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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후, 서울 연남동에 위치한 가게 '해달밥술'을 찾았다. 편경자 대표는 "8년간 영업을 해왔지만 이번처럼 힘들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했다. 사진은 해달밥술 내부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연남동에 위치한 가게 "해달밥술"을 찾았다. 편경자 대표는 "8년간 영업을 해왔지만 이번처럼 힘들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했다. 사진은 해달밥술 내부다.
ⓒ 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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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가 잠잠했다. 묵직한 정적이 가게를 메웠다. 저녁 장사를 앞둔 이맘때면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소리와 함께 예약 문의가 들어와야 했다. 하지만 걸려오는 전화가 없었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남동 인근 가게 '해달밥술' 내부 풍경이다. 기자와 이곳 편강자 대표의 대화가 끊길 때면 커피 삼키는 소리만 귓가에 닿았다.

본래 이곳은 편 대표 말고도 직원 넷이 있어야 운영되는 곳이었다. 평일 점심 때면 가게가 꽉 차는 것은 예사였다. 미리 값을 지불하고서 매일같이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 인근 회사 직원들도 있었다. 저녁에는 행여 자리가 다 찼을까 예약하고 오는 손님들도 꼭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게 끊겼다. 몇 년간 이곳을 함께 채워왔던 가게 식구들의 목소리는 이제 없다. 이곳에서 최소 3년 이상 일했던 4명의 직원들을 2월과 3월에 걸쳐 모두 내보냈기 때문이다. 편강자 대표는 "2012년부터 8년간 서울 연남동에서 이 가게를 운영해왔지만 이렇게까지 텅 빈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반토막 난 매출... 직원 4명 내보내도 버틸 수가 없다

"지난 1월부터 매출이 절반 넘게 떨어졌어요. 심지어 올 4월 1일·2일에는 점심 손님이 한 명도 없었어요. 한 달 매출이 1700만 원은 나와야 가게 하나 유지할 수 있어요. 저한테 오는 것 없이 가게만. 월세·월급(직원 4명)·재료비·관리비 합하면 그 정도가 들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그것도 안 나와서 저축해놨던 돈에서 까먹고 있어요. 그마저도 이제는 한계예요. 사스, 메르스, 신종플루 등 대부분의 감염병 현장을 버텨왔지만 이렇게 힘들었던 적은 없었어요."
 
인터뷰 도중 편 대표가 지난해 3월 매출표를 보여줬다. 올해 3월에는 지난해에 비해 절반 가량 매출이 줄었다. 200만 원 가까이 매출을 올렸던 것과 달리 올해에는 10만 원 선에 그친 날도 매출액이 공란인 날도 있었다.
 인터뷰 도중 편 대표가 지난해 3월 매출표를 보여줬다. 올해 3월에는 지난해에 비해 절반 가량 매출이 줄었다. 200만 원 가까이 매출을 올렸던 것과 달리 올해에는 10만 원 선에 그친 날도 매출액이 공란인 날도 있었다.
ⓒ 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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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대표가 작년과 올해 3월의 매출표를 보여줬다. 눈에 띄는 것은 올해 3월 매출표에 보이는 공란이다. 매출이 '0'인 날도 있었다는 의미다. 그런가 하면 매출이 10만 원 선에서 그친 날들도 있다. 평균 90만 원, 많으면 200만 원까지도 벌었던 지난해와 극명한 차이가 난다. 

뒤이어 편 대표가 포스기(판매시점 정보관리시스템) 아래 선반에서 작년과 올해의 3~4월 예약장부를 꺼냈다. 작년과는 달리 올해 예약장부에는 빈 종이만 가득했다. 편 대표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종이를 열 장가량 넘겼다. 열흘이 넘도록 예약 손님 하나 없었다는 의미다.

갑자기 텅 비어버린 가게를 마주한 편 대표의 심경은 어땠을까?

"간혹 오시는 단골손님들이 있어요. 다 텅 비어 있는데 단골손님 혼자 가게 한구석에 앉아 있는 거죠. 그런데 이 모습을 제가 못 견디겠는 거예요. 단골손님도 이런 가게 모습을 처음 본 거라서 어쩔 줄을 몰라하고. 가게 뒤편에 가서 혼자 펑펑 울어요. 그렇게 또 울음 참고 반찬 만들고... 전 한식이 좋았고, 음식 만드는 게 좋았어요. 그리고 이 가게에서 손님들과 웃으면서 나누는 추억들이 좋았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는데..."

편 대표가 가슴을 쳤다. 이어 편 대표는 "손님이 오지 않으니 버리는 재료나 음식이 정말 많다"면서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발버둥 쳐도 4월을 넘길 수가 없다"고 말했다. 말을 잇던 도중 그는 울음을 몇 차례 삼켰다.

"요즘 제가 제일 속상한 건 준비해야 할 식자재 수마저 가늠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지금처럼 무방비로 있는데 누가 갑자기 '이모님 몇 명 갈게요' 이러면, 손님은 받아야 하니까 근처 소매마트로 갈 수밖에 없는 거죠. 평소처럼 도매상에서 재료를 사올 수 없는 거예요. 많이 사 오게 되면 절반 이상을 쓰지도 못하고 다 버리게 되니까요.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거죠."

