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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기사 <의사와 회계사, 그들의 '전문직 캐슬' 지키기>"에서 의사와 회계사의 자격취득에 대해 다뤘습니다. 모쪼록 세 전문직을 비교해서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수 통제'의 끝판왕, 로스쿨

지난해 4월 제8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졌다. 서초구 변호사회관 앞에서 현직 변호사들의 '신규 변호사 수를 1천명으로 제한하라'는 집회와 로스쿨 졸업예정자 및 졸업자들의 '자격시험인 변호사시험 취지에 맞게 신규 변호사를 배출하라'는 집회가 동시에 열린 것이다.

특히 이 날 로스쿨생들이 집회에서 사용한 포스터가 돋보였다. 포스터 문구 '사다리 차니'는, 기득권 변호사들의 신규 변호사 배출 저지를 비난하며 이찬희 변협회장의 이름을 희화화한 것이었다.
 
지난해 4월 신규 변호사 배출 수를 두고 현직 변호사들과 예비 변호사들 간 맞불 집회가 있었다. 당시 로스쿨생들이 사용한 ‘사다리 걷어차니’는, 기득권 변호사들의 신규 변호사 배출 저지를 비난하며 이찬희 변협회장의 이름을 희화화했다.
 지난해 4월 신규 변호사 배출 수를 두고 현직 변호사들과 예비 변호사들 간 맞불 집회가 있었다. 당시 로스쿨생들이 사용한 ‘사다리 걷어차니’는, 기득권 변호사들의 신규 변호사 배출 저지를 비난하며 이찬희 변협회장의 이름을 희화화했다.
ⓒ 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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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우리사회에서 법조인의 자격은 사법시험으로 취득할 수 있었다. 사법시험은 명실상부 선발시험이었고 그래서 사법'고시'로 통했다. 즉, 그 해 판사‧검사‧변호사 등 법조인이 얼마나 필요한지 사법시험관리위원회가 결정하면 곧 이를 고시하고 이에 따라 수험생들이 그 시험에 응시하게한 뒤 그 고시된 수만큼 합격시키는 구조였다. 그런데 판사‧검사는 공무원으로 정부 예산 등을 고려해 행정고시 등과 마찬가지로 '선 선발인원 결정 후 시험응시' 및 '수험생들을 줄세워 고시된 인원만큼만 선발'하는 방식을 거칠 수 있다손 치더라도, 대부분 사적 영역에서 활동할 변호사의 경우 그러한 사전 고시에 의한 선발 인원 통제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런 문제의식뿐 아니라 다양한 전문성을 기반으로 하고 법조인의 인성을 함양한 법조인을 교육을 통해 양성하고자 고 노무현 대통령은 사법시험 폐지 및 로스쿨 설립을 적극 추진했다.

하지만 로스쿨을 통한 변호사 배출은 그간 지속적인 진통을 겪어왔다. 일단 2007년 로스쿨 설립 추진 시 그 설립을 희망하는 모든 대학이 아닌 25개 대학만이 그 설립을 할 수 있게 했다. 또 로스쿨들의 총 입학정원을 초기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주장한 입학정원 3천~5천여 명과 변협 주장의 1천명 중 기계적 중립의 수치인 2천명으로 제한했다. 관련 규정인 법학전문대학원설치및운영에관한법률 제7조 제1항에는 '국민에 대한 법률서비스의 원활한 제공'과 '법조인 수급상황'이 모두 고려해 그 정원을 정하도록 하고 있으니 적어도 법을 준수한 정원 설정이긴 하다. 하지만 이는, 앞서 살펴본 의대 입학 정원의 통제와 마찬가지로 기존 법조인들의 기득권을 고려하여 관련 교육기관인 로스쿨 입학의 문을 인위적으로 통제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의대와 달리 로스쿨의 '수 통제'는 입학 정원 단계에만 있는 게 아니다. 2010년 12월을 즈음하여 로스쿨 1기들의 졸업을 앞두고 법무부 변호사시험관리위원회가 로스쿨 1기의 '입학정원 대비 50%', 즉 1천명 선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게 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됐고 이에 전국의 로스쿨생들이 집단 자퇴까지 하며 저항했다. 하지만 50%가 75%로 바뀌었을 뿐 '입학정원 대비', 즉 입학정원 2천명에 일정 비율을 곱한 '특정 수'에게만 "그 능력과 자질이 어떠하든" 변호사의 자격을 취득시키는 것으로 당시의 사태가 마무리됐다.

