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창원 팔용산 정상에는 성주 이씨 고암 사람의 무덤이 있다. 운구 비용 2만 냥을 들여 이곳 명당에 안장하게 되었다는 사연이 쓰여 있다.
  창원 팔용산 정상에는 성주 이씨 고암 사람의 무덤이 있다. 운구 비용 2만 냥을 들여 이곳 명당에 안장하게 되었다는 사연이 쓰여 있다.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화려한 유혹, 봄날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봄도 한껏 느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창원 팔용산(328m) 산행을 혼자 떠나게 되었다. 우리 동네서 버스로 20분 남짓 가서 대림하이빌아파트(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2길) 방향으로 조금 걸어가면 팔용산 산행 들머리가 나오기 때문에 이 부근을 오갈 때마다 생각나는 산이다.

지난 21일, 오전 9시 50분께 팔용산 돌탑입구 공원에 도착해 들뜬 기분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400m 정도 걸어가자 신비한 자태를 드러내는 돌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팔용산 도사로 불리는 이삼용씨가 1993년 3월부터 시작하여 돌 하나하나에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서 쌓은 통일기원탑들이다.
 
    탑골 돌탑길을 걸으며. 팔용산 도사로 불리는 이삼용씨가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1993년 3월부터 쌓은 통일기원탑들이다.
  탑골 돌탑길을 걸으며. 팔용산 도사로 불리는 이삼용씨가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1993년 3월부터 쌓은 통일기원탑들이다.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운 좋게도 15년 전 돌탑 주변 낙엽들을 치우고 있던 그와 우연히 마주쳤었다. 밤새 축지법을 써서 돌을 나르고 신출귀몰한 솜씨로 돌탑을 척척 쌓는, 전설 속에 등장하는 도인이 아니라 그는 당시 보건소에 근무하고 있었다. 일상의 틀에 매여 생활해야 하는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오랜 세월 한결같은 마음으로 돌탑과 함께해 온 그가 그때도 참 존경스러웠다.

먼등골이라 부르기도 하는 탑골 돌탑길을 지나 조금 올라가자 울퉁불퉁한 바윗길이 나왔다. 하늘에서 여덟 마리의 용이 이 산에 내려앉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팔용산이다. 낮은 산인데도 올록볼록 튀어나온 바윗길을 쉬이 만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이 전설과 무관하지 않는 느낌이 든다.

간간이 발길을 멈추고 조망을 즐겼다. 산길에서 만나는 보라색 제비꽃, 화사한 산철쭉꽃도 마음을 환하게 해 주었지만, 눈길 가는 데마다 초록이 싱그럽고 이뻤다. 짙고 옅은 초록이 함께 어우러진 산의 풍경은 눈부셨다. 아마 초록은 원초적 색깔이 아닐까 싶다. 문득 선머슴처럼 덜렁거리다 대학생이 되어 옷을 하나씩 사 입다 보니 이상하게도 초록색 일색이었던 지난 일이 문득 생각났다.
 
    팔용산 정상서 내려와 봉암수원지 둘레길로 가는 길에.
  팔용산 정상서 내려와 봉암수원지 둘레길로 가는 길에.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10시 40분께 정상에 이르렀다. 지금은 그러려니 하지만 팔용산 산행을 처음 했을 때만 해도 정상에 오르자마자 눈앞에 턱 버티고 있는 무덤에 화들짝 놀랐었다. 성주 이씨 고암 문중에서 적어 놓은 글에 의하면, 이 묘의 주인은 고려 후기에 정당문학과 예문관대제학을 지낸 이조년(李兆年)의 후손이다. 숙종 때 창원시 북면 고암에서 태어났고, 운구 비용 2만 냥을 들여 이곳 명당에 안장하게 되었다는 재미있는 사연이 쓰여 있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로 시작되는 이조년의 시조를 가만히 떠올려 보았다. 밝은 달빛이 하얀 배꽃을 비추고 두견새가 슬피 우는 깊은 봄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옛사람의 모습이 그림처럼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바람 불던 봉암수원지 둘레길서 추억에 젖다
 
    고요가 흐르는 호숫가나 고운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강변 같은 봉암수원지 둘레길에서.
  고요가 흐르는 호숫가나 고운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강변 같은 봉암수원지 둘레길에서.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정상에서 봉암수원지까지 거리는 0.75km이다. 경사가 있는데다 거친 바윗길 구간이 많아 조심스레 내려갔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에 건립된 봉암수원지(등록문화재 제199호)는 그 당시 마산에 거주하던 일본인과 일제 부역자들한테 물을 공급하기 위해 지어졌다. 1970년대 급격한 인구 증가에 따른 절대 용량 부족으로 1984년 12월에 폐쇄되었다가 2009년에 아름다운 둘레길이 조성되었다.

봉암수원지 둘레길은 마음이 외로워서 찾고, 그저 걷고 싶어서 찾는 길이기도 하다. 마치 고요가 흐르는 호숫가나 고운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강변을 걷는 기분이다. 혼자 걸어도 삶의 위로를 받고, 친구와 소곤소곤 이야기하고 걸으면 괜스레 삶이 유쾌해지는 것 같은 길이다.
 
    봉암수원지 둘레길에서. 마음이 외로워서 찾고, 그저 걷고 싶어서 찾는 길이기도 하다.
  봉암수원지 둘레길에서. 마음이 외로워서 찾고, 그저 걷고 싶어서 찾는 길이기도 하다.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봉암수원지 둘레길을 내려다보며.
  봉암수원지 둘레길을 내려다보며.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코로나19는 당연하게 누리던 우리의 일상을 바꾸어 놓았다. 친구와 웃음꽃을 피우며 한가한 산책을 즐기던 시간들이 그리운 요즘이다. 강인 듯, 호수인 듯 잔잔한 물 위로 바람이 후다닥 지나갈 때면 수원지 쪽으로 축 늘어져 있는 나뭇잎들이 춤추듯 흔들거렸다. 낭만적이면서 힐링의 시간을 갖게 해 주던 봉암수원지 둘레길. 이날 꽤나 요란스레 불어 대던 바람 탓인지, 코로나19 탓인지 내 마음마저 흔들흔들했다.

수원지를 중심으로 길이가 1.5km 되는 둘레길을 한 바퀴 돌았다. 나는 팔용산 정상으로 다시 올라가서 탑골로 하산했다. 초록이 너무도 예쁜 봄이다. 우리들 하루하루에도 따사로운 봄이 어서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태그:#팔용산돌탑, #봉암수원지둘레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