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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범죄와의 전쟁> 마지막엔 평생 권력과 주먹 사이에서 반 건달로 살아온 최익현(최민식)의 아들이 검사가 되는 장면이 나온다. 아들이 연수원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음에도 로펌이나 법원으로 가지 않고 검사가 된 것은 아마 아버지의 영향이었을 거다.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자마자 검사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했던 아버지를 보며, 아들은 검사가 최고의 직업이라고 생각했겠지.

2020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받은 이현석의 소설 '다른 세계에서도'에는 IMF 외환위기가 우리나라를 깊숙이 할퀴고 지나간 이후 전문직을 맹신하게 된 어머니가 나온다. 사업은 위험해! 전문직만이 살길이야! 과연 그녀의 두 딸은 어머니의 바람대로 의사가 된다. 외환위기가 오지 않았더라면 딸들의 선택은 달랐을까? 

우리의 의지와 무관해 보이는 한 시대의 사건은 은근하게, 때로는 지나칠 만큼 노골적으로 개인의 삶을 흔든다. 코로나19 때문에 세계 보건과 경제가, 무엇보다 개인이 이렇게 휘청거릴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자영업자들은 긴급대출을 위해 은행에 몰리고, 학생들은 언제 다시 열릴지 모르는 학교 대문 대신 노트북 스크린을 바라본다. 

코로나19 때문에 일상이 바뀌어버린 사람의 무리에는 나 같은 프리랜서들도 껴 있다.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작곡가, 사진작가, 뮤지션, 공연기획자, 마케터, 웹디자이너, 강사, 개발자, 편집자. 프리랜서는 노동의 형태에 대한 구분이기에, 직업엔 딱히 제한도 없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프리랜서 인구는 42만8641명, 서울엔 7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프리랜서의 업무 특성상 통계에 잡히지 않은 수치는 그를 훌쩍 뛰어넘을 것이다.

3개월만 버티면 될 줄 알았는데...
 
 코로나19로 프리랜서의 삶에서 가장 많이 변한 것이 있다면 단연 수입이다.
 코로나19로 프리랜서의 삶에서 가장 많이 변한 것이 있다면 단연 수입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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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프리랜서의 삶에서 가장 많이 변한 것이 있다면 단연 수입이다. 야외에서 하는 활동과 관련된 거의 모든 프로젝트가 취소됐다. 재작년 한 해 동안 축제기획사에서 일한 덕에 나는 행사와 관련된 일을 하는 프리랜서를 꽤 많이 알고 지낸다. 코로나19는 축제기획사 직원뿐 아니라 작은 행사를 다니는 뮤지션, 행사를 진행하는 MC, 축제를 스케치하는 사진작가 등의 밥줄을 뚝 끊었다. 

그들의 뒤에 있던 회사들도 잠시 문을 닫았다. 몽골텐트 등 행사 관련 물품을 대여해주는 회사와 야외 행사에서 음향 장비를 빌려주고 조율해주는 음향 업체, 행사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스타트업, 현수막을 만드는 인쇄소도 손가락을 빨았다. 

행사가 아니더라도 오프라인으로 진행해야만 하는 일을 주 수입원으로 삼는 프리랜서들도 타격을 입었다. 일러스트레이터를 가르치는 프리랜서, 만나서 책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추천해주던 북테라피스트, 일대일로 수영을 가르치던 수영강사, 얼굴을 보고 어울리는 색을 조합해주는 퍼스널컬러디자이너. 이들의 일은 밋밋한 스크린을 통해 대체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장 내가 기획해온 출판워크숍도 두 달을 미뤘다. 공동 진행 중인 팟캐스트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에는 매주 코로나19로 외주가 없어진 프리랜서들의 사연이 들어왔다. 이제 정말, 우리 어떡하지?

프리랜서 매거진 <프리낫프리(Free, not free)>를 만드는 이다혜 편집장과 함께 일과 여성, 프리랜서를 주제로 팟캐스트를 운영하며 '프리랜서의 돈 관리'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프리랜서는 벌이가 일정하지 않은 만큼 더 계획적인 지갑 관리가 필요하다. 프리랜서라고 적금 안 들고, 보험 없이 자유롭게 사는 게 아니다. 회사에서는 일이 없으면 콧노래가 나오지만, 일이 곧 돈인 프리랜서는 노는 매 순간이 불안하다. 

하여, 자신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두자며 제안한 것이 목돈 외에 3개월의 생활비를 현금으로 보유하라는 것이었다. 3개월. 그래, 3개월이면 다른 일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꼭 마음에 드는 일이 아니더라도 당장 입에 풀칠이야 못할까 싶었다. 실제로 그렇기도 했다. 

그렇지만 코로나19가 국내에서 처음 발병한 지 벌써 4개월. 팟캐스트를 듣고 3개월치의 생활비를 모아둔 프리랜서라고 할지라도 이제는 마이너스 통장을 써야 할 때가 다가온다.
      