당시 이에 대한 재논의를 하겠다며 상황을 급속히 마무리한 법무부는 그러나 이후 아무런 추후 논의 없이 지금까지 줄곧 2천명의 75%, 즉 1500명 선에서 신규 변호사를 배출해 왔다. 즉, 로스쿨에는 의대에 없는 '출구의 수 통제'까지 설정되면서, 변호사의 자격은 이중의 관문, 이중의 상대평가에 의한 정원제 선발의 관문을 거쳐야만 취득가능하게 되었다. 

해마다 2000여 명씩 로스쿨에 입학하는데 1500명 선으로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인위적으로 통제함으로써 변호사시험 합격점은 계속 높아져갔다. 서술형 시험 영역에서 표준점수제가 도입되는 점을 고려하면 그 점수 증가폭이 더욱 클 테지만 일단 외관상 확인되는 합격점 증가폭만 봐도 제1회 변호사시험 합격점이 720점인데 비해 제8회 변호사시험 합격점은 905.5로 무려 185.5점이 증가했다. 
 
최근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가 법무부에 제출한 <변호사시험 합격자 결정에 대한 건의서 (2019)>에 따른 '변호사시험 합격커트라인 상승 및 그에 따른 불합격자 수의 증가 추세'
 최근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가 법무부에 제출한 <변호사시험 합격자 결정에 대한 건의서 (2019)>에 따른 "변호사시험 합격커트라인 상승 및 그에 따른 불합격자 수의 증가 추세"
ⓒ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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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서 로스쿨의 교육은 무너져가고 사법시험낭인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로스쿨이 로스쿨낭인과 변호사시험낭인들을 배출하는 문제들이 불거졌다. 2019년 제8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가 1691명으로 결정되면서, 변호사시험 낭인의 수는 1737명에 이르고 이른바 오탈제도로 통하는 응시금지제도(로스쿨 졸업년도를 포함해 5년이 지나면 더 이상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의 피해자는 672명에 이르게 되었다. (로스쿨이 의대에 비해 학사과정이 엄정하지 못하므로 출구의 문이 이렇게 좁은 것은 문제없다는 식의 주장도 있으나, 로스쿨 재학생들 중 유급 등에 의한 미졸업자의 수는 2019년 기준 1051명이다)

(로스쿨 및 변호사 자격에 관한 이상의 흐름에 대해서는 지난해에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다음의 기사들에서 보다 자세히 확인 가능하다. http://omn.kr/1hwqo)

'사다리 차니' 포스터가 등장한 기득권 및 예비 법조인들의 시위 충돌이나 그 한 달여 전의 전국 로스쿨생들의 2.18 총궐기대회 등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오는 24일의 제9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결정을 앞두고 또다시 충돌이 진행 중이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어느 단체도 물리적 시위에 힘을 쏟지는 못하는 상황에서 먼저 선도적으로 여론전을 시작한 것은 기득권 변호사들이었다. 

지난 7일 대한변호사협회는 변호사시험관리위원회에 제출한 의견서에 "코로나19 사태로 변호사업계가 매우 어려워져 올해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1000명 선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쓰고 언론을 통해 같은 주장을 폈다.

이에 이경수 법조문턱낮추기 실천연대 대표는 한 칼럼을 통해 모든 국민이 코로나19로 힘겨운 상황에서도 상생하며 이겨내려 노력하는데 이 위기를 이익집단의 이기적인 주장의 논거로 쓰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하며 "변호사업계에 어려움이 있다면 다른 자영업자들처럼 소상공인들에게 제공하는 금융지원을 통해 지금의 힘든 상황을 이겨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재미있게도' 변호사업계는 '늘 힘들다'고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변호사 만나보기도 힘들던 1980년대에도 힘들었고, 아이엠에프(IMF) 시절에도 힘들었으며, 변호사 1000명을 겨우 뽑던 2000년대 초·중반에도 힘들었다. 코로나19가 퍼지기 전에도 힘들었고, 코로나19가 퍼지고도 힘들다"는 것이다.

