 한다. 

오마이뉴스는 국민들을 뭉치게 한다.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에서 행주치마에 돌을 날랐던 아녀자들처럼, 광주민주화항쟁 때 주먹밥을 나누었던 시민들처럼 오마이뉴스는 이 사회의 부족한 곳에 십시일반 힘을 보태는 균형자 역할을 한다. 

시민기자를 꿈꾸는 독자들이여! 오마이뉴스의 문은 넓고 언제나 활짝 열려 있다. 시도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성별, 지역별, 연령대별, 직업별 제한이 하나도 없는 블루오션이다. 원고료로 받은 돈을 10만인 클럽에 기부하는 기쁨도 느낄 수 있다.(참고로 10만인 클럽에 들면, 광고 없이 신문을 보는 특혜를 만끽할 수 있다.)

"기사를 아무나 쓰나?" "내가 무슨 기사를 써?" 이런 선입견만 제치면, 누구나 다 쓸 수 있다. 일단 쓰기 시작하면 정말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 세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주도해가는 느낌이 든다. '아! 오마이뉴스 기사는 기존 신문기사 글쓰기와 다르구나' 라는 것을 깨달으며 신문 기사에 대한 고정관념이 사라지고 글의 장르가 해체되는 경험을 한다. 학교에서 배웠던 '신문 기사는 건조체로 써야 한다'는 묵은 공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의 권유로 처음 기사를 써서 '오름' 등급을 마크했던 친구(목젖이 아팠던 순간들... 나는 절대로 쓰러지지 않을 겁니다  20.3.24)가 이렇게 말했다. "아! 내가 기사를 썼다는 게, 그리고 내 글이 오마이 뉴스 메인화면에 나왔다는 게 진짜 안 믿어진다. 신기하다. 살다가 이런 경험도 다 해보네. 하하......"

다만 오마이 뉴스에 꼭 부탁하고 싶은 점이 있다.

"기사 좀 쉽게 올리게 시스템 업그레이드 시켜 주이소. 올리다가 실패한 적, 여러 번이구마. 특히 사진 올릴 때 에러 잘 생깁니다. 바로 올린 사진이 옆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참고로 살짝 팁을 말하자면, 크롬에서 올릴 때 에러 비율이 낮다.) 

제목이 홀라당 바뀌어서 내 기사를 내가 몰라본 적도 제법 있다. 

"편집진의 전문가적 안목을 존중하긴 하지만, 거기에서 더 오버하시면 안 됩니더. 사측과 시민기자 간의 균형점에 대한 감각이 곤충들의 더듬이처럼 살아있어야 합지요."

덧붙이는 글 | 많은 이들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에 용기내어 도전해 보길 희망하면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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