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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총선을 앞두고 비로컬과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이 함께 '로컬에서 길찾기'라는 기획을 마련했다.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과 출산율 감소로 로컬이 빠르게 활기를 잃어가는 가운데 코로나19 사태가 더해지면서 지금껏 우리가 추구해온 삶의 방식을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로컬을 되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로컬에 희망은 있을까. 이런 물음에 답을 얻고자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로컬 전문가들을 만났다. 앞으로 5~6회에 걸쳐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 기자 말
 

전국 시군구 10곳 가운데 4곳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이른바 '소멸 위험 지역'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불리는 곳들이다. 이런 지역이 올해 100곳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7년 만에 20곳 넘게 늘었고 지방 대도시로 번지려는 조짐도 보인다.

지자체들은 인구 감소를 막으려 애쓰고 있다. 지금까지는 대규모 산업단지를 조성해 일자리를 늘리는 방법을 써왔다. 그렇게 만들어진 산업단지가 2011~2017년 200곳이 넘는다. 하지만 지자체들 간 제로섬 게임에 가까운 이런 방법으로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특히 국가산업단지와 달리 시군 지자체가 지정하는 일반산업단지와 도시첨단산업단지, 농공단지 등에선 미분양이 속출하면서 오히려 재정을 갉아먹고 있다.

로컬에선 단순 노무직이나 서비스업 일자리만 늘어난다는 점도 문제다. 머지않아 자동화로 사라질 수도 있어서다. 창의적 직종은 수도권과 대도시의 울타리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가 더해지면서 그나마 있던 제조업 일자리마저 흔들리고 있다.

그러다보니 청년들은 창업으로 몰린다. 지난달까지 중소벤처기업부가 공모한 '로컬크리에이터 활성화 사업'에는 3096명이 몰려 22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지역의 유산이나 특성 등에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을 접목한 창업가 또는 예비 창업가를 발굴해 육성'하려는 취지다. 20~30대가 63.2%였고, 서울에서 지원한 이들이 19.3%로 가장 많았다. 앞으로 이들을 뽑아 키우는 건 전국의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맡게 된다.

"사업보다는 사람에 투자한다는 기본 방향을 일관되게 지키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사업들은 대개 사업 위주다. 공모를 통해 어떤 사업을 선정해 돈을 주고 나면 그걸로 끝이다. 우리는 사업계획서를 받긴 하지만 사람에 초점을 두고 선정을 하고, 일단 선정이 되면 그 창업자가 시행착오를 통해 피보팅(사업 전환)을 하는 과정을 함께 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도움을 주려고 한다."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한종호 센터장의 말이다. 그는 중앙정부가 처음으로 '로컬크리에이터 활성화'를 내걸었다는 점에 기대를 걸면서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그는 네이버에서 10년을 일하다 지난 2015년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가 만들어지면서 초대 센터장이 됐다.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그는 그 시절 공부를 잘 했던 대부분이 그랬듯 서울에서 대학을 나오고 자리를 잡았다. 센터장이 될 때까지도 로컬에 큰 관심은 없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5년 사이 그는 강원도와 로컬에 깊이 빠진 듯 보였다. 최근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한 한종호 센터장을 지난 3월 센터에서 만났다.
 
한종호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장
 한종호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장
ⓒ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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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가 로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두 가지다. 하나는 소멸 위기를 맞고 있는 로컬의 회생을 위해 뭘 해야 하느냐라는 당위적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로컬의 잠재적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대안적 미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 측면이다.

수도권이 인력과 자본을 비롯한 모든 자원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서 지역의 자립적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다. 학교가 없어지고 버스 노선이 끊기고 병원과 상가가 문을 닫는 지경이다. 지금 이대로라면 로컬은 더 이상 존립하기가 어렵다."

- 대안적 미래라는 희망적 측면은 무엇인가.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 세계화가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지역 경제가 파괴되고 빈부 격차, 환경 파괴 같은 문제들이 심화됐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의 창궐 원인을 세계화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그러면서 휴먼 스케일의 복원, 그러니까 로컬 단위에서 지속 가능한 삶터를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져왔다. <오래된 미래>를 쓴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같은 분들이 대표적이다. 세계화의 대안으로서 로컬라이제이션(지역화)이라는 명확한 슬로건이 제시되었다.

우리나라도 후기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대량생산 대량소비에 의존하는 성장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자족적이고 지속가능한 마이크로 이코노미(작은 경제)를 만들어보자는 흐름이 커지고 있다. 마을만들기나 조합운동, 사회적경제 등에서 시작해 최근에는 밀레니얼 세대를 주축으로 하는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창업에 뛰어들고 있다. 아직은 기존 경제ㆍ사회 시스템의 변방에 머물고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지면서 로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고 본다."