이 대표의 주장은 적어도 변호사업계가 아닌 평범한 시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꽤 설득력 있는 얘기들로 보인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코로나19로 변호사업계가 정말 힘든지 아닌지 또 별반 힘들지 않으니 변호사를 더 늘려도 되는지 아닌지 보다 더 본질적으로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과연 '기존 변호사들이 힘들다'거나 '기존 변호사들이 살만하다'는 것이 신규 변호사 배출 수 내지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의 결정 근거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변호사의 자격은 과연 무엇으로 취득되어야 할까? 현직변호사의 변호사업계가 어렵다는 호소나 예비변호사의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그 자격을 좌우한다면 그것이 과연 타당할까?

로스쿨 설립을 준비하며 변호사의 자격은 '자격시험'으로 취득하는 것을 전제했다. 관련 규정들을 보면, 변호사로서 제반 법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변호사로서의 인성 및 다양한 전문성을 가지는 이가 그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대체 그 자격의 기준이 무엇인지 관련한 구체적인 점수가 변호사시험법 등 관련 규정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다.

이전 기사에서 회계사시험이 '사실은 정원제 선발방식인 기만적인 절대평가의 자격시험'이라고 했지만 변호사시험은 그 기만조차 없다. 그저 '법무부장관이 결정한다'고만 관련 규정에 쓰여 있다. 게다가 그 합격점수나 합격인원의 결정은 놀랍게도 변호사시험을 치른 몇 달 뒤인 4월에 협의로 이루어진다. 4월의 어느날 판사‧검사‧변호사들과 로스쿨 교수들 그리고 단 한 명의 시민위원이 정한다.

'변호사 그만 배출해라 업계가 어렵다'는 주장과 '불합격자 늘어나 변호사시험이 고시가 되어가니 지금 로스쿨들도 고시원이 돼가고 제대로된 교육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의 힘겨루기 속에서 모든 것이 결정된다. 우리나라에서 판사‧검사는 상당수가 그 경력을 바탕으로 변호사업계에 뛰어든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 협의는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벌어진다. '변호사가 어느 정도로 늘어야 국민이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많이 접할 수 있는가'를 대변하는 시민적 목소리가 영향미치기도 하지만, 앞서 언급했든 이를 대변하는 시민위원은 단 한 명에 불과하다.

결국 로스쿨에서 법조인양성교육을 충실히 이수하였는가 아닌가, 변호사의 능력과 자질을 갖추었는가 아닌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단 하루 동안의 협의에 따라 신규 변호사 예정자들의 운명이 갈리게 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기존 변호사들이나 예비 변호사들이 해마다 변호사시험 합격자 결정일을 즈음하여 시위와 언론전을 벌일 수밖에 없다. 목소리의 크기, 힘의 세기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니 열띤 싸움을 할 수 밖에 없고 해야 하는 것이, 어처구니없이도 엄연한 현실이다.

지난해엔 특히 이런 변호사 자격의 기준 자체가 없는 점에 대한 비난이 강하게 일었다.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40%대로 추락할 것이 예상되면서 스스로 목숨을 거둔 로스쿨생들이 생긴 탓이 컸다. 이에 지난해 4월 제8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결정일에 법무부는 그래도 51%로 합격자를 결정하고 소위원회를 결성해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장기적인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히며 로스쿨생들의 분노를 일단은 잠재웠다.

그러나 그 소위원회에서 대체 무엇이 결정됐는지, 장기적인 대안이 마련된 것인지 아닌지, 제9회 변호사시험이 있기 전은 물론 그 합격자발표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까지도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나마 지난 9일 한 심포지엄에서 있은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의 발언을 통해 소위원회에서의 결정을 추측해볼 뿐이다.