국가의 발 빠른 대응, 그러나

행정은 생각보다 발 빠르게 움직였다. 서울시에서는 코로나19 완화를 위한 청년프리랜서 신속 지원사업을 열었다. 서울문화재단에서는 코로나19로 침체된 문화예술계에 다양한 지원책 마련하겠다며 코로나19로 직·간접적 타격을 받은 예술인(단체) 긴급 우선 지원 정책을 폈다. 

예술창작활동지원 사업을 연장하고 지원금을 주는 시기도 앞당겼다. '코로나19 피해 긴급 예술지원 공모', '예술교육 연구활동 및 온라인콘텐츠 제작 긴급지원', '예술인 문화기획활동 긴급지원' 등 예술인을 중심으로 한 지원사업이 시작됐다. 

예술인이라고 칭했지만 프리랜서도 지원할 수 있었다. 부천시에서는 코로나19 지역고용대응 특수형태근로자 프리랜서 특별지원 사업을 시작했고, 광명·성남·광주·여주시에서는 코로나19 극복 청년 일자리 사업을 시행했다.

솔직히 말해 인상적이었다. 거대한 몸집의 행정기관들이 이렇게 발 빠르게 움직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제까지 프리랜서는 정부와 지자체의 복지 그물 안에 걸리지 않는 존재였다. 프리랜서를 위한 대출 정책도 미비했고, 노동의 권리도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다. 계약서를 제대로 쓰지 못해 외주비를 떼이는 프리랜서 비율이 해마다 올라갔다. 

공공의 영역에서 프리랜서 실태 조사를 하기 시작한 것도 불과 몇 년 전이다. 서울시에서 프리랜서 권익 보호 및 지원을 위한 조례안이 발의된 것도 2년 전인 2018년 8월 21일이다. 프리랜서는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는데 이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나도 서울시의 '코로나19 완화를 위한 청년프리랜서 신속 지원사업'에 응모했다. 진행 중인 팟캐스트에 분야별 프리랜서를 모시고 코로나19의 여파에 대해 다루기로 했다.

그렇게 공동 진행자인 이다혜 <프리낫프리> 편집장과 함께 지원한 기획이 뽑혔다. 우리는 글쓰기, 음악, 일러스트레이트, 사진 분야의 프리랜서를 섭외해 같이 작품을 만들고, 팟캐스트에서 코로나19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지원사업은 여러 차례 진행됐는데, 우리가 지원했을 때 뽑힌 단체는 15개였다. 당시 지원한 단체는 600여 개가 넘었다. 우리는 운이 좋았지만 나머지 프리랜서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오랫동안 지속된 코로나19로 주머니가 탈탈 털린 프리랜서들이 몇 안 되는 지원사업에 몰렸다. 서울시는 서울문화재단을 통해 앞서 말한 프리랜서 지원 정책을 추가로 내놓았다.
 
 프리랜서 팟캐스트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 녹음 중
 프리랜서 팟캐스트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 녹음 중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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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노동은 늘 여기에 있었다

코로나19로 배를 곯는 프리랜서에게 정부와 지자체는 무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도 프리랜서가 이 정도로 많은 줄은 몰랐으리라. 세계적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2027년까지 미국 인력의 50% 이상이 프리랜서가 될 것이라 밝혔다. 10년 안에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프리랜서가 될 것이라 전망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서도 프리랜서는 행정당국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프리랜서가 통계에 잡히지 않은 것은 일단 프리랜서의 현 상황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그러니 그것에 대한 적합한 질문을 던질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최근 정부는 프리랜서와 무급휴직자를 대상으로 월 50만 원의 지원금을 주겠다고 밝혔다. 물론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불안한 프리랜서에게 50만 원은 굶어 죽지 않을 수 있는 단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중요한 것은 당장 먹을 쌀과 김치를 사게 해주는 일뿐이 아니다. 프리랜서를 위한 장기적인 플랜이 필요하다. 프리랜서를 대상으로 한 임금체불과 계약위반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기준에 턱없이 모자라는 외주비와 지나친 플랫폼 수수료 등을 규제하고, 건강한 노동을 위한 교육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프리랜서가 몇 명인지,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어떤 곳에서 사각지대에 있는지 실태조사가 우선이다. 프리랜서가 이제까지 공공 정책에서 소외돼 있던 것은, 정책결정자들이 이들을 '인정'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들을 쉽게 '미성숙한 노동자' 혹은 '투명인간'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프리랜서는 당분간 하고 말 예정인 '임시직'이 아니며, 언젠가 조직에 들어갈 예정인 '예비인'도 아니고, 어딘가 부족해서 사회생활을 못 하는 '미성숙한 노동자'도 아니다. 프리랜서는 회사원, 자영업과 마찬가지로 개인이 선택한 노동의 한 형태다. 

코로나19 사태로 어쩌면 행정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프리랜서가 모두의 눈에 보이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래, 우리가 여기 이렇게 있었다. 코로나19사태가 벌어지기 훨씬 전부터. 그러니 그것부터 알아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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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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