- 여전히 수도권으로 쏠림은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5년간 가까이서 지켜보니 로컬에 희망이 보였나.
"로컬을 살리는 일이 수도권과 로컬 사이의 제로섬 게임은 아니다. 수도권은 수도권대로, 지역은 지역대로 함께 공진화 해 갈 수 있다고 본다. 수도권은 외국과 연결되는 한국의 관문이자 글로벌 중심 도시로서 그리고 우리 사회 시스템의 허브로서의 가치와 역할이 있다고 본다. 수도권에 있는 것을 로컬로 옮겨 놓는 게 대안이 아니다. 로컬이 자립적 경제, 혹은 지속 가능한 지역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의 문제다. 공존의 길을 찾는 것이다.

2015년 센터에 주어진 미션은 수도권에서와 마찬가지로 빅데이터, 인공지능 같은 테크놀로지 기반의 스타트업들을 육성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막상 와서 보니 뭔가 새로운 움직임이 보였다. 로컬이 가진 가치를 활용해 로컬에 최적화 된, 로컬 특유의 비즈니스를 새로운 감각으로 빚어내는 새로운 유형의 창업자들이 의외로 많이 눈에 띄었다. 요즘은 이들을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부르지만, 이런 이름이 생기기 전부터 현장에서는 이런 선구적 창업자들이 로컬 경제의 대안으로 하나 둘 등장하고 있었다. 이들이 로컬의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 균형발전이나 분권을 위한 노력은 꽤 오랫동안 있어왔다.
"지역을 살리려는 노력을 왜 안 했겠나. 하지만 대개는 실패했다. 그 원인을 잘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실패의 원인에 대한 반성과 성찰 그 너머에 로컬 크리에이터의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 그 원인이 뭐라고 보나.
"우선 정부나 지자체가 아직도 성장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큰 것 한 방을 노리는 것 같다. 한국 경제의 고속 압축 성장을 가능케 했던 건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이었다. 그러다 보니 정부나 지자체 모두 유행에 민감하다. 다른 지역에서 성과가 보이는가 싶으면 재빨리 베껴서 해보고는 같이 망한다. 혁신적인 작은 기업들을 많이 만들어 이들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내는 경험이 우리에겐 많지 않다. 그래서 대기업들이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지금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회계제도와 공무원 인사 시스템도 문제다. 공공회계는 1년 단위로 끊어진다. 그 해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이듬해 사업 예산이 사라질 수 있다. 공공 부문 사업은 장기적으로 기업을 키우거나 지역을 바꾸는 사업에는 예산이 갈 수가 없는 구조다.

공무원들의 순환 인사도 문젠데, 긴 호흡으로 어떤 사업의 결과가 만들어질 때까지 공무원이 자리를 지킬 수 없다. 그러다보니 결과, 즉 아웃풋이 아닌 인풋으로 강한 인상을 심어주려고 한다. 기공식을 성대하게 한다던가, 처음 투자에 참여한 기업의 수를 늘린다던가 하는 식이다. 정부의 성과 발표를 보면 대개는 인풋 자랑이다. 그래서 뭐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아웃풋을 평가하는 시스템이 없다. 실패해도 또 똑같은 걸 반복한다."

-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다른 방식으로 지원을 한다는 뜻인가
"우리도 정부와 지자체의 보조금을 받아 운영하지만 성격은 민간 재단법인이다. 조금은 유연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지역 경제가 성장하려면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결국 그것을 만들어내는 주체는 사람이다. 돈이나 건물은 수단이고, 먼저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센터는 그런 사람을 찾는 데서 출발했다. 2015년에 '창조원정대'라는 사업을 시작했는데 멘토들이 지역의 청년 창업가들을 직접 찾아가 현장 멘토링을 해주는 방식이었다.

지금도 사업보다는 사람에 투자한다는 기본 방향을 일관되게 지키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사업들은 대개 사업 위주다. 공모를 통해 어떤 사업을 선정해 돈을 주고 나면 그걸로 끝이다. 우리는 사업계획서를 받긴 하지만 사람에 초점을 두고 선정을 하고, 일단 선정이 되면 그 창업자가 시행착오를 통해 피보팅을 하는 과정을 함께 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도움을 주려고 한다."
 
