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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도로 가는 배에서 본 점암선착장 풍경. 점암에서 수도, 수도에서 임자도를 잇는 연도교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임자도로 가는 배에서 본 점암선착장 풍경. 점암에서 수도, 수도에서 임자도를 잇는 연도교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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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활짝 벙글어졌다. 이내 마음도 설렌다. 신안 임자도로 가는 길이다. 새봄을 깊이 호흡하고 싶어서다. 하지만 도로 이정표에서 '임자도'를 찾을 수 없다. '점암'이 있고, '대광해수욕장'이 있을 뿐이다. 점암은 임자도로 들어가는 배를 타는 곳, 대광해수욕장은 임자도에 있는 해변이다. 대광해수욕장으로 더 알려진 임자도다.

대광해수욕장은 우리나라의 해수욕장 가운데 가장 크다. 백사장의 길이가 무려 12㎞, 30리에 이른다. 광주시청에서 조선대학교까지의 거리에 해당된다. 폭도 넓다. 바닷물이 빠지면 300m에 달한다.

임자도에 가서 드넓은 백사장을 혼자서 차지할 생각이다. 코로나19로 지친 몸과 마음을 위무받고, 형형색색으로 일렁이는 튤립도 보고 싶어서다. 임자도를 '그림의 섬'으로 만든 우봉 조희룡도 만날 예정이다. 시와 글씨, 그림에 빼어난 재능을 보인 조희룡은 조선문인화를 개척한 인물이다.
     
임자도행 배를 타는 신안군 지도읍 점암선착장에 닿았다. 햇살은 차안에서 느끼던 그대로인데, 바람이 다소 거칠다. 꽃비를 부르는 바람이다. 선착장은 한산하다. 오가는 사람도, 자동차도 드물다. 바다를 보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다. 기분이 좋다. 가슴 속까지 후련해진다.

점암과 임자도를 연결하는 연도교 공사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예정대로라면 내년 이맘때엔 차를 타고 임자도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사실상 배를 타고 찾아가는 마지막 임자도 여행인 셈이다.

꽃을 피었지만 사람은 올 수 없고...
 
전국 해수욕장 가운데 가장 긴 백사장을 지닌 신안 임자도 대광해수욕장. 흐린 날시에 파도까지 거세게 일고 있다.
 전국 해수욕장 가운데 가장 긴 백사장을 지닌 신안 임자도 대광해수욕장. 흐린 날시에 파도까지 거세게 일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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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암에서 탄 배가 20여 분만에 임자도에 내려준다. 먼저 찾은 곳은 대광해수욕장이다. 민어 조형물이 먼저 반긴다. '백성의 고기' 민어는 대광해수욕장 앞 섬타리(타리섬)에서 많이 잡힌다. 섬타리에 민어파시가 형성되면 민어잡이 배와 상인들로 넘쳐났다. 오래 전 이야기다.

민어 산란기인 7월이 되면 하우리포구에서 민어를 잡으러 나가는 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지금은 그때처럼 민어가 푼더분하게 나지 않지만, 명맥을 잇고 있다. 근해에서 병어와 꽃게도 많이 잡힌다. 새우젓과 천일염도 특산이다.

그렇다고 임자도가 수산업을 주로 하는 섬은 아니다. 섬주민 대부분은 흙에 기대어 살고 있다. 벼농사를 짓고, 대파·양파를 많이 심는다.

바닷바람이 매섭다. 날씨도 음산하게 흐리다. 바다에서 밀려드는 물살도 거칠다. 호젓한 백사장을 온전히 내것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춥다.
 
신안 임자도에 있는 튤립공원 전경. 해마다 튤립꽃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올해는 코로나19 탓에 꽃축제를 취소했다.
 신안 임자도에 있는 튤립공원 전경. 해마다 튤립꽃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올해는 코로나19 탓에 꽃축제를 취소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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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 앞에 있는 튤립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축제가 취소된 튤립공원의 문이 굳게 잠겨있다. '내년 축제 때 쓸 튤립 우량종구 생산을 위해 부득이하게 꽃봉오리를 일찍 제거했다'는 안내문도 붙어있다. 튤립축제 취소는 익히 알고 있었는데, 꽃봉오리까지 없애버릴 줄은 미처 몰랐다.

허탈한 마음으로 공원 울타리를 따라 걷는데, 아직 일부 꽃봉오리가 남아 있다. 축제에 맞춰 심어놓은 유채꽃밭도 노랗게 물들었다. 코로나19가 훼방놓지 않았다면, 여행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을 꽃들이다.
 
임자도 이흑암리 마을 전경. 마을 주변에 대파와 양파가 많이 심어져 있다. 가까운 데에 바다가 자리하고 있다.
 임자도 이흑암리 마을 전경. 마을 주변에 대파와 양파가 많이 심어져 있다. 가까운 데에 바다가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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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이흑암리로 간다. 이흑암리는 조선후기 문인화가 조희룡이 유배 와서 3년 남짓 머물던 곳이다. 우봉 조희룡(1789~1866)은 한국문인화의 최고봉으로 통한다. 그의 대표작품 19점 가운데 8점이 임자도에서 나왔다.

환갑이 넘은 조희룡을 유배길에 서게 한 건 1851년 예송논쟁이었다. 제주도로 유배 간 추사 김정희와 아주 가깝다는 게 이유였다. 유배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억울했다. 유배 와서 본 임자도의 생활상도 암울했다. 한동안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았다.