김두얼 교수는 변호사시험 관리위원회 소위원회의 연구용역 내용 일부를 인용하며, "현재와 같이 연간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1500명 수준으로 통제할 경우 2050년까지 우리나라 변호사 인력 부족문제가 지속되고, 합격자 수를 1700명까지 늘려도 상황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이는 "법무부와 대한변호사협회가 그간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늘릴 경우 변호사 과잉배출로 변호사 시장이 교란될 것'이라고 주장해온 것과는 배치되는 결과"라고 발언했다. 또 이에 다음날인 9일 법무부는, "법무부는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 증가와 관련하여 현재까지 과잉배출에 대한 우려를 표한 바가 없다"고 해명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여기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소위원회의 연구용역결과 정원대비 85%, 즉 1700대를 합격자 기준으로 제시하는 내용이 있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신규 변호사 배출 수에 있어 '1500명 선 통제'는 문제가 되지만 '1700명 선 통제', 또는 '그보다 조금 상회한 정도의 통제'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여기서 김 교수가 위 연구를 인용한 이유는 '어느 선의 통제가 적절하느냐'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심포지엄에서 김 교수는 '정부에 의한 변호사 자격 취득자 수 통제 자체가 문제'임을 거듭 강조했다. 정부가 변호사에게 광범위한 배타적 업무영역을 인정함과 동시에 공급을 제한함으로써 여러 부작용이 생겼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특히 그는 변호사 공급 제한 문제에 집중하며, 그 논거들로 제시되는 변호사의 소득 보전, 법조전문인력의 질 향상, 다양한 법조직역의 존재, 시장 성장의 한계, 인구 감소에 따른 시장 위축 등은 모두 타당한 근거가 아니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본적으로 자격시험인 변호사시험의 합격자 수를 엄격하게 억제하는 정책을 실시하는 것은 국민들의 후생과 법률서비스를 저하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두얼 교수의 발언이 있던 심포지엄의 주제는 <변호사시험의 완전자격시험화 방안>이다. 이는 적어도 변호사 자격 취득을 제한하는 이중의 문 중 하나만큼은 정상화하자는 취지로 보인다. 

법무부가 굳이 해명 보도자료를 내 "법무부는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 증가와 관련하여 현재까지 과잉배출에 대한 우려를 표한 바가 없다"고 한 것은, 위와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변호사시험이 완전자격시험이 되고 종전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많은 변호사들이 배출되더라도 이를 '기득권 변호사들의 수입 보전 등을 저해하는 문제 상황'으로 보지는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볼 수 있다. 실제 그 의도가 무엇이든, '과잉배출에 우려를 표한 바 없다'고 했으니 신규 배출에 있어 국민의 법률서비스 외 다른 부분에 대한 우려는 없어야 할 테다.  

물론 이하에서 다른 전문직들과 함께 다시 살펴보겠지만 로스쿨에 있어 '입학의 문 통제'의 문제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조속히 해결되어야 할 과제다. 하지만 자격시험화에 '완전'이란 수식어까지 붙인 해당 심포지엄 주제는, 로스쿨의 있어 '출구의 문 통제'가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지, 전문직들 중 변호사 자격에 관해서만 왜 그리도 시끄러운지를 잘 말해준다. 그래서 로스쿨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수식어는 없어 보인다. '수 통제의 끝판왕, 로스쿨'.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권은 변호사 자격의 문제에 대해선 한 발 빼는 모양새다. 오는 4.15총선에서 국민의당은 '로스쿨 폐지와 사시부활'을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미래통합당은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고, 더불어민주당은 '방통대학 및 야간대학 로스쿨을 통한 총 200명의 입학정원 확충' 공약만을 제시했다. 로스쿨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총선에 출마한 한 후보에게 관련한 의견을 요청했으나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바쁜 상황을 이유로 관련 답변을 추후로 미뤘다. 적어도 '수 통제의 끝판왕, 로스쿨'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대안에 관해서는 모두가 외면하고 있는 듯 보인다. (관련기사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29440,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29611)
 
