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나에게는 올해로 여섯살이 된 사촌 여동생이 있다. 어느날 그 아이는 내게 병원놀이를 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흔쾌히 그러자고 하며 동생들에게 말했다.

"내가 환자 할테니까 이수가 의사역할을 하고 윤서는 간호사를 하렴."

이수가 바로 위에서 언급한 아이이고 윤서는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사촌 남동생이다. 이제 병원놀이를 시작하려나 했던 찰나에 이수가 갑자기 자신이 간호사를 하겠다고 한다.

"이수야 왜 의사가 아니라 간호사가 하고싶어?"

 내 물음에 이수가 대답했다.

"여자는 의사 못 해"

놀라웠다. 겨우 여섯살 밖에 안 된 아이가 벌써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니. 나는 깜짝 놀라 이수에게 '여자도 의사 선생님이 될 수 있음'을 설명해 주었고 나를 치료해 주셨었던 여성인 의사 선생님이 얼마나 병을 잘 고치는지 들려주었다. 그러곤 혹시나 싶어 군인, 경찰과 같은 직업에 대해서도 아이에게 물어보았지만 대답은 같았다. 여자는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수는 왜 여자가 이런 직업들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해?"

나의 질문에 이수는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여자 의사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내가 그 때 그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여자도 할 수 있다고, 너도 의사나 경찰관이 될 수 있다고 들려주는 것밖에는 없었다. 

이수가 집으로 돌아간 후 나는 왜 그 아이가 그런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고민했다. 답은 금방 나왔다. 이수와 같은 어린이들이 보는 TV프로그램들이 대부분 자연스럽게 차별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어린이들이 즐겨보는 짱구는 못말려나 도라에몽에 나오는 아빠는 회사에 가지만 엄마는 집안일만 한다. 또한 그 애니메이션들에 나오는 의사는 대부분 남성이고 간호사는 여성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성차별을 학습해왔고 이에 비해 성평등을 가르치는 학교교육은 너무나도 부실한 것이었다.

남고의 성평등의식
   
어느 날의 학교 칠판 칠판에는 쎆쓰라고 쓰여있다
▲ 어느 날의 학교 칠판 칠판에는 쎆쓰라고 쓰여있다
ⓒ 송창우

관련사진보기

 
나는 현재 경기도의 한 남고에 재학 중이다. 먼저 남고생들을 포함한 모든 젊은 남성들이 다 나쁜 사람들은 아니라는 점은 알아주면 좋겠다. 정말 성평등 의식이 바닥인 친구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많고, 이 문제에 대하여 페미니스트와 차별주의자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도 사실상 힘들다. 

그럼 본격적으로 비판을 해 보겠다. 남고라는 곳은 여성의 목소리가 미치기 힘든 공간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여성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목소리가 당당하게 나온다.

예를 들어 "여자는 낮에는 집안일을 하고 밤에는 침대로 가는 존재야"라는 소리를 하는 친구가 있으면 대여섯명은 함께 웃고 나머지도 크게 제지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발언을 불편해하는 사람도 잘 없는 것 같다. 

유달리 별났던 작년 우리반에 처음 적응하기 시작할 때는 불편함을 느꼈지만 그런 발언들을 계속 듣다보면 적응이 돼서 불편함이 덜 느껴진다. 또 저런 말을 하는 친구들은 내가 나서봤자 바뀌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 비겁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  학교에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는 보통 '쿵쾅 쿵쾅'이라든지 '꼴페미'와 같은 단어나 여기 기술하기는 힘든 더 심한 말들이 따라 붙는다. 

여성인 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남편이 통제를 안 해서 그렇다'와 같은 뒷담화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또 직접적인 피해를 입힌 사례도 있었는데 내가 1학년일 때 한 친구가 성관계를 묘사한 그림을 여성인 미술 선생님께 제출하여 선생님께서 굉장히 불쾌하셨다고 말씀하신 기억도 있다. 남성인 교감선생님에게 '교장이 왜 여자예요?'같은 질문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더 놀라웠던 것은 교감 선생님이 웃고 넘겼다는 것이었다.

