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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하면 변호사시험 합격의 문 더 좁혀야지 -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로줌마 시절

어쩌다보니 이번엔 로스쿨생이 됐다. 우리 교육의 잘못과 몸담고 있던 학교의 잘못 그리고 나 스스로의 잘못이 뒤섞여 나는 교단을 떠났고 얼마 지나 인근 지역의 로스쿨에 입학했다. 맥락상 구구히 설명할 수는 없겠으나, 앞선 기사에서 밝힌 '외고생 자퇴 대열 합류' 아니 정확히는 '그 자퇴 사실에 대해 철저히 감추려 한 것'이 나의 잘못의 핵심이었다.

당시 진행 중이던 모든 행동을 멈추고 교단을 완전히 떠나는 길을 택하며 내가 처음 한 일은 제자들과의 연락을 끊어버리는 것이었다. 부끄러웠다. 선생답지 못한 나는 그 소중한 아이들 앞에 설 자격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또 동시에 나는 결심했다. '교육'에 있어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평생을 교사로 살 줄 알았던 만큼 교단을 떠나고 이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 막막했다. 다행히 감사하게도 많은 나이에 로스쿨 입학이란 새로운 사회적 삶의 기회를 얻게 됐다. 그런데 새로운 길을 시작하면서도 역시 결심했다. 노동전문 변호사는 되더라도 교육에 대해, 특히 우리나라 교육의 본질적 문제들에 대해 말하고 행동하는 것만큼은 피하리라. 내게는 그럴 자격이 없다. 거듭 주억거렸다.

하지만 뜻대로 되질 않았다. 성인들이 공부하는 전문대학원이라 해도 로스쿨 역시 교육기관이었다. 그리고 로스쿨은 지금까지 학생으로서 교사로서 겪어온 수많은 교육적 문제들에 더해 계층문제까지 너무도 노골적으로 품고 있었다.

내가 다닌 로스쿨은 '지방대 로스쿨'이다. 하지만 상당수가 제자 또래인 로스쿨의 아이들은 다양한 분야의 능력자들이었고 보다 중요한 것은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이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 능력 있고 성실한 아이들이, 판례 결론 단순 암기 중심의 변호사시험에는 특화되지 못한 경우 졸업조차 못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기가 막혔다. 임용고사 모의시험 성적이 낮다고 교육대학원이나 교대, 사범대 졸업장을 주지 않거나, 의사국가고시 모의시험 성적이 낮다고 또 의대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교육기관의 졸업기준이 고시화된 변호사시험의 합격 가능성 여부로 판단되는 것 자체가 '교육'에 반하는 것이 아닌가.

판례 결론 단순 암기 훈련 위주의 교육을 두고 로스쿨다운 교육이라 할 수 없음에도 사법시험체제를 벗어나겠다고 설립한 로스쿨이 그런 공부만을 하는 고시학원이 되어가고 있는데 그 해결은커녕 고시형 시험의 잣대로 졸업자격을 판단하는 로스쿨 교육자들의 모습이 너무도 '교육적'이지 않다 생각됐다. 

나도 다른 이들도, 로스쿨에서 각자의 전문성과 접목된 법교육, 실무적인 법교육을 받을 일이 없었다. 로스쿨에 많은 등록금을 내고도 변호사시험 학원의 인터넷강의를 듣고 문제집을 풀며 그저 수험공부만을 해야 했다. 충분히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정작 많은 당사자들이 분노하지 않았다. 자기가 '못났다'고 하거나,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며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고만 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렇게 차별과 경쟁을 내면화한 채 자기 자신만을 원망하고 있었다. 모의고사 성적으로 줄 세워지는 모욕과 폭력을 겪고 성산대교 앞에서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고서도 모든 원망을 내게로만 돌렸던 열일곱의 어린 나처럼. 가난하다고 꿈까지 마음대로 꾸면 안 되느냐 소리친 때도 있었으나 결국 세상이 원래 그렇더라며 정신차리고 공무원시험 공부를 하게 됐다던 스물 몇 살의 제자처럼.

