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예술가의 초상(데이비드 호크니, 1972)
 예술가의 초상(데이비드 호크니, 1972)
ⓒ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관련사진보기

 
빨간 재킷을 입은 남자가 물 아래 수영하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물속의 남자는 물 밖 세상과 단절된 채 물속에 잠겨있다. 물에 잠긴 남자가 이제 수영장 가장자리를 잡고 일어서 그와 마주할 것인지, 턴해서 되돌아가 버릴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이제 곧 그 전환점에 서리라는 것을, 빨간 재킷을 입은 남자는 고요하게 그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상상해볼 뿐이다.

내리쬐는 햇빛과 그 빛에 반사되어 일렁이는 물, 단순하게 절제된 배경, 음 소거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고요한 침묵이 흐른다. 너무나도 유명한 이 그림은 데이비드 호크니가 그린 '예술가의 초상(두 인물이 있는 수영장)'이다.

2018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한화 1018억에 팔려 살아 있는 작가 중에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 물론 곧이어 제프 쿤스의 '토끼'가 1082억에 팔리면서 가격을 갱신했지만, 제프 쿤스의 작품은 조각이니, 회화 부문에서는 호크니가 아직은 최고가인 셈이다. 그의 이 그림은 무엇이 그렇게 특별하고,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그의 발자국을 따라가 보자.

호크니는 1937년, 영국 요크셔의 브레드퍼드라는 작은 마을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뛰어난 그림 실력으로 그는 런던 왕립 미술학교 재학시절부터 이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 1957년부터 2년 동안 브레드퍼드와 헤이스팅스 병원에서 대체복무를 했다(영국은 1960년 징병제를 폐지했다).

1961년 존 무어스 리버풀 전시에서 회화상 수상, 런던에서 개최된 <새겨진 이미지> 전에서는 에칭 동판화 부문 상을 받았다. 26살에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1967년 존 무어스 전시에서는 대상을 수상했다. 무명기간 없이 바로 핫 아이콘이 된 셈이다.

동성애자인 호크니는 1960년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하기 시작하는데, 이를 계기로 그의 그림에서 우울함은 사라지고 활력이 생겼으며,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던 성격도 대담하고 사교적인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 하지만 이 시기에 영국에서 동성애는 불법이었다. 답답함을 느낀 호크니는 미국으로 넘어간다.

뉴욕을 거쳐 LA에 도착한 호크니는 "로스앤젤레스는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찾을 수 있는 도시"라고 생각했다. 그는 동성애를 주제로 쓴 존 레치의 소설 <밤의 도시>를 읽고 매혹되었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라는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틀을 완전히 깨트리고 세상 속으로 날아올랐다.

화창한 날씨와 뜨거운 햇살,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 동성애에 관대한 로스앤젤레스의 매력에 푹 빠져 이런 모습들을 다양하게 캔버스에 담았다. 당시 주류를 이룬 그림들은 물감을 두껍게 바른 추상화인데, 호크니는 반대로 구상화에 아크릴 물감을 이용해 얇게 바르는 것을 택한다.

아크릴 물감은 빨리 마르고 덧칠할수록 청량감을 잃는다. 따라서 되도록 수정 없이 정확히 그려야 하기 때문에 모든 게 명확히 계산된 후에 붓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카메라를 이용해 눈으로 볼 수 없는 순간 포착한 장면들을 그림에 넣기 시작했다.
  
 더 큰 첨벙(데이비드 호크니, 1967, 테이트 미술관)
 더 큰 첨벙(데이비드 호크니, 1967, 테이트 미술관)
ⓒ 테이트 미술관

관련사진보기

  
수영장이 딸린 로스앤젤레스 주택으로 파스텔 색조의 단정한 집, 곧추서 있는 가느다란 야자수는 바람 한 점 없음을 보여주고, 주택 유리에 비친 다른 건물의 그림자와 그 앞에 빈 의자가 왠지 모를 쓸쓸함을 느끼게 한다. 물이 크게 튀지만 그림은 외려 고요하다. 작년 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전시한 데이비드 호크니 전에도 왔던 '더 큰 첨벙'이라는 작품이다.

