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사태로 오랫동안 연기됐던 2020시즌 프로야구가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개막일을 잡고 다시 시동을 걸게 됐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최근 이사회를 통해 5월 5일 어린이날 '무관중 경기'로 프로야구를 개막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토록 기다려온 프로야구 시즌이 돌아왔음에도 일각에서는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KBO가 예년보다 늦은 개막에도 팀당 144경기 체제를 고수하기로 결정한 것을 두고 반응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

KBO가 144경기 체제를 고수하는 건 역시 중계권이나 스폰서 계약과 관련된 수익 문제 때문이다. KBO은 지상파 방송3사와 TV 중계권을 놓고 지난 2월 연간 540억 원, 4년 총액 2160억 원에 이르는 초대형 계약을 맺은 바 있다. 신한은행과도 2018년부터 유지해 온 타이틀 스폰서 후원 계약을 1년 연장했다. 올시즌 대회 공식 명칭도 '2020 신한은행 쏠(SOL) KBO 리그'다.

이 모든 계약은 KBO리그가 144경기 체제를 정상적으로 진행한다는 조건 하에서 맺어진 것이다. 경기 수가 줄어들면 계약조건 수정이나 그에 따른 배상이 불가피하다. KBO나 구단 모두 경기 수가 줄어들 때마다 몇억 이상의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KBO는 일단 144경기를 소화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올해로 예정되었던 도쿄올림픽이 내년으로 연기되면서 올림픽으로 인해 프로야구 일정이 중단되는 '여름 휴식기'가 사라졌고, 올스타전도 올해는 취소돼 늦어진 개막일정을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2020 KBO리그 연습경기 두산 대 LG 경기가 열린 21일 잠실야구장. 올 시즌 한국 프로야구 정규시즌은 다음 달 5일 어린이날 '무관중' 경기로 개막한다.

2020 KBO리그 연습경기 두산 대 LG 경기가 열린 21일 잠실야구장. 올 시즌 한국 프로야구 정규시즌은 다음 달 5일 어린이날 '무관중' 경기로 개막한다. ⓒ 연합뉴스

 
우천 순연 변수, 선수들 체력부담도 영향

그러나 야외스포츠인 야구에는 우천 순연이라는 변수가 있다. 같은 야외 종목이지만 비가 와도 어지간하면 경기 강행이 가능한 축구와도 다르게, 우천에 취약한 야구는 여름에 장마철이나 태풍 등의 변수로 인하여 경기가 연달아 순연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가뜩이나 개막일이 밀리면서 올시즌에는 휴식일도 없이 연전을 치러야하는 경우가 잦을텐데, 우천 순연으로 밀린 경기까지 한꺼번에 소화하다보면 팀에 따라 10경기 이상을 연속으로 치러야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선수들의 체력부담과 경기의 질적 저하다. 코로나 사태로 시즌 개막이 장기간 연기되며 스프링캠프부터 다져온 훈련효과와 경기감각이 사실상 사라진 상황이다. 여기에 한달 이상 늦게 시즌이 개막되었음에도 예년보다 타이트한 일정 속에 똑같은 144경기 체제를 강행하다 보면 선수들이 느낄 체력부담은 가중된다.

자칫 부상자가 속출하거나 기대에 못미치는 경기력을 보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점수차가 벌어지면 구단들이 다음 경기일정을 의식하여 승부를 쉽게 포기하는 경기가 속출할 수도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프로야구 개막을 기다려온 팬들의 실망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올 시즌에 한정하여 엔트리를 대폭 확대하는 것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이 역시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선수층이 넓지 않은 한국의 상황에서 성적부담에 민감한 구단들은 결국 엔트리를 확대해도 주전 선수에 대한 의존도를 벗어날 수 없다. 

특히 국가대표급 선수들은 올 시즌만의 문제도 아니다. 도쿄올림픽 일정이 내년으로 연기되면서 2021년에는 올림픽과 WBC라는 메이저급 국제대회만 2개가 한꺼번에 열린다. 올시즌 일정을 소화한다고 해도 선수들은 짧은 휴식기를 거쳐 다시 프로야구 2021시즌 준비와 비시즌 국제대회 연속 출전이라는 강행군을 이어가야 한다. 내년이나 그 이듬해까지 고려한 장기적인 고민없이 당장 '올시즌 정해진 144경기를 소화하면 그만'이라는 발상은 그래서 위험하다.

사실 올 시즌처럼 코로나 19 사태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한국야구 시장규모에서 144경기를 한다는 것은 과하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KBO는 시즌 개막 후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경기 수를 조절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기긴 했다.

하지만 리그 일정과 경기 수를 미리 확정짓고 시즌에 돌입하는 것과, 개막을 한 이후에 뒤늦게 경기 수를 조절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경기 수에 따라 각팀이 구상한 시즌 운용 전략이나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에 혼선이 올 수밖에 없다.

이러한 주장은 단지 일부 야구팬들이나 소수의 목소리가 아니다. 무엇보다 바로 현장 일선에 뛰고 있는 프로야구 감독들조차도 144경기 강행의 부작용에 대하여 연이어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류중일 LG 트윈스 감독이나 염경엽 SK 와이번스 감독은 "KBO가 방송사 중계문제와 구단 마케팅 효과 때문에 144경기 강행 결정을 내린 배경 자체는 이해한다"면서 "선수들에게 매우 힘든 상황이 되었다. 현재로서는 144경기는 무리"라는 소신 발언을 했다. 

KBO은 현장과 팬들의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금 시점에서 144경기 체제 강행은, 결코 프로야구 발전이나 선수-팬들을 위한 최선이 아니다.

프로야구는 한국을 대표하는 프로스포츠로서 높은 인기와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당장의 수익성보다 국민스포츠로서의 인기에 걸맞은 수준높은 컨텐츠 제공과 사회적 책임감을 충족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프로야구144경기 프로야구중계권계약 5월5일개막 무관중경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