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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넘어 읽는 고전'은 30대를 통과하고 있는 한 독서인이 뒤늦게 문학 고전을 접하며 느낀 재미와 사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요즘 나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는 동네를 산책하는 일이다. 1년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이 이제 막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목련과 벚꽃이 지고 연둣빛 이파리들이 싱그러운 봄의 한 가운데, 그리고 초여름. 이맘때의 초록을 나는 무척 사랑한다. 집 근처에 소박하지만 걷기 좋은 숲과 산책로가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얼마 전 식목일에는 아이들 유치원 선생님이 방울토마토 모종을 선물해 주셨다. 아이들과 함께 모종을 화분에 심고 햇볕 잘 드는 베란다에 놓아두었더니, 그 작은 초록 식물 하나로 집안에 파릇파릇 생기가 돈다. 2~3일에 한 번씩 화분에 물을 주며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별히 공을 들이는 것도 아닌데 하루하루 키가 쑥쑥 자라나는 식물이 어찌나 기특하고 예쁜지, 이참에 화분을 몇 개 더 들여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공기정화식물' '초보자가 키우기 쉬운 식물' 등을 한참 검색하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화분을 사도 놓을 곳이 마땅치 않다. 이제는 식물까지 집 안에 들여놓고 나는 모든 생활을 집 안에서만 할 작정인가?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말했다. '새는 동굴 속에서 노래하지 않으며 비둘기는 새장 안에 갇혀서는 순수함을 간직하지 못한다'고, 우리는 집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야외에서의 삶이 무엇인지 잊어버렸다'고.

잠시 가만히 앉아 집 안을 둘러본다. 책장에 넘치도록 꽂혀 있는 수백 권의 책들, 냉장고와 찬장을 가득 채운 식료품들, 옷장과 서랍을 빼곡히 채운 옷들... 사람 4명이 사는 집에 물건은 수천 개다. 집의 절반이 넘는 공간을 가구와 물건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는 사람이 사는 집인가, 물건들이 사는 집인가.
 
간소화, 간소화, 또 간소화하라! 관여하는 일을 백 가지 천 가지가 아니라 두세 가지로 제한하라. 백만이 아니라 여섯 정도만 세고 소비지출은 최소로 하라. (…) 검소하라, 검소하라. 필요하다면 하루 세 끼가 아니라 한 끼로 족하라. 수백 가지의 요리 대신 다섯 가지만 먹어라. 그 외에 다른 것들도 식생활만큼 간소화하라. (105쪽)

기본적인 틀에 가까울수록 삶은 감미로운 법이다. 지나친 부를 소유하면 불필요한 것들만 사들이는 법이다. 영혼에 필요한 것을 마련하는 데는 돈이 필요하지 않다. (367쪽)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홍지수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2014)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홍지수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2014)
ⓒ 펭귄클래식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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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은 소로가 1845년 7월부터 1847년 9월까지 월든 호숫가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살았던 2년 2개월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그곳에서의 삶은 소로 자신에게는 일종의 실험이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인생을 사는 법을 배우는 데 직접 삶을 살아보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삶에 무엇이 얼마나 필요하고, 돈은 얼마나 있어야 하며,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몇 시간의 노동이 필요한지 알고 싶었다. 그는 오두막에서 사는 동안 수입과 지출, 노동 시간 등을 꼼꼼히 기록했다. 그의 기록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에 필요한 것이 얼마나 적은지'를 보여주었다.

그는 '거의 2년 동안 효모를 넣지 않은 호밀과 옥수수 가루, 감자, 쌀, 소금에 절인 아주 소량의 돼지고기, 당밀, 소금 그리고 물'만 먹고살았다. 가끔 숲에서 월귤을 따먹기도 했고, 호수에서 낚은 물고기를 구워 먹기도 했다. 옷도 패션과는 상관없이 몸을 보호하는 기능에 충실한 것들로 가볍고 편하게 입었다. 남들이 보기에 그의 행색은 다소 초라해 보였겠지만, 그는 남들의 시선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1817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지만 평생 이렇다 할 직업이 없었다. 대학 졸업 후 운 좋게 모교에서 교편을 잡을 기회를 갖기도 했지만 2주도 되지 않아 사임하였고, 친형과 함께 사립학교를 세우기도 했지만 형의 건강 악화로 인해 학교는 곧 문을 닫고 말았다.

