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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당신 어머니를 알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선뜻 어떤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안토니오 알타리바는 아버지 생애를 쓴 책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돌연 이런 질문을 받는다.

"당신의 어머니는 어떤 삶을 사셨나요?"라는 돌발 질문에 그는 망연자실하며 깨닫는다. 어머니를 설명할 언어가 부재하다는 것을. 저자의 자각은, 왜 어떤(남성) 생애는 기록되고 어떤(여성) 생애는 기록되지 않는 걸까에 이른다. 비로소 어머니의 삶을 기억해내고 이를 복원해 책을 썼다. 그래픽 노블 <부러진 날개>는 이렇게 나오게 되었다.
 
"아버지의 전기를 쓸 수 있다고 말했던 아들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유전적으로 연결된 어머니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거의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 질문을 받고 난 다음에야 깨닫는다. 평생 날아오르고 싶었던 아버지의 자유로운 영혼을 찬미하던 아들은 어머니의 날개는 처음부터 부러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평생 먹이고 입히고 돌봤던 그 누구도 그녀가 왼팔을 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몰랐음을 알았다. 어머니가 어떤 세상을 살았던가에 대해 완벽히 무지했음에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 별문제가 없었다면, 이는 무엇인가 크게 뒤틀려 있는 것이 분명하다. 작가는 이 놀라운 무지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선다."
 
저자의 어머니 페트라는 생모의 목숨에 빚진 채 태어난다. 자신을 낳으면서 생모가 세상을 등졌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에미 죽인 딸년'이라는 저주를 퍼부으며 갓난 딸의 팔을 부러뜨린다. 참혹하다. 아버지의 폭력으로 페트라는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게 된다. 자신의 장애를 엄마의 목숨을 희생시킨 기본값으로 설정한 삶이었으니, 한순간도 자신의 삶을 우위에 둘 수 없는 인생이었다. 피해자이지만 가해자로 설정한 가부장의 권력은 한쪽 팔을 못 쓰면서도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살도록 했다.
 
페트라가 말하지 못한 것은 장애만이 아니었다. 그는 소녀 시절 마을 남자에게 강간당한다. 이 폭력은 아버지의 폭력이 빚은 왼쪽 팔의 장애보다 더 깊은 상흔을 남긴다. 이로 인해 분열 없이 남자를 받아들이기 어렵게 되자, 섹스 없는 결혼 생활에 이르게 되고, 남편의 빈번한 외도를 알고도 불평하지 못한 채 홀로 눈물을 삼킨다. 성폭력의 피해자이지만 그 피해를 발설할 수 없는 침묵 당한 삶이었다.

역사에서 잊혀진 여성들 
  
 한국·중국·필리핀 위안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어폴로지'
 한국·중국·필리핀 위안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어폴로지"
ⓒ 에이케이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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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어폴로지>에는 세 명의 피해 여성이 등장한다. 중국인 차오, 필리핀 아델라 그리고 한국의 길원옥. 아델라는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성 노예로 살았던 피해를 아들에게 밝히고 싶다. 도저히 말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설명하기 힘든 추동으로 노심초사한다. 먼저 작고한 남편에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없어 평생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던 아델라, 그가 아들에게 끝끝내 커밍아웃하게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마침내 아들에게 커밍아웃한 아델라의 얼굴은 평온하지만도, 후회 가득하지도 않았다. 그저 미션을 결행한 비장함이랄까.
 
그의 고백을 들은 아들은 이렇게 말한다. "가끔 창밖을 내다보는 어머니의 얼굴이 참 슬퍼 보였는데,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겠어요." 그는 한 번이라도 어머니의 슬픈 표정에 대해 먼저 물어본 적이 있을까? 가부장적인 남성에게 어머니는 종종 그 존재를 물을 필요가 없는 정물(靜物)이 된다.
  
"아버지는 자신의 생애를 이백 쪽의 글로 남겼지만, 어머니는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라면 언급조차 삼갔다. 이 명백한 대비 속에서 독자들은 역사에 기록될 수 있는 삶, 국가와 가족 안에서 물려지는 위치와 상호 간의 유대 자체가 남성적 특권의 영역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 권김현영 여성학자

역사에 누가 기록되었는가는 매우 첨예한 정치적 사안이다. 기록되는 자도, 기록하는 자도 모두 남성이라는 사실은 역사의 공적 영역이 철저히 남성에 의해 전유 되었음을 시사한다. 이 장에서 완벽히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여성은 종종 타자화 악마화되어 역사 속에 박제되곤 했다. 한국의 역사를 들여다봐도 다르지 않다. 의도적으로 몇 줄로만 남겨진 여성의 기록은 종종 권선징악의 증거로만 화석화되어 있지 않은가.
 
