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수도>의 채여준 감독, 곽동학 피디

영화 <공수도>의 채여준 감독, 곽동학 피디 ⓒ 그노스 제공

 
"극장에 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IPTV로 직행을 결정했을 땐 아쉬움이 좀 있었다." (채여준 감독)

지난 3월 5일 극장 개봉을 준비하던 영화 <공수도>는 눈물을 머금고 IPTV 직행을 택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한창 극장 관객 수도 떨어지던 차였고, 영화 상영 자체에 극장 반응도 미지근했기 때문이다. 모든 영화가 극장에 걸릴 수 있다면 감독 입장에선 행복하겠지만 독립 및 예술 영화 기준 전체의 4분의 1 정도(2019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기준)만이 극장 상영 기회를 얻어 왔다. 

그러다 1개월 뒤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 9일 극장에서 개봉하며 관객과 만나고 있는 <공수도>는 한국영화 최초 '역개봉' 사례가 됐다. 이미 IPTV에서 영화를 볼 수 있음에도 극장 측이 전격 개봉을 결정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작품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겠지만, IPTV 서비스 상위권을 차지하며 내심 인기를 구가한 덕이 크다. 

개봉 2주차를 지나는 시점에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난 <공수도>의 채여준 감독과 곽동학 피디는 "꽤 고무적"이라고 자체 평가했다. 영화는 공수도에 능한 채영(다은 분)이 새 학교로 전학 오면서 교내 불량 서클을 타도해 가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학원액션물이다. 그간의 한국독립영화에서 찾기 힘들었던 코미디와 로맨스 요소를 두루 갖춘 타임 킬링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저예산 영화다 보니 내부에선 극장 개봉 전에 영화제부터 낼까 고민도 했다. 개봉을 한다고 해도 독립예술영화 전용관보단 일반 상업영화로 들어가자는 의견도 있었지. 흔히 한국독립영화는 예술적 성향이 짙어서 마니아 관객들만 교감할 수 있다고들 하는데 <공수도>는 저예산 독립영화임에도 재밌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무조건 극장 개봉을 고집하진 않았지만 극장과 얘기가 잘 안 되면 IPTV로 갈 수도 있겠다고 각오는 했었다." (채여준 감독)

"마케팅 쪽에서 극장 개봉 제안을 해봐도 될 것 같다고 조언했다. 물 흐르듯 이후 과정이 잘 진행됐다. CGV나 롯데시네마 같은 대형멀티플렉스 말고도 개인 극장에서도 영화를 서로 튼다고 하시더라." (곽동학 피디)


"예산이 빠듯해서... 다들 고생 많이 했다"
 
 영화 <공수도>의 한 장면.

영화 <공수도>의 한 장면. ⓒ 그노스

 
마케팅 비용까지 포함한 총제작비가 3억 원. 어지간한 독립영화보다도 작은 규모다. 채여준 감독은 "빠듯한 예산이라 회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고 정말 다들 고생 많이 했다"며 제작 당시 상황을 말했다. 소재 특성상 학생들끼리 겨루는 액션의 합이 중요했고, 몹신(mob scene,  다수 인원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장면) 또한 있었기에 제작진 입장에선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터.

"독립영화 경우 아무리 적게 찍어도 20회 차 이상은 찍는다던데 우린 총 11회차에 끝냈다. 예산이 부족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배우들을 불러놓고 처음에 이렇게 말했다. '영화 촬영이기 보단 연극 촬영이라 생각하자. CG나 와이어 등이 없어서 저예산 영화로 보이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연기로 저예산이 아님을 증명하자'고. 촬영 전까지 약 2개월 동안 배우들과 대본 리딩을 매일 했다. 오전엔 액션 스쿨, 오후엔 대본 리딩을 하는 식이었다. 카메라가 있다고 가정하고 동선을  체크하면서 했지. 실제 촬영에서 테이크를 아무리 많이 가도 8번 이상은 안 넘겼다. 촬영 막바지 땐 카메라 감독님이 잠깐 졸다가 뒤로 넘어지기도 하고, 나도 모니터를 보다 고개가 계속 뒤로 꺾이더라." (채여준 감독)

