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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이낙연 상임공동선대위원장과 이인영 원내대표 등이 1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당 선거상황실에서 악수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이낙연 상임공동선대위원장과 이인영 원내대표 등이 1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당 선거상황실에서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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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압승했다. 개표가 99.98% 진행된 16일 오전 9시 56분 기준, 253개 지역구에서 민주당 163명, 미래통합당 84명, 정의당 1명, 무소속 5명이 1위를 기록했다.

비례대표의 경우, 99.9%의 개표율을 기록한 가운데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33.85%,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 33.35%, 정의당 9.66%, 국민의당 6.79%, 열린민주당 5.41%를 기록했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미래한국당 19석, 더불어시민당 17석, 정의당 5석, 국민의당 3석, 열린민주당 3석이 된다.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산하면,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180석,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 103석, 정의당 6석, 국민의당·열린민주당이 각각 3석, 무소속이 5석이 된다.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의석이 180석일 경우, 국회 전체 300석 중 60%를 차지하게 된다. 대승이다.

역대 총선에서 제1당이 과반을 획득한 것은 총 12차례다. 1954년 3대 자유당, 1958년 4대 자유당, 1960년 5대 민주당, 1963년 6대 민주공화당(공화당), 1971년 8대 공화당, 1973년 9대 공화당+유정회(공화당의 위성정당 격), 1978년 10대 공화당+유정회, 1981년 11대 민주정의당(민정당), 1985년 12대 민정당, 2004년 17대 열린우리당, 2008년 18대 한나라당, 2012년 19대 새누리당이 과반을 얻었다.

1978년 10대 때 공화당과 유정회의 의석은 231석 중 145석으로 전체의 62.8%였다. 이 뒤로는 제1당이 60%를 넘은 적이 없고 근접한 사례도 없다.

1981년 11대 총선에서 민정당은 276석 중 151석으로 54.7%, 1985년 12대에서 민정당은 276석 중 148석으로 53.6%, 2004년 17대에서 열린우리당은 299석 중 152석으로 50.8%, 2008년 18대에서 한나라당은 299석 중 153석으로 51.2%, 2012년 19대에서 새누리당은 300석 중 152석으로 50.7%를 기록했다. 1978년 이후로는 제1당이 60%에 근접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이번에 거둔 성적은 1978년 이후 최고인가?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공화당과 유정회가 1973년과 1978년 9대와 10대 총선에서 각각 66.7%와 62.8%를 기록하긴 했지만, 이 수치는 타당성을 갖기 힘들다.

유신헌법으로 불리는 1972년 헌법은 제40조 제1항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는 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의 국회의원을 선거한다"고 했고, 제2항에서 "제1항의 국회의원의 후보자는 대통령이 일괄 추천"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국회의원 3분의 1을 임의로 뽑았고 이렇게 선출된 의원들이 유정회를 구성했다. 이런 의원들이 66.7%와 62.8%를 형성했으니, 이 수치에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

기울어진 운동장
 
길어진 총선 투표 행렬 21대 총선 투표일인 15일 오전 서울 성북구 숭인초등학교에서 '코로나19' 감염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쓴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운동장에 길게 줄을 서 있다.
 21대 총선 투표일인 15일 오전 서울 성북구 숭인초등학교에서 "코로나19" 감염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쓴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운동장에 길게 줄을 서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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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유로 9~10대를 제외하면, 한국 현대사에서 제1당이 60% 정도 획득한 것은 두 번밖에 되지 않는다. 4·19혁명 직후의 5대 총선과 5·16쿠데타 얼마 뒤의 6대 총선이 그것이다. 1960년 5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291석 중 202석으로 69.4%(역대 1위)를 획득했고, 6대 총선에서 공화당은 175석 중 110석으로 62.9%를 얻었다.