지난 2월 강릉에서 열린 로컬임팩트테이블2020. 강릉의 로컬 크리에이터 '더웨이브컴퍼니'가 주관했다.
 지난 2월 강릉에서 열린 로컬임팩트테이블2020. 강릉의 로컬 크리에이터 "더웨이브컴퍼니"가 주관했다.
ⓒ IFK임팩트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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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컬 크리에이터와 장인을 연결하는 데 공을 들이는 것으로 안다.
"로컬 크리에이터는 지역이 가진 가치와 밀레니얼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세대의 감각과 취향을 날줄 씨줄로 엮어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낸다. 성공하려면 돈도 필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 장인들, 그러니까 대장장이일 수도 있고 목수일 수도 있고, 또 셰프일 수도 있는 그런 분들이 도제식으로 젊은 창업자들을 가르치고 이게 확산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 가나자와의 시민예술학교도 시민이 스스로 공동체가 가진 예술 자원을 후대에게 전하려고 노력하면서 결실을 맺은 사례인데, 길고 긴 과정이 있었다. 그 과정을 건너뛸 수는 없다. 그러려면 먼저 장인들이 사라지지 않게 해야 되고 또 장인이 되려는 밀레니얼 창업자들에겐 로컬 크리에이터처럼 어떤 호칭을 부여하면서 자부심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 강원도의 상황을 포함해서 이른바 로컬씬(Local Scene)의 현황을 평가한다면 어떤가.
"민선 지방자치가 도입된 지 30년쯤 지났는데 결과는 참혹하다. 자립적 지역 경제를 위한 거버넌스를 만들자는 게 지방자치의 취지였다면, 결과만 놓고 보면 수도권 집중은 오히려 더 심해졌으니 제도를 통한 로컬의 부흥은 실패한 셈이다.

지금의 로컬씬을 이만큼이라도 키운 건 정부나 정치권이 아니다. 크게 세 개의 흐름을 꼽을 수 있는데 먼저, 한국 사회가 성장의 한계를 찍고 후기 산업사회로 넘어가면서 이탈되거나 혹은 축출된 조기 퇴직자들이 있다. 이 중에는 뛰어난 역량을 가졌거나 자본력 있는 이들도 꽤 있다.

다음은 밀레니얼들이다. 이들이 아직은 로컬 크리에이터를 대표한다. 서울에서 희망을 찾기 힘든 이른바 N포 세대들이기도 한데 기회를 잡지 못하다 보니 자기 성찰이 굉장히 강하다. 앞으로 도대체 뭘 해먹고 살아야 하나란 고민은 결국 내가 좋아하는 건 뭐고, 나는 어떤 삶을 추구할 것인가라는 고민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취향이 중요한 키워드가 되고 있다. 나의 꿈을 펼칠 수 있는 로컬을 찾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려는 욕구와 의지가 있다.

마지막으로 원래 지역에 있던 상인들도 외부로부터 들어온, 그게 베이비부머건 밀레니얼이건, 새로운 흐름을 접하면서 자극을 받게 되고 변한다. 그리고 지역이 가지고 있던 가치들을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 강원도는 지금 어디쯤 와있다고 보나.
"이제 시작이다. 목표를 100으로 놓고 보면 지난 5년간의 노력으로 10 언저리쯤 온 것 같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강원도를 대표하는 로컬 브랜드가 적어도 3개는 나왔으면 좋겠다. 이케아나 스타벅스 같은 글로벌 기업까지 나오면 좋겠지만, 일단 성심당이나 테라로사처럼 지역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몇 개는 있어야 한다. 지금은 몇몇 가능성이 보이는 정도다. 양양 서피비치에는 지난 여름 시즌에 70만 명이 다녀갔고 속초의 칠성조선소엔 연간 50만 명 정도의 인파가 몰린다. 이런 곳부터 스케일업(규모화)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 센터가 강원도 곳곳에 발굴하고 협업한 팀이 150개쯤 된다. 이 점들을 서로 연결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서 대표 로컬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 그런 상황이라면 지속가능한 로컬을 어떻게 만들어갈지도 고민이 많을 것 같다.
"지난해부터 직접 투자를 시작했다. 규모는 3000~5000만 원 정도의 씨드 투자인데, 회수를 위한 투자라기보다는 전문 벤처캐피털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레퍼런스(참고 이력)를 만들어주는 게 목표다. 아직은 로컬 기업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벤처캐피탈은 없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임팩트 금융, 혹은 크라우드 펀딩 회사 가운데 일부가 로컬에 투자를 하는 정도다. 로컬 크리에이터가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시장의 신뢰가 아직은 없는 것 같다."
 
한종호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장
 한종호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장
ⓒ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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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컬만이 가진 자원을 활용해서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나아가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사실 성심당이나 테라로사는 그렇게 보기엔 어렵다. 어떻게 보나.
"로컬 크리에이터라는 말이 나오면서 이를 조작적으로 정의하려다보니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논란이 생기는 것 같은데, 이를 교조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지역의 자원을 활용한다기보다는 그 지역에 적합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다.