인근 다른 가게들의 상황도 같다. 연남동 경의선 숲길 인근에 위치한 주류 판매점은 3월이 되자 매출이 80%까지 줄었다. 연남동 초입에 위치한 가게 '레이지버드'는 "평소 금·토·일 합쳐서 200만 원 정도 팔았다고 하면, 요즘은 50만 원을 판다"고 했다. 상인들 모두 연남동의 성수기는 3월부터라고 했다. 코로나19가 상인들의 봄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 셈이다.

배달서비스도, 정부 지원금도 대안이 되지 못했다
 
지난 3일 서울 연남동에 위치한 '해달밥술'에서 이곳을 운영하는 편경자 대표를 만났다. 인터뷰 도중 편 대표는 작년과 올해의 3, 4월 예약 장부를 꺼내왔다. 작년과 달리 올해 예약장부에는 빈 종이만 가득했다. 편 대표는 예약장부를 넘기면서 허탈한 듯 웃어보였다.
 지난 3일 서울 연남동에 위치한 "해달밥술"에서 이곳을 운영하는 편경자 대표를 만났다. 인터뷰 도중 편 대표는 작년과 올해의 3, 4월 예약 장부를 꺼내왔다. 작년과 달리 올해 예약장부에는 빈 종이만 가득했다. 편 대표는 예약장부를 넘기면서 허탈한 듯 웃어보였다.
ⓒ 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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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상인들은 궁여지책으로 배달서비스 활용에 나서고 있다. 편 대표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지만 반응은 회의적이다. "수수료가 너무 높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1일 국내 최대 배달업체 '배달의 민족'이 정률제 수수료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주문 성사 시 5.8%의 수수료를 부과하겠다는 것. 비난 여론이 들끓자 배달의 민족은 시정할 것을 약속했지만 자영업자들의 반응은 여전히 냉랭했다.

"아들이 저보고 배달서비스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알아보니까 배달 앱 수수료가 너무 높다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딱 재료비만 남는 건데 이렇게라도 해야 식자재는 댈 수 있으니까 고민하는 거예요. 저 아는 분이 배달서비스 통해서 가게를 하셨거든요. 장사 잘되는 줄 알았는데 결국 폐업하셨어요. 인건비랑 수수료 빼니까 남는 게 없었대요. 배달서비스를 해도 소상공인들 배 곯리는 건 여전한 거죠."

편 대표는 정부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마련한 '코로나19 1000만 원 긴급 대출'도 언급했다.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되레 빚만 지는 형국"이라고 했다.

"코로나19가 다음 달이면 끝날까요? 그렇지 않잖아요. 정부가 아무리 낮은 이자로 1000만 원 대출을 해준다고 해도 이 상태면 그 돈을 갚을 수가 없어요. 이 돈으로는 앞으로의 코로나19를 버틸 수도 없고요. 돈 1000만 원으로는 한 달 버티기도 어려워요. 회생 가능성이 없는 상태서 빚만 더 지는 거예요. 주변 상인들 대부분 받아도 소용이 없다고 해요."

편 대표는 "지금 상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평소처럼 매달 나가는 월세"라면서 "이걸 해결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는요, 차라리 정부가 돈보다도 돈 나가는 곳을 최대한 막아줬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서 착한 임대인 운동을 정부 차원에서 추진해주는 거죠. 저만 해도 가장 힘든 것 한 가지를 꼽는다면 매달 나가는 월세거든요. 들어오는 돈은 없는데 나가는 돈만 있으니까요."

"길이 있다면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할 것"

어느덧 편 대표와 인터뷰를 한 지 한 시간 반이 훌쩍 넘었다. 잠시 가게를 둘러보는데, 주방 선반 위에 놓인 선물 상자 한 개가 눈에 들어왔다. 천혜향이 든 과일 상자다. 개봉한 흔적은 없었다. 편 대표는 "오늘 단골 손님한테서 받은 건데 그대로 돌려보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단골손님이 저보고 힘내라면서 보내주셨더라고요. 이 밖에도 마스크 한 묶음을 주고 간 분도 있었고, 돈 봉투를 보내주신 분도 있었어요. 힘들어도 버티라면서요. 다 도로 돌려보냈어요. 이런 걸 받으면 되게 행복해야 하는데 부담스러운 거예요. 이걸 안 보내주면 그냥 다른 거 생각 안 하고 가게 문 닫을 것 같은데 이렇게 챙겨주시는 분들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고. 그래서 괜히 원망스럽기도 하고..."

결국 8년간 지켜온 이 가게도 부동산에 내놓는 상황까지 왔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가게를 보러 온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최근 편 대표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약을 먹고 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이런 상황에서도 저를 비롯한 상인들 모두 어떻게든 살아보려 한다"면서 당부 한 가지를 전했다. 

"올 12월까지 버티면 살아날 수 있겠죠. 그런데 이 상황에서 저희는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착한 임대인 운동을 정부 차원에서 해줘서 저희의 지출을 막아줄 수는 없는 걸까요? 길이 있다면 저희들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할 거예요. 더 늦기 전에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이 꼭 나왔으면 좋겠어요."

태그:#코로나19, #경제난, #소상공인, #자영업자, #연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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