호크니는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보는 방식'에 대해 늘 고민했다. 이 그림에서는 물이 튀는 찰나의 순간을 보고 그것을 카메라로 포착한 후에 그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그러니까 오로지 물이 튀는 그 순간, 그 장면이 이 그림의 포인트다. 1~2초도 안 되는 물이 튀는 순간을 캔버스에 담기 위해 그는 꼬박 2주를 매달렸다. 건물과 수영장을 그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겨우 며칠이었다. 그런데 그 많은 소재 중에 왜 물이었을까?

호크니는 "물을 표현하는 방법은 사실 그 어느것도 될 수 있다. 어떤 색도 될 수 있고, 시각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그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말했다. 물은 구상화를 그리는 호크니에게 추상적인 장면을 가능하게 했다. 그리하여 많은 수영장 시리즈가 탄생한다.

수영장 시리즈에 이어 호크니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그림 중에는 2인 초상화 시리즈가 있다. 그가 그린 초상화는 단순히 두 인물의 모습을 그리는데 국한되지 않고 그림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에 주목한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이 주로 그가 잘 알고 지내는 주변 인물을 그렸기 때문이다.
  
 나의 부모님(데이비드 호크니, 1977, 테이트 미술관)
 나의 부모님(데이비드 호크니, 1977, 테이트 미술관)
ⓒ 테이트 미술관

관련사진보기

  
이 그림은 그의 부모님을 그린 '나의 부모님'이다.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1년 전에 그린 작품이다. 화사한 배경 앞에 두 인물의 모습이 자연스럽다. 늘 호크니에게 다정하게 귀를 기울였던 엄마는 호크니를 향해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정면으로 앉아 있다. 반면,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은 아버지는 그새를 참지 못하고 <미술과 사진> 책을 들고 독서 삼매경이다. 이렇듯 그는 부모님의 모습을 통해 자신과의 관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그림에서 특히 눈에 띄는 건, 호크니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다시 읽었다고 했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집과 18세기 풍속화와 정물화의 거장인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의 화집이 서랍장 아래 선반에 놓여 있는 장면이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봤을 때 깜짝 놀랐다. 그림 속에서 내가 가장 숭배하는 화가인 샤르댕의 화집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호크니도 샤르댕을 숭배하고 있었다니!(샤르댕이 사물을 보는 관점으로 보고 싶다는 이야기는 호크니 전기에도 등장한다)
  
 피터와 호크니
 피터와 호크니
ⓒ 위키피디아

관련사진보기

  
1966년, 그는 피터 슐레진저를 만나 연인이 되었다. 피터와 살며 피터를 모델로 다양한 그림을 그렸는데, 안타깝게도 1971년 9월 그와 이별한다. 피터와의 이별은 호크니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1971년, 피터가 떠났을 때 내 삶에서 유일하게 불행을 경험하는 시기였습니다. 그 시기를 지나며 내가 그동안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그 뒤 몇 년 동안은 피터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피터는 만나고 싶어 했지만, 나는 "제발 내 삶에서 사라져 줘. 그것이 더 좋아."라고 말했습니다. (중략) 시시때때로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 호크니 전기 인용.

그와 이별한 직후 그린 작품이 '예술가의 초상(두 인물이 있는 수영장)'이다. 수영장 가장자리에 서 있는 피터의 모습은 켄싱턴 가든스에서 호크니가 직접 찍은 피터의 사진을 보고 그렸다. 그의 서사에 맞춰 그림을 읽어 본다면 물속의 남자는 피터와 단절된 채 허우적거리는 호크니일 것이고, 그를 바라보는 남자는 그의 증언대로 피터다.

박서영의 시 '숲속의 집'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가장 먼 곳으로 가보아야 심장이 산산조각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호크니는 산산조각나는 그의 마음을 이렇게 그려낸 것이다. 이 그림이 밝은 색채에도 그토록 쓸쓸하게 보이는 까닭이 여기 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널리 알려진 '수영장'과 '2인 초상화', 그리고 그의 가슴 아픈 서사가 합쳐져 이 그림이 특별해졌고, 이것이 그의 많은 작품 중 그토록 비싼 그림이 된 이유다.

호크니는 지금도 열정적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이용해 그린 그림을 공개해 코로나로 지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혼자 하는 놀 거리가 절실한 시기다. 이럴 때 떠나는 그림 여행이 지루한 일상에 잠시라도 청량함을 주길 바란다.

참고서적- 데이비드 호크니 (시공아트, 마르코 리빙스턴 지음, 주은정 옮김)
데이비드 호크니(서울시립미술관 전시 도록)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