급기야 로스쿨에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도 생겨났다. 싸우기는커녕 모든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며 그저 떠나버린 듯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률이 세계1위이고 그 자살 이유 1위가 '학업 스트레스'인 것이 이제는 뉴스거리도 아니듯 로스쿨생들의 죽음도 이슈조차 되질 않았다. 더욱이 세상은, '성인이 스스로 택한 경쟁이면 감당했어야지 그가 유독 정신이 약한 이였나 보군. 뭐 어딘들 안 힘든가?' 하는 눈으로 그 죽음을 차갑게만 바라보는 듯 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이 있다. 로스쿨생들이 언제나 피해자는 아니란 사실이 그것이다. 신분상승을 위한 좁은 문을 앞에 둔 격한 경쟁 구조가 '루저'를 아프게 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큰 문제는 '위너'가 루저를 밟고 올라선 것에 아무 문제의식 없게 만들고 나아가 루저가 또 다른 루저들을 밟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로스쿨생들 중엔 루저의 아픔을 감내하는 이들뿐 아니라 로스쿨을 둘러싼 경쟁을 당연시하는 이들도 많았다. 일단 로스쿨 입학의 문을 보다 넓히는 것에 반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경우에 따라선 현재의 입학정원을 축소하는 것도 방법이란 얘기들도 했다.

로스쿨 출구의 문에 대해선 생각이 나뉘었다. 로스쿨에서 충실한 교육을 받고도 '변호사 능력과 자질이 있건 없건' '점수가 몇 점이건' 기존 변호사들의 일정 정도의 수입 보장을 위해 신규 변호사 배출 수가 통제되는 것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인식은 어느 정도 있어 보였다. 또 그런 '수(數) 통제'가 로스쿨을 고시학원으로 만들어 비싼 등록금을 내고도 양질의 실무 교육, 전문 교육을 받지 못하는 점도 문제로 인식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런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무지의 베일'을 쓰고, 그러니까 '지금의 나에게 무엇이 유리한 길인가'에 대한 계산을 넘어 '무엇이 올바른 길인가'로 문제를 바라보려는 이들은 부족해 보였다.

어느 지방대 로스쿨 학생회장이 인터뷰 중 "우리 학교엔 합격률 상승을 원치 않는 이들도 많다. '어느 정도는 로스쿨 자체가 들어가기 어렵고 또 변호사 되기가 어려워야 변호사 가치가 떨어지질 않게 되고, 그래야 지방대 로스쿨 출신도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을 때 내 귀를 의심했다. 로스쿨 설립의 본 취지 그대로 대국민 법률서비스 문턱을 낮추자는 취지로 결성된 법조문턱낮추기실천연대에 가입한 뒤 주변에 동참을 권했을 때 "법조문턱을 대체 어디까지 낮추자는 건데요? 회사 그만두고 로스쿨에 왔는데 내가 그 이상의 수입을 얻을 수 있어야지 안 그러면 나는 그 좋은 회사를 왜 그만둔 거죠?"는 답이 돌아왔을 땐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질 못했다.

"합격률을 높여야 한다고? 무슨 소리야 지금도 변호사 X값 됐다고 난리인데. 우리가 붙으면 문을 더 좁혀야죠. 언니도 정작 붙고 나면 그런 소리 안 나올 걸요."

"전 사법개혁에, 로스쿨 설립 취지에 동의한 적 없어요. 어려서부터 변호사 되고 싶어서 법대 갔고 사법시험 없어지고 로스쿨 생기니 로스쿨로 온 것뿐이에요. 로스쿨다운 교육이나 이런 거 생각해본 적 없고 그냥 사법시험 있었으면 그걸 봤을 거고 로스쿨 생기니 여기 와서 변호사시험 보는 건데, 왜 사법시험 때랑 달라야 한다는 건지 대체 뭐가 문제라는 건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사법시험과 변호사시험이 다른 점이 없고 로스쿨에 로스쿨다운 교육이 없어 지금의 로스쿨이 시험대비 학원에 불과한 이상, 로스쿨을 거치지 않은 이들도 변호사시험을 보고 변호사가 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요? 그 질문 자체가 전 이상해요. 로스쿨이 생겼잖아요. 제가 만든 게 아니라 이게 있어서 여기 들어와 등록금 내고 시간을 보내고 공부를 한 이들이 있는데 그걸 왜 무시하는 거죠?"