내가 학교에서 페미니즘의 주제를 다룰 때 주로 소극적 자세를 견지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변명을 좀 하자면 나도 아예 대화를 하지 않는 건 아니다. 말이 통하는 친구들과는 페미니즘에 대한 대화를 시도해 보기도 하고 페미니즘에 대한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성차별주의자'라고 불리는 이들과 달리 페미니즘에 대한 어느 정도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친구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첫 번째로 그들이 살아가는 주변 환경의 분위기, 예를 들어 학교나 인터넷 등이 있다. 두 번째로 극단적인 발언을 하는 여성들의 남성 비하다.

솔직히 나도 이들이 이러한 남성 비하를 하게 된 이유는 먼저 여성혐오를 밥 먹듯이 하던 일부 남성들에 대한 미러링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한다. 그들의 행동과 말을 보면 굉장히 불쾌하다. 물론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들은 합리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극단적 성향의 커뮤니티들은 물론, 언론사들도 더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이야기를 싣길 좋아하기에 정작 좋은 페미니스트들이 많이 묻힌 것 같다. 

남고에서도 성평등이 필요하냐고 10명에게 묻는다면 9명은 그렇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평등인지 물어보면 제각기 다른 대답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정확한 평등의 기준선은 찾기 힘들겠지만 많은 사람들의 평등의 기준은 남성 쪽으로 기울어져있다. 왜냐하면 과거에 비해서는 '평등해 보이기' 때문이다. 반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사람 중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차별은 과거의 여성들이 당했고 그들은 가만히 있는데 왜 현재의 여성들이 목소리가 높은가."

나는 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주고 싶다.

"과거보단 나아졌지만 여전히 여성에게 불리한 사회입니다. 금을 도둑 맞은 사람이 가만히 있었다고 해서 은을 도둑맞은 피해자도 침묵하라고 요구할 순 없습니다. 이와 같이 은을 도둑 맞고 있는 현재의 여성들이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한다고 해서 그들을 침묵시킬 순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나는 학교의 성평등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심지어 대학에서도 성평등 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성평등이 중요하다', 또는 '차별은 나쁜 것이다' 정도만 배울 뿐 어디까지 평등해야 하는지 '적극적 우대조치와 차별'의 차이는 무엇인지, 어떻게 소수자를 존중하고 배려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고려와 실천을 배우지 못했다. 학교의 성평등 교육은 지금보다 강화되어야할 뿐만 아니라 좀 더 실천적일 필요가 있다.

평등한 생각을 갖기 위한 나의 길

누군가 내게 '당신은 페미니스트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아니오'일 것이다. 나는 일반적인 페미니스트와 생각이 다른 것도 있고 아직 마음이 페미니즘을 완전히 받아들이진 못한다. 그리고 아직 페미니즘과 관련된 책이나 기사를 읽으면 상당히 불편해진다. 그러나 불편하면 불편할수록 나의 사고에 아직 성차별이 녹아있다는 것이므로 더 읽으려 노력한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난 남자이다. 명절에 조부모님 댁에 가면 여자 어른들은 전을 부치고 잡채를 버무리느라 바쁘시지만 남자 어른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아니 손가락만은 리모컨을 조작하느라 바쁘다. 이런 분위기가 싫어서 내가 설거지를 '분담'하면 함께 일했음에도, 아니 사실 내가 분담한 게 훨씬 적지만 나의 '분담'은 '도움'으로 간주되어 칭찬이 쏟아진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끊임없이 자연스러운 성차별의 일상에 노출되어 있었다.

한때 나도 극심한 반 페미니스트였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와 중학교1, 2학년까지는 친구들이 페미니즘을 비난하는 말을 할 때 함께 비난했다. 그리고 소수자의 권리를 무시하는 발언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지금이라고 내 사고가 많이 유연해지고 그렇진 않다. 다만 내가 세상을 바라보던 창에 때가 끼였음을, 내 사고가 아직 자기중심적이고 뻣뻣함을 알아차렸을 뿐이다. 그리고 이것을 아는 것은 변화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믿는다.

위에서 누군가 내게 '당신은 페미니스트입니까?'라고 물으면 내 대답은 '아니오'일 것이라고 했었다. 여기에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충하면 이렇다.

"아니오, 저는 페미니스트는 아직 아닙니다. 저는 평등한 생각을 갖기위한 길 위에 서 있습니다. 저는 페미니스트 지망생입니다."


 ps: 이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도 저와 함께 길을 걸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글은 제 개인적인 생각임을 밝힙니다. 비판은 좋지만 비난은 삼가주세요^^

댓글9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사랑과 평화가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