노무현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대한민국 정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는 축구 경기와 비슷하다"고 했다. 5대와 6대 총선이 그랬다. 5대 총선은 4·19로 보수정권이 괴멸한 직후에 치러지는 바람에 민주당이 전무후무한 압승을 거둘 수밖에 없었고, 6대 총선 때는 박정희 군부가 총을 들고 정계를 개편했기 때문에 박정희의 공화당이 60% 이상 획득할 수 있었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거둔 성과는 9~10대의 예외를 제외하면 역대 3위로 기록될 만하다. 거의 60년 만에 나온 성적이라 할 수 있다. 민주당이 얼마나 크게 승리했으며 통합당이 얼마나 크게 패배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촛불혁명 이후의 한국 '축구장'이 얼마나 기울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라 할 수 있다.

통합당의 보수적 목소리가 큰 듯하고 우리공화당 같은 극우세력의 장외집회가 대단한 듯하지만, 대한민국은 서서히 진보와 발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통합당은 '샤이 보수'가 많다고 말하지만, 이번 선거 결과는 '샤이 민주' 혹은 '샤이 진보'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축구장이 민주진영 쪽으로 기울었다는 점은 최근 4년간의 선거 결과에도 나타난다.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에 이어 이번 총선에서도 민주진영이 승리했다. 이런 성과는 민주당이 잘해서라기보다는 통합당이 못해서 생긴 결과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 같다. 민주당 쪽에서 혁신적인 체질 강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특별히 강해진 것도 아닌데 보수정당이 4연패를 했다는 것은 그들이 근본적인 결함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치유하지 못하면 미래를 장담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김병준(비상대책위원장)이나 김종인(총괄선거대책위원장) 같은 구원투수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난제에 보수정당이 직면해 있다. 특히 김종인의 허울뿐인 경제민주화 구호로는 절대로 유권자들을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한편, 대구·경북(TK) 및 부산·경남(PK)에서 통합당이 우세를 기록한 것에 더해 대구 수성갑에서 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패한 것은 민심의 흐름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지역구도 타파를 외치는 후보가 떨어진 것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일부의 반발 심리가 여전히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축구장이 전반적으로는 기울어 있지만, 일부 지역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민주당이 대승을 거둔 것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통합당의 정권심판론이 부각되지 못하고, 세계적 격찬을 받은 한국의 코로나19 대처가 집권여당에 유리하게 작용한 데다가, 통합당이 공천 논란에 더해 차명진·김대호·주동식 망언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 현대사의 패턴과 관련해 음미해볼 만한 대목도 있다.

혁명의 열기
 
"하야하라!" 시민들 사이에 태극기 ‘비선실세’ 최순실 국정농단에 분노한 수만명의 시민들이 2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박근혜 하야”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마친 뒤 경찰 저지선을 뚫고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2016년 10월 29일 수만 명의 시민들이 서울 청계광장에서 “박근혜 하야” 촉구 촛불집회를 마친 뒤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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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정치적 대격변이 발생한 후 치러진 선거에서는, 대격변 직후 군대가 개입하는 경우 보수진영이 승리하고 그런 개입이 없으면 민주진영이 승리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일본제국주의와 친일 보수파가 일거에 무너진 1945년 8·15해방은 민주진영 혹은 진보진영의 대약진을 가져왔다.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흔히 좌파로 불리는 이들의 급속한 성장세와 조직력에 놀라움을 표했다.

하지만 그해 9월 미군이 들어오고 미군정 상태에서 치러진 1948년 1대 총선에서는 커밍스에게 경외감을 준 진영이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들은 선거에 참여조차 하지 않았다. 제주 4·3항쟁 등에서 나타나듯, 그들 대다수가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서북청년단 등에 의해 진압됐기 때문이다.

4·19혁명 불과 3개월 뒤 치러진 5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여당인 이승만의 자유당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압승을 거뒀다. 하원인 민의원 선거에서는 233석 중 171석, 상원인 참의원에서는 58석 중 31석을 차지했다. 도합 291석 중 202석이었다.

반면, 자유당은 민의원 2석, 참의원 4석을 차지해 하루아침에 군소정당으로 전락했다. 2년 전 4대 총선에서 233석 중 54.1%인 126석을 얻은 것과 대조됐다. 민주당 정권이 어느 정도 친미 성향을 띠고 있었고 미국이 군사적 개입을 하지 않은 결과로, 4·19의 열기가 석 달 뒤 총선에 무사히 그리고 상당 정도 반영된 결과였다.

