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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생경하기 그지 없었던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각국은 그야말로 전시에 준하는 비상사태를 지나고 있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밤새 업데이트된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를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고, 끝없이 갱신되는 숫자에서 느껴지는 놀라움은 도대체 무뎌지지가 않는다. 하루에도 수없이 늘어나는 시신들을 수습할 여력이 안되어 트럭에 싣고가는 이탈리아의 보도장면은 그 어느 공포영화보다 서늘한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가마다 비상대책 마련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사태 초기 코로나19의 진단과 방역에 집중되었던 대책들은, 이제 '경제 대응책'을 그 중심에 놓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되어 자영업자들과 기업들의 수입 감소, 대규모 일자리 상실 등 심각한 경제 문제들이 발생하고 급기야 세계경제대공황까지 우려할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WHO(세계보건기구)가 팬데믹을 선언할 때만해도 캐나다의 상황은 그리 심각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후 연일 상황이 급변하면서 4월 6일 현재 확진자는 1만4408명 사망자는 258명에 이르렀다. 더구나 3월 23일을 기점으로 생활에 필수적이지 않은 모든 비즈니스에 대한 셧다운 조치가 내려지자 자영업자들의 매출 급감, 임시 실업자의 폭증, 경제활동 둔화 등에 따른 경기악화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일찍부터 다각도의 경제지원책들을 고심해온 캐나다 연방정부는 3월 18일, 팬데믹 선언 후 불과 일주일 만에 상당히 구체적이고도 광범위한 경제조치들을 내놓은 바 있다. 그리고 이십 여 일이 지난 현재 '캐나다의 코로나19 경제 대응책'이라는 이름 하에 다양한 조치들이 이미 시행되고 있거나 곧 시행될 예정이다.

캐나다의 코로나19 지원 정책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오른쪽)가 3월 11일(현지시간) 오타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트뤼도 총리는 이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처를 위한 10억 캐나다달러(약 8천700억 원) 규모의 재정 대책을 발표했다.
▲ 코로나19 대책 기자회견 하는 캐나다 총리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오른쪽)가 3월 11일(현지시간) 오타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트뤼도 총리는 이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처를 위한 10억 캐나다달러(약 8천700억 원) 규모의 재정 대책을 발표했다.
ⓒ 오타와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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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체에 대한 지원은 초저금리 융자와 대출, 세금 납부 기한 연장을 비롯해, 고용인들을 해고하지 않고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임금 보조 정책이 있다.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사업체에 대해 3개월간 임금의 75%를 보조해주는 '긴급 임금 보조금'을 마련한 것이다.

개인에 대한 지원을 보자면, 기존의 양육수당을 늘려 아이 한 명당 한 달에 최대 $300까지 추가 지원하는 것, 코로나19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이들에게 총 16주간 일주일에 $500씩 지급하는 것(CERB, Canada Emergency Response Benefit), 모기지나 학자금 납부기한을 연기해주는 것 등으로 세부화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Support for people who need it most'(지원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조치) 같은 항목이다. '지원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란 어떤 이들을 말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원주민, 노숙인, 그리고 학대 및 성폭행 피해 여성들이 포함됨으로써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배려가 드러나있다.

캐나다 정부는 원주민에 대한 부채의식을 지니고 있다. 이는 국가성립 초기 그들의 터전을 강제로 빼앗다시피했다는 것, 이후 그들을 동등한 협력의 상대로 대하기보다 동화시켜야 할 대상으로 여겨 각종 학대와 착취가 이루어졌었다는 것에 대한 반성과 성찰에 기인한다. 2008년 스티븐 하퍼 총리에 의해 원주민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가 이루어진 이후, 꾸준한 경제적 지원과 인권회복을 위한 활동들이 활발히 펼쳐져오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회적 소수자이자 약자인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번 사태에도 3억 5백만 달러를 지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편, 캐나다에서는 2016년 기준 12만9000명의 사람들이 '집 없음'을 경험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에 정부는 2028년까지 노숙인의 수를 절반 가량 축소시키는 것을 목표로 'Reaching Home'(집으로 돌아가기)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특별히 이번 코로나19 사태 중에는 침대 구입,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한 가벽 설치, 쉼터의 과잉수용 완화 등의 방법으로 그 프로그램을 더욱 강화하고자 하고 있다.

