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학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 감독과 이상민 서울 삼성 감독이 나란히 재계약에 성공했다. 모비스 구단은 21일 유재학 감독과 2023년 5월 31일까지 계약을 3년 연장했음을 공식 발표했다. 같은 날 삼성 구단도 이상민 감독과 2년간 재계약을 맺었다.

두 감독은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장수 사령탑들이다. 유재학 감독은 1998년 인천 대우 제우스(현 인천 전자랜드)에서 당시 35세의 프로농구 '최연소 사령탑'으로 취임한 이래 무려 22년째 감독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이제는 57세의 프로농구 최고령 사령탑(전창진 전주 KCC 감독과 동갑)의 반열에 올랐다. 코치 시절까지 포함하면 1997년 프로 출범 원년 이래 단 한 번도 사퇴나 경질 등의 공백기 없이 매년 꼬박꼬박 프로농구 현장을 지켜온 유일무이한 '개근 멤버'이기도 하다.

특히 유 감독은 2004년 모비스에 첫 부임한 이래 16시즌 동안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무려 6차례씩 일궈냈다. 감독상 수상 5회, KBL 최초 3시즌 연속 챔피언전 우승, KBL 감독 최초 통산 600승 달성 등 화려한 기록을 남겼다. 유 감독은 이번 계약을 마칠 경우,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프로농구 감독 한 팀 최다 재임 기간'을 19시즌까지 늘릴 수 있게 됐다.

이상민 감독도 2014년 삼성 사령탑으로 첫 부임한 이래 두 번째 재계약에 성공했다. 이상민 감독은 2007년 FA 보상 선수로 전주 KCC에서 이적하며 삼성과 첫 인연을 맺었고, 2010년 삼성에서 현역 은퇴 이후 코치를 거쳐 감독의 자리까지 오르며 이제는 완전한 '삼성맨'으로 자리 잡았다. 2016-2017시즌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을 일궈내기도 했다.

이상민 감독이 2022년까지 계약기간을 모두 정상적으로 채우게 될 경우, 프로 출범 이래 역대 삼성 사령탑 중 최장수 감독(8시즌)이 된다. 종전 기록은 두 번에 걸쳐 삼성 감독직을 역임했던 김동광 전 감독(1998-2004, 2012-2014.1월/ 마지막 시즌 중도 사퇴)이 이끌었던 약 7년 8개월이다. 단일 재임기간으로 국한하면 7시즌간 팀을 이끌었던 안준호 전 감독(2004-2011)이 최장수 기록이었다.

유재학과 이상민, 두 감독 모두 올 시즌 성적은 부진했다. 코로나 사태가 리그가 조기종료된 가운데 유 감독의 모비스는 18승 24패(승률. 429)로 8위, 이 감독의 삼성은 19승 24패(.442)로 7위에 그치며 6강 PO 진출권에 들지 못했다. 하지만 구단은 고심 끝에 두 감독의 지도력을 한 번 더 신뢰하는 길을 선택했다.

같은 재계약이라도 온도차는 조금 다를 수밖에 없다. 유재학 감독은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명장이자, 지금의 '모비스 왕조'를 구축한 주역이다. 올 시즌 모비스는 '우승주역' 라건아와 이대성을 트레이드로 떠나보내고 간판스타 양동근마저 은퇴를 선언하며 '리빌딩' 시기에 접어들었다. 올 시즌의 성적부진은 어느 정도 감수한 결과이기에 유 감독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려웠다. 앞으로 구단의 방향성이나 연속성을 고려할 때 유재학 같은 검증된 감독을 포기하고 모험을 할 이유가 없었다. 

모비스에서 16년간 장기집권하며 양동근, 함지훈, 라건아, 이대성, 김효범 등 수많은 스타 선수들을 조련해냈고, 몇 차례의 리빌딩과 세대교체를 안정적으로 이뤄낸 경험이 있다. 만일 모비스가 유 감독을 붙잡지 않았다고 해도 감독교체를 고려 중인 다른 구단에서 러브콜이 들어올 가능성이 높았다.

현재 유재학 감독 밑에서 경험을 쌓고 있는 코치진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었다. 조동현 코치는 이미 KT에서 감독직을 수행한 경험이 있고, '미래의 모비스 감독 1순위'로 꼽히는 프랜차이즈 스타 양동근도 지도자의 길에 들어설 경우, 유재학 감독 밑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유재학 감독이 앞으로 3년 동안 모비스의 리빌딩에 기틀을 닦은 뒤 설사 현역 지도자에서 은퇴하거나 단장 영전, 다른 팀으로 자리를 옮기는 등의 상황이 발생한다고 해도 그가 키워낸 후배 지도자들이 자리를 이어받는 안정적인 세대교체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반면 이상민 감독은 지도자로서 '마지막 기회'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프로농구에서 '스타플레이어 출신 감독'의 대명사로 꼽히는 이 감독이지만 정작 지도자로서는 삼성 사령탑 부임 이후 6시즌간 플레이오프 진출은 불과 2회에 그쳤고, 구단 역사상 최악의 성적으로 꼴찌만 2번이나 기록하는 굴욕을 당했다.

삼성에서 통산성적은 313경기 129승 184패(승률 0.412)로 5할도 되지 않는다. 역대 삼성의 장수 사령탑으로 꼽히는 김동광-안준호 감독이 팀을 매년 꾸준히 플레이오프로 이끌며 우승까지 경험했던 것과 지극히 대조되는 성적표다. 1990년-2000년대까지 프로스포츠계의 큰 손으로 불리며 '일등주의'가 지배하던 시절의 삼성이었다면 절대 이상민 감독의 재계약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이상민 감독이 초라한 성과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의 여전한 스타성과, 모험을 꺼린 구단의 보수적인 마인드 덕분으로 보인다. 이상민 감독은 지도자로서는 실망스러운 성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팬들 사이에서는 어지간한 선수들보다 높은 인기를 자랑한다. 삼성 구단으로서는 이상민 감독을 포기한다고 해도 현재 프로농구 인재풀에서 '더 나은 대안'을 찾기가 어려웠다는 분석이다.

이상민 감독이 최근 몇 년간 전술운용이나 위기관리 능력에서 다소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사실이지만, 삼성이 전통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젊은 감독의 성장 따위를 기다려주는 구단이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감독으로서는 운이 좋은 결과라고밖에 할 수밖에 없다.

대신 재계약 기간이 고작 2년밖에 되지 않는 것은 이 단 기간에 가시적인 결과를 보여주지 못하면 구단도 더 이상의 기회를 주긴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상민 감독은 자신이 지도자로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얻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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