아직 변호사가 되지 못했거나 이미 변호사가 된 이들의 목소리다. 이들은 모두 로스쿨을 거쳤다. 세상은 로스쿨생들에게 별반 호의적이지 못한 듯하다. 설립 시부터 언론이 비싼 등록금 문제를 자극적으로 다루며 '금수저' 이미지를 덧씌운 탓이 크다. 취약 계층을 위한 로스쿨 입학전형이 있어 이들이 등록금 면제는 물론 생활비도 일부 지원받는다는 데에 주목한 언론은 거의 없었던 탓에, 로스쿨의 이와 같이 긍정적인 면들은 상당히 가려져 왔다. 그런데 나는 세상이 로스쿨생들을 '기득권'으로 보는 시선이 전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변호사가 늘어야 할 것 같지만 내가 합격하는 그 선까지만', '변호사가 늘어야 할 것 같지만 변호사들의 수입과 특권이 유지되는 선까지만', '변호사가 늘어야 할 것 같지만 관련한 무언가를 하면 앞으로의 내 활동에 지장이 있을지 모르니, 나는 안 나서지만 다른 이들이 좀 나서웠으면 좋겠어', '변호사가 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주장을 세상이 좋지 않게 보니 사회적 발언은 좀 더 멋지고 빛날 수 있는 주제에 대해서만 하겠어', '변호사가 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내가 변호사가 되기 전의 일이고 지금은 내 일이 아니니 관심두지 않겠어'.

어쩌면 세상의 부정적인 시선은, 그간 로스쿨생들이 이런 마음들을 너무 많이 들켜왔고 특히 '합격률 상승'을 외치던 로스쿨생들이 변호사가 되면 (스스로 또는 변호사 이익집단을 통해) 반대 주장을 펴거나 침묵으로 외면하는 모습을 생생히 목격하게 했기 때문은 아닐까?

너무 많은 나이에 로스쿨에 들어와서일까. 내 눈에 비친 로스쿨 교육은 '법조인'이라는 신분상승을 위한 도구적 교육, 시험만을 위한 치열한 경쟁적 교육을 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적지 않은 로스쿨생들이 변호사 자격을 위해서라면 이를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는 듯 했고, 그 교육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 또 국민의 법률서비스 이익이라는 공익을 위해 신규 변호사의 수를 늘려야 하는 것이 옳은 길이라 하여도 그것이 변호사라는 직업이 그간 누려온 특권을 흔드는 무엇이 될 수 있다면 그에 대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침묵할 준비가 되어 있는 듯 했다.

 
지난달 18일 청와대 앞 광장에서 법학전문대학원 학생협의회 주최 '로스쿨 교육 및 변호사시험 합격률 정상화'를 위한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로스쿨 학생들과 현직 변호사들은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44%대로 추락하면서 로스쿨이 고시학원이 되었다"며 그 정상화를 촉구하였다. 사진은 당시의 행진 장면. 2019.2.18
 지난달 18일 청와대 앞 광장에서 법학전문대학원 학생협의회 주최 "로스쿨 교육 및 변호사시험 합격률 정상화"를 위한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로스쿨 학생들과 현직 변호사들은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44%대로 추락하면서 로스쿨이 고시학원이 되었다"며 그 정상화를 촉구하였다. 사진은 당시의 행진 장면. 2019.2.18
ⓒ 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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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의 다른 말은 차별 - #선량한 차별주의자, 고민을 해보다

대체 왜 이럴까. 생각해보았다. 특히 경쟁과 차별이 체화된 20, 30대 로스쿨생들이나 변호사들이 나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누군가는 대학문화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취업난이 심각할대로 심각해 학점 경쟁, 스펙 경쟁이 전쟁 수준인 지금의 대학가에선 청년들이 과거와 같이 여유를 갖고 읽고 고민하고 생각하지 않으니 그 경쟁 중심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 결과라는 설명이었다. 이들에겐 '공정', 능력에 따라 정확하게 줄을 세우는 형식적 공정만이 최고의 가치라며 '요즘 애들이 다 그렇다'고 했다.

그것이 사실인지는 조금 더 살펴봐야할 일이지만, 적어도 나는 이런 비슷한 말을 담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책이 로스쿨에도 너무 딱 들어맞는 것에 놀라며 그제야 이들을 이해한 측면이 있다.

어린 시절의 나 역시 차별에 찬성적이었다. 어떤 경우엔 '차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외고 자퇴 시절에 그랬다. 외고생인 나와 일반고생인 누군가의 X등급이 동등한 평가를 받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그건 역차별이라고 생각했다. 자퇴하는 바람에 절차상 1년 늦게 대학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지만 자퇴한 덕에 내신은 1등급이었다. 검정고시를 보면 내신등급은 수능점수를 기준으로 부여된다. 나의 수능점수는 그래서 외고에 남았더라면 몇 십 점이 깎였을 테지만 자퇴한 덕에 단 1점도 깎이지 않았고 나는 이것이 너무도 공정하다고 생각했다. 외고와 일반고는 다른데, 다른 우리가 같이 취급되는 것은 불공정해.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흔들린 것은 대학에 가 당시의 대학문화에 따라 많은 사람들과 책을 읽고 고민하는 시간을 보내면서다. 사람과 사람이 평등해야 한다는 것을, 학벌주의는 옳지 않다는 것을, '현실'이라고 하여 그것이 '당위'를 의미하지는 않음을 머리로 알고 가슴으로 느끼게 됐다.