그는 연필 제조에서부터 목수, 석공, 조경, 토지측량에 이르기까지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거의 5년 가까이 육체노동으로 생활을 꾸렸다. 시간제로 근무하면서 남는 시간에는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는 경험을 통해 '한 해에 약 여섯 주만 일하면 생활비를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해에 여섯 주만 일하면 생활비를 벌 수 있다니. 일단 내 집이 있고, 부양해야 할 가족과 빚이 없다는 가정 하에, 기본적인 채소들을 직접 길러 먹을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졌다는 가정 하에, 아무리 최소한으로 먹고 입는다고 해도 정말 그게 가능할까?

소로의 말에 숨은 뜻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그렇게 일해서 번 돈으로 무엇을 얼마만큼 먹고 쓰는지, 나아가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국가의 역할까지도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가 이 책에서 소개한 이웃, 존 필드의 절망적인 삶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하루를 차와 커피, 버터, 우유, 고기를 곁들인 식사로 시작했으므로, 이를 마련하기 위해서 고되게 일해야 했고 그러고 나면 피로한 몸을 회복하기 위해서 많이 먹어야 했다. 게다가 버는 만큼 써야 했고, 그럼에도 자기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삶을 낭비했으므로 이익보다 손해가 더 많은 삶을 산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도 그는 미국에서는 매일 차와 커피를 마시고 고기를 먹으니 이민 온 것은 실이 아니라 득이라고 했다.

그러나 진정한 미국은 이런 것들 없이도 자기 능력껏 스스로 원하는 방식대로 삶을 영위하는 자유가 있는 나라여야 하며, 주 정부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이런 것들을 구하는 데 드는 비용을 국민이 마련하게 하거나 노예제도를 지속시키고 전쟁 비용을 충당하는 데 협조하라고 강요하지 않는 나라여야 한다. (229쪽)

나에게 맞는 삶을 찾아가는 법

무기력하고 무지몽매한 대중과, 미국의 맹목적인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소로의 성격은 그의 친구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는 정부의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며 수년 동안 인두세를 내지 않아 체포되기도 하였다. 그렇게 까칠하고 타협을 모르는 소로도 자연 앞에서는 한없이 겸손하고 온순해진다.

야생 그대로의 자연은 그에게 밝은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는 '강장제'이고, 뾰족하게 날이 선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안정제'였다. 숲에서 그는 혼자여도 외롭지 않았고, 숲에서의 삶은 부족함 없이 충만하였다. 그는 성실한 자연의 관찰자가 되어 숲과 호수, 동물과 식물들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가 기록한 월든 호숫가의 생명들에 대한 기록은 나에게도 큰 위안이 되었다. <월든>을 읽으며 숲과 동물들을 묘사한 부분이 나올 때마다 나는 노트를 펼쳐 정성스레 옮겨 적었다. 오전에 한 시간 남짓 <월든>을 필사하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고요해지고 나를 괴롭히던 잡스러운 생각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열렬하게 삶에 대해 생각했다.   

<월든>에 쓰인 작가의 삶의 방식이 모두에게 정답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책이 나의 삶과 나를 둘러싼 공간이 어떤 모습이면 좋겠는지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삶에 정답은 없다. 그저 이 책에서 소로가 말했듯이 '하루하루를 진실로 충만하게 사는 행위, 그것이 최고의 예술'이다.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이유는 깨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삶의 본질적인 사실만을 직면하고 거기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알아보고, 내가 숨을 거둘 때 깨어 있는 삶을 살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은 정말로 소중하다. 그리고 가능한 한 체념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었다. (104쪽)

월든 - 시민 불복종 수록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은이), 홍지수 (옮긴이),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2014)


태그:#서른넘어읽는고전, #서평, #월든, #헨리데이비드소로, #펭귄클래식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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