예를 들어 동해안이면 산과 바다가 있어서 슬로우 라이프를 누리기 좋은 곳이니, 이러한 지역 특성에 맞게 북 스테이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북 스테이 사업이 지역의 무슨 자원을 활용한 거냐고 물으면 좀 우스꽝스러워진다."

- 몇몇 사례를 빼곤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큰 수익을 내긴 쉽지 않다.
"목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도 중요한 문제다. 로컬 크리에이터도 기업으로서 당연히 성장을 추구 해야겠지만 그에 못지않은 지표는 균형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즉 로컬에 적합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비즈니스를 통해 그 지역의 균형적 성장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는지를 판단해 봐야 한다.

가령, 성심당이 올해 매출이 100억 원인데 10년 뒤에 과연 1000억 원까지 늘릴 수 있을 것이냐가 아니라, 로컬에 좋은 빵을 공급하면서 식문화를 긍정적으로 바꿔내고, 또 어느 정도의 일자리도 만들어내면서 공동체를 탄탄히 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느냐 하는 순기능도 함께 봐야 한다. 더 많은 성장만큼이나 균형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얼마나 역할을 할 수 있느냐라는 관점이 필요하고, 그에 걸맞은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이렇게 보면 투자의 방향이나 규모도 달라진다."

- 투자의 방향과 규모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인가.|
"떼돈을 벌지 않아도, 먹고 살만큼만 벌고 스스로도 삶을 즐기면서 지역 공동체가 더 풍요로워지도록 하는 것, 많은 이들이 동경하는 포틀랜드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포틀랜드의 모든 수제 맥주집이 세계적인 브랜드는 아니지만 골목골목마다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가게들이 있어 그 지역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휴먼 스케일, 그러니까 사람이 만들어서 생산할 수 있는 만큼만 생산하고 또 소비하는 걸 지향하는 거다. 식당에서 음식이 잘 팔린다고 기계로 막 찍어내는 게 아니라 셰프가 조리할 수 있는 만큼만 만들어 내는 방식이다. 그런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공존할 수 있도록 이들을 위한 자금 시장이 만들어지는 게 필요하다. 꼭 규모가 크지 않아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코로나19 사태 이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로컬에 어떤 변화가 있을 거라고 보는지 궁금하다.
"대기업들이 재택근무를 하면서 잉여가 어떤 부분에서 발생하는지를 찾아내 기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한다. 리모트 워킹이나 외주화가 일상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플랫폼 노동의 확산, 유연한 기업 문화가 굉장히 많아질 거다. 기업에겐 파격적인 기업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고 시민에겐 위험한 변화다.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면서 다들 앞으로 뭘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일본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사회 불안이 커지고 정부에 대한 불신도 커졌다. 그러면서 많은 실험들이 시작됐다. 중앙집중화 되고 계층화된 구조가 빠르게 무너지고 로컬라이즈화 된 마이크로 이코노미, 지역 단위의 작은 경제들이 더 많이 생겨날 거라고 본다.

제레미 리프킨도 <3차 산업혁명>에서 분산된 경제끼리 협업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견했다. 굳이 한 곳에 모여 생산하고 공급하기보다 로컬에서 생산하는 지역 브랜드들이 많아질 거다. 그런 걸 선호하는 문화도 자리잡아가고 있지 않나. 크래프트(장인기술) 문화도 확산되고 있다. 사람이 손으로 재생한 옷이나 가방이 가진 가치와 희소성에 주목한다.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겠지만 조금씩 로컬의 가치가 높아지는 현상이다."

- 현장에서 많은 로컬 크리에이터를 만나본 경험으로 새롭게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조언이나 당부를 부탁드린다.
"유행을 따르거나 남을 흉내 내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요즘의 소비 트렌드를 특징짓는 건 취향과 공감이다. 취향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비즈니스를 설계하면 그에 공감하는 소비자들이 찾게 되고 이들 간에 공명이 생긴다. 그러면서 커뮤니티도 만들어지고 새로운 시장도 생긴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고 사업에서 성공하는 건 아니다.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려면 실력이 필요하다. 준비 없이 덜컥 창업에 나서면 당연히 실패한다. 성공한 크리에이터들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끊임없이 학습을 한다는 점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백만 가지 문제에 부딪히는데 그럴 때마다 남에게 기댈 순 없다. 스스로 고민하고 도전해보고 시행착오도 겪고 피보팅 하면서 헤쳐 나가는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윤찬영 기자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현장연구센터장입니다. 이 기사는 비로컬(http://belocal.kr), 시사N라이프, 새사연(http://saesayon.org)에도 실릴 수 있습니다.


태그:#로컬, #로컬 크리에이터, #한종호, #창조경제혁신센터, #지역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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