외고의 교육이 '외국어 없는 치열한 입시 중심 교육'임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외고 폐지 내지 공교육 개혁을 원치 않는 이들. 서울대 중심의 학벌구조가 우리나라의 왜곡된 경쟁교육의 근본원인으로 대학을 통합해 서열화를 없애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하고 그것이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음을 잘 알면서도 자신의 기반인 명문대학들을 흔들고 싶지 않아 침묵하는 이들. 이대로 고시학원화된 로스쿨과 고시화된 변호사시험의 근본해결은 변호사를 특권계급화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돼야 함을 잘 알면서도 역시 자신의 기반인 탓에 또 나의 성공적 삶에 미칠 악영향에 침묵하는 이들.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오래전의 나, 또 지금도 뿌리 뽑지 못해 가끔씩 그 불쑥거림에 민감하고자 노력하는 지금의 내 안에 자리 잡은 무엇도 이들과 비슷하다. 그것은 바로 '선량한 교육 차별주의'다. '공정'의 다른 이름은 '차별'임에도, 이들은 또 나는 애써 이를 외면하며 말한다. 어떤 차별은 괜찮다고. 특히 점수에 의한 그것은 합리적 차별이라고.

어린 시절 나는, 외고의 내신과 일반고의 내신이 같게 취급되면 안 된다고 믿은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외고의 비싼 등록금과 보충수업비, 교복값, 스쿨버스비 등을 감당할 수 없어 일반고를 택한 아이, 외고에 가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교육을 중시하는 안정된 가정환경을 갖지 못해 일반고를 택한 아이, 외고에서 입시 중심 수업을 받지 못한 아이... 그런 일반고의 어떤 아이와 나의 '환경'의 차이를 간과하고 있었다. 둘의 내신등급이나 수능점수를 진공에서 기계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형식적 공정은 달성할지언정 실질적 공정, 즉 정의에는 어긋난다는 것을 오래전의 어린 나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공정', 아니 '차별'을 추구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변호사는 일정수준의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게 당연(공정)'하다며 '신규 변호사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들 앞에서 나는 다시금 '차별'을 목격하고 있다. 로스쿨을 둘러싸고 승자가 패자를 차별하고, 패자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차별하며, 또 패자가 자신보다 낮은 패자를 차별하는 일들이 생생히 벌어지고 있었다.

답은, '교육이민'일까 - #엄마가 된 선량한 차별주의자

"그냥 내가 이민가는 게 빠르겠어."

'보편적 복지'에 관심을 갖고 관련한 책을 쓰기 위해 자료조사를 하며 친구들에게 제일 많이 한 말은 이거였다. 행복지수 1위라는 덴마크, 고등학교 졸업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가 온 국민의 축제처럼 여겨지는 프랑스, 미국의 노동변호사가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라고 외치며 향한 독일. 대체 이 나라들처럼 되려면 우리나라의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 읽고 공부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계속 그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아무리 맞는 방향이라 생각한대도 (북)유럽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는 게 단기간에 가능하진 않을 것 같아 그랬다.

로스쿨생들 사이에서 형사법 기록 과목의 교과서로 불리는 책을 쓴 한 교수님은 최근 서두에서 현 로스쿨 교육 및 변호사시험의 문제들을 나열한 뒤 "우리 세대는 틀렸어요. 여러분이 바꿔주세요"라고 썼다. '이번 생은 틀렸어'라는 말이 떠올랐다. 내 지금까지의 삶은 교육과 계층에 있어 경쟁과 서열로 온통 왜곡된 그것이었다. 나 역시 그와 같이 '쉽게' 손을 떼고 싶어진다. '이번 생은 틀렸어요. 젊은 여러분이 어떻게 좀 해보세요. 저는 그냥 떠나겠습니다'라며 말이다.

나는 어떻게든 견뎌왔다 해도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 나의 두 아이는 이제 시작이다. 그 아이들도 내가 겪은 학생 시절, 교사 시절, 대학원 시절과 유사한 삶의 경로를 거칠 것을 생각하니 끔찍하기만 하다.

