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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을 만나다 보면 도시재생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얘기를 많이 듣게 된다. 재개발을 원하는 지주들이야 그렇다고 해도, 임차인인 상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보기에 세운상가의 경제는 내리막이며 도시재생으로는 이를 역전시키기에 역부족이다. 한마디로 도시재생은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진단이다.

'이런 구닥다리 상가에 이런 사업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중고를 팔기 때문에 깨끗할 필요가 없다.' 최근 상가 영업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상가를 찾은 활동가와 디자이너가 들었던 얘기다.

도시재생에 대한 불신은 이렇게 자포자기의 심리를 깔고 있다. 자포자기의 심리가 80년대 이후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면 도시재생에 대한 불신은 다시세운프로젝트가 진행된 최근 5년의 경험에 근거한다.

다시세운프로젝트 초기 보행길 공사가 진행될 때 이로 인한 피해와 불편을 고스란히 감내했지만, 유동인구가 늘어나고 그에 따라 카페와 음식점이 들어서면서 상인들은 임대료가 싼 공간을 찾아 위층으로 안쪽으로 옮겨야 했다.

'우리 상가를 바꿔주세요' 사업이란

상가 내부의 영업 환경을 바꾸는 '우리 상가를 바꿔주세요(이하 우상가)' 사업을 기획하게 된 계기도 같은 인식이다. 도시재생 5년 차에 접어들면서 도시재생의 편익을 상인에게 좀 더 돌아가게 하자는 취지였다.

이를 위해 지난 11월과 12월에 걸쳐 디자인 연구를 진행했다. 디자이너와 활동가가 살펴본 상가 내부는 심각한 상태였다. 천장엔 기능을 잃은 파이프들이 위태하게 달려 있었고, 복도엔 점포에서 내놓은 짐들이 쌓여 있어서, 이곳이 현재 영업을 하는 곳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복도 양쪽으로 쌓아놓은 짐 때문에 보행도 어렵고 위험했다.
▲ 영업 환경 개선 사업을 하기 전 상가 내부 복도 양쪽으로 쌓아놓은 짐 때문에 보행도 어렵고 위험했다.
ⓒ 엠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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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에 쌓인 물건을 치우고 보행 환경을 개선하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았다. 쓰레기를 치워준다는 방송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1t 트럭 4대 분량의 쓰레기가 나왔다. 그럼에도 복도의 물건들은 줄어들 줄 몰랐다.

 
영업환경 개선을 위해 상가 내 묵은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 쓰레기 처리 모습 영업환경 개선을 위해 상가 내 묵은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 엠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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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와 상인의 줄다리기 끝은?

복도의 물건을 치우자, 못 치운다, 디자이너와 활동가들과 상인의 줄다리기가 한동안 이어졌다. 꼬박 두 달간 준비한 디자인이지만, 상가 내부를 바꾸기는커녕 공용공간인 복도도 건드릴 수가 없었다. 결국 선반을 디자인 해 주는 것으로 절충했다.

상가 활성화라는 당찬 포부를 안고 시작한 사업이 고작 '쓰레기 정리'와 '선반 보급' 사업으로 움츠러들었다. 그나마도 사업에 참여한 업소는 8개에 불과했다. 디자인 시안을 손에 쥐었을 때의 설렘은 사라지고, 활동가들은 '쓰레기 처리'가 도시재생인가 자문했다. 이러니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비아냥을 듣는가 싶었다.

그러나 점포들이 하나 둘 바뀌면서 다른 상인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즈음 문을 연 전시공간 '우리 상가 상담소(이하 상담소)'도 한몫 톡톡히 했다. '상담소'를 찾은 상인들은 '우상가' 사업 디자이너의 초기 구상을 엿볼 수 있었고, 상가에 품었던 바람을 꺼낼 수가 있었다. 덕분에 참여 업소는 29개로 늘어났고, 애초의 계획대로 상가 내부를 개선한 모델 점포도 하나 만들 수가 있었다.
 
