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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회관 앞의 주시경 선생 흉상 한글회관 앞의 주시경 선생 흉상
▲ 한글회관 앞의 주시경 선생 흉상 한글회관 앞의 주시경 선생 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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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을 맞아 주시경 선생의 추모사업은 활기를 찾았다.

1946년 4월 선생의 셋째 아들 주옥산은 어버이를 추모하는 뜻으로 장지영의 '서문'을 붙여 『조선어문법-주시경 선생 유고』를 정음사에서 간행하였다.

유고집은 1984년 4월 민속원에서 『주시경선생 유고』로 개제되어 다시 간행되고, 권덕규의 「소전(小傳)」과 이병기의 「한힌샘 스승님」이란 시조, 장지영의 '서문'을 새로 실었다.
 
 1933년 신명균이 간행한 <주시경선생유고>.
 1933년 신명균이 간행한 <주시경선생유고>.
ⓒ 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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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집에는 선생이 쓰셨던 「조선어 문전음학」, 「조선어 문법」, 「말의 소리」등 주요 저술이 원문대로 실렸다. 서문의 몇 대목을 뽑았다.

이 세계에서 남의 나라 침략을 일삼는 악독한 제국주의국가는, 저 혼자 잘 살기 위하야, 남들의 목숨과 천량을 빼앗으러 들때, 그것을 길이 길이 제것을 만들고자 하는 방법으로, 그 나라 사람의 역사를 없애며, 말을 없애며, 글을 없애려 한다.

우리는 왜적에게, 이 참혹한 시험을 당하였다. 우리의 역사를 앎으로, 또는 배움으로 죽임을 입었으며, 우리 말과 글을 캐어 알고, 바로 잡아 펴려 하다가 악독한 형벌을 받으며 또 목숨을 빼앗겼다.

내가 이 스승을 처음 모시게 된 것은 기원 사천이백사십일년 여름이니, 그때 스승이 제2회 국어강습회를 남대문 안 상정승골 청년학원안에 열으셨을제, 내가 거기에 입학하여 스승께 우리 말법을 배웠나니, 이것이 처음으로 국어와 친하게 된 것이었다.

그로부터 스승께 가까이 하게 돼서 스승의 뜻하시는 바와, 겪으시는 바를 잘 알게 되었다. 스승은 살림이 몹시 가난하되, 조금도 거기에 굽히지 아니하시고 견디고 이기며 오직 한 마음이, 우리 말과 글을 잘 다듬고 바로 잡아, 우리 겨레에게 널리 가르쳐서, 우리 겨레로 하여금 자주독립 정신이 일어나도록 하기에만 있었다.

그러다가 몇해 지나 슬프게도 경술년 가을에, 왜적이 마침내 우리나라를 빼앗아가매, 스승은 우리 몇 사람과, 땅을 두드리고 하늘을 부르며 목을 놓아 울었다. 그러다가 스승은 웨쳤다. "한갓 울어서 아니된다. 우리는 우리 나라를 다시 찾기로, 굳게 맹세하고 함께 일해야 한다. 죽기까지 힘쓰자" 하고, 그뒤로 젊은 국민을 가르치는 것이, 시급한 일이라 하여, 여러 학교의 국어과목을 맡아, 날마다 동으로 서으로 돌아다니면서 가르치느라고, 나중에는 기운이 다하여, 교단에 쓰러지기 몇 번이다가, 마침내 기원 사천이백십사년 여름에 이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스승의 뜻을 이루지 못하시고, 돌아가신 이를 생각할 때에, 슬픔은 날이 감을 따라 깊었었다. 하물며 오늘날 왜적을 쫓아내고 우리 나라를 찾게되는 때, 더욱 우리 글을 이처럼 다시 찾아 떠바치고 외치게 되매, 아아! 우리 스승은 이러한 경사를 못 보시니, 참으로 슬픔을 누를 길이 없도다. 스승의 맑으신 넋이 하늘 위에 계셔서, 혹시나 이 셈판을 내려다 보시고 빙긋이 웃으시는지, 알길이 바이 없으매, 홀로 가슴만 뛰어지는도다.

이때 스승의 착한 아드님이 돌아가신 어버이를 우러러 사모하며, 스승의 끼치신 글발을 거두어, 이를 막어 세상에 펴고자할 때에, 나더러 사연을 한줄 적으라하니, 이제 나는 내 글발을 바들고, 마치 스승의 얼굴을 다시 뵈옵는 듯하여 천만오리 마음의 실마리는 얽흐러져 결을 잡을 바를 모를 새, 이에 나의 심정을 두어 마디로 적어. 다시금 스승을 사모한다. (주석 2)


주석
2> 장지영, 「서문」, 『주시경선생 유고』, 2~3쪽, 민속원, 1984.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한글운동의 선구자 한힌샘 주시경선생‘]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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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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