"마지막 강당 장면에선 진짜 극적이었다. 감독님이 컷을 외치고 딱 2초인가 3초 후에 불이 꺼지더라. 요즘은 학교를 빌릴 때 사람이 상주하는 게 아니라 예약한 시간에 불이 꺼지도록 시스템을 설정해놓더라. 코로나19와 상관없이 학교 촬영을 하는 경우 비용이 많이 비싸져서 그때 엄청 긴장했었다. 배우들이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어서 감사했다." (곽동학 피디)


상업영화 현장이었으면 시도조차 못 했을 강행군이었기에 두 사람은 무엇보다 배우들에게 미안함과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배우의 연기는 예산과 상관없이 훌륭할 수 있으니 그런 부분들을 살려보려 한 게 도움이 됐던 것 같다"고 채 감독이 덧붙였다.

감독의 말처럼 내용 자체는 단순해도 출연 배우들 연기 호흡은 좋은 편이다. 이미 <마녀> 등에 살짝 모습을 드러내며 신비감을 준 배우 다은과 독립영화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온 오승훈, 손우현이 전면에서 이야기를 끌어갔다. 특히 여성 히어로물의 장점을 담아내려 한 노력이 엿보이는데 이는 원작 시나리오를 채영이라는 캐릭터 중심으로 각색한 감독의 복안이기도 했다.

"<마녀>나 <언니>도 여성 히어로물로 볼 수 있을 텐데 여전히 한국에선 여성 히어로 영화가 많이 없기도 하다. 이수성 감독님 영화 등 학원물 영화를 많이 보며 준비했는데 천편일률적인 게 있어서 양채영이라는 캐릭터를 잘 살려보면 재밌는 작품이 나오겠다 생각했다. 드라마를 살려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액션영화라기 보단 청춘 영화 같다는 반응이 많다." (채여준 감독)

"봉준호 감독님처럼 세계로 진출하고 싶다"

 
 영화 <공수도>의 채여준 감독, 곽동학 피디

영화 <공수도>의 채여준 감독, 곽동학 피디 ⓒ 그노스 제공

 
물론 일부 대사나 설정에서 요즘 10대의 언어와 다소 다른 지점이 있긴 하다. 1981년생인 감독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번 모니터를 부탁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영화 속에 공수도 기원을 설명하는 장면에서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 역을 맡은 양동근 사진이 깜짝 등장하는 것도 작은 재미요소다. 힙합 뮤지션으로 활동해 온 채여준 감독의 인연 덕이다. 가수 활동을 하면서 올레 스마트폰 영화제에 자신의 크루 노래를 담은 <작전 시티>(2012)를 출품한 게 그의 첫 영화 연출작이었다.

"공부가 너무 재미없기도 했고, 집안 사정상 등록금도 부담이라 대학을 중퇴했다. 영화는 나이가 들어서 해도 될 것 같았지만 음악은 그때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음악을 했었지. 당시 2회 스마트폰영화제 때 심사위원장이 박찬욱 감독님이었고, 이준익 감독님이 집행위원장이었는데 그때 일반부와 프로 통합 부문에서 상을 받으며 정신이 나간 채로 이준익 감독님을 껴안았던 기억이 있다. 그때부터 영상을 공부했고, 이공주 작가님 도움으로 영화 현장을 경험하며 영상 일을 줄곧 해왔다." (채여준 감독)

채 감독은 "어떻게 보면 포스트 코로나19로 영화 산업도 좀 달라질 것 같은데 <공수도>가 왠지 상징적 영화가 될 것 같다"며 첫 극장 개봉 경험의 소회를 전했다. "독립영화라도 쉽고 재밌는, 공감이 가는 나만의 스타일이 담긴 영화를 만들고 싶다"며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세계로 나간 봉준호, 박찬욱 감독님처럼 저도 세계로 진출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황산벌>(2003), <그놈은 멋있었다>(2004) 제작부에 이어 저예산 공포영화 <속닥속닥>(2018) 프로듀서로 참여해 온 곽동학 피디 역시 "가수가 대표곡이 있듯 시간이 흘러 어떤 사람들이 <공수도>를 인생 영화 중 하나로 꼽는다면 좋을 것 같다"며 "훗날 누군가의 인생 영화를 만드는 게 꿈"이라 말했다.
공수도 코로나19 극장 채여준 양동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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