1차 개선 사업이 마무리되었을 때 상가 한 쪽에 '우리 상가 상담소'를 열어 상인과 활동가, 디자이너의 소통 창구로 삼았다. 이후 사업 참여자들이 큰 폭으로 늘었다.
▲ 우리 상가 상담소 1차 개선 사업이 마무리되었을 때 상가 한 쪽에 "우리 상가 상담소"를 열어 상인과 활동가, 디자이너의 소통 창구로 삼았다. 이후 사업 참여자들이 큰 폭으로 늘었다.
ⓒ 이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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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소를 찾은 상인이 상가에 바라는 바를 엽서에 적고 있다(가운데). 이 내용은 전시장에 게시되어 상인들 간에 공유되었다(오른쪽).
▲ 우리 상가 상담소 상담소를 찾은 상인이 상가에 바라는 바를 엽서에 적고 있다(가운데). 이 내용은 전시장에 게시되어 상인들 간에 공유되었다(오른쪽).
ⓒ 이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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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 상인들 사이로 한 걸음 들어가다

사업을 마무리하며 질문 하나가 남는다. 과연 우상가 사업이 이곳을 활성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까?

우상가 사업은 우리 활동가와 디자이너가 상인들 사이로 한 걸음 들어간 계기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그건 물리적 거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상인들에 대한 이해도 한층 깊어졌다. 복도의 짐들을 비우려다가 오히려 이 짐들을 쌓을 수 있는 선반을 놓아드리게 된 것은 지금 이 상태가 생계를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걸, 디자이너와 활동가들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혼내시는 건 참겠는데, 삿대질은 못 참겠어요.' 사업 초기, 중장년의 화법이나 태도를 이해하지 못했던 한 활동가는, 이번 사업이 끝나면 상가 내 오래된 문구점의 판촉 행사를 기획하겠다고 한다. 캐드를 쓰는 시대에 아직도 제도기를 팔고 있는 이곳의 오래된 상품을 레트로 감성으로 포장해 홍보해보겠단다.

그 문구점은 마지막까지도 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업소이지만, 청년 활동가는 그 상인이 왜 참여할 수 없었는지 이해했고, 상인에게는 청년들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이곳의 역사와 보물을 이해하는 감식안은 덤이다. 어쩌면 상인과 젊은 활동가와 디자이너가 말문을 튼 것이 이번 사업의 가장 큰 성과일지도 모른다.
 
디자이너(오른쪽)와 상인들이 디자인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번 사업의 가장 큰 성과라면 청년 디자이너와 중장년 상인들이 말문을 연 것이 아닐까.
▲ 디자이너와 상인 디자이너(오른쪽)와 상인들이 디자인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번 사업의 가장 큰 성과라면 청년 디자이너와 중장년 상인들이 말문을 연 것이 아닐까.
ⓒ 엠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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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들, 도시재생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가다

우상가 사업은 상인들이 도시재생으로 한 걸음 들어온 계기도 되었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공공성의 영역으로. 흔히 우리나라 도시재생의 특징이 '관 주도'라 한다. 이 관 주도의 도시재생이 거침없이 진행되다가 제동이 걸리는 곳이 바로 사유지와 공유지의 경계다.

주민공모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주민이 문을 열 때 비로소 도시재생 예산은 사유지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지만, 그것도 공유지분 또는 공용시설에 한해서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그간 방치했던 우리 주변의 '공공'을 살피게 된다.

이번 우상가 사업도 마찬가지다. 상인들이 보기에 '공연한 수선' 같았던, 청소와 선반 놓기가 진행되자 복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상인들이 '딜'을 시작했다. '너희 것도 치우면, 나도 치우겠다.' 아직은 조건부지만 점포 앞 노란선 안쪽이라고 해서 '나만의 공간'이 아님을, '모두의 공간, 공공 공간'임을 서로가 배우고 있음은 분명하다.
 