지난해에 이어 올해 2월 18일에도 로스쿨생들은 거리로 나와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로스쿨 교육 정상화"와 이를 위한 선행조건으로서의 "변호사시험 자격시험화"를 강력히 주장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2월 18일에도 로스쿨생들은 거리로 나와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로스쿨 교육 정상화"와 이를 위한 선행조건으로서의 "변호사시험 자격시험화"를 강력히 주장했다.
ⓒ 법조문턱낮추기실천연대 및 법학전문대학원우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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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치킨집이 어려우면 신규 치킨집 수도 통제해야?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전문직 자격 취득의 문은 좁디좁다. 아니 좁은 문이 인위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바로 신규 전문직 자격자 배출의 '수 통제'에 의해서. 과연 이것이 타당할까? 전문직 자격이 소수에게만 주어져야 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걸까? 그 답을 찾는데 다음의 글들이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한의사 면허는 경찰금지를 해제하는 명령적 행위(강학상 허가)에 해당하고, 한약조제시험을 통하여 약사에게 한약조제권을 인정함으로써 한의사들의 영업상 이익이 감소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이익은 사실상의 이익에 불과하고 약사법이나 의료법 등의 법률에 의하여 보호되는 이익이라고는 볼 수 없으므로, 한의사들이 한약조제시험을 통하여 한약조제권을 인정받은 약사들에 대한 합격처분의 무효확인을 구하는 당해 소는 원고적격이 없는 자들이 제기한 소로서 부적법하다"
 
한양조제시험무효확인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 요지다.(대법원 97누4289) 당시 한약조제권이 약사에게도 인정되자 한의사들은 자신들의 '법률상 이익'이 침해당했다며 약사들에게 조제권을 줘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한의사들이 지금까지 한약조제를 독점적으로 하며 이익을 얻어왔다고 해도 그것이 그들이 그 특권을 누릴 공익상 등의 이유가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고 그것은 그저 반사적으로 얻어진 이익일 뿐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매우 의미 있는 얘기를 덧붙였다. 한의사 면허는 '특허'가 아닌 '허가'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특허와 허가. 행정법적으로 양자는 큰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자영업은 신고 내지 허가를 거쳐 창업할 수 있다. 유흥음식점의 경우 대표적인 허가업이다. 관청의 심사 등이 필요하지만 엄격하게 그 영업이 제한되지는 않고 대부분 허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자영업은 너무 많은 이들이 뛰어들면 경쟁이 과도해져 부작용이 생겨날 수 있고 환경‧질서 등의 공익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 이럴 때는 아주 엄격한 심사를 통과해 '특허'를 받아야만 그 영업을 하도록 제한된다. 환경유해업 같은 경우가 그렇다. 환경이라는 공익을 고려해 이들 업종은 일정 수만 존재하도록 규제되는 것이다.

대법원은 한의사 면허가 '허가'라고 명시했다. 이는 한의사업이 공익 등을 위해 그 수를 일정 수로 제한될 이유가 없음을 의미한다. 즉, (대표적인 강학상 허가 업종인) 유흥음식점 문을 여는 것과 다를 바 없이, 한의사로서의 업무를 수행할 능력과 자질 외 '신규 한의사 면허자 수의 제한'을 통한 기존 한의사들 보호는 있을 수 없단 얘기다. 모르긴 몰라도 이는 의사, 치과의사 등의 면허에도 적용되는 법리일 것이다. 하지만 위 판례가 무색하게 현재 의사의 수는 '의대 입학 정원 제한'에 의해 사실상 통제되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의사 면허는 '허가'인데 말이다.
 
"'적정 변호사 수'가 얼마인지를 따지기 앞서 그 의미를 살펴본다. 우리나라에서 누구나 식당을 하도록 허용하기만 하면 시장에서 자동적으로 적정 식당 수가 결정된다. 마찬가지로 누구나 변호사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만 하면 적정 변호사 수는 시장을 통해서 자동적으로 결정된다. (...) 그런데 우리나라는 일률적으로 진입장벽을 설치해 변호사들의 특권을 보장해주고 있다. 따라서 변호사 수는 정원제한 없는 변호사 자격시험의 전면적 실시로 정해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현행 사법시험 자체가 이미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하겠다."
 
사법시험이 존재하던 시절 「온 국민이 함께 가는 민주적 사법개혁의 길」에서 이상수 한남대 법과대학 교수 역시 변호사의 수가 일정 수로 제한되는 것은 '진입장벽에 의한 특권 보장'의 현실일 뿐 그것이 마땅한 모습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아예 사법시험 자체가 위헌적이라며 '정원제한 없는 변호사 자격시험'을 주장한다. 사법시험이 폐지되고 로스쿨이 설립된 지금도 이 교수의 '위헌론'은 여전히 의미심장하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로스쿨 체제 하에서도 여전히 현재 신규 변호사의 수는 통제된다. 그것도 로스쿨 입학 단계에서 한 번, 로스쿨 졸업시부터의 변호사시험 합격자 결정 단계에서 또 한 번 이중의 장벽을 통해.