한국 근대의 역사 또한 다르지 않다. 수많은 여성 애국지사와 열사들이 실재했지만 역사는 남성들의 역사만 기록했다. 최근 들어 사라졌던 여성 지사와 열사들을 발굴하는 움직임 또한 매우 고무적인 일임이 틀림없지만, 그만큼 철저히 여성들의 역사가 지워졌다는 자명한 증거이기도 하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 산업화의 역사 또한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의 노고에 기대고 있으나 이들에 대한 기록은 파편화되고 타자화되어 있다.

이임하 작가는 <해방공간, 일상을 바꾼 여성들의 역사>에서, 해방 이후 여성들의 삶을 일상에서 작업장, 공적 장에 이르기까지 가려진 여성들의 역사를 발굴해 소개하면서 여성들의 삶을 정말 '굉장하다'고 기렸다.
  
더 오래, 더 잘 날자
 
 책 부러진 날개
 책 부러진 날개
ⓒ 길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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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부러진 날개>로 돌아와 어머니 페트라를 좀 더 들여다보겠다. 그의 삶은 분명 피해로 점철되었지만, 그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는 피해자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오히려 놀라우리만치 굳건하게 삶을 일궈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사람의 예민한 생존 감각은 위기 때마다 경고의 더듬이를 발현시켜 적절히 대응하게 했고, 달콤하달 수는 없는 결혼 생활이었지만 아들을 당당히 키워냈다.
 
물론 이 당당함은 일면 포장된 피해 의식의 반영이기도 해 아들이 어머니를 비장애인으로 오인하게 했지만, 무수히 들이닥치는 삶의 파고를 피하지 않고 직면해 온 사람만의 근성이기도 했다. 아무도 자신의 인생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깨달음은 오직 스스로만을 믿게 했을 것이다. 자신의 장애를 호소해봐야 누구도 응답 없는 냉혹한 현실은 차라리 철저한 비장애인으로 위장하게 했을 것이다. "어머니, 팔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예요?"라는 아들의 물음에 "늘 그랬어"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대답에서 아들은 회한의 한숨을 내쉬겠지만 말이다.
 
지금까지의 삶이 그랬듯 기실 아들이, 남편이 페트라의 장애를 안다고 해서 뭐가 달라졌겠는가. 아나키스트 타이틀을 지닌 남편은 혁명의 위업을 떠받드느라 가정에 무심해도 되는 면허를 취했을 테고, 밤낮으로 자신의 성공을 위해 달리는 아들 역시 엄마의 노동에 철저히 기대어도 관용되는 자격증을 부여받은 셈이니 말이다. 장애를 배려받지 못한 페트라는 가사와 직장을 아우르는 슈퍼 워킹맘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슈퍼 워킹맘의 유래는 장애와 인종과 계급을 교차시키며 이리도 유구하다.
 
나이가 들고 건강이 안 좋아지자, 페트라는 자신만의 식단을 고집한다. 난생처음 남편 중심의 삶에 반기를 든 셈이다. 겨우 죽을 때가 되어서야 자신이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수 있었다. 남편과 헤어져 홀로 요양원에 가게 된 페트라는 평생 가족 돌봄에서 놓여나 오히려 홀가분하지만, 그곳에서의 삶도 녹록지는 않다. 부실한 복지는 죽는 날까지 몸을 움직여야만 그나마 남은 삶을 보장했다. 저자는 죽을 때가 되어서야 밝혀진 그녀의 장애를 '부러진 날개'라고 했지만, 실상 비장애 여성이어도 그 날개를 퍼덕이며 날기는 어려운 시절이었다.
 
아버지의 삶이 혁명가 아나키스트의 삶으로 규명된다면, 어머니의 삶은 단지 '부러진 날개'의 삶으로 규정되는 것일까? '부러진 날개'는 페트라만의 것이 아니었을 터, 얼마나 많은 여인이 자신의 날개 죽지를 접고 고요히 살아내야만 했을까? 비상하려는 본능마저 잠재운 무서운 시절을 그들은 어떻게 견뎌냈을까? '부러진 날개'로 새장에 갇혔던 여성들은 하늘을 날며 세상을 조감할 능력을 영영 빼앗겼던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무수히 많은 여성의 날개를 부러뜨렸지만, 날아오르는 기억마저 빼앗지는 못했다. 이미 앞선 여성들의 비상이 이를 증명했고, 오늘의 여성들은 나는 것만이 아니라 얼마나 잘 날 수 있을까를 실험하고 있지 않은가. 높이만 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여성도 보다 전략적인 비행 대오를 갖추고, 더 안전한 비행 루트를 개발해 비행 거리를 더 정교히 계산하자.

그래서 더 오래, 더 잘 날자. 이런 수많은 시도가 기록되고 말이 돼 여성의 역사가 되게 하자. '부러진 날개 따위는 없다. 더욱더 더 날아오르자. 비상(飛上)은 더는 남성의 전유어가 아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 게시


해방공간, 일상을 바꾼 여성들의 역사 - 제도와 규정, 억압에 균열을 낸 여성들의 반란

이임하 지음, 철수와영희(2015)


부러진 날개

안토니오 알타리바 (지은이), 킴 (그림), 송민주 (옮긴이), 길찾기(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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