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장신 가드 이대성은 이번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는 선수 중 최대어로 꼽힌다. 이대성은 지난 2018-2019 시즌 울산 현대모비스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끌며 MVP까지 선정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으나, FA를 앞둔 2019-2020시즌 시즌 도중 라건아와 함께 갑작스럽게 전주 KCC로 트레이드되며 많은 농구 팬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사실 이대성과 모비스의 결별은 어느 정도 예상된 수순이었다. 이대성은 전 시즌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도 구단이 제시한 연봉 인상안을 거절하고 예상보다 훨씬 낮은 1억 9500만 원에 계약했다. 누가 봐도 FA를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

KBL 규정상 연봉 상위 30위 안에 들지 않으면 FA 자격을 얻었을 때 보상 규정(보상선수 1명+전년도 연봉 50% 혹은 전년도 연봉 200%)에서 자유로워진다. 이대성(연봉 순위 37위)은 한 시즌 연봉을 손해보는 대신 보수 순위 30위권 밖으로 밀려나며 미래를 기약했다. 반면 모비스 입장에서는 FA가 되면 팀을 떠나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모비스는 2019-2020시즌 우승후보라는 예상과 달리 초반 고전을 면치못했다. 현역 생활 막바지에 접어든 양동근(은퇴)과 함지훈의 은퇴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세대교체와 리빌딩이 필요했다. 직전 시즌 우승을 차지하며 선수단의 동기부여가 약해진 상황에서 기존 멤버를 유지한다고 해도 2연패를 노릴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모비스는 결국 미래를 기약할 수 없었던 라건아와 이대성을 모두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으며 변화를 선택했다. 모비스는 모비스대로, 이대성은 이대성대로, 주어진 제도 하에서 자신들을 위하여 최선의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이대성은 KCC 이적 이후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다. 2019-2020시즌 성적은 34경기 출전, 평균 11.7득점 2.6리바운드 2.9어시스트로 표면적으로는 아주 나쁜 기록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문제는 꾸준함과 효율성이었다. 이적 후 얼마되지 않아 부상으로 한 달 가까이 결장했고, 복귀한 이후에도 모비스와는 다른 KCC의 전술적 시스템과 팀 내 역할에 적응하지 못하여 어려움을 겪었다. 설상가상 팀의 기둥인 라건아가 부상으로 시즌아웃 됐고,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시즌이 조기 종료되며 이대성의 활약은 끝까지 물음표를 남긴 채 막을 내렸다.

드디어 FA 자격을 얻게된 이대성은 과연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이대성은 이적 후 1년간 원소속 구단 복귀 금지 규정으로 인해 친정팀 모비스와 협상할 수 없다. 현 소속팀 KCC를 비롯한 9개 구단과 모두 협상이 가능한데, 올해부터 소속 구단 우선 협상 규정이 폐지되면서 운신의 폭도 자유로워졌다.

올 여름 이대성을 제외하면 이렇다할 대어급 FA가 없는 데다 보상규정도 적용되지 않는 만큼 확실한 전력 보강을 노리는 팀이라면 부담없이 이대성을 염두에 둘 만 하다. 이대성은 1, 2번을 모두 소화할수 있는 멀티플레이어로서 거침없는 돌파와 속공전개, 슈팅, 수비력 등을 두루 갖췄고, 큰 경기 경험도 풍부하다.

하지만 올시즌 보여준 애매한 활약상과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침체된 리그 분위기는 이대성에게 악재가 될수 있다. 아무래도 이대성이 최근 FA대박을 터뜨렸던 김종규(원주 DB)나 김시래(창원 LG), 이정현(전주 KCC)만큼의 평가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무엇보다 이대성은 올 시즌 전술적으로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을 드러냈다. 모비스의 우승멤버 시절에는 가드 포지션에서 압도적인 신체조건과 운동 능력을 앞세워 장점을 극대화하는 농구를 펼쳤지만, 조직적이 농구를 선호하는 전창진 감독이 이끄는 KCC에서는 동료 선수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자신이 볼을 오래 소유하고 공격을 주도하는 플레이를 선호하는 이대성의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그를 전술의 중심으로 세워야 한다. 문제는 이대성이 그 정도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을만한 꾸준함과 내구성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 소속팀인 KCC만 해도 보내주자니 대안이 없고, 그렇다고 붙잡자니 기존 선수들과의 조화가 걱정될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이대성을 보며 '데자뷰'처럼 연상되는 선수가 바로 김효범(브라이언 킴)이다. 모비스에서 우승멤버이자 KBL 정상급 슈팅가드로 활약했던 캐나다 출신 김효범은 FA 자격을 얻은 이후 서울 SK로 이적했으나 모비스에서만큼의 능력을 다시 보여주지 못하며 서서히 하향세를 탔다. 말년에는 모비스로 다시 복귀하여 은퇴했지만 전성기에 보여준 활약상과 비교하면 용두사미에 가까운 커리어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김효범이 한창 주가를 높이던 시절에는 오히려 유재학 감독이 김효범의 개인 능력과 창의성을 지나치게 억누른다는 비판 여론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비스를 떠난 이후 김효범의 부족한 농구지능과 전술적 이해도 같은 단점들이 드러나면서 오히려 유재학 감독이 재평가받기도 했다.

이대성의 성장 과정도 묘하게 김효범과 흡사하다. 유재학 감독은 수비와 조직적인 농구를 강조하는 보수적인 지도 스타일로 알려져 있지만 김효범이나 이대성처럼 확실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에게는 엄격함 속에 어느 정도 플레이의 자유도를 부여할 줄도 알았다. 이대성을 위하여 기꺼이 메인 볼핸들러 자리까지 양보했던 양동근같은 이타적인 리더를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모비스에서 그토록 펄펄 날아다니던 이대성이 KCC에서는 계륵에 가깝게 전락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농구계에서는 유재학 감독 밑에서 성장한 선수들이 정작 다른 팀으로 떠난 이후에는 고전한다는 '탈 유재학' 징크스가 있다. 김효범은 물론이고 김현중, 우승연, 이병석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양동근이나 함지훈같은 레전드들도 데뷔 초기에는 평가가 낮았던 것을 감안하면 유재학식 농구가 아닌 다른 팀에서 데뷔했어도 이 정도의 선수로 성장했을지는 평가가 엇갈릴 정도다. 물론 전부는 아니고 김시래나 라건아, 김동량처럼 유재학 징크스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생존 사례들도 존재한다.

이대성은 김효범의 전철을 따라가게 될까. 아니면 유재학 징크스를 벗어나 자신만의 새로운 농구 커리어를 개척할까. 올해 FA 시장에서 이대성이 어느 팀의 유니폼을 입게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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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성 유재학 프로농구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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