그래서 현직 로스쿨 교수들 역시 '적정 변호사 수'에 관해 이 교수와 비슷한 입장이다. 지난해 4월 국회에서 열린 '변호사시험을 점검한다'라는 제목의 심포지엄(법학전문대학원교수협의회, 이재정 국회의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공동주최)에서, 김창록 경북대학교 로스쿨 교수는 서두에서 "본래 변호사 자격에 있어 '적정 수'란 존재하지 않는다. 변호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국민에게 이익이 되지 해가 되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본래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 로스쿨 제도를 마련할 당시엔 변호사시험은 자격시험으로 치러져야 하고, 자격시험이란 일정한 기준(성적)을 충족할 경우 모두 합격시키는 시험이어야 한다는 인식을 명확히 하고 있었다"면서 "그러나 법무부가 로스쿨 및 변호사시험을 운영하면서 '합격점'을 명기하지 않은 채 법조인 중심을 구성된 변호사시험관리위원회가 합격자를 결정하도록 한 변호사시험법 제정을 관철함으로써 '수 통제의 흑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로스쿨 교수 역시 "변호사 적정수 개념은 그 자체가 허위의식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리저리 가공하여 변호사시험의 합격자수를 통제하고자 하는 발상은 너무도 대국민 기만극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또 "정녕 변호사들의 '질' 저하, 즉 법률서비스시장의 실패가능성이 문제된다면 이는 사후규제 방식, 즉 일탈적인 변호사들에 대한 징계와 퇴출 등의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 교수에 따르면, 스웨덴, 덴마크 등은 터키, 그리스 등에 비해 변호사 자격 취득의 진입장벽이 낮고 위법 부당행위에 대한 사후규제가 보다 원활하다. 한마디로 일정 자격만 갖추면 누구나 변호사가 될 수 있으나, 사건청탁이나 로비 등의 일탈이 있으면 그 자격이 박탈되기 쉬운 구조다. 한상희 교수는 이것이 우리의 변호사 자격도 이러한 방식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한 교수는, "변호사들은 '굶주린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이 굶주린 변호사'라고 하는데 이는 국민에 대한 일종의 협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변호사의 특권을 유지시켜주지 않으면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으니 조심하란 식의 말을 하며 감히 그 특권을 국민에게 요구할 수는 없다는 취지로 보인다.    

치킨집이 너무 늘어 치킨집 사장님들의 고충이 크다고 한다. 최근 코로나19로 그 고충은 더욱 극심할 테다. 그런데 이를 '신규 치킨집 금지'로 푼다면? 법적으로 볼 때, 치킨집과 같은 업종에서 일정한 절차를 거쳐 적법하게 시장에 뛰어드는 신규 자영업자의 수를 인위적으로 통제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 경제의 원칙인 자유시장주의에 따른다면 치킨집 수가 늘면 수요공급법칙에 따라 치킨집을 운영할수록 적자만 쌓이는 곳들은 점차 문을 닫게 되며 그 적정 수가 자동조절 되니 또 이를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물론 우리 경제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만큼 창업에 실패한 이들을 정부가 완전히 껴안아 다시 창업을 시작하거나 노동시장에 뛰어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데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의 전문직에 대해 지금까지 법무부는 참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 왔다.

하나 더. 전문직을 둘러싼 '수 통제'를 보다 국민의 입장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번 연재 중 김누리 교수 인터뷰에서 독일의 서열화되지 않은 교육과 사회를 소개했다. 그는 독일교육이 '서열화된 교육', '경쟁교육'을 극도로 지양한다면서, 독일의 교육기관들은 대학들까지 모두 서열이 없어 누구든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원하는 시기에 진학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대 등 이른바 인기학과는 수요가 공급보다 많아 정원제한학과로 운영되기는 하나 그 경우에도 '추첨'이나 '대기기간'이 고려되어 최대로 그 교육 기회를 평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또 독일에선 상대평가 자체가 없어 고등학교졸업자격시험을 통과하면 대학에 진학할 수 있고, 전문직들은 관련한 절대적 기준을 갖추면 그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앞선 김누리 교수의 인터뷰를 참고하기 바란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31581)

