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이는 희귀질환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리고 우리는 행복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것이 아니다. 아이는 아프고 우리는 행복하다.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아이가 갑자기 숨을 잘 못 쉬어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몇 시간 검사 끝에 처음 대면한 의사 선생님은 "아이가 기형으로 태어났습니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한 말이지만 남편은 그때 내가 통곡할 줄 알았다고 했다. 아니다. 빨리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울 시간이 없다.

"아이가 기형으로 태어났습니다"
 
ⓒ 홍정희

관련사진보기


갈비뼈가 여러 개씩 붙은 채 구불구불 휘어 있었다. 의사들은 모두 처음 보는 경우라고 했다. 척추도 휘어 있었다.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중환자실에서 호흡만 정상적으로 가능하도록 조치한 뒤, 예약해둔 서울대병원으로 갔다. 그 사이 우리는 아이 눈이 이상하다는 점도 발견했다. 안 보이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서울대병원에서도 병을 찾는데 3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전 세계 5명밖에 보고된 사례가 없는 희귀질환. 우리 아이가 우리나라 1명이 된 셈이다. 눈은 보인다고 했다. 단지 눈동자가 정면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됐다. 다행이다. 옆을 보려면 고개를 돌리면 된다. 정확히는 한쪽 눈은 고정이고 다른 한쪽 눈은 미세하게 안쪽, 위쪽, 아래쪽으로 움직인다.

이 질병이 바깥쪽으로 움직이는 근육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가끔 두 눈동자가 초점이 서로 맞지 않아 사시처럼 보인다. 괜찮다. 보이는 걸로 됐다. 이마저도 돌이 지나니 증상이 자주 나타나지도 않는다. 스스로 초점을 맞추어 나가는가 싶다.

그 사이 아이는 잘 자라서 20개월. 지금은 서울대병원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지만 특별한 치료를 하는 건 아니다. 이 질환을 가지고 어떻게 자라나 점검하는 정도이다.

갈비뼈는 붙은 채로 자라주기만 하면 괜찮을 거라 했다. 갈비뼈가 심장을 누르고 있지만 심장 기능도 정상적으로 회복했다. 척추는 휘는 게 진행 중이라 예의주시하고 있다. 얼마 전 검사에선 휘는 속도가 더뎌 지금 상태라면 치료 없이 살아도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 감사합니다. 백 번 말한다.
 
ⓒ 홍정희

관련사진보기

 
우리는 빠르게 일상을 회복해 나갔다. 아픈 채로 살아갈 궁리를 했다. 아이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 남편은 나중에 아이랑 수영을 해야겠다고 했다. 갈비뼈가 붙어 숨쉬기 어려우니 심폐기능을 높여줘야겠다는 것이다. 치료법이라도 발견한 듯 나는 동조했다.

아픈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니

환자실에서 일주일을 보낸 뒤 드디어 아이를 품에 안고 같이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족했다. 새벽녘 깬 아이를 안고 어스름 푸른 창가에 서서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나지막이 노래 부르며 조금 울 뿐이었다. 이 평온한 일상이 감사해서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아이가 숨 쉬며 내 눈앞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아픈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엔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치면 매일 울게 되는 줄 알았다. 아프면 불행할 줄 알았다. 남편과 나는 자주 이야기한다. 아이가 아프지 않았어도 지금과 똑같이 살았겠다고. 아이가 아프든, 아프지 않든 우리는 최선을 다해 아이를 사랑하며 키울 것이라고.

아파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없는 걸 욕심내지 않는다. 있는 것으로 감사함을 느낀다. 눈동자가 돌아가지 않으면 어떠랴, 엄마, 아빠랑 산책 나가 반짝이는 바다를 볼 수 있고, 매일 뛰어노는 작은 초등학교 운동장에 푸릇푸릇 솟아나는 초록 잔디를 주저앉아 만질 수 있다.

척추가 갑자기 막 휘면 어떡하지? 고민하지도 않는다. 그건 그렇게 됐을 때 생각하기로 한다. 그냥 오늘을 살면 된다. 지금 아이와 남편은 좁은 거실 끝에서 끝으로 잡기 놀이를 하고 있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 홍정희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이 말은 어쩌면 오만일 수도 있다. 아이가 이 정도라, 이렇게 일상을 살 수 있는 정도라 가능한 말. 더 아프고 매일 울 수밖에 없는 사람 앞에서 이 말은 오만일 수 있겠다.

그러니 내가 느끼는 이것은 순전히 내 상황에서 그러한 것이리라. 그저 감사할 수밖에. 조금 덜 아픈 순간이 찾아오면 그들도 잠시 웃게 해 주시기를 그저 기도할 뿐이다. 진실로 진실로 기도할 뿐이다.


태그:#모이
댓글9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5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랑과 그리움을 얘기하는 국어 교사로, 그림책 읽어주는 엄마로, 자연 가까이 살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