보기에도 좋지 않지만 안전에도 큰 위협이었던 천장의 노후된 파이프를 깨끗하게 정리하였다. (왼쪽-시공 전, 오른쪽-시공 후)
▲ 천장 파이프 철거 보기에도 좋지 않지만 안전에도 큰 위협이었던 천장의 노후된 파이프를 깨끗하게 정리하였다. (왼쪽-시공 전, 오른쪽-시공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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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포마다 판매 물품, 서비스에 맞추고 가게의 개성을 살려 입면을 바꾸었다.
▲ 시공 전(왼쪽)-후(오른쪽) 점포마다 판매 물품, 서비스에 맞추고 가게의 개성을 살려 입면을 바꾸었다.
ⓒ S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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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용 공간에 들어선 점포를 견본 상가로 리모델링하여, 점포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선보였다.
▲ 시공 전(왼쪽)-후(오른쪽) 공용 공간에 들어선 점포를 견본 상가로 리모델링하여, 점포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선보였다.
ⓒ S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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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에 쌓아 놓을 수밖에 없는 물품은 선반을 제공하여 정리하게 하였다.
▲ 시공 전(왼쪽)-후(오른쪽) 복도에 쌓아 놓을 수밖에 없는 물품은 선반을 제공하여 정리하게 하였다.
ⓒ S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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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반에 문을 달아 미관을 개선하는 안도 논의하였으나, 이때 영업에 지장이 있음을 알고 개방형으로 마감하였다.
▲ 시공 전(왼쪽)-후(오른쪽) 선반에 문을 달아 미관을 개선하는 안도 논의하였으나, 이때 영업에 지장이 있음을 알고 개방형으로 마감하였다.
ⓒ S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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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우상가' 사업이 그 자체로 어떤 전환을 이룰지는 속단할 수 없다. 언 발의 오줌이 될지, 영업환경 개선의 마중물이 될지는 행정과 중간 지원 조직 그리고 상인 모두에게 달려 있다. 하지만 이번 사업을 통해서 소통의 맛, 참여의 맛, 협업의 맛을 제대로 맛본 것만은 틀림없다.

도시재생이 고기를 잡아주지는 못하고, 때로는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것 같지도 않지만 이렇게 고기의 맛을 느끼게는 해준다면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글을 맺기 전에

한 가지 바로잡을 것이 있다. 앞서 도시재생에 대한 불신엔 상인들의 자포자기 심리가 깔려 있다고 진단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아무래도 우리들의 오판 같다.

앞서 소개한 '상담소'는 우리가 전시장으로 꾸미기 전에는 같은 층 한 가게에서 창고로 쓰던 공간이다. 이곳 임대인이 '차라리 비우지 창고로는 안 되겠다'며 임대료를 20에서 35만 원으로 올리자 그 가게에서 짐을 뺀 곳에 우리가 상담소를 차린 것이다.

상인들의 눈엔 결국 '도시재생'이 임대료를 올리는 '새로운 수요'를 만든 셈이다. '세운상가는 앞으로 저렴한 물류 창고로 쓰는 수밖에는 없다'는 상인들의 자포자기, 도시재생에 대한 거부는 생존을 위한 완강한 외피이자 치밀한 보호색이 아니었을까?

어떤 이들은 이를 보고 도시재생의 필연이라 한다. 그러나 도시재생 이전에 이곳은 초록띠 공원이라는 개발의 바람이 휩쓸었고, 그 여파는 최근까지도 주변 지역에 계속되고 있다. 재정비촉진지구가 대거 해제된 지금은 또 재건축의 바람이 불지 모른다.

세운상가도 마찬가지다. 당장 이 지역 재정비촉진지구가 해제된다고 하자 세운상가 재건축을 위한 소위 '지주 작업'이 꿈틀대고 있다. 어떤 상인들의 바람처럼 이곳이 저렴한 물류창고가 되도록 '가만히 두는' 일은 없을 것이다.

상인들이 스스로 이곳을 가꾸고 지키려는 바람을 일으키지 않으면, 그 진공을 채우는 것은 임대 수익률만을 유일한 법칙이자 원리로 삼는 자본일 것이다. 도시를 둘러싼 힘은 진공을 허락하지 않는다.

'역설'이지만 그래서 이런 활동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 도시재생의 효능감을, 참여의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활동말이다. 도시재생이든, 상인들 참여의 결실이든,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든, 그래 이 맛이야, 하고 다시 단단히 뭉칠 수 있는 활동들 말이다. 때로는 '언 발의 오줌 누기'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더라도.
 
사업 세부 내용
▲ "우리 상가를 바꿔주세요"  사업 세부 내용
ⓒ 최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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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다시세운프로젝트, #청계상가 3층, #우리 상가를 바꿔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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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네트워크(사) 대표. 문화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 지역 현장에 들어가 지역 이름을 걸고 시민대학을 만드는 'OO(땡땡)은대학' 프로그램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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