최근 '육식공룡'에서 '곤충과학자'로 그 꿈을 바꾼 초등학생 아들에게 나는 가끔 '수의사'를 언급하고 직업체험 놀이공간에라도 가면 의사 가운을 입혀 체험하게 한다. 지금은 차마 시작하지 못했지만 '요즘 대입 준비의 적정 시작 시기'라는 초4가 되면 나는 쌍둥이 아이들을 주워들은 유명 학원들에 뺑뺑이 돌리며 의과대학의 총 입학정원이라는 전국 3천여 명 안에 들도록 닦달을 시작할 모른다.

순수이과의 척박한 현실보다는 그래도 소수로서 그 수가 통제되어 일정 수익이 보장되는 의료인이, 그렇게 피라미드 아래쪽보다 위쪽에 있는 것이 아이들의 삶을 좀 더 안전하게 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렇게 내 아이들이 교육 피라미드 꼭대기로 오르도록 경쟁교육에 힘주는 것, 계층 피라미드 꼭대기로 올라 특권직업을 갖도록 돕는 것, 그것이 '엄마가 해야 할 진정한 교육'이 아님을 모르지 않는다. 진정한 엄마됨은 아이가 현재를 맘껏 행복하도록 돕고 그것이 무엇이든 원하는 일을 하며 살도록 격려해주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교육이, 사회가 평평하지 않거늘 나 혼자 그런 참된 모습의 부모가 된다면 이 아이들은 오히려 더 힘든 삶을 살게되지 않을까.

바로 이런 마음으로 '교육이민'을 택하는 이들이 있다. 과거 교육이민자들은 아이를 아이비(IVY) 대학에 입학시키거나 우리나라에서 특례로 명문대에 입학시키기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그런데 요즘은 '북유럽' 교육이민자들이 늘고 있다. 내 아이의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을 위해 이민을 택하는 것이다.

솔직히 나도 그 (북)유럽으로의 교육이민대열에 합류하고 싶기만 하다. 아무래도 이곳은, 이번 생은 틀렸다 싶어 그렇다. 피라미드가 존재하지 않는 평평한 교육과 평평한 사회. 그것을 원하는 이들보다 원치 않는 이들이 너무도 많은 것만 같다. 아니 평평함을 원하는 이들보다 원치 않는 이들의 힘이 몇 배 몇 십 배 더 큰 것만 같다.

무엇보다 아무리 코로나19의 영향이 크다 해도 '정책선거의 실종'으로 불리는 이번 4.15총선에서 이런 평등교육과 평등사회에 대한 공약대결조차 제대로 벌어지지 않고 있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교육'으로 고통받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교육'에서부터 잘못 시작되고 있는가. 지난해 조국 사건 당시 우리사회가 교육 문제로 얼마나 들끓었던가.

그런데 조국 사건 후 첫 선거인 이번 선거에서 관련한 근본 대안에 대한 열띤 공론장조차 열리지 않고 있다니. 과연 내가 태어난 이곳에서 나의 아이들이 계속 자라게 해도 좋은 걸까?

언젠가 나의 아이들이 나와 비슷한 교육과 사회를 겪은 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라고 원망할 것이 두렵다. 다만 가식적인 희망은 접어두고 우울한 얘기들로만 글을 채우면서도, 나는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그래도 아직은 대한민국에서 나의 아이들을 키우고 싶은 평범한 시민인 내가, 그 뜨거웠던 조국 사건 이후 첫 선거인 4.15 총선을 맞아 교육과 계층에 관해 주제넘게 담아낸 글들을 읽은 누군가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고.

당신도 나와 같다면
당신도 나와 같이 떠나고 싶다면
우리,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조금만 더 이곳을 우리 아이들이 누구든 마음껏 꿈꾸고 마음껏 행복해도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보자고.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기에. 누구나 교육받을 권리가 있기에.

덧붙이는 글 | 코로나19의 여파는 저희 가정도 적잖이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본래 계획한 만큼의 속도를 내지 못해 꼭 담고 싶었던 조기숙 교수님의 제3의 대안인 ‘대입 소득균형전형’이나 ‘고교 학점선택제 및 교사‧학생의 평가의 자유’ 등은 이후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여러 분들 특히 두 번이나 만나주신 김누리 교수님께, 또 각 글이 모두 길었음에도 연재 글들을 모두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태그:#로스쿨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들, #공정의 다른 말은 차별, #교육이민이 답인가요, #4.15총선, #이제, 교육혁명의 촛불을 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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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고, 로스쿨생이었으며, 현재 [법률사무소 이유] 변호사입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남매둥이의 '엄마'입니다. 모든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를 위한 '교육혁명'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씁니다. (제보는 쪽지나 yoolawfi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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