1987년 6월항쟁 직후 12월 대선에서는 김대중·김영삼 양 김 분열에 힘입어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승리했지만, 그 분열의 효과가 훨씬 적게 미친 1988년 13대 총선에서는 민정당이 299석 중 125석을 차지하는 데 그쳐 사상 초유의 여소야대 정국이 출현했다.

6월항쟁 당시 주한미국대사였던 제임스 릴리가 회고록 <중국통>에 썼듯, 5·18 광주항쟁과 미국의 관련성에 대한 반발심이 미국문화원 방화로 이어지는 상황에 놀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한국 민중의 정치운동에 불개입 전략을 취했다. 백악관은 주한미군뿐 아니라 한국군의 6월항쟁 개입에도 반대했다. 이것은 6월항쟁의 열기가 이듬해 총선까지 무사히 전달되는 데 기여했다.

2016년 10월 이후 촛불혁명 때도 극우 일각에서 미군의 개입을 요청하는 부르짖음이 있었으나 미국은 그냥 지켜만 봤다. 개입할 힘도 없었다. 이것은 촛불혁명의 열기가 그 후의 첫 총선까지 '무사히' 이어지는 데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패턴과 기회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가 16일 오전까지 이어진 가운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방송사 조명이 환하게 비추고 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가 16일 오전까지 이어진 가운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방송사 조명이 환하게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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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계급에 유리한 대규모 정치 격변 뒤 군대의 개입이 없으면 민중에 유리한 정치 상황이 조성되는 패턴은, 민란이 약 100건이나 발생해 민란의 세기로 불릴 만했던 19세기 때부터 정착됐다.

임오군란 1개월 뒤 청나라군이 개입해 임오군란의 성과가 부정되고, 동학혁명 직후에 청·일 양국 군이 개입해 동학혁명의 정신이 부정되고, 3·1운동 때 일본군과 헌병대가 개입해 만세운동의 정신이 부정된 데서 알 수 있듯, 19세기 후반부터 한국 보수세력은 단독으로는 민중계급을 상대할 수 없었다. 군대 개입이 없이 일대일로 대결할 경우에는 민중계급이 보수세력을 쉽게 이기곤 했다. 이런 패턴이 1대·5대·13대 총선에 이어 21대 총선에도 반영된 것이다.

촛불혁명으로부터 무려 3년 반 뒤에 치러지는 총선이라서 그 열기가 적게 반영될 수도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작년에 벌어진 '미니 촛불혁명'이 크나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검찰개혁을 부르짖는 장기간의 대규모 촛불집회가 촛불혁명과 21대 총선을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 측면이 있다. 시들해질 수도 있었던 촛불을 되살리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사실, 통합당이 100석 정도나 얻은 것도 어찌 보면 대단한 일이다. 통합당이 4·19 직후의 자유당처럼 군소정당으로 전락하지 않은 것은 촛불혁명으로부터 3년 반이나 지나서 총선이 치러진 데다가 촛불혁명을 반영하는 새로운 정치 구도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이번에 얻은 성과도 과분하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승리를 통해 문재인 정권은 안정적인 국정운영의 동력을 얻게 됐다. 남은 임기 동안 촛불혁명의 과제와 더불어 한반도 평화 및 한미관계 개선 등을 추진할 힘을 얻었다. 이와 더불어 국민 대중의 관점에서 한국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고 전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경제성장을 추구할 기회도 얻게 됐다.

동시에, 이번 선거가 남긴 아쉬움도 적지 않다. 가장 큰 것은, 국회 패스트트랙 처리라는 진통을 겪으며 겨우 성사시킨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전략 때문에 무의미해졌다는 점이다. 다당제의 기틀을 구축해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국회를 만들겠다고 나선 일이, 결국에는 유야무야로 끝나고 도리어 양당제를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다.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공직선거법을 새로 정비할 과제가 21대 국회에 주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더해 촛불혁명의 과제를 계속 이행하고 한반도 평화 및 한미관계 개선과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 및 경제성장을 도모할 숙제가 21대 국회의 어깨에 놓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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