계절이 바뀌면서 섬과 섬사람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매화 그림을 선물했다. 섬사람들도 흡족해했다. 시나브로 집집마다 그의 그림이 한 점씩 걸렸다. 조희룡과 지역주민들 사이의 공감대가 이뤄졌다.
         
조희룡의 그림 소재도 매화에서 대나무, 돌로 넓어졌다. 매화에다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버무린 '매화도'에 이어 임자도의 자연을 소재로 한 묵죽도, 괴석도를 그렸다. '황산냉운도(荒山冷雲圖)'는 유배지에서의 심정과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화법에도 갈수록 개성이 묻어났다. 그의 예술세계를 한층 무르익게 한 임자도에서의 유배생활이었다. 조희룡은 차분히 이론을 정리하며, 절정의 기량을 뽐냈다. 경지에 올랐다. 〈화구암난묵〉 등 산문집과 시집, 그림이론서 등 많은 저술도 이때 남겼다.
 
'나는 한양의 번화한 거리에서 황량한 산과 고목 그리기를 좋아했다. 엉성한 울타리와 초가 사이에 사람을 그리지 않아 흡사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았다. 지난날 내가 그린 그림 속의 사람 없는 집이 지금 내가 사는 집이 되었으니...(중략)... 나의 바다 밖 귀양살이는 진실로 면할 수 없는 것이었는가? 연기, 구름, 대나무, 돌, 갈매기가 지금 그림의 정취를 나에게 제공하고 있으니, 내 어찌 그림 속의 사람이 되지 않겠는가...'
 
그의 산문집 '화구암난묵(畵鷗盦讕墨)'의 한 구절이다.
         
'그에게는 불운, 주민에게는 행운'이라는 말의 뜻

조희룡은 갈매기 1만 마리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에 움막을 짓고 살았다. 집에는 '만구음관'이라고 쓴 편액을 내걸었다. 이흑암리에 만구음관이 복원돼 있다. 마을 앞에 조희룡 적거지 표지석과 기념비도 세워져 있다.

이흑암리는 임자도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을 품고 있는 대둔산(320m)과 삼각산(214m)의 산그늘이 커 해가 일찍 넘어가고 어둠이 빨리 찾아온다고 '이흑암'으로 이름 붙었다. 대둔산 아래 여섯 군데에 마을이 터를 잡고 있다고 '육암', '육바구'로도 불린다.

이흑암마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566년으로 전해진다. 평산 신씨 삼형제가 이주해 오면서부터다. 마을이 뭍으로 알려진 것은 유배돼 온 조희룡 덕분이다. 유배는 당사자한테 불운이고 비극이지만, 지역주민들한테는 행운이고 축복이라는 말이 회자되는 것도 이런 연유다.
 
신안 임자도 이흑암리에 세워져 있는 도로 이정표. 대머리, 어머리 등 마을 이름이 눈길을 끈다.
 신안 임자도 이흑암리에 세워져 있는 도로 이정표. 대머리, 어머리 등 마을 이름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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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앞에 세워져 있는 도로 이정표가 눈길을 끈다. 왼편으로 대머리, 곧바로 가면 어머리해수욕장과 은동이다. 대머리는 마을의 지형이 두 개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두머리'라 불렸다. 평범한 어촌마을이다.

어머리는 지형이 물고기의 머리를 닮았단다. 백사장 길이 1700m의 어머리해수욕장(육암해수욕장)이 있다. 대광해수욕장에 비하면 코딱지만 하지만, 제법 크다. 손톱만 한 엽낭게들이 동글동글한 모래 구슬을 백사장에 가득 빚어 놓은 것도 정겹다.

어머리해수욕장은 왼쪽 끝자락에 있는 용난굴로 더 알려져 있다. 이무기가 바위를 깨고 나와 용이 되어 승천했다는 전설이 깃든 굴이다. 조희룡에게 매화도의 영감을 준 굴이기도 하다.

바닷물이 빠지면 150m의 굴이 문을 열어 사람들을 맞는다. 굴은 절벽 아래에서 위아래로 길게 뚫려 있다. 입구는 웅장한데, 들어갈수록 좁아지는 모양새다. 높이 5m, 폭 2m 안팎에 이른다. 바닷물이 들면 굴이 절반쯤 물에 잠기면서 반대쪽 물길과 통한다.
     
"초등학교 때 단골 소풍 장소였습니다. 친구들의 놀이터였고. 개구리 뒷다리를 미끼로 써서 꽃게 낚시도 자주 했죠. 낙지도 잡고, 여름이면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도 하고. 조금 커서는 여학생이랑 만나는 데이트 장소였어요."

이흑암리에서 나고 자라 지금은 대처에서 살고 있는 허경안(54)씨의 말이다. 그는 지금도 어머리해수욕장과 용난굴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이 환해지며 천진하게 웃는다. 금세 목소리도 커진다.

어머리해수욕장에서 산길을 한 굽이 돌아가면 아담한 은동해수욕장이 나온다. 조희룡이 즐겨봤다는 '은동에 뜨는 달'을 만날 수 있는 해변이다. 바로 앞에 떠 있는 조그마한 옥섬도 아늑하다.
 
어머리해수욕장에 있는 용난굴.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깃든 굴이다. 우봉 조희룡에게 매화도의 영감을 준 굴이기도 하다.
 어머리해수욕장에 있는 용난굴.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깃든 굴이다. 우봉 조희룡에게 매화도의 영감을 준 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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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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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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