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4선 의원에 도전하는 정치인 '주상숙(라미란)'. 여느 때처럼 '박희철(김무열)'의 도움을 받아 선거유세를 펼친 후 그녀는 세상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그러나 이름을 바꾸고 멀쩡히 살아있는 할머니 '김옥희(나문희)'를 만난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계속되는 상숙의 거짓말에 진저리가 난 옥희는 그녀가 거짓말을 안 하고 살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고, 그 결과 상숙은 그 어떤 거짓말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서독의 첫 번째 총리였던 콘라트 아데나워의 어록 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 "국민들에게 늘 거짓말만 늘어놓지는 않았다." 이 한 마디는 아마도 국적을 불문하고 일반 시민들이 정치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표현일 것이다. 공약을 지키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때때로 자신의 과거 발언까지도 뒤엎는 정치인들에게 시민들이 실망하는 경우가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에 실망감은 유권자와의 약속을 지키는 정직한 정치인에 대한 염원을 낳기도 한다. 장유정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라미란 배우가 주연을 맡은 <정직한 후보>는 시민들의 이러한 보편적인 실망감과 염원을 코미디로 풀어낸다.  

<정직한 후보>는 코미디 영화로서의 본분을 다하며 여러 방면으로 웃음을 선사한다. 우선 영화는 정치인들의 흔한 모습을 그럴싸하게, 또 과장을 보태 풍자한다. 영화는 선거 홍보 영상을 검토하는 주상숙의 선거 캠프 회의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첫 장면에서부터 팩트가 아닌, 팩트가 만들 임팩트만을 고려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희화화하며 현실의 공감으로부터 웃음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풍자는 거짓말을 못하는 주상숙이 동료 정치인과 후원 기업인들에게 쓴소리를 거침없이 내뱉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는 중후반부에 더 큰 웃음과 시원한 쾌감을 유발하는 장치로서도 기능한다.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 수밖에 없는 정치인이라는 직업의 특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결과다. 

또한 정치와 관련된 사건들을 벗어난 일상적인 사건들도 중요한 웃음 포인트다. 주상숙이 시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대목이 대표적인 예시다. 그녀의 직언은 핵심이 모호하고, 그 빈자리를 청자가 채워 넣어야 하는 커뮤니케이션이 만드는 답답한 분위기를 통쾌하게 무너뜨린다. 이러한 웃음코드는 특히 걸 크러쉬라는 표현으로 대변되는 라미란 배우의 매력과 적절히 어우러지면서 러닝타임 내내 큰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내 몇 가지 문제점을 노출한다. 우선 '과유불급'처럼 느껴진다. 아무런 맥락 없이 등장하는 액션 신과 아모르파티를 차용한 선거 로고송 장면은 코미디를 표방하는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융화되지 못한 채 어색하게 남을 뿐이다. 사학비리, 병역 특례, 취업 특혜 등 한국 사회의 여러 부조리들을 짧은 러닝타임에서 다루려고 한 결과 각각의 사안들은 그 중요도에 걸맞은 분량을 받지 못한 채 웃음을 위한 도구로 단순하게 소비되어 버린다. 

더 나아가 영화는 신파로 마무리되는데, <극한직업>과 같은 작품들이 이미 신파 없이 일관된 분위기로 영화를 마무리할 수 있는 길을 보여준 상황에서 <정직한 후보>의 결말은 올드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이 영화의 신파는 작중 개연성을 무너뜨리는 악수이기도 하다. 영화는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김옥희가 죽지 않았으며, 신분 세탁을 했다는 등 다소 황당한 설정 위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사실 일정 수준의 개연성을 포기하는 것이 용납되는 코미디 장르에서는 이러한 당황스러운 상황 자체가 웃음을 유발하며 영화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코미디에서 신파로 영화가 전환되는 순간, 코미디라는 이유로 모르는 척했던 스토리의 허점은 고스란히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할머니의 생사까지 이용하면서 정치인으로 살아가는 이기적인 인물이 할머니를 깊이 사랑하는 손녀로 변하는 과정을 작위적으로 느껴지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정직한 후보>는 시어머니에게 직언하고, 전부 백수인 남편과 아들에게 상숙이 사회의 일꾼이 되라고 소리치는 장면 등 단편적으로 떼어 놓고 보면 쾌감을 줄 수 있는 장면들을 다수 등장시킨다. 이 영화가 < O Candidato Honesto >라는 제목의 브라질 영화의 남성이었던 주인공 성별을 여성으로 전환시킨 리메이크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의도성이 있는 에피소드들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영화는 무능력한 남성들을 묘사하지만, 반면 극 중에서 여성들의 능력에 대해서는 전혀 묘사하지 않는다. 현역 3선 의원이라는 주상숙만 봐도 그렇다. 영화는 그녀가 정치 술수에 능하며 정경유착을 하고 있는 인물로 소개하며, 화려한 그녀의 이력 중 몇몇은 이내 거짓 혹은 조작된 것으로 드러난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정직해졌다는 이유만으로 징역을 살고 나온 상황에서 서울시장에 도전할 수 있다는 전개는 설득력을 갖추기 어렵다. 여성이 주인공인 것과는 별개로 그녀의 언행에 개연성과 당위성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며, 그 결과 그녀가 어떤 메시지를 말하든 간에 효과적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지난 2월 12일에 개봉한 <정직한 후보>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덮친 극장가에서 거의 유일하게 생존한 영화다. 개봉 당시 아카데미를 휩쓴 < 1917 >, <작은 아씨들>과 같은 작품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손익분기점을 넘겼기 때문인지 몰라도, 뒤늦게 접하는 입장에서 영화에 대한 기대는 적지 않았다. 

물론 영화는 15일이라는 날짜를 비춰주면서까지 선거와 정치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려고 한 일차적인 목적을 달성한 듯 보인다. 하지만 무리한 전개와 올드한 스토리텔링으로 소재의 잠재력을 오롯이 활용하지 못한 결과, <정직한 후보>는 코미디 영화로서의 본분만을 간신히 다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원종빈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 게재한 글입니다
영화리뷰 정직한 후보 선거 라미란 코미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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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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