또 하나의 '지원이 가장 필요한' 그룹인 여성 학대나 성폭행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그들을 보호중인 쉼터나 센터에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지원금 5000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이외에, 노인들을 위한 매우 실질적인 대응책을 제시하고 있는 점도 주목을 끈다. 지역단체들이 노인들에게 실제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9백만 달러를 지원한다는 내용인데, 식료품이나 약품과 같은 필수품 배달, 개개인의 특수한 필요 진단, 공동체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시켜 주는 것 등이 포함되어 있어 노인들의 현실을 고려한 세심함을 엿볼 수 있다.

최근에는 농업과 항공교통 분야에 지원 사항이 추가되었다. 매출급감이나 현금 유동성 문제에 직면한 농업 및 식품 가공업자들이 재정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대출 폭을 확장하기로 했으며, 항공교통 분야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부과하는 토지임대료를 올해 말까지 면제해주기로 했다.

위험에 가장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취약 계층, 사회적 약자, 소수자라 불리는 이들에게 캐나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통해 '지원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라 이름 붙였다. 생명의 위협까지도 느껴야 하는 초유의 사태에서 도움이 절실하지 않은 이가 어디 있겠나마는, 평상시에도 소외계층에 속하는 이들이 이러한 긴급사태에서마저 또다시 소외되는 불행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 구석구석을 살펴 안전망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 외에도 노인과 청소년, 학생 그리고 생존에 필수적인 식품을 공급하는 산업체와 이번 코로나 사태로 어느 분야보다 큰 피해를 입고 있는 항공업계에 대한 지원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필요를 분석하고 누락되는 계층 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자 고심한 정부의 흔적이 보인다.

한국에서도 말 그대로 '긴급' 지원 이뤄져야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코로나19 수도권 공동방역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코로나19 수도권 공동방역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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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는 한국에 비해 행정처리가 상당히 느린 편이다. 게다가 자신이 맡은 일이 아니면 관여하지 않으려는 개인주의적 습성과 추가근무에 대한 기피현상까지 더해져 그 처리속도는 더욱 느려지곤 한다. 그러나 이번 경제대응책의 경우 '긴급대책'인 만큼 그 절차나 방법을 최대한 간소화하고 생략해 조속히 시행되도록 애쓰는 모양새다.

우선, 모든 신청은 전화나 온라인으로 이루어진다. 더 많은 건의 신청을 빠른 시일 내에 처리하기 위함이다. 신청자가 많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CERB의 경우 출생월별로 신청 날짜를 구분해 놓았는데, 신청 후 3~5일 내에 받을 수 있다. 또 코로나19와 관련하여 실업수당 신청 시 진단서 제출을 면제해주는 것, 기존에 지급되고 있던 지원금에 추가 지원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별도로 신청하지 않아도 되도록 한 것도 신속한 시행을 위한 방편들이다.

한국 역시 여타의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다방면의 경제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입원치료자나 격리자 생활지원비, 사업주에 대한 유급휴가비용 지원, 아동 특별 돌봄 쿠폰, 저소득층 한시 생활지원, 소상공인을 위한 초저금리 융자 및 대출 지원, 코로나19 피해 점포 지원 등 크고 작은 지원책들이 있다. 다만 지원규모가 큰 편은 아니어서 좀더 과감한 지원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긴급재난지원금'의 경우, 2020년 3월 의료보험납부금을 기준으로 하위 70%에 100만원을 지급(4인 가족의 경우)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보험납부금이 소득 수준을 평가하기에 적절한가, 경계선에 위치한 이들의 불만과 소득 역전 현상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등에 대한 명쾌한 답은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 시행 시기에 있어서도, 총선이 끝난 뒤 국회를 열어 추경예산안이 통과되기까지 기다리자면 '긴급지원'이라는 취지가 퇴색돼버린다는 문제점도 있다.

이같은 문제들에 대한 보안책이 빠른 시일 내에 마련되어, 급박한 현실에 처한 이들에게 말그대로의 '긴급' 지원이 이루어지기 기대해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 또 한번 소외돼 눈물 짓는 이들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이라는 중소도시에서 남편과 함께 세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습니다.


태그:#코로나19, #캐나다, #경제대응책, #긴급재난지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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