한편 독일 등 유럽‧북유럽은 교육평등만큼 사회평등을 추구한다. 대부분의 북유럽 나라들에서 의사는 공무원이고 국민의 의료비 부담은 거의 무료이므로 구글에서 스웨덴어 등으로 '의료봉사'를 찾으면 관련 단어가 아예 나오질 않는다. 독일의 경우 의료보험과 유사한 법률비용보험제도가 도입되어 있어 시민들은 평소 소액의 보험료를 지급하며 언제든 법적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소송을 시작하더라도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는다. 또 이는 일선 변호사들이 막대한 성공보수는 받지 못하더라도 일정 정도의 보수를 보장받으며 안정된 삶을 살게 해준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기사를 참고해주시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24043)

물론 우리나라에도 형사소송에서 저소득층이 무료로 국선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법률복지제도가 있긴 하다. 또 마을변호사 제도 등이 도입되기도 했다. 그러나 (북)유럽과 같은 보편적 법률복지는 우리 법조계의 방향조차 아닌 듯하다. 다만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형사공공변호인 제도(피의자 국선변호인 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7년부터 법무부는 이를 수사 단계의 피의자에게도 무료변호를 제공하는 제도 도입을 추진했고 지난해 8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은 인사청문회 준비단을 통해 그 추진을 약속하기도 했다. 지난 연재에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최고의원은 형사공공변호인 제도 실현을 위해 노력한다며 이를 법률복지의 차원에서 소개하기도 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24031)

그러나 지난해 12월 법무부가 그 시행을 위해 편성한 예산 18억여 원이 국회 본회의 과정에서 전액 삭감됐다. 국회는 근거법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했지만 2017년부터 이에 대한 변협의 강력한 반발이 있었음을 생각하면 그 과정이 순탄치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리고 오는 4.15 총선에선 집권여당인 민주당조차 관련한 공약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며칠 남지 않은 총선. 앞서 밝혔듯 위 전문직들과 관련해 그 수의 획기적인 증원과 공공영역에서의 대안을 포괄적으로 언급한 정당이 있는가 하면 (국회에 관련 직종 출신이 유독 많아서인지) 상반된 관련 단체들 모두가 '기만적'이라고 비판하는 방송통신대학 내지 야간대학을 통한 약간의 증원으로 당장의 비난을 피하려는 정당이 있다.

또 관련 교육기관의 입학 정원 수 증대 등을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는 정당도 있다. 한편 각 전문분야의 공공성 강화 방안과 관련해 공공의대에 대해서도 정당별 입장차가 있고 형사공공변호인제도에 대해선 어느 정당도 공약을 제시하지 않지만 종전의 태도로 미루어 그 입장을 짐작할 수 있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런 주제의 글에 꼭 나오는 반론이 하나 있습니다. “고시는 원래 다 어렵다. 공무원시험 경쟁률이 얼마인지 아느냐”가 그것입니다. 하지만 전문직과 공무원은 비슷한 유형의 직업이라 할 수 없습니다. 전문직은 자격을 취득한 후 그 자격으로 스스로 취업하거나 개업해야 하지만 공무원은 국가가 보수를 지급하며 정년을 보장해야 합니다. 따라서 공무원의 경우 아무리 많은 이들이 그 자격 취득을 원하더라도 정부의 예산 문제로 ‘일정 수 선발’이 있을 수밖엔 없습니다.(이에 대해 이경숙 교수는 「시험국민의 탄생」에서 공무원시험 과열 문제의 해법으로 원하는 모든 이에게 공무원자격을 주며 사회 곳곳을 공공화하는 방법을 제안해보기도 하지만 이는 일단 차치하겠습니다.) 글의 맥락상 이 부분을 따로 떼어 담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태그:#전문직과 피라미드, #교육평등 사회평등, #4.15총선, #로스쿨, #변호사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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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고, 로스쿨생이었으며, 현재 [법률사무소 이유] 변호사입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남매둥이의 '엄마'입니다. 모든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를 위한 '교육혁명'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씁니다. (제보